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인셉션 (Inception, 2010) 리뷰

시북(허지수) 2013. 1. 30. 20:38

 인셉션을 보았습니다. 근사한 꿈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이미 훌륭한 분석과 해석들은 많은 분들이 썼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생각해 볼 것을 찾아본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은 제작진의 몫이라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것은 감상하는 사람들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미술작품이 그러하듯이, 인셉션이라는 영화에는 두고 두고 영감을 주는 것들이 많이 있을테니까요. 꿈 이야기 이면서도, 동시에 무의식에 관한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의식하지 않고 있어도, 우리가 많은 것을 보고 있다는 것은 이제는 일반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는 정말 신기한 기능들이 몇 개 있습니다. 생각 조정을 잠깐 떠올려 봐도 분명합니다. 자, 지금 바나나를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라는 이 글을 보면 우리는 당장 노란색과 바나나가 떠오르게 됩니다. 심리학에서는 아예 "단순 노출 효과"라는 것까지 연구가 진행되어 있지요. 즉, 미디어에서 자주 노출된 것에 우리는 저절로 끌려가기가 쉽습니다. 정보의 바다 속에 살고 있는 오늘날 일수록, 이 점은 분명히 생각해 볼 가치가 충분한 주제니까요. 서론은 이쯤하고, 영화 이야기를 살펴봅시다.

 

 

 매력적인 질문에서 이 영화는 출발합니다. 꿈 속으로 우리가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을까? 과연 무의식의 영역을 건드려 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무의식을 바꿈으로서, 우리의 세계는 변화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어울리는 영화입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제 가치관에서는 이것을 YES로 규정하고, 이 리뷰를 써나가볼까 합니다. 사람마다 가치관은 다를 수 있으므로, 이 점을 미리 유의해주신다면 좋겠습니다. 말하자면, 이 리뷰는 저의 감상으로 보신다면 좋을 것 같네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인셉션에서 현실과 꿈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것은 소박하게도(?) 물리법칙 입니다. 꿈에서는 물리법칙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중력의 한계를 벗어난다거나, 팽이 모양의 토템이 쓰러지지 않고 영원히 돌고 있다면, 이것은 꿈인 셈이지요. 자, 그럼 주인공 코브의 인생을 현실적인 세계에서 먼저 살펴봅시다. 코브는 꿈을 헤집고 다니는 대단히 매력적인 일을 하는 아빠지만, 현실에서는 초라하다 못해서 절망적이기 까지 합니다. 아내는 없고, 아이들도 볼 수 없고, 도대체 삶의 희망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모를 정도 입니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서, 코브는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 이른바 "인셉션"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매력적인 부분은 꿈 속의 세계가, 사실은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꿈들은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잠자면서 표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만해도 가게 일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동안에는, 꼭 가게에 무슨 일이 생기는 꿈을 꾸곤 합니다. 때로는 꿈 속에서 시간에 급박하게 좇겨서 아차 늦어서 큰일났다 라고 생각하면서 일어났는데, 깨고 보니 "늦었다는 것"은 꿈이라서, 천만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있습니다. 시계가 칼같이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는 누구나 이렇게 시간에 좇기는 꿈은 꾸지 않나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하하.

 

 더욱 재밌는 것은 우리가 짧고 달콤한 잠깐의 잠을 자면서, 간혹 인상에 남는 꿈을 꿀 때도 있는데, 이것을 영화에서는 현실의 시간과 꿈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고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인셉션이 이토록 극찬을 받고, 많은 사람의 공감을 받은 것은, 영화 자체가 가지는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그 기본 바탕은 이렇게 우리가 일상에서 겪어봄직한 일을 테마로 삼아 영화를 그려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조금 더 흥미로운 주제로 들어가 봅시다. 우리의 눈은 과연 모든 것을 볼 수 있을까요?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선택한 것만을 바라보는 경향이 심합니다. 심지어 한 곳에 뚜렷하게 집중하고 있으면, 다른 곳에는 눈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 덩치만한 고릴라가 화면에 지나가도, 어딘가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다른 예로는 사랑에 깊이 빠지면, 그 달콤한 호르몬 작용으로 인해, 상대방의 단점이 미화되어서 보일 정도가 됩니다. 그만큼, 우리의 현실감각이란, 때로는 정확하지 않다는 의미 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셉션은 제게 있어 단지 흥미롭고 멋진 SF액션영화로만은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은 현실을 잊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환상에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돌아가는 팽이같은, 다시 말해서 끝이 없는 망상 속에서 살고 싶어합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오늘날 사회에서 우리가 먹고 살기가, 그리고 즐겁게 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낭만이니, 이상이니, 무슨 무슨 주의니 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 맥없이 주저앉아 버렸고,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만족을 대리해서 얻고자, 판타지를 찾아서 헤매입니다.

 

 "우리는 꿈에서, 판타지에서 깨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영화의 매력적이고 달콤한 결말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이 질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깨어난다는 것은 동시에 고통을 동반하는 것이 아닐까요? 현실을 마주 본다는 것은, 영화의 표현방식을 빌리자면, 한없이 추락하는 기분이 들거나, 죽을 만큼 괴로운 너무나 아픈 일입니다. 마주해야 할 자신의 시간 앞에 똑바로 서 있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꿈 속의 미로에 갇혀서 시간만 낭비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어쩐지 너무 가혹한 질문 같기도 합니다만, 현실적인 노력을 지금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달콤함에 안주하면서 조금씩 판타지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입니다. 그 달콤함은 당장은 우리를 신이나 주인공처럼 높여줄 것이지만, 시간이 흘러 훗날 후회만을 안겨주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그 달콤함 속에는 "진정한 의미"가 없을테니까요.

 

 (한편의 SF영화를 통해서 "인생의 의미 부여"까지 생각한다는 것은, 어쩌면 지나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인셉션이야 말로 숨막히는 전개감, 뛰어난 연출력 등 뭐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일류 수준의 명화인데, 정작 저는 이러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고 있네요. 이런이런...)

 

 그럼 꿈에서 깨어나, 어떻게 진짜 의미를 찾으란 말인가요? 빅터 프랭클이 강조한 인간다움 3가지에는 창조, 경험, 태도가 들어가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함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현대는 인간에게 업적, 지위, 재산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에게 이것이 있다면 멋진 사람으로 알려질 것이라고 속삭입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판타지고, 이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태도 입니다. 달콤함을 선택할지, 치열함을 선택할지, 그것은 어떤 순간에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자신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로 돌아가서, 그렇게 봤을 때 인셉션에서 가장 근사한 장면은 영화 거의 끝무렵에서 주인공 코브가 사이토를 살려내고자, 기약없는 공간으로 뛰어들어가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내와의 달콤한 시간을 내던지고, 살아있는 사람을 살려보고자 자신의 시간을 던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의식적으로 판타지 대신에 현실을 선택해야 하는 연습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건 아닐까요. 그리고 이렇게 "태도를 선택하는 연습"이야말로,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잘 자리 잡아, 인생을 조금씩 변화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게 아닐까요. 태도의 변화, 의식의 변화는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 하지만, 다르게 접근하자면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장문은 이쯤으로 해두고, 이야기를 마칠 시간입니다. 액션 영화로서도 즐겁지만, 생각을 풍성하게 던져주는 측면에서는 더욱 즐거운 영화. 지금까지 인셉션이었습니다! / 2013. 01.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