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달팽이의 별 (Planet Of Snail, 2012) 리뷰

시북(허지수) 2013. 1. 31. 21:51

 지인의 추천으로, 놀라운 영화를 한 편 보았습니다. 이승준 감독의 영화 달팽이의 별입니다. 오늘은 조금 신비로운 글쓰기 모드로 가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무지개 모양의 포물선을 한 번 상상해 보세요. 어떤가요. 무지개 모양의 포물선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중앙에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만큼 선명하고 잘 보입니다. 그리고 사회는 이 사람들을 기준점으로 해서 여러가지 도구를 만들어 냅니다. 이번에는 오른쪽 끝으로 시선을 이동해 볼까요. 이른바 잘 나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끝으로 갈수록 그 사람들이 잘 보이지는 않더라도, 어쨌든 이렇게 상위 몇 퍼센트의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엄친아니, 알파걸이니, 아니면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영웅들을 떠올려봐도 좋겠네요. 자, 이제 오늘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과감하게 왼쪽 끝으로 시선을 이동해 봅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이는가요? 평소에는 보기가 어렵습니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무엇을 꿈꾸는지 보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쪽의 이야기는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초점을 잘 맞추지 않으며, 어렴풋이 희미하게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그 특별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 입니다. 마법같은 이야기 입니다. 예술의 위대성은 바로 이런 지점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은 모두가 특별한 존재다 라는 잊기 쉬운 것을, 예술 작품은 부드럽게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영찬씨는 앞이 보이지가 않습니다. 귀가 들리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까요. 무척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예를 들어, 제 친구 이야기를 해보자면, 저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은 귀가 들리지 않는 여자친구와 오랜 기간 사귀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는 수화를 배워서 능숙하게 의사소통을 하고, 메모나 글로서 중요한 것을 확인하더군요. 옆에서 보면서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수화라고는 전혀 몰랐던 친구가, 어느날 능숙하게 수화를 하는 것을 보면서, 사랑이란 참 대단하긴 하구나 라고 새삼 깨닫기도 했었지요. 반대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래서 들을 귀와 말할 입이 기능한다면, 일반적인 언어를 통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영찬씨는 마음아프게도 중복되는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청각 장애 지요. 그는 수화를 볼 수 없으며, 이야기를 들을 수 없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나 무겁고 가혹한 환경 앞에서도 영찬씨는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손이 있고, 감촉이 있기 때문입니다. 손으로 글을 읽고, 손으로 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불가능이 없다 라는 흔한 말은, 진정 이럴 때 쓰는 것이겠지요. 사람은 너무나 놀라운 존재입니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서도 소통해 나가는 존재입니다.

 

 영찬씨와 그의 아내 순호씨의 삶은 달팽이처럼 느리게 흐릅니다. 손을 통한 한 번의 통역을 거쳐야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니까요. 불편함은 분명히 곳곳에 가득합니다. 일상의 사소한 일까지도 때로는 어렵게 느껴지고, 하다못해 운동을 하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혼자서 세상을 탐험하기에는 위험천만한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더욱이 빨리 발전해 왔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문화가 별로 자리 잡지 못했으니까요. 모두가 빨리 가는 세상에서, 느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요?

 

 아마도 적응력의 힘이라고 생각되는데, 신기하게도 이 부부는 이런 느린 속도를 별로 답답해 하지 않습니다. 느리면 느린 대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영찬씨는 진리를 탐구하는 자세로 느리게 살아갑니다. 비가 오면, 빗속에서도 발견을 시작하고, 호기심과 경험을 멈추지 않습니다. 이 태도가 정말로 근사합니다. 차분하게 읽어주는 영찬씨의 시는, 둔탁하게 굳어 있는 우리의 생각을 깨뜨립니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 인상에 강하게 남은 것이, "시선에 대한 자유로움" 입니다.

 

 영찬씨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직접 볼 수가 없으며, 또한 그들의 시선을 의식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화가 되어 있지 않은, 일반화가 되어 있지 않은 표현을 보여줍니다. 영화에서 그가 나무를 끌어안고, 지금 나무와 데이트를 하고 있다고 말할 때, 저는 자유로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미친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예컨대 영찬씨의 행동은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면 약간 정신이 나간듯한 행동이 됩니다. 나무를 껴안고 데이트를 하고 있다니요. 그런데 언제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정신 나간 사람들이 다수가 되었을 때는 그들이 오히려 정상이 되고, 정상인 사람이 정신 나간 사람이 되어 버리는 무서운 역전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지요. 폭주하는 자동차처럼 사회는 빠른 속도로 달려가며, 무서우리 만큼 말초적인 자극을 통해 계속해서 우리를 유인합니다.

 

 순간의 시간이었지만 지금 저는 우리 사회가 복권인 럭키백 같은 것을 검색어 1위로 밀어올리는 광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또 로또번호 등이 검색어 1위로 올라올 것입니다. 오늘날은 광인의 사회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요. 어떻게든 돈과, 소비를 껴안고 데이트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정품을 얻기 위한 마케팅 전쟁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자유롭게 살아가고, 자유롭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걸까요.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연구되어 갈수록, 자본에 의해서 이용되어, 인간의 약점만을 정확하게 파고 들어가는 건 아닌지 저는 의문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말을 생각해보면 좋겠지요. "뭐가 되어도 인간다운, 정직한 생활을 할 생각입니다." 인간이란 뭐가 되어도 자신의 인생을 찾아서 살아갑니다. 뭐가 되어도 정직한 생활을 해나가기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뭐가 되어도 사랑을 할 수 있으며, 뭐가 되어도 사람은 그 존재 자체로 특별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달팽이의 별은, 그렇게 우리에게 평소에 도저히 볼 수 없던 것을 조심스럽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유일성과 놀라움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고 표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하루하루가 설령 덧없는 인생일지라도, 인간이라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긍정해 나가면서 힘내서 살아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별처럼 빛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가 멋진 것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천천히 알아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2013. 01.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