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The Devil Wears Prada, 2006) 리뷰

시북(허지수) 2013. 2. 16. 17:58

 포스터의 문구 정말 매력적이지 않나요, "최고의 기회는 달콤한 지옥에서 완성된다." 제목 때문에 간혹 오해를 사기도 쉽고, 명품이 즐비한 내용 때문에 욕을 먹기도 쉽지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라는 이 영화, 정말 즐겁고 감동적인(?) 영화입니다. 앤 해서웨이가 예쁘게 나오고, 메릴 스트립의 카리스마가 넘친다는 것 외에도, 생각을 자극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최대한 정직하게 쓰기! 글은 거의 손이 가는대로 막쓰는(?) 경우가 있더라도, 과장이나 꾸미는 기교가 지나치지 않도록 저는 조심스럽습니다. 오늘 저의 정직포인트는, 저는 패션에 대해서 관심이 매우 약하고, 옷입는 센스가 현저하게 떨어지며, 이른바 패션 테러리스트에 가까울 만큼, 명품에 대해서 무감각한 편입니다. 물론 시도를 안해본 것은 아닙니다. 축구광인 저는 오렌지색의 FC바르셀로나 셔츠와, CK 청바지, 하얀색 나이키에어포스까지 이래저래 맞추며 다녀본 적이 있지만, 아무래도 남들보다는 패션에 대해서 큰 비중을 두지 않는 편입니다.

 

 

 그렇기에 처음 앤 해서웨이 (앤디 삭스 역) 의 모습이 참으로 살갑고 정답게 느껴지더군요. 아무렇게나 입고 다니며, 환경 문제에 관심이 있고, 심지어 패션계를 비난에 가깝게 말하는 모습에, 저는 속으로 "야호, 그렇지!"라고 응원하는 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패션계의 빅 걸, 카리스마 발군의 메릴 스트립 (미란다 역) 에게 저절로 눈길이 가고, 초점이 맞춰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영화는 참으로 재밌게 흘러가는데...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좀 반성을 했습니다. 미란다는 맞는 이야기만 정확하게 콕콕 집어서 하기 때문입니다. 색감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이제 신참이 된 미란다의 제2비서 앤디. 그녀가 아무리 패션에 관심이 없어서 옷을 막 골라서 입고 다닌다지만, 미란다 편집장은 가차없이 의견을 날립니다. 그 색깔이 유행하기 된 배경과 정확한 명칭, 어떻게 돌고 돌아서, 지금 앤디가 입게 되었는지 그야말로 매의 눈으로 말해줍니다. 패션은 우리에게 그토록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 이제서야 알게 되었으니 저는 반성을 좀 했습니다.

 

 우리가 명품이나 화려함에 굳이 몸과 마음, 아! 특히 지갑 속을 빼앗길 필요는 없더라도, 이 산업이 일상과 붙어있는 영역이라는 말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루라도 밥을 안 먹고 살 수 없듯이, 하루라도 옷을 안 입고 밖을 나갈 수가 없으니까요. 아, 44사이즈를 입고자 하루에 치즈 한조각으로 때울 수는 있겠지만, 여하튼 우리는 옷에 대해서 어쨌든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순간도 말이지요. 그러므로 패션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실은 스마트하면서도 감각적인 예술가라는 표현은 가슴에 와닿습니다.

 

 사실 디자인과 패션에 대해서는 제가 이야기 할 수 있는 부분은 겨우 이 정도이며, 실은 미란다 편집장의 모습이 정말 멋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편집장은 권력입니다. 무엇을 실을지, 무엇에 비중을 둘지, 무엇을 뺄지, 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수 많은 로비와 입김이 오고 가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오늘날 언론이 문제가 될 수 있는게 바로 이 지점입니다. 입맛에 따라서 비중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로비에 따라서 특정 기사가 더 중요하게 실리고, 특정 기사가 사라지기 시작할 위험을 우리는 늘 매의 눈으로 지켜봐야 합니다.

 

 그래서 언론의 독립성이라는 말이 중요한 것입니다. 휘둘리지 않고, 진실을 이야기 하는 능력. 미란다에게는 바로 이것이 있습니다. 수천달러짜리(=수백만원) 명품을 선물로 받더라도, 아니다 싶으면 그냥 버립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냉정하게 의견을 차갑게 표현합니다. 그녀는 어떤 순간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미란다가 이 일을 자기만큼 잘할 사람이 없다고 표현한 것은 예리할 만큼 정확합니다. 자기가 생각해서, 자기가 결정할 줄 아는 사람은 "지도자의 재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쪽에서 로비한다고, 이쪽에 유리하게 이야기해주고, 우리가 남이가 라는 사고방식으로, 조금씩 부패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요? 어떤 집단이든 서서히 썩어서 망해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미란다가 내가 아니었으면 런웨이가 문닫았을 것이라는 표현까지도 놀랍도록 맞는 말입니다. 그런 권력자의 자리가 실제로는 한없이 고독하다는 것까지 영화는 너무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의 주인공, 예쁜 비서 앤디는 어떻게 되었나요. 패션계에 종사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이 일들이 욕망과 허영심으로 채워진 공간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보다는 훨씬 더 가혹하다고 표현하면 조금 심한 말일까요. 자본에 의해서, 비즈니스 논리로 움직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거기에 대해서 책임지고 물러나야 하며, 업계의 최고 브랜드로 포지셔닝 하기 위해서, 차별성을 위해서 밤낮으로 고민하는 업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늘 바쁘고, 다른 사고방식이 필요합니다. 몇 년전에 했던 것을 비슷하게 울궈먹는 것도, 터무니 없는 패션을 올리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최적점을 찾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치열하게 부딪히는 공간에 가깝습니다.

 

 영화 중반부 앤디가 "그녀의 친구들이 시시한 장난을 치면서 놀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저는 이 장면이야말로 패션산업을 상징하는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패션계야말로 시시한 장난이 통하지 않는 살벌한 공간일 수도 있습니다. 감각의 최전선에서 필요한 것은 유머가 아니라, 진지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미란다 편집장도 (인사치례의 형식적인 웃음 외에는) 거의 웃지 않으며, 불필요하게 웃는 모습을 싫어합니다.

 

 그렇게 패션계에서 떠오르는 제1비서가 되었던 스마트한 앤디는, 영화 마지막에서 깜짝 놀랄만큼 놀라운 선택을 합니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 셈입니다. "이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인가?" 사람들의 찬사를 받고, 고급 자동차와 화려한 옷, 패션 최전선에 서 있는 이 모습이 내가 꿈꾸던 모습인가 라고 자문하고, 그녀는 거의 보장되어 있던 화려한 길을 내던지고, 다른 선택을 합니다. 그녀가 미란다 편집장 밑에서 계속 일해나갔더라면, 그녀는 필시 훌륭한 빅 걸이 될 수도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녀 역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란다가 그토록 찾고 있었던 그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 저도 이런 사람들을 너무 좋아합니다. 자기 생각이 있고, 그 주장을 부드럽게 이야기 하는 사람에게 호감이 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앤디는 마지막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이제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패션계를 사치의 눈길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근사하다 못해서, 정말로 마음에 오래도록 남습니다. 앤디는 편집장에게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손으로 보내고, 미란다는 차에서 아주 오랜만에 진심이 묻어있는 그녀 특유의 웃음을 보여줍니다. 세상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은, 그 재능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비결은 이것입니다. "이 결정에 대해서 내가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습니까? 누군가가 건네주는 유혹에 대해서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독립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면, 그는 자신의 삶에서 리더가 될 것이며, 나아가 사회에서도 리더로 인정받는 날이 올 것입니다."

 

 아, 또 무거운 리뷰가 되는 것 같은데, 농담을 좀 써야 겠습니다. 이제 봄이 오는데 신발도 화사한 것으로 바꾸고, 패션에 신경을 써서,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위장해야 겠네요. 수년 전에 비해서 저는 아저씨 소리를 참 많이 듣고 있는데,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하하. 여하튼, 미란다 처럼 멋을 아는 중년이, 노년이 되어간다는 것, 그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름다움과 자신감은 무엇을 입고 있느냐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아름다움은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자신감은 자신이 선택한 일들에 대해서 결정하고 밀어붙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앤디와 미란다는 저마다 세상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렇다면 우리도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돈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인간의 힘을 통해서 말이지요. 스스로를 자학하며 괴롭히는 못난 행동은 어서 때려치우고, 자신이 꿈꾸는 것을 밀어붙여 보는 것,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어제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 2013. 0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