리뷰[Review]/책

평생 일할 수 있는 즐거움 리뷰

시북(허지수) 2013. 1. 25. 22:52

 91세의 만화가, 103세의 성악가, 88세의 파일럿.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제 첫 느낌은 "굉장하다" 였습니다. 어떻게 나이를 무시할 정도의 의욕으로 아직까지 현역일 수 있단 말인가. 일본어 번역서적으로서, 원제는 최고령 프로페셔널의 가르침 이라는 책이지요. 여하튼 한국식으로 제목도 잘 뽑은 것 같습니다. 평생 일할 수 있는 이 사람들의 즐거움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오늘 소개할 책리뷰는 바로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 입니다. 최고령 프로 15인의 가르침을 묶은 책입니다.

 

 인생은 결코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우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인기 만화 호빵맨의 출발은 53세 이며, 47세로 DJ를 시작한 사람도 있으며, 심지어 89세인데 현역인 피아니스트의 말은 심금을 울립니다. 젊은 사람은 빨리 결과물을 내놓고 싶어하겠지만, 빨리 스스로를 완성시킬 필요는 없다는 것이지요. 심지어, 재능을 발하며 25세에 일찍 데뷔하는 것보다, 그 재능을 숙성시켜서 35세에 데뷔하는 게 더 낫다고까지 말합니다. 이 이야기 꽤 흥미롭지 않나요? 좀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저자 : 도쿠마서점 취재팀 / 출판사 : 상상너머

 출간 : 2012년 02월 03일 / 가격 : 13,000원 / 페이지 : 248쪽

 

 

 왜 그렇게 숙성이 중요한가요. 재능을 일찍 꽃피운다는 것은 참 멋진 일 아닙니까. 이것은 일종의 경고의 의미로도 읽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일찍 피어날수록, 그만큼 시련에 휘둘릴 위험도 높아지며, 더욱이 성공에 취해서 현실에 안주하기 쉽기 때문에, 재능은 숙성하는 시간도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89세 그녀의 말은 설득력과 울림이 큽니다.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의 성장은 끝이다."

 

 제가 10대 시절, 그러니까 벌써 강산이 한 번은 더 지난, 까마득한 옛날인데 (...)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는 은사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 저기에 한 새가 날아간다. 그 새는 저기 저 높은 지점에 올라서 보기 위해서 힘껏 날아가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거기에 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새는 다시 또 그 자리를 박차고 날개짓을 시작한다. 저기 또 자신이 가야할 더 높은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새가 날지 않게 되는 순간, 그 새는 끝이다. - 어떻습니까. 프로페셔녈의 가르침이란, 이런 식의 이야기지요. 그래서 역설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성공을 맛볼 때, 그 때야 말로 그만큼 경계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03세의 성악가, 가노 아이코 선생님은, 인생을 너무 많이 살았다고 유머스럽게 말하지만, 그녀의 이야기 역시 깊은 통찰을 줍니다.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는, 이른바 뭐든지 잘하는 사람은 폭은 넓지만 깊이가 없기 때문에 "별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계속 공부하고 정진하는 사람만이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다고 힘주어 강조하고 있네요. 어쩐지 많이 부끄럽지만 저의 일화를 덧붙이면 좋겠네요.

 

 저는 음악을 참 좋아합니다. 블로그에서 작업용BGM을 배경으로 켜놓고 무엇인가를 할 때가 많아요. 듣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연주도 좀 해보면 더 근사할 것 같아서, 이런 저런 악기를 시도했었습니다. 기타를 시작으로, 베이스 기타니, 드럼이니, 피아노니, 흔히 접할 수 있는 것들은 이것저것 말이지요. 자꾸 손을 대면 무엇이든 조금씩은 하게 됩니다. 기타만 해도, 손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몇 주 반복하다보면, 쉬운 곡들은 코드법만으로도 누구나 쳐볼 수 있게 되지요. 드럼 역시도 기본 주법을 충실히 연습한다면, 어느 정도 친숙해 진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말이지요. 조금 비참하게도, 제 실력은 딱 거기까지 였습니다. 한 마디로 별로 쓸모 없는 연주 실력이 되고 말았지요. 피아노도, 드럼도, 기타도, 등등... 가끔씩은, 다재다능한 녀석이라는 달콤한 소리도 들었지만, 냉정하게 말합시다. 뭐 하나 제대로 깊이 있게 못하는 녀석이 맞습니다. 전 음악분야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손에 넣은 게 없었습니다. 성악가 선생님의 말씀이 진실이었지요.

 

 이 책에서 특히나 좋았던 점은 위기의 순간을 덤덤하게 잘 그려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가령, 성악가 아이코 선생님은 11살의 아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런 사랑하는 사람을 갑자기 잃었습니다. 그 기분은 결코 글로 표현할 수 없을 테지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유명한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를 쓴다면 그나마 약간이라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이를 잃어버린 가정은 불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행복하다면, 그것은 위선에 가깝겠지요. 심지어 아이를 잃은 먹먹한 슬픔을 가슴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떤 아버지의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아들을 잃고서, 2년간의 멍한 시간을 보냈다는, 그녀가 다시 음악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재기할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바로 누군가의 손길이었지요. "음악을 가르쳐보지 않겠는가?" 라는 제의에 그녀는 다시 몰두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지요. 이 지점이 저는 꽤 크게 와닿았습니다. 누군가를 잃은 절망감은, 새로운 누군가에 의해서, 다시 살아가게끔 힘을 얻게 되었다는 것, 바로 이 점이 이상하리만큼 강한 여운이 남습니다. 이 여운을 언어로 표현한 마야 안젤루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섬세하고 예민하지만) 굳세고 튼튼한 면도 있어서 한 번 격려를 받으면 계속해서 박동한다" 격려의 힘은 이토록 큰 것 같습니다.

 

 요즘 저는 종종 "사는 게 재미가 없다.", "살 맛이 안 난다." 에서 시작해서 "삶이 지옥같다"라는 험한 말까지 듣곤 합니다. 사실, 저마다 고단한 인생길이지요. 그래서, 즐거운 일에 대한 고찰을 이 책에서 얻으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비결로 오늘의 리뷰를 마치면 좋겠네요. "즐거운 일은 마냥 입만 벌리고 있다고 알아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우직하게 쏟아부을 때 즐거움도 찾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지요. 젊었을 때의 고통만큼, 훗날 즐거운 일이 찾아올 것이라는 그녀의 당부가 가슴이 미어지도록 따뜻하게 들렸습니다. / 2013. 01.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