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늑대아이 (Wolf Children, 2012) 리뷰

시북(허지수) 2013. 2. 27. 21:29

 시간을 달리는 소녀, 썸머워즈 등 인상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신작 장편 애니 늑대아이의 이야기 입니다. 흥행수입만 약 42억엔 (약 500억원) 을 기록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인정받았던 작품입니다. 특히 (건담 등으로 유명한) 토미노 감독이 이례적으로 찬사를 보내기도 했는데, 그는 이 작품에 대해서 "새로운 시대를 만들었다"고 까지 평한 바 있습니다. 제가 본 늑대아이는, 예쁜 그림체 덕분에 부담감도 전혀 없고, 빠져드는 이야기와 감동까지 다 들어 있는 뛰어난 작품이지요.

 

 귀여웠던 애니, 드래곤 길들이기 이후, 거의 수년만에 장편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리뷰를 써볼까 합니다. 실은 저는 영화만큼이나 애니계열도 참 좋아하는 편입니다. 어쩌면 저는 심장 떨리는 호러물 외에는 거의 모든 장르를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 동화 같은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생각할 주제가 몇 가지 있었으면 좋겠네요. 우선 정체성 이야기로 시작하는게 어울리겠지요.

 

 

 정체성에 대해서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너는 누구냐!" 라는 이 단순한 질문으로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정체성은 만화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세일러문 처럼 변신을 한다거나,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거나, 혹은 폭주를 한다거나, "내여귀"같은 애니에서는 아예 오타쿠가 아닌 척 한다거나... 등등 (웃음) 조금 가볍게 썼지만, "나는 누구인가요?"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면 바로 답이 안 나올 때도 있습니다. 저야, 오래도록 인터넷 블로그 세계에서는, 나름의 미학인, 무명블로거! 를 추구합니다만.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이야기는 여대생 "하나(꽃이라는 뜻을 가진 그녀의 이름)"의 시선에서 출발합니다. 극중의 주인공이기도 한 하나는 따뜻하면서도 강인한 여성으로서, 존재를 그 자체로 사랑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늑대인간과 사랑에 빠지면서, 두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이렇게 반은 늑대, 반은 인간인 예쁜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는 빠르게 흘러갑니다. 큰 아이는 유키, 작은 아이는 아메 입니다. 하나와 마찬가지로, 자녀들 이름도 역시 태어난 날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서 가져왔지요. 신기하게도, 유키는 정말로 눈을 좋아하고, 아메는 비를 포근해 한다는 느낌도 듭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갈등을 겪게 됩니다. 특히 "나는 누구지" 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될 만큼, 성숙해 지면, 피할 수 없는 선택을 해야합니다. 늑대로 살 것인가, 사람으로 살 것인가. 영화가 세련된 느낌을 주는 것은, 그 선택에 대해서 외부적인 답을 억지로 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았으면 한다" 이것을 기본 밑바탕으로 깔고 있습니다. 물론 엄마 입장에서는 아이들에 대한 바람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지나치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바람을, 자식에게 투영시켜서, 못다한 꿈을 강요하는 부모들이 많은 시대에, 이런 엄마의 따뜻한 태도가 참 좋았습니다.

 

 변명 대신에 사과부터 하는 태도도 인상적입니다. 이유를 불문하고 남을 다치게 했다면, 우선 사과하는 것. 별거 아닌 장면일지 모르겠지만, 이상하리만큼 변명부터 먼저 하는 경우를 많이 봐서인지, 독특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귀여운 꼬마들 보다, 오히려 시골 이웃 주민의 태도를 보면서도 특이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무심한 듯 정성스럽게 챙겨주는 사람들의 정. 받은 호의에 대해서, 반드시 보답하는 모습. 이왕 같이 살게 되었으니,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 선의가 부드러웠지요.

 

 아들 녀석은 어느새 자랄만큼 자라서 자신의 세계를 찾아서 떠나갑니다.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할 지 결정한 삶이란 충분히 운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에 있어야 내가 더 좋은지 알고 있다면, 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요. 자식이 언제까지나 내 곁에서 내 말을 따라주면 좋겠지만, 다 컸다고 느껴질 때, 자식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응원해 준다면, 적어도 그 녀석은 1인분 인생, 자신의 몫은 충분히 해내지 않을까요. 행복이 어느날 갑자기 내린 눈과 함께 찾아왔다면, 이별의 순간도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또 살아가는 하나의 마음가짐은 두고두고 명장면이지요.

 

 유키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어쩌면 동생보다 더 많은 고민을 했던 소녀입니다. 긴장과 설렘 속에서 학교 입학을 했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즐거움에 흠뻑 젖어있던 행복한 인생이었고, 그래서 인간이 되고 싶어 했지만, 그녀는 아무리 원하고 원해도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없었습니다. 주문을 걸고, 마음을 다 잡아도, 가끔은 그 빈틈을 헤집고 자신의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 불쑥 튀어나오곤 합니다. 그 모습이 너무 싫어서 구석에 웅크린 채, 침묵하고 있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가슴 시리게 합니다.

 

 고백하자면, 저도 가끔은 힘겨운 날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웅크린 채 침묵할 때가 있습니다. 왜 이렇게 일이 안 풀리나, 왜 잘못된 선택을 했을까, 왜 좀 더 침착하게 대응하지 못했을까 등등... 조용히 자책감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바라던 모습과 지금의 삶이 너무 동떨어져 있다고 느껴질 때는, 자꾸만 슬퍼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다시 기운차리고, 어서 회복해서, 또 다시 하루를 보내야 하는거지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너무 만족한 나르시스트가 되어서 자뻑하고 다니기 보다는, 반성을 하는 모습이 더 낫다고 격려해보기도 합니다 :)

 

 가장 영감을 주는 장면은, 유키가 누군가에게 자신의 모습을 정면으로 드러내면서,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말하는 장면이지요. 내가 이런 모습이라도 괜찮아 라는 질문에, 유키의 귀여운 친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정중하게 답합니다. "괜찮아, 그리고 이미 알고 있었어, 누구에게도 이야기 하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부터 유키는 다시 태어나지 않았을까요. 자신이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잘 살아가고, 해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지 않았을까요.

 

 우리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설령, 못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지라도, 거기에 혐오감을 가지기 보다는, 내게 이런 모습도 있구나 라고 받아들이며, 그것을 다스려보는 게 더 낫지 않나 싶습니다. 완벽한 사람은 사실 어디에도 없을테니까요.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 조금씩 노력해 나간다면, 사실 그것으로도 충분한 거 아니겠어요.

 

 리뷰를 마치며, 다소 무거운 내용임에도, 마음이 맑아지는 까닭은 하나의 힘내는 태도가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결코 원망하지도, 욕하지도 않고, 소중한 식구들을 위해서 끝없이 헌신하는 모성의 모습은, 그 어떤 여신보다도 빛나는 모습이었습니다. 웃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고 구박받아도, 변함없이 미소를 유지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풀잎같은 강인함이 느껴집니다. 태풍에도 풀잎은 몇번이나 흔들릴 지언정 쓰러지지 않습니다. 부드러운 강인함이란, 분명 이런 느낌이겠지요.

 

 힘내는 태도로 살아가고자 애쓴다면, 정말이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젊어서부터 아이들이 클 때까지도 한 번도 부자인 적은 없었지만, 욕심 없이 평화로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고, 청량하게 울리는 늑대소리에 미소지을 수 있게 되었고, 예쁜 딸래미와 함께 웃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으며, 이웃 사람들과도 즐겁게 잘 지내니, 험한 고생을 해왔을지라도 마음만은 누구보다 만족스럽지 않았을까요.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묘약이 있다면, 그것은 "힘내는 태도"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 2013. 0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