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언터처블 (Intouchables, 2011) 리뷰

시북(허지수) 2013. 2. 23. 15:47

 2011년 프랑스에서 공개된 영화 중에서,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그해 프랑스 흥행 2위를 기록한 작품이 있습니다. 2억 유로가 넘는 흥행 수익을 올리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운 감동을 안겨준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 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 영화는 우정에 대해서, 가능성에 대해서, 만남에 대해서,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케이블 TV를 켤 때마다, 하도 양준혁, 한효주 등이 나와서 VOD 좀 보라고 하길래 (...) 그 중에서도 제가 이 영화를 고른 것은 행운이었네요.

 

 우선 배경 설명부터 조금 하자면, 가진게 돈 밖에 없다는 부자 필립 공은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서 전신불구가 되었습니다. 그는 목 아래부분이 전혀 기능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환한 웃음을 보여줍니다.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오고, 힐링의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무일푼 백수 드리스는 가진게 건강한 몸뚱이 밖에 없습니다. 가정은 불행하고, 생활고에 시달리지만, 그는 필립과 함께 있으면서, 삶의 새로운 건강함을 찾게 됩니다. 그가 웃으면서 필립을 응원하는 대목에서는, 눈물이 날 정도 입니다. 두 사람의 특별한 이야기 속으로 출발해 봅니다.

 

 

 두 사람은 성장환경이 다르다보니, 가치관이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필립 공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불편한 몸으로도 책을 사랑하며, 그림 앞에서 영감을 얻는 지성이 넘치는 매력적인 백만장자 입니다. 드리스는 신나는 음악을 듣고 춤추는 것을 즐겨하며, 지루한 것이라면 질색이고, 이른바 품위 있는 문화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사실은 그런 품위를 누리기 조차 경제적으로 버거운 현실이 바탕이 됩니다만) 한마디로 자유롭게 순간을 즐기는 인생입니다. "바로 전화하고, 바로 만나고, 바로 들이대는 남자 드리스!" 라고 표현하면 좋겠군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영화는 생활보조금을 타기 위해서, 백수 드리스가 필립 공의 저택에 들어가, 이력서를 내는 장면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드리스는 그 성격대로 막무가내로 밀어붙입니다. 이봐요, 어차피 나같은 사람 취직 안 될꺼 아니까, 어서 여기 싸인이나 해주세요, 그래야 생활보조금이라도 타니까. 이 시원스럽고, 거침없는 성격에, 필립은 묘한 매력을 느낍니다. 사실 필립은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을 테지요. 좀 더 제가 풀어 쓰자면,

 

 사람 뽑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10년을 가게를 운영해도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경우는 몇 년에 한 명 정도 나올까 말까 입니다. 제가 그래도 오랜기간 몸담고 있는 서비스업계에는 이런 농담까지 오고 갑니다. 좋은 직원 한 명과 함께 일하고 있으면, 열 명의 직원도 부럽지 않다. 마찬가지로 과거에도 좋은 장군 한 명을 얻은 기쁨은 천하를 얻은 것과도 같다는 표현을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따라서 필립은 이 사람, 저 사람 써봐도 좀처럼 만족스럽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드리스를 고용해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선택이, 이 두 사람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드리스는 매사에 거침 없습니다. 망설이거나, 조심스러워 하지도 않습니다. 감각이 없는 필립에게 뜨거운 주전자를 갔다 대면서 장난을 칠 정도니까 말 다했지요. 가끔은 이런 성격이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필립집 앞에다가, 누군가 자꾸만 차를 정차해 놓자, 드리스는 다짜고짜 달려가서 야 이 개XX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차빼라며 이웃을 시원스럽게(?) 협박합니다. 필립은 웃으면서 만족스러워 합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조금씩 우정을 쌓아나갑니다.

 

 저는 필립의 인내심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잘 참아주고,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속한 상류사회가 허영심과 체면의 공간이라는 것도 잘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중반부에는 드리스가 직접 그린 명작(!) 미술품을, 지인에게 천만원이 넘는 엄청난 금액으로 팔아치우는 유쾌한 사기극(?)도 보여주는데 정말이지 재밌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그의 유머와 장난스러움이, 드리스로부터 전염된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래요, 우리는 서로 조금씩 닮아갑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는가 라는 것은 중요하지요.

 

 필립이 슬픔을 묘사하는 장면도 강렬합니다. 자신이 전신불구가 된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수 없을 때 더욱 큰 슬픔과 장애를 느낀다는 대목이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이 표현은 놀라울 만큼 정확합니다. 즉 생의 의미가 사라지는 그 순간, 건강한 긴장감이 사라지는 그 순간, 우리는 손과 발이 있어도 좀처럼 움직이지 못합니다. 영화 중반부에 드리스가 잠시 곁에서 떠나가게 되는데, 그 때 필립은 진정한 슬픔을 재차 경험합니다. 음식도 싫고, 면도도 싫고, 모든 게 싫어지는 그 순간. 생의 의미가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서 슈퍼카 마세라티를 몰고 도심을 질주하는 장면은, 심장이 터질 것만큼 좋습니다. 마세라티의 으르렁 거리는 배기음 처럼, 이 둘이 있으면, 힘차게 포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해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후반부로 나가면, 정말 무엇이든 도전하게 됩니다. 드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말 미친 사람이군요!"

 

 필립은 미친 짓을 감행합니다. 전신불구의 몸으로도 페러 글라이딩을 다시 한 번 즐깁니다. 세상을 다 가지는 그 황홀한 기분을, 그는 다시 경험하게 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소통할 때,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불가능은 그들 앞에 자연스럽게 녹아내립니다. 마침내 필립은 도리스의 격려에 용기를 얻어서, 연애를 하고, 재혼에도 성공합니다. 도리스는 마침내 책임감 있게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모아가는 소중함을 그는 몸으로 익혔습니다. 무엇보다 자신도 의미 있는 일을 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게 가장 큰 자산 아닐까요. 그 자신감은 평생토록, 그에게 힘을 줄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대목이 있습니다. 필립의 대사이기도 한데, "그는 나를 불쌍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그를 한 인간으로 생각해주었다 라는 점. 그래서 드리스는 친구처럼 담배를 권하고, 자신이 듣는 음악을 권하고, 필립을 성적 욕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존중해 줍니다. 우리는 여기서 위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위로가 성공한 사람이, 실패한 사람에게 건네는 손길이어야 합니까? 재난을 당한 사람에게 동정심을 보내는 것이어야 합니까? 물론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 깊은 위로는 조금 다른 지점에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을 저는 "한 사람의 감정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면 괜찮아 질꺼야 라고 조언이나 위로를 건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보면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즐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을 그 사람에게도 알려주고 권해주는 것이 위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를 알아가고,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될 때, 우리는 좀 더 성숙한 삶을 누려가는거 아닐까요.

 

 인간은 그 존재 자체로서 존엄합니다. 전신불구의 삶? 역시 존엄합니다. 마이너리티 이민자의 삶? 역시 존엄합니다. 우리는 지금 조건을 보는 것이 너무나 당연시 되는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절망에 빠져 있거나,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무기력한 기분이 자꾸만 덮쳐올 때, 언터처블을 본다면 좋을 것 입니다. 보고 있노라면, 살아있는 것이란 이토록 좋은 것이구나, 라고 몇 번이고 생각하게 될테니까요. 가난해도, 또 아프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가끔은 잊고, 지금의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있는 그대로의 타인의 감정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 그 순간 우리는 이미 기적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요. / 2013. 0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