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나우 이즈 굿을 보았습니다. 다코타 패닝이 언제 저렇게 컸지, 하는 느낌도 있었네요. 사랑 예찬 영화인가 싶기도 했는데, 우선 이 영화에 끌린 것은 제목이었지요. 나우 이즈 굿, 지금이 좋다는 이야기가 정말 불편했던 날이었습니다. 감기몸살로 참 많이도 누워있었고, 이번 분기 업무 평가에서 기대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해서, 열심히 해도 풀리지 않는 일이 참 많구나 싶었습니다. 나우 이즈 굿이 아니라 그야말로 오늘은 나우 이즈 테러블 이었지요. 무거운 기분과 다르게 영화는 참 가볍게도 시작합니다.

 

 놀자! 젊을 때, 살아있음을 느껴야지! 주인공 테사(다코타 패닝 분)의 위시리스트에는 각종 노는 일들이 가득합니다. 나쁜 일들도 포함되어 있고, 부모님 말은 한 귀로 흘려듣기 선수이고, 아빠 신용카드를 슬쩍해서 물건을 지르기까지 하는 그야말로 말썽쟁이 아가씨 입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너네들 좋을 때지, 정말 나우 이즈 굿이라고 할만하다, 이 아가씨들아!" 영화는 재밌는 표현과 함께 빠른 반전을 맞이합니다.

 

 

 갑자기 머리가 가발임이 들통나는 테사. 그녀의 진짜 모습이 밝혀집니다. 테사는 백혈병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 때부터, 저는 아무 말없이 그저 침묵을 지키며 조용하게 영화 속으로 빠져들어갑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러합니다. (병때문에 10대시절 진통제를 매일 먹었던 저는) 매일 아프다는 그녀의 일상의 고통을 조금은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몇 년전 가까운 아는 사람 중 한 명이 (이 녀석도 10대 소녀였습니다) 백혈병에 걸려서 무균실에서 생활한다는 이야기에 펑펑 울었기 때문입니다. 운명이란 누구에게나 같지 않다는 점을 저는 지금도 받아들이기 어려워 합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열심히 살아도 다 소용 없다는 것을 테사는 알고 있었을테고, 사소한 일에 짜증부터 났을테고, 삐딱한 시선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녀는 억울할테니까요. 나우 이즈 굿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과거에 기대어서 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가족끼리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던 사진, 물론 소중한 추억이지만, 그녀는 이것들을 자신의 시야에서 치우고,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에만 집중하기로 합니다. "그래, 내 인생에 즐거운 날도 있었지" 라고 적당히 만족하지 않고, 테사는 마지막까지 재밌게 살아가고 싶어합니다.

 

 또한 그녀에게는 고정된 위시리스트가 없다는 것도 생각해 볼만 합니다. 하고 싶은 일들이, 물론 많으나, 그 때 또 바람이 생기면 즉시 추가해 버립니다. 말하자면 테사의 인생이란, "즉시 인생"이라 부를만 합니다. 결코 미루는 법이 없으며, 다음에 하자 라는 말은 그녀에게 사치입니다. 데이트 하고 싶으면, 당장 옷을 챙겨 입고, 운전을 해보고 싶으면, 그냥 무작정 아빠 차 끌고 나옵니다.

 

 테사는 따라서 미래에도 기대어서 살지 않습니다. 나을 수 있을꺼야, 희망으로 살아야지, 같은 장밋빛 바람도 없습니다. 오직 할 수 있는 일들을 지금 하는 것, 이것에만 충실하면서 하루 하루 보내는 그녀의 인생은, 처음에는 저게 무슨 미친 짓인가 싶다가도, 점점 그래 열심히 그렇게 만끽해야지 라고 응원하게 되고, 죽음의 그림자가 조금씩 다가오자, 더없이 슬퍼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용기에 관해서 그녀는 이렇게 말하지요.

 

 죽을 병이 걸리면 사람들은 엄청난 용기가 생길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 두렵기도 하고, 죽음은 스토커처럼 따라와서 떨쳐버릴 수도 없고, 나는 그냥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사는거야. 그게 다야. 이것이 테사의 인생이지요. 테사와 그녀의 잘생긴 남친 아담이,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은 이 기분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다로 뛰어들어가고 싶지만, 그녀는 사실 언제나 돌진만을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는 겁도 나고, 소심한 면도 있고, 어쩌면 우리 모두 처럼 평범하다면 평범하달까요. 계획은 잘 세우지만, 실행은 몇 개 없는 것이 생활계획들의 특징이니까요.

 

 나이가 들어가면, 가끔 주인공 보다는, 부모의 시선에서도 영화가 들어오게 되는데, 테사의 아빠가 보여주는 고백도 짧지만 강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너 없이는 살 수가 없다고 말하는 아빠, 자신의 삶은 원래부터 없었다고 말하는 그 짧은 몇 마디에는 모든 것이 들어가 있지요. 테사가 슬픈 운명 속에서도, 좋은 아빠를 둔 것이, 그나마 큰 위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가족관계가 무너진 사람들이 많아서, 평생 동안 서로를 남이나, 원수처럼 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거기에 비한다면, 테사와 아빠의 따뜻한 부정(父情)은 영화 내내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아빠는 딸이 원하는 것을 겉으로 반대하면서도, 다 들어주는 넉넉함이 참 근사하지요. "무슨 짓을 하더라도 사랑하는 내 딸이다" 라는 이 느낌이야말로, 영화가 주는 또 다른 깊은 감동입니다.

 

 영화는 병이 나을 것이라는 조금의 희망적 바람 없이, 현실적으로 그려지면서 테사의 죽음 직전까지 그려집니다. 남친 아담은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고, 가족들도 저마다의 인생을 또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저도 오늘은 무척 힘들었지만, 내일은 또 시작될 것입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면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해나가는 테사가 가진 용기의 근원을 생각해 봅니다. 그녀가 아파서, 불행해서? 음,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영화에서 테사는 자주 "순간"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심지어 삶에 대해서 "순간"의 연속이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단지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전부인 것처럼" 살아갔을 뿐입니다.

 

 후회할 지언정, 고민에 휩싸여 망설이지 않았고, 주어진 삶에 대해서 적극적인 선택의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미래는 어차피 없다, 과거는 지나갔다, 내게는 지금 뿐이고, 이 지금을 좋은 순간으로 만들어 가고 싶을 뿐이다. 이것이 테사가 들려주는 인생 찬가 아니겠어요. 소심한 저야 뭐 앞으로 머리 아프게 고민을 계속하겠지만서도, 일단 해본다는 이 적극적 태도, 그 아름다운 인상을 이 소녀를 통해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아마 테사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용기는 무슨, 그냥 지금 이순간을 위해서 해보지 뭐." / 2013. 02. 리뷰어 시북.



by 시북 2013.02.26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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