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아르고 (Argo, 2012) 리뷰

시북(허지수) 2013. 2. 28. 11:48

 제작비 4천 5백만 달러, 흥행수입 약 2억 달러. 성공입니다. 72년생의 젊은 벤 애플렉 감독은 이 영화로 85번째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합니다. 성공입니다. 영화는 스릴러에 가깝게 진행되는데, 결코 멋진 액션이나 화려한 장면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심리 묘사가 특히 볼만하고, 좀처럼 일이 쉽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미국적 시선에서 그려서, 이란 사람들 입장에서는 오해의 소지가 충분히 있다지만, 감독 벤 애플렉이 대학에서 중동학을 전공했기 때문인지, 상당한 배경지식이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중동의 여러 문제에 대해서, 특히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 등을 신문을 통해 여러 번 읽었는데도, 깊이 있게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란은 조금 특이하긴 합니다. 간단히 퉁쳐서 정리하자면, 대다수 이슬람은 수니파이고, 이란에서만 유독 시아파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 특이점은 이란은 1979년까지 (통치세력이) 친미국가 였다가, 그 해 이슬람 혁명 이후, 80년 부터는 완전히 반미국가로 돌아섭니다. 영화는 정확히 이 반미로 돌아서는 이 지점을 다루고 있습니다. 미국인들 까불면 다 죽여버린다는 그 분위기 속에서 영화가 펼쳐집니다.

 

 

 이란 사람들이 미국에 분노하기 시작했고, 폭발적 감정이 고조되었을 때, 이란의 수도 테헤란. 지금 상황은 급박합니다. 미 대사관을 덮친 이란 사람들은, 미국에 유리하게끔 스파이 활동을 하는 인간은 바로 잡아 죽여버릴테니까요. 계속해서 문서를 없애고, 자료를 없애려는 미국 사람들은 목숨이라도 보전하려면 흠잡힐 증거를 모두 삭제해야 합니다. 오랜기간 사치스러운 친미지도자로 인해서, 뚜껑 열린 이란인들은 성나 있고, 무자비 합니다.

 

 급기야 미 대사관에 있던 직원들 중 6명은 몰래 도망쳐서 캐나다 대사관으로 도피합니다. 목숨을 보장받을 수 없는 위급한 상황에서, 그들의 선택에 대해서 함부로 돌을 던질 수도 없겠지요. 문제는 이제 이들을 본국에서 어떻게 빼낼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반미감정이 극에 달해 있어서, 쉽사리 움직이다가는 길거리에서 총맞고 죽을 판국이라서, 이 6명은 캐나다 대사관에 숨어서 하염없이 도움만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가고...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자, 이제 긴 배경설명 끝에, 드디어 CIA의 구출 전문가 토니 멘데스가 등장합니다. 토니는 등장부터 전문가 포스가 남다른데, 탁상에서 회의를 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눈앞의 신문이라도 좀 보고 이야기 하라면서, 매우 답답함을 표시합니다. 그런 식으로 뻔하게 생각만 해서는, 결코 사람 목숨을 구할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당신들은 결정만 내리면 끝나겠지만, 토니는 지금 목숨 걸고 직접 살벌한 이란에 가서 사람들을 구해와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무거운 공기가 가득한 가운데, 토니가 내놓은 대안이란 조금 기막힌 한 수 입니다.

 

 영화를 찍는 것으로 위장해서, 이란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탈출하자! 입니다. 처음 들으면 분명히 황당하게 들리는데 (저도 이게 뭐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씩 대안을 검토하다 보면, 교사 비자도 안 되고, 비영리 단체 비자도 안 되고, 그나마 예술 활동을 위장해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토니의 제안이, 점점 현실감 있게 다가옵니다. 이대로 대사관 사람들 놔두면 정체 발각되고 곧 다 죽어,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서둘러서 해야 하지 않겠어. 라는 그의 말이 아주 스마트하게 들립니다.

 

 실제로도 이 제안은 이란의 놀라운 뒷배경을 설명해 줍니다. 이란은 혁명 직전까지 예술이 죽어가고 있으며, 포르노 영화가 40%의 점유율을 기록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토니는 이란의 문화부를 찾아가서, 제대로 된 멋진 영화를 찍겠다고 설득해낼 수 있었습니다. 문화부 담당자도 이란의 비루한 문화계를 보면서 그동안 속터지지 않았겠어요. 이렇듯 아르고는 꽤 정교하게 맞아들어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황당해 보이는 제안도, 실제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라는 것이지요. 어처구니 없게 보일지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실행해 보는 것, 의외로 이것이 놀라운 일들의 출발일 수 있습니다.

 

 간신히 이란까지 넘어온 토니는 이제 빠져나갈 6명의 미국인과 함께 연기를 펼쳐야 합니다. 영화를 찍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왔으며, 지금부터 캐나다 사람이다, 이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면, 총 맞고 죽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여기서부터 영화는 끝없는 긴장감이 흐릅니다. 사람들의 시선 하나, 사소한 충돌 하나, 잘못된 행동 하나가 자신의 목숨을 잃게 만들 수 있기에, 그들은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겨우 겨우 탈출을 준비해 나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날벼락이 떨어집니다. 국가가 더 이상 그들을 도와주지 못하겠다는 것이지요. 혹시 일이 잘못되면, 미국이 모욕감을 뒤집어 쓸 것이라는 판단에, 이른바 "가짜 영화 아르고 프로젝트" 는 중단됩니다.

 

 이 때부터, 짧게 펼쳐지는 장면이 저는 가장 좋았습니다. 토니는 지금 선택해야 합니다. 국가도 안 된다고 판단하는 일을, 자신이 다 책임을 짊어지고 끝까지 할 것인가, 아니면 그저 자신의 임무(프로젝트 포기)에 충실하며 조용히 이란을 떠날 것인가. 토니는 잠을 이루지 못하며, 고민합니다. 줄담배를 태우고, 알콜을 넣어봐도, 좀처럼 쉽게 답이 나오지가 않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하면, 그냥 조용히 떠나는 편이 당연히 좋을 것입니다. 임무였다고 변명하고, 최종결정은 내 책임이 아니었다고 변명하면, 누구하나 돌을 던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서, 왜 토니는 아르고 프로젝트를 끝까지 밀어붙였을까요? 그래서 국가에게 제발 똑바로 일 좀 하자고 이야기 했을까요? 두 가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후회를 남기지 않고, 어떻게든 이 사람들을 살려내고 싶었겠지요. 둘째, 더 중요한 대목은, 그가 자신의 판단으로는 분명히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밤새 고민끝에 확신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아르고 작전은 결코 자살 행위가 아닌, 가능성 높은 길이자, 이 사람들을 꼭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단호하게 국가에게 다시 도움을 요청하고, CIA는 이에 응합니다.

 

 쉽게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길 멀쩡히 놔두고, 목숨 걸고 어렵게 (가짜) 영화 찍으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그 뜨거운 열정. 저는 이 모습 덕분에, 이 영화가 이번 아카데미에서 상을 탔지 않나 싶습니다. 목숨 걸면서라도 영화 한 편 찍어서 사람 살려보자 라는 그 진지함이 묻어 있으니까요. 저는 좋은 예술작품은 사람을 일으키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한 장면, 책의 한 소절 같이 아주 사소해 보이는 것일지라도, 가끔은 가치관의 변화를 낳기도 합니다. 저 역시 올해 초 읽었던 책 한 권으로 인해서, 그야말로 미친듯이 글쓰기를 원없이 해보고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식으로 쓰여 있었지요. "당신의 재능이 정말 한심하게 보일 때, 그 때가 치열하게 해볼 때다." 말도 안 되는 그 작은 소절 덕분에, 저는 다시 리뷰를 하나 둘 쓰기 시작했습니다 :)

 

 자, 다시 영화 속으로 어서 돌아와서, 이들 7명의 위장된 영화 제작자들은 가짜 영화를 찍고, 숨막히는 공항 분위기를 마침내 이겨내고, 캐나다인으로 위장해서 이란을 탈출합니다.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눈빛으로 악수를 나누면서 영화는 어느새 곧 막이 내립니다. 강한 장면 없이도, 중반부터 속도감을 잘 유지시킨 것이 상당히 놀라웠습니다. 아마 목숨이 걸려 있기 때문이고, 작은 실수가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마지막으로 아르고에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두 가지를 덧붙여 봅니다. 첫째는 준비의 중요성입니다. 마쓰시타 이야기에 나오는 짧은 대목인데, 경영에 대해서 그는 "비가 오면 우산을 쓰는 것" 이라고 아주 기본적인 자세를 언급합니다. 저 10글자 중에 핵심은 "우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산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지요. 아르고에서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미리 준비하는 것, 위기의 순간에 더욱 힘이 될 것입니다.

 

 두번째로, 때가 되면 떠나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캐나다 대사와 그의 가사 아가씨를 봐도 알 수 있지요. 떠나야 할 때, 미적거린다면 더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과감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이제 이쯤에서 리뷰를 마쳐야 겠네요. 저는 결국 판단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상황에서 같은 답이 나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끝까지 버티는게 더 좋을 때도 있고, 과감히 떠나는게 더 좋을 때도 있습니다. 토니는 마지막에 훈장을 받는 자랑스러운 장면이 아주 살짝 나옵니다. 매번 상황마다 그 때 그 때 가장 좋은 전략을 생각해서,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고, 목숨 걸고 해내는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지요. 그렇게 봤을 때, 저는 "판단력과 치열함"을 갖춘 사람은 정말 정말 멋지구나! 라고 눈을 반짝이며 감탄하게 됩니다 :) / 2013. 0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