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이탈리안 잡 (The Italian Job, 2003) 리뷰

시북(허지수) 2013. 3. 6. 17:25

 시원스럽고 긴장감 넘치는 명작 액션 영화라면 이탈리안 잡도 좋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특히 자동차들이 신나게 거리를 누비는 장면들은 일품입니다. 범죄와 도둑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 임에도, 이탈리안 잡은 경쾌한 느낌으로 빠른 속도감을 자랑하며 전개됩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좌절하기 보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이 훨씬 멋진 일임을 통쾌하게 설명해 줍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알기 쉽고 즐거운 오락 영화지요 :)

 

 자, 그렇다면 이탈리안 잡에 대해서 도대체 왜! 리뷰를 써보는가, 과연 무슨 말을 쓸 수 있을 것인가. 이해하기 편한 영화를 굳이 해석하려 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다만 언제나처럼, 관점과 선택이라는 측면에서 그들이 움직인 동기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싶을 뿐이지요. 영화의 첫 장면은 프로페셔널 도둑들이 모여서, 금고를 화려하게 터는 장면부터 출발합니다. 왜 도둑들은 모였을까요~ 한탕을 하기 위해서지요. 그들의 동기는 무엇일까요. 네! 돈입니다. 돈! 돈! 돈! 재밌는 대목은 여기서부터, 과연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로또 1등에 맞먹는 50억을 갖게 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의외로 도둑들은 저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릅니다. 남자들이 정신 못차린다는, 근사한 스포츠카, 빵빵한 음향시스템, 예쁜 미인, 넓은 저택 등 각자가 원하는 것은 다르지요. 사람마다 방의 모습이 다른 것처럼, 그들은 돈으로 꿈꾸는 삶도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탈리안 잡에서는 상상력을 괜히 강조하는데, (웃음) 음, 부질없는 상상이지만, 저라면 큰돈이 생긴다면 조금씩 타쓰면서, 여행가고, 행복한 경험을 만드는데 쓸 것 같습니다. 이런 소박함(?)도 나름대로 낭만적인 인생에 대한 투자라고요 :) 가지는 것으로는 쉽게 만족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저는 그래도 조금은 깨닫고 있는 편입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영화는 한 조직원 스티브의 배신과 함께, 급격하게 중반으로 접어들어갑니다. 솔직히 범죄 영화 많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배신을 예측할 수 있지 않나 싶을 만큼, 그야말로 왕도스토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운좋게 살아남은 도둑들은, 배신자를 언젠가 잡아서 복수하기 위해서, 칼을 갈고, 이를 갈고, 분노를 꾹꾹 눌러서 쌓아갑니다. 마침내, 1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르고, 배신자 스티브의 행방이 발견됩니다! 자, 스티브 이제 넌 죽었어!

 

 이쯤에서, 난데없이 얼마전 책에서 읽었던 쓰라린 구절이 떠오릅니다. 기억에 의존해서, 써본다면, "차라리 슬픈 순간을 모두가 함께 모여서 위로하고 토닥일 수는 있겠지, 그러나 성공한 순간을 함께 즐기기는 힘들껄, 사람의 추한 모습을 보지 않으려면, 성공의 자리에는 빠져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흔히, 차가운 사회를 두고서, 승자독식의 문화라고 가슴 아프게 표현하는데, 그 밑바닥에는 이처럼 남과 함께 동반적인 성공을 경험하기 싫다는 무서운 욕망이 깊게 깔려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잘되면 축하하면서도 배아파하는 인간의 이중성. 모두가 잘되면 그 공을 독식하려는 못난 욕망. 이것을 잘 제어하지 못하면, 인간이 추한 짐승으로 돌변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스티브는 그렇게 본다면, 가장 영리한 짐승이지요. 제일 먼저 인간의 마음을 버렸으니까요.

 

 찰리, 스텔라, 라일, 롭 등 개성 강한 도둑들은 다시 모여서, 이제 저 배신자 스티브의 집을 털기 위해서 정교한 계획을 세웁니다. 아, 스텔라는 민간인 출신이니, 도둑이라고 하면 싫어하겠군요. 배신자의 총을 맞고, 아버지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스텔라는 이러한 이유로 누구보다 열심으로 복수극에 앞장섭니다. 아버지가 불운하게 죽은 것을 두고, 다 잊었다고 말은 하지만, 몸은 이미 복수극을 향해서 뛰어들어 가고 있지요. 말보다 앞서는 것은 몸이고, 머리보다 앞서는 것은 감정입니다. 빨간차 미니를 몰면서 쿨한 전문가로 살아가고 싶어했지만, 그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원수는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하고도 잘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보고서 그녀가 계속 가만히 있었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 아닐까요.

 

 경쾌하게 표현하자면, 이탈리안 잡은, 부조리한 인간에게, 시원스럽게 자동차로 냅다 박아버리는 영화 라고 과감히 요약할 수 있습니다. 10년전 영화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화면과 효과음도 똘망똘망합니다. 가장 나쁜놈을 박살내는, 나쁜놈들(?)의 시원한 복수극은 짜릿한 청량감을 주는 듯 합니다. 간혹 사람을 아주 우습게 보는 나쁜놈들이 얼굴에 철판깔고 뻔뻔하게 참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대체 정의란 어디에 실종된 것일까, 라고 의문이 드는 현실에서는 좀처럼 맛볼 수 없는, 영화만의 신나는 즐거움 아니겠어요.

 

 한편 범죄영화 치고는 사람 죽는 장면이나, 잔인한 장면이 적은 것도 특징입니다. 오히려 경쾌한 핸들링의 마법같은 차 미니를 대놓고 광고하는 거 아닌가 싶을 만큼, 신나는 질주장면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도둑들 일행) "이봐, 우리는 금괴같은거 산더미처럼 쌓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신나게 살 수 있어. 이 상상력 없는 자식아!"

 

 악당 스티브는 최고로 남지 못하고, 영원히 2인자 (또는 추락자) 로 머무를 수 밖에 없는 까닭으로 영화에서는 "상상력 빈곤"이라고 강하게 표현됩니다. 하고 싶은 게 없어서, 남들이 원하는 거 따라만 하고, 위기 상황에서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비겁한 카드부터 꺼내드는 모습은, 스티브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그럼 1인자는 어떻게 해야 가능한가요? 라고 누군가 되묻는다면?

 

 급진적 작곡가로 평가받는 찰스 아이브스의 예를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찰스는 신문, 라디오, 음악회까지 거부하고, 오직 자신만의 상상력을 발휘하기 위해 골몰하면서 작품들을 써내려갔습니다. 기괴하고 난데없는 곡들은 오랜 세월 외면받았습니다. 발표된 곡이 세상에 알려지고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40년이 더 지나서 였습니다. 노년에는 퓰리처상까지 거머쥐었는데, 상은 속물들이나 원하는 간판이라며, 특유의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이름은 25개국어의 위키백과판으로 존재하는 역사적 대가가 되었습니다. 어때요, 남들과 다른 길을 밀고 간다는 것, 그 재능과 확신만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진짜 상상력"이 되는 거 아닐까요. 영화에서 비겁한 개XX로 묘사되는 악당 스티브와 정반대 지점에 있는 한 음악 거장 찰스가 떠올라서 덧붙여 봤습니다 :)

 

 영화 이탈리안 잡에서의 상상력이라고 하면 직접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동차가 굳이 포장된 도로만 다닐 필요가 있는가? 라는 상상력을 기막히고 재밌게 보여줄테니까요. 마무리까지도 왕도스토리 그대로 이어지면서, 즐겁게 막을 내립니다. 명대사를 생각해보면서 오늘 리뷰는 여기서 마칩니다. "사람은 믿어도 좋지, 그런데 그 내면의 악까지 믿지는 마라." 이 긴 대사를 네 글자로 줄이면 이겁니다. "의심하라" 그리고 상상력의 출발점 중 하나가, 기존의 가치를 의심해 보는데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른 세계도 가능하지 않을까? 라고 질문해보고, 다른 가능성과 잠재력도 있지 않을까? 라고 질문해볼 때, 우리는 놀랍게도 또 다른 시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놀라운 상상력을 예찬하며.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