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책

1인분 인생 리뷰

시북(허지수) 2013. 3. 3. 23:08

 어려운 질문과 함께 막을 엽니다. 우리는 과연 발전하고 있는가? 발전한다는 것은 당연히 과거의 어느 지점과 비교해서 의미를 갖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살기 좋아졌는가, 혹은 살림살이 좀 나아졌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정말 대한민국 살기 좋은 나라지"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주관적 감정에 너무 치우치지 않도록 통계적 수치로 생각하자면, 몇 가지 지표들은 지금 우리 사회를 말해줍니다. 자살율,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거의 2배 이상으로) 높습니다. 출산율,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입니다. 현실도 시궁창, 희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유시민은 지난 대통령 선거를 앞에 두고, 냉철한 이야기까지 했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참고 견디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만큼 나아질 가능성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라고 표현했지요.

 

 빈곤탈출율은 해마다 떨어져서, 빈곤으로 추락한 사람이 재기할 가능성도 낮아졌고, 개천에서 용은 나지 않는다가 일반적인 의견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멈춰서서, 일단 과연 살기 힘든 나라는 어떤 모습인지 살펴보지요. 우석훈 선생님은 중동의 석유와 관련되어 이라크 이야기를 꺼내듭니다. 이라크는 산유국이자 석유를 수출하는 나라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중추 지지기반들에게는 석유를 제대로 공급할 수 없다는 것. 이쯤되면 정치가 엉망이 되면, 몇몇 사람 외에는 전체가 불행해 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저자 : 우석훈 / 출판사 : 상상너머

 출간 : 2012년 02월 29일 / 가격 : 14,000원 / 페이지 : 376쪽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숫자를 경배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상승하는 숫자는 모든 것을 압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장률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고, 대기업들의 실적은 호전되었고, 수출과 관련된 지수는 좋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살기 힘듭니다.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 달콤함이 돌아가는) 이른바 낙수효과는 어디로 실종되었는지 찾아보기 어려워졌고, 구호처럼 허망하게 들리기까지 합니다. 한편 부가 점점 한 쪽으로 집중적으로 빨려들어가는 빨대효과를 보는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우리는 숫자에 속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요. 암살당한 로버트 케네디의 말을 빌려오면, 이렇습니다.

 

 "국민총생산은 우리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의 즐거움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해학이나 용기, 지혜나 배움, 국가에 대한 헌신이나 열정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 국민총생산은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측정합니다" 자, 지난 몇년동안 숫자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첫번째 질문, 우리는 발전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성장하는 통계를 가져와 쉽게 YES 라고 답할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며, 이렇게 차갑게 바꿔 질문해 보면 어떨까요.

 

 우리 아이들의 건강은 나아졌습니까? 글쎄요. 아이들의 비만도는 증가했고, 체력은 떨어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리 아이들의 교육의 질은 나아졌습니까? 한가지 확실히 제가 느끼는 것이 있다면, 요즘 아이들은 좀 더 무서워졌고, 똑똑해졌습니다. 죄의식조차 사라져서, 범죄가 걸린 것에 대해서 재수가 없었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저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 아이들이 누군가를 보고 배웠다고 생각한다면, 더욱 아찔해집니다.

 

 놀이의 즐거움은 나아졌습니까? 가끔 PC방에 가면 거리의 아이들이 모두 여기 있는게 아닐까 싶을 만큼, 복잡합니다. 함께 공유하며 노는 문화를 상실한 채, 많은 아이들이 스마트폰 게임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근본적으로 더 용기있는 사회를 만들었습니까? 더 침묵하는 사회를 만들었습니까? 닥치고 공부해서 취업하는 것이 살아남는 길인 사회, 이게 과연 발전한 사회의 모습인가? 라고 질문한다면,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한국의 자랑이 빠름 빠름 이라면, 우리는 지금 빠른 속도로 우울함과 피로감을 가진 사회로 돌진하고 있는건 아닐까요? 기술과 숫자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고 유혹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의 삶의 질은 정말로 발전하고 있는지, 자주 멈춰서서 질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으면, 노곤하게 쳇바퀴를 돌리면서 살다가 병들고 말 것입니다.

 

 1인분 인생은 고양이 이야기로 출발해서, 고양이 이야기로 끝납니다. 일상적인 내용이 많아 읽기 가벼우면서도, 통찰있는 깊이감이 일품입니다. 낭만적이면서도, 비현실적으로 들리지 않아서 좋습니다. 예컨대 키우는 고양이가 아팠을 때, 80만원이 치료비라면, 가난한 여대생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녀가 고양이의 치료를 포기할 때, 그것은 그녀의 책임이라 할 수 있겠는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88만원을 벌어서, 공부하고 있는 가난한 고학생의 괴로움을 우리는 생각해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괴로운 일이니까요.

 

 벌써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딛기도 전에 빚을 가지고 출발해야 하며, 죽어라 공부하지 않으면, 그녀 역시 취업 실패에 비관하며 아까운 목숨을 내던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너무 쉽게 "네가 열심히 안 해서 그런거지." 라고 말하면 곤란합니다. 가난하게 태어나서, 열심히 이를 악물고 살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을 때, 우리는 대체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합니까. 청춘은 아프고 힘든거야? 노력해서 세상을 바꿔보자? 투표를 안 한 네 탓이다? ... 강상중 교수였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제발 죽지 말고, 살아가자."

 

 너무나 힘든 순간을 바라보면서, 진짜 나답게,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우석훈 선생님의 따뜻한 조언을 정리하면 대략 이렇습니다. "내 탓으로 돌리면서, 자학하는 것 지금 당장 때려치우기", "어려운 사람을 돕고, 반면에 잘 나가는 사람에게 떡이라도 얻어먹을 요령으로 빌붙지 않기", "항의표시를 하며 용기 있는 선택을 해보기", "아무리 괴로워도 지금 행복할 수 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보기", "단계적으로 계단을 밟는 것만을 바라보지 말고, 얼마든지 다른 삶의 가능성도 있음을 바라보며, 그 문을 열어보기" 입니다. 말하자면 소박하고 작은 일상의 행복과 희망을 벗삼아서, 지금을 견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친근하게 토닥입니다.

 

 저는 책을 읽는 동안 기뻤습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저는 마이너루트를 통해서 학업을 이어나갔던 사람입니다. 야학에서 배우며, 선생님들과 술자리도 동석하기도 하고 (저는 술은 지금도 잘 못 먹습니다;), 인간관계의 폭도 그다지 넓지 않아서 혼자만의 사색에 빠져 있는 것을 즐기기도 합니다. 밥벌이 조차도, 여럿이 협력하는 것보다 혼자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일들을 선호하는 편이고요. 우석훈 선생님은 이런 초라한 삶일지라도, 밥 세 끼 먹으면서 지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상을 추구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보람찬 선택을 통해서, 얼마든지 멋진 인간으로 서 있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주류가 아닌 소수자로 산다는 것, 병약하고 마이너한 삶을 산다는 것, 그 속에서도 전혀 주눅들지 말고,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나갈 수 있다고 그는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인 대목은 책 읽고, 계속해서 공부하지 않으면, 진보든, 보수든 망한다는 점을 강하게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거꾸로 읽는 세계사 때 부터 유시민을 좋아했는데, 그가 50이 넘어서도, 고전을 꺼내들어서 읽는다는 점에 놀라웠습니다. 책이 뭐길래 그렇게 대단한가요?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경험의 결정체이며, 역사를 볼 수 있기에, 어리석은 길로 나아가지 않게 잡아주기 때문이다 라고 답하겠습니다. 사람은 욕망에 눈이 멀어버리는 그 순간부터, 끝없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욕망을 깨닫게 하고, 좀 더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하는 힘이 책 속에는 분명히 들어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책을 열정적으로 많이 읽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까이 하고 싶어서 (잠이 안 올 때 읽을 수 있으므로) 잘 때도 곁에 두고, 외출할 때도 가방에 꼭 한 권은 넣어갑니다.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살아오면서 어리석은 선택을 참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더 이해하고, 세계를 더 이해하고, 나아가 지금 시대에 대해서 작은 목소리를 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당신 탓도 아닌데, 그렇게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사람에게, 아무 말도, 아무 것도 해주지 못했던 많은 순간들을 수없이 후회했기 때문입니다.

 

 책은 지금 당장 길을 알려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길을 잃었을 때 일수록, 가까이 해야할 것은 달콤한 술과 위안의 담배가 아니라, 고민하는 시간과 책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살아가다보면 참으로 쓰라린 경험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1인분치의 몫을 해내는 사람으로 당당히 서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며, 물질에 눈멀어 타락한 삶보다는, 좀 더 나은 세상을 영원히 꿈꿀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계속해서, 계속해서, 격려하며, 저의 부족함으로 충만한 소박한 리뷰는 오늘 여기서 마칠까 합니다. 오늘을 또 응원하며.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