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베를린 (The Berlin File, 2012) 리뷰

시북(허지수) 2013. 2. 12. 00:03

 어느덧 꿀처럼 달콤하던 설날 연휴의 마지막날이 되었습니다. 저는 오랜 절친과 함께 영화관 나들이를 계획했지요. 상영작 중, 보고 싶었던 영화는 많았는데, 우리는 베를린을 보기로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하지요. 영화를 좋아하는 많은 분들과 비슷한 이유일 것입니다. "난 이 영화는 이미 봤어." 라는 말이 나오면 일단 탈락하기 때문에, 결국 서로 보지 못한 영화 중에서 고르다보니 베를린 (...)

 

 아, 여하튼 서론이라도 좀 재밌게 써야하니까요. 베를린은 꽤 무거운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하정우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가 정말 멋있었고, 악당전문(?) 류승범도 싱크로율이 매우 좋았습니다. 화려한 액션장면과 영화관을 압도하는 총소리는 긴장감을 잘 살려냈습니다. 솔직히, 보고 있으면 뿌듯하고 좋습니다. 한국 영화의 미래는 파란불을 켜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다이하드 만큼이나 추천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조금 관계설정이 복잡해서,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흐름을 놓칠 수도 있다는 게 약간의 아쉬움 정도. 또 한가지 15세 이상이지만, 15세, 16세 등 청소년이 보기에는 조금 이해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했습니다. 뭐, 사람마다 느끼는 것은 다를테니, 어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리뷰를 써야지 하고 마음먹고나자,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첫 느낌은, 체스판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뭐, 우리식으로 장기판이라고 써도 괜찮겠고요. (그렇다고 저는 체스나 장기나 바둑이나 볼 줄만 알지 잘 두지도 못합니다만. 하하;;;) 이 영화의 중심인물들은 어쩐지 체스판의 말처럼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체스나 장기를 하면, 처음부터 왕이나 장군이 움직이는 법이 없습니다. 일반적으로는 폰이나, 졸이나 혹은 선봉을 맡을 강한 녀석을 내세우는 편이지요. 주연 하정우 (표종성 중좌역) 는 이 영화에서 그 선봉장입니다. 최전선에서 북한을 위해서 발벗고 뛰는 압도적으로 강한 녀석입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표종성 중좌. 북한의 영웅으로서, 조국을 위해서 헌신했지만, 그 역시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지금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베를린에서 제가 느낀 키워드 중 하나는 "토사구팽" 입니다. 지금까지도 전해 내려오는 전설의 사자성어 입니다. 필요할 때는 실컷 써먹다가, 이제 없어도 된다고 판단되니 가혹하게 버린다는 의미지요. 가장 허무한 인물은 당사자인 표종성 중좌겠지요. 그는 조국을 위해서 지독하리만큼 철저하게 살아왔는데, 그에게 돌아온 것은 스파이 혐의입니다. 영화 포스터에 나와있듯이, "모든 것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 라고 느끼기 시작하는 표 중좌. 대체 그는 열심히 헌신했는데, 왜 팽을 당해야 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이 모든 일의 뒷배경에는 훨씬 높은 자리의 인물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윗선의 음모이지요. 북한 베를린 지부는 갈아엎고, 새로운 주인이 필요하다는 것이 윗선의 음모. 그리고 그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파견된 류승완 (동명수 역) 은 등장부터 관객을 압도합니다. 사람 죽이기를 개미 밟듯이 쉽게 처리하는 그는 실력과 탐욕을 함께 갖춘 인물 입니다. 영화 중반부터는 본격적으로 표종성 vs 동명수의 힘겨루기가 팽팽하게 흘러갑니다. 아무래도 우리는 표종성을 응원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가 기본적으로는 헌신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며, 동명수는 자신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인정사정 봐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선악구도로, 또 다르게 생각하면 먹고 살자고 하는 짓으로도 이해할 수 있겠지요.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두 번째 키워드는 "배신" 입니다. 표 중좌가 믿었던 조국에 의해서 배신당하고 팽 당했다면, 그의 아내 전지현 (련정희 역) 역시 배신감에 치를 떨어야 했습니다. 련정희는 세상 모두가 날 의심하고 버릴지라도, 당신만은 결코 아니라고 굳게 믿었던 남편 표종성에게 도청당하고 의심당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련정희는 남편과 대화하면서 어떻게든 신뢰관계를 구축해 나가고 싶었지만 현실은 너무 가혹하고 잔인했지요. 조국을 위해서 자존심을 포함해 모든 것을 바쳐야 했지만 아무도 그 헌신을 알아주지 않자, 그녀 역시 절망에 사로잡힙니다. 처음에 저는 누군가에게 흘려 듣기로 베를린은 국정원 이야기라고 들었었는데, 실제 영화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북한 사람들의 고뇌와 갈등을 중심으로 숨가쁘게 펼쳐집니다.

 

 다소 껄끄럽게 들릴지라도, 조직 이야기를 조금 덧붙이겠습니다. "국가를 위해서 그렇게 노력하고, 헌신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배신당하고, 버려졌습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을 한마디 쓰겠습니다. 이런 류의 조직이라면, 차라리 망하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사람을 호구로 알고, 말판의 졸로 아는 권력자가 지도자(혹은 상사)로 있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좀 더 차갑게 덧붙이자면, 이 이야기는 비단 북한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을 기계부품처럼 적당히 쓰다가, 필요없으면 버리고, 다시 새로 구해다가 쓰고... 이거 어디선가 많이 듣던 이야기지요. 오늘날 계약직, 비정규직 문제가 정확히 이러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사람을 우습게 아는 조직이라면, 언젠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속에서 피어나는 것은 부패라는 악마의 꽃이 아닐까요.

 

 그래서 영화의 명대사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기억에 의존한 것이라, 정확한 대사는 아닐 수 있습니다. 대략 느낌만 살려보자면) "조직이라는게 그래, 위에서 원하는 사람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인 줄 좀 알았으면 좋겠구만. 능력있고 잘나가는 사람보다는, 위에서 시키는 것을 잘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너무 심하게 들릴 지도 모르지만, 조직에서는 스스로 생각하고 처리하는 인물 보다는, 우리에게 충성하는 짐승이 필요하다는 의미 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살아남기 위해서 어쩌면 우리 모두가 때로는 그렇게 짐승처럼 살아가기도 합니다. 이것이 참 슬픈 현실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패기 넘치던 시절(?)에는 "배고플지언정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라" 라고 쓸 수 있었는데, 지금은 "때로는 짐승처럼 못나게 살더라도, 죽지 말고, 힘내십시오." 라고 쓰고 있습니다. 일단 살아야 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실감한 뒤로, 저는 더 이상 함부로 비판의 언어를 들이밀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부당함 앞에서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좀 더 많이 이해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강한 자에게 아첨만 하고 꼬리를 흔들면서, 정작 약한 자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미친개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블로그 우하단에 한 때 진보신당 링크를 걸었을만큼, 정치적으로 왼쪽 성향이던 제가 이 정도까지 보수화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니, 씁쓸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저는 기득권의 독점적인 횡포를 이겨내며 약속했던 경제민주화가 잘 되어서 좀 더 많은 사람의 삶이 일어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소망대로 될지는 열심히 지켜보겠습니다.)

 

 세 번째 키워드는 색칠하기의 부당함 입니다. 뭐만 하면 "빨갱이니, 좌빨이니, 좌좀이니..." 또 반대쪽에서는 반격한답시고 "수구꼴통 등등..." 영화 내의 북한에서도 내부권력을 놓고 자기들끼리 전쟁중이듯, 우리나라도 지금 인터넷에서는 전쟁중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색칠한 안경끼고 세상을 보면, 그 사람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흑백논리야 말로 어떻게든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난 흑이고, 넌 백이다 라면서 치열하게 생사를 걸고 싸우는 것은 바둑과 체스만으로도 충분합니다 :)

 

 그래서 영화 후반부에 보여준 한석규 (정진수 역) 의 모습은 생각해볼 주제를 던져줍니다. 흔히 적대적으로 "빨갱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알고 보면, 저마다 인생이 있고, 치열함이 있고, 살아가는 방법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사람을 이해할 때, 제발 하나의 틀에 가둬놓고, 이 ㅇㅇ놈들아 라는 식으로 획일화된 시선으로 보는 일이 줄어든다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획일화된 시선에 익숙해져 있다면, 그것은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결핍된 것이며, 게으른 시선을 가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쩌면 바쁘게 살면서도, 정작 시선의 문제에서 너무 간단하게만 생각하는 습관을 가진게 아닐까요?

 

 사실 정치적으로 하나의 생각과 방향만 가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만해도 정치적으로는 왼쪽이지만, 성문제나 동거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히 보수적인 편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면서도, 밥 굶어가면서 그러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경제적 자립을 이룬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인데, 이미 어느 정도 기반을 가진 사람들이므로, 성공에 또 안주하기도 쉽다는 것이 약간은 딜레마 이기도 합니다)

 

 영화 리뷰가 조금 길어지는데... 여튼 :) 제가 닥치고 정치에서 처럼 일상을 엮어서 글을 쓸 수 있는 역량이 전혀 되지 못하기에, 베를린을 보면서 마음이 꽤 무거워져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현실적인 대사가 폐부를 쿡 찔러서 가슴에 남습니다. "기득권이 그렇게 쉽게 쓰러지냐?" 결국 체스판의 병사들만 쓰러져 나가고 있습니다. 약한 자들의 처잠하게 깨져버린 행복이, 계속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표 중좌 같이 강한 사람들도, 결국 파워게임 앞에서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던 것이 무너졌습니다. 하기야 원래 토사구팽에 나오는 동물도 토끼가 아니라 강인한 사냥개 입니다. 사냥개도 별 수 없다는 것이, 어쩌면 무서운 일이지요.

 

 베를린은 멋진 액션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제게 하나의 고민을 던져주었습니다. 처음부터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면, 어디서 부터,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현장에서 팔걷고 고생하고, 발걷고 뛰어다니는 헌신을 외면하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조직은 곪아가는 것입니다. 상대방에 대해서 일단 "이념색칠"을 하고 공격부터 한다면, 그 때부터 서로는 싸워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 싸움이 진행될수록 현실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만의 세상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좋아하는 루쉰의 글을 덧붙이며 리뷰를 정리해야 겠습니다. "멸망해 가는 민족이 왜 침묵하는지, 나는 그 이유를 알았다. 침묵이여, 침묵이여! 침묵 속에서 폭발하지 않는다면 침묵 속에서 멸망할 것이다" 베를린의 마지막 장면은 표종성의 결의로 끝납니다. 부패한 집단에 대해서는 일어서는 것. 베를린에서 느꼈던 저의 결론입니다. 블라디보스톡은 북한 바로 위에 있는 러시아의 큰 도시니까요. 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그에게 복수라는 단어 보다 어울리는 것이 없기도 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작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는 이반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상상력을 더 보태면, 지금 표중좌에게 이반의 이 대사가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비록 내가 틀렸다고 해도 차라리 나는 복수의 순간을 맛보지 못한 나의 고통을, 도저히 풀릴 길 없는 나의 분노를 간직할 거야." 복수하지 못한 눈물 위에 사랑과 용서로 가득한 조화로운 세상으로 가는 티켓이 있다면, 그 티켓따위는 정중하게 반납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눈물을 닦기 위해서 표중좌는 천국행 비행기가 아니라, 지옥행 비행기에 몸을 싣습니다. 이 결말까지도 저는 참으로 마음에 듭니다. (네, 류승완 감독을 좋아해서 이기도 합니다 -_-;)

 

 장문의 리뷰 마칩니다. 어디까지나 저의 느낌과 해석이므로 불편하신 분이 있다면 너그럽게 양해를 구합니다. / 2013. 02. 리뷰어 시북. (영감을 얻은 이야기들, 정혜윤 저 -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루쉰 저 -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사마천 저 - 사기, 영화를 좋아하는 오랜 절친과의 대화, 한 쪽으로만 보는 시선을 싫어한다는 류승완 감독의 인터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