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퍼펙트 게임 (2011) 리뷰

시북(허지수) 2013. 2. 14. 22:16

 평소 스포츠, 특히 축구와 야구를 아주 좋아하는데다가, 어린 시절부터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기 때문에, 최근 TV에서 방영하고 있는 영화 퍼펙트 게임을 정말 즐겁게 보았습니다. 라이벌이라 불리던 당대 최고의 투수 최동원과 선동열에 관한 이야기. 200개가 넘는 역투를 보여주면서, 15회 무승부를 펼쳤다는 그 전설의 기록을 근거로 해서, 영화는 제작되었는데, 참 잘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시선 면에서 그러합니다. 중심잡기가 쉽지 않았을텐데도, 롯데와 해태, 전라도와 경상도, 또 일류와 마이너까지 그 비중을 골고루 배분하는 역량이 돋보였습니다. 스포츠를 통해서 분열을 조장하고 싶었던 권력의 뒷이야기까지 살짝 숟가락을 보태는 것도 재밌습니다. 확실히 요즘에도 스크린과 스포츠, 그리고 섹스 (이른바 3S) 는 마약처럼 우리의 뇌를 열광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21세기의 재기가 넘치는 사람들은 스포츠를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새로운 시선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

 

 

 영화 퍼펙트 게임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프로의 마음가짐 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멘탈"이라고 부르는 그것이지요. 야구팬인 저는 이 멘탈과 관련해서, 일본의 어떤 투수가 한 명 생각납니다. 구와타 라는 90년대 명투수가 있습니다. 그는 투수인데도 타격과 수비에도 재능이 좋았는데, 골든글러브를 8회나 수상한 투수지요. 그는 90년대 중반, 투수 옆으로 살짝 떠오른 파울플라이를 잡아보겠다며 다이빙 캐치를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안그래도 혹사에 가깝던 오른팔을 다치고 말았지요.

 

 참으로 어이가 없는 행동일지도 모릅니다. 몸을 좀 사려가면서 적당히 수비해도, 크게 뭐라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투수에게 어깨는 생명과도 같아서, (제가 듣기로는) 심지어 무거운 가방 등은 평소 안 쓰는 쪽의 어깨로 멘다고까지 하니까요. 하지만 이 구와타는 다이빙 캐치하다가 다쳐서, 2년의 세월을 그라운드에 서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이 구와타는 많은 야구인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지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이처럼 야구를 진지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영화에서 나오는 최동원의 모습이야말로, 진지함 그 자체입니다. 어울려서 놀기보다는, 혼자서 연습하고 훈련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승패보다 더욱 책임지는 자세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고인이 된 최동원은 사실 롯데 팬들에게는 영구결번이자 레전드 그 자체입니다. 전무후무한 한국시리즈 나홀로 4승을 챙기며, 2등도 못해보던 약체 롯데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남자이기 때문입니다. 최동원은 80년대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오퍼가 왔을만큼 인정받는 재능을 가진 거인이었습니다. (빅리그 오퍼는 최동원이 최초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에게 도전하는 떠오르는 태양 선동열, 선동열 역시 방어율 0점대를 자랑하며 시즌MVP를 거머쥔, 당대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 국보급 투수였지요. 간판 투수, 에이스, 자존심, 이들이 입고 있는 것은 유니폼만이 아니었습니다. 선동열의 별명 중 하나는 무등산 폭격기 였습니다. 나왔다 하면, 상대팀은 그야말로 죽을 쑤는 겁니다 (...) 등판 일정에 선동열이 보이면, 상대팀 입장에서는 오늘 경기 뭐 거의 망한 거죠.

 

 선동열이 하도 잘 던지니까, 부산의 여자팬이 왜 자꾸 기어나와서 롯데를 괴롭히냐고 험담에 가깝게 절규하는 명장면(!)은 작년에 제가 동생에게 거의 같은 말를 들었던 장면이기도 합니다. "아, 저 류현진 괴물녀석은 하필 롯데 경기에 나와서 우리팀 물먹이노." 운동선수가 가장 인정받을 때는, 상대방 팬으로 부터도 그 실력을 인정받을 때, 그는 진정한 일류선수인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에 등장하는 무명포수 박만수는, 퍼펙트 게임의 감초 역할을 참 잘해냈습니다. 상대팀 팬과 우리팀 팬은 고사하고, 그는 가족에게 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철저한 무명선수 입니다. 아내가 제발 꿈을 접고, 배달이라도 도와달라고 거세게 이야기를 해도, 그는 너무 야구가 좋은 사람입니다. 흔히 팬들이 말하는 "ㅇㅇ없이는 못사는" 사람이지요.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왔을 때, 극적으로 제 몫을 해내는 장면은 가슴이 시원합니다. (저야 롯데 팬이지만, 어쨌든 영화에서 박만수와 선동열 멋지게 나왔습니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한 번쯤 찾아오기 마련이므로, 쉽게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라는 드라마틱한 메시지 이기도 하지요.

 

 에이, 박만수가 그렇게 폼나게 활약하는 장면은, 영화일 뿐이잖아, 말도 안 돼 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저는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장면을 야구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몇 년전 목격했습니다. 앞서 잠시 언급한 구와타 투수와 함께 90년대 일본의 강타자 기요하라 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나이가 들자 (당연하지만) 퇴물취급 받고, 친정 팀에서 있을 곳을 찾지 못해서, 다른 팀으로 계속 옮겨야만 했지요. 선수생활 말기에 기요하라는 대타로 기용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집념으로 야구를 사랑했지요. 수술도 하고, 재활도 하고...

 

 그러던 어느 경기였습니다. 9회말 만루 상황에 등장하는 기요하라, 팀은 지고 있고, 상대투수는 150km를 자랑하는 강속구의 마무리 투수. 팬들은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기에 조심스레 손을 모으고 소망을 바랍니다. 그리고 노장 기요하라는 그 경기에서 기적처럼 만루홈런을 치면서, 팀을 승리로 이끕니다. 인터뷰에서 그는 (하늘이, 팬들이) 누군가 도운게 아닐까 싶을 만큼 너무나 기쁜 일이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인생을 야구로 비유한다면, 저는 이 일화가 마음에 가장 남습니다. 누구에게나 마지막까지 홈런을 날릴 기회는 있다는 것 말이에요.

 

 영화로 돌아와서, 끝으로 주목해 보고 싶은 것은, 최동원의 독자적인 시선입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그는 화합형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연봉 1억의 거액을 받으면서도, 윗사람들의 지시대로 움직이지 않았으며, 동료 선수들이 생활고를 겪는 것을 보고 선수협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선구자 였습니다. 은퇴 후, 해설을 맡았을 때는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낼 줄 알았고, 그래서 트러블을 옆에 달고 다녔지요. 부산에서 엄청난 인기가 있었음에도, (당시라면 거의 당연히 떨어질) 민주당 후보로 광역의원에 출마해 낙선하는 뚝심을 보여줬습니다. 쉬운 길, 편한 길 놔두고, 자신이 추구하는 바대로 살아가는 그의 인생에, 저는 존경심을 보내는 것입니다.

 

 몸을 사리지 않는 프로선수는 어쩌면 무모해 보입니다. 패배가 뻔히 보임에도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은 어리석어 보입니다. 편하게 스타로 살면 되면서도, 동료 때문에 어려운 일을 감행하는 모습은 한 마디로 바보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기회주의가 이 시대에 판치기 때문에, 그의 모습을 더욱 그리워 하는 것입니다. 롯데 프런트에서 "선수협을 주도한" 그를 다른 구단으로 이적시키며, 앓던 이가 빠졌다고 표현한 기사가 떠 있었는데, 이제는 최동원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면서 그를 추모하는 것을 보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헝가리의 축구스타 푸스카스도 그랬었지요. 먼 훗날이 되어서, 그는 다시 재평가 받았고, 푸스카스 경기장이 지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스포츠 스타들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저는 역시 스포츠를 사랑합니다. 축구와 야구는 우리에게 말을 건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며, 계속해서 살아가다보면, 좋은 날을 만나고,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 퍼펙트 게임은 두 전설 스타의 정면승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스타 중 한 명은 이제 저물었지만, 우리는 그를 기억할 것입니다. 자신의 경기는 자신이 책임진다는 그 이야기 -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 어쩌면 그들 모두가 전설일 것입니다. / 2013. 0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