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기타

러키스타 (2007) 리뷰

시북(허지수) 2013. 3. 5. 22:27

 러키스타는 이른바 "일상계" 애니메이션으로 불리는 작품입니다. 일상계 애니는 별다른 극적인 사건이 없으며, 소소하고 한가한 이야기를 재밌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러키스타 역시 24화로 구성되어 있지만, 가령 짱구는 못말려 처럼 중간에 한 편씩 보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점이지요. 후반부의 몇화 정도가 교토애니메이션 (교애니) 특유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연출이 들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는 그 밝은 주제가처럼 가볍고 경쾌합니다. 그러므로, 장편의 연결된 드라마를 원하신다면 일단 러키스타는 권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용따위는 산으로 가도 좋아, 가볍고 웃을 수 있으면 충분해, 라고 생각한다면, 러키스타를 꽤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주인공격인 파랑머리의 이즈미 코나타는 저의 10대 시절을 보는듯한 착각에 빠질만큼, 대단히 비디오게임에 열성적인데, 그에 비한다면, 현재의 제 모습은 코나타 아빠와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게임을 좋아해도, 할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으며, 밥벌이에 몰두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처지. 그렇게 봤을 때, 이 작품은 귀여운 딸내미들이 보여주는 일상개그물로 편하게 볼 수 있는 셈입니다. 아, 그 딸내미가 오늘도 공부는 등한시하고, 게임부터 하고 있다고요? 어서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로 출발해 봅시다.

 

 

 애니메이션 원제 : らき☆すた / 제작년도 : 2007년 / 제작 : 교토 애니메이션 / TV판 총 24화 편성

 

 ※이제부터의 내용은 애니메이션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보시지 않은 분은 절대 주의하세요

 

 오늘 리뷰를 조금 더 솔직히 쓰자면, 저는 20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현재 30대 중반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게임을 접어야 하나, 때때로 고민해보곤 합니다. 분명 비디오게임을 참 좋아하지만, 시간은 없으므로, 소프트들이 하나둘 어느덧 쌓여가고, 가끔 지인들을 초대해서 마리오카트, 축구게임 등 접대용게임들을 돌리긴 해도, 현실적으로 게임기들에 먼지가 내려앉는 것을 볼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돈을 벌 수 있으면 좋을 줄 알았지만, 역설적으로 슬픈 일이되고 말았지요. 하하. 유독 러키스타가 즐거웠던 것은 일종의 대리만족적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 저렇게 즐거운 시절이 나도 있었지, 라는 묘한 미소를 준달까요.

 

 어린 시절, 친구와 함께 밤늦게까지 파이널판타지, 파이어엠블렘, 슈퍼로봇대전 등 즐겁게 놀다보면, 하루, 일주일은 금방 지나가 버리기도 했습니다. 철도 없고, 걱정도 없고, 즐거움만 가득하던 시절. 자, 이즈미 코나타 역시 철없기로는 반에서 최고수준입니다. 밤새 게임하다가 학교에서 잔다거나, 신작 출시에 맞춰서 가장 발빠르게 움직인다거나, 심지어 장래희망에 (하루히의) 단장이라고 써넣을만큼, 그야말로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살아가는 캐릭터지요. 다행히(?) 주변의 친구들은 충분히 현실적이면서도 귀엽습니다.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녀석이 카가미라는 캐릭터 입니다. 게임은 가볍게 하면서도, 성적은 상위권이고, 평소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쌍둥이 동생도 잘 챙겨주는 밝고 명랑한 모습이 참 인상적이지요. 살짝 허세를 보여주기도 하고, 잘난 척도 은근히 해주는데, 누가 봐도 츤데레식(겉은 새침해도, 속은 다정다감)의 따뜻한 캐릭터라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위선적인 사람, 예를 들어, 겉으로는 부드러우면서도 속은 계산적이고 음침한 사람을, 현실에서 우리는 종종 만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비한다면, 러키스타에 나오는 주연 캐릭터들은 악한 구석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의 일상 개그를 보고 있으면, 다른 세상을 보는 듯한, 편안함을 줍니다.

 

 적나라한 표현으로, 코나타는 현실을 망각한 헤비게이머, 카가미는 현실에 집중하는 라이트게이머에 가깝다고 보이는데, (생계책임보다 높은 우선순위를 둘 수 있는 것은 없으므로) 나이들수록 후자가 되어간다고 볼 때, 코나타야 말로 진짜 행복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캐릭터가 아닐까 싶습니다. 노래방에 가서도 애니송만을 고집하는 코나타는 오덕의 길 최전선을 걷고 있으며, 카가미는 아마 일반인과 덕후의 경계라인에 걸쳐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고보면, 러키스타는 패러디가 상당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각종 추억의 게임과 만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가벼운 누설이지만, 난데없이 자동차 경주장면이 나오는 장면은 정말 빵터졌고, 교애니 자사의 과거애니 풀메탈패닉을 간접광고에 가까우리만큼 꾸준히 살짝 홍보하는 것도 재밌는 포인트. 내용 없는 애니, 교훈 없는 애니 라지만, 러키스타는 의외로 재밌는 영감을 하나 줍니다. 바로 "쌓아온 경험에 대한 고찰" 입니다. 애니나 게임을 좋아할수록 러키스타의 패러디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됩니다. 가령, 모처럼의 휴일을 맞아서 온라인게임을 해보려는데 "서버 점검중"이라고 뜰 때의 그 당혹감. 이런 소소한 게이머의 일상을 놓치지 않고 하나 하나 집어넣은 것이 러키스타가 가진 최대의 매력이 아닐까 싶네요.

 

 쌓아온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인간이 어떤 행위를 계속해서 반복해서 경험을 늘려가다보면, 점점 볼 수 있는 것이 늘어나게 됩니다. 연애 초보와 바람둥이는 사람을 대하는 방법도 많이 다릅니다. 좋은 책이나 좋은 영화는, 그리고 심지어 동화까지도, 경험이 쌓여서 보게 되면, 전혀 다른 측면에서도 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을 경험의 축복이라고 표현해도 좋겠네요. 백설공주를 보면서도, 왕비가 왜 질투를 느꼈는지, 왜 하필 거울 앞에서 질문을 하게 되는지 생각해 볼 수 있게 됩니다. 외적인 아름다움은 결코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그 좌절감을, 백설공주 동화에서도 어렴풋이 (혹은 선명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로미오와 줄리엣이 죽음과 함께 막을 내렸기에 영원한 사랑이 될 수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계속 안죽고 만났으면, 혹시 이혼하면서 재산권분할? (하하, 경우의 수일 뿐이고, 농담입니다.)

 

 서로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적잖게 실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더욱 안정적인 애정관계로 이어나갈 수 있음을 알게 되면, 성숙한 사랑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배려의 모습을 꿈꿀 수도 있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10대의 꿈과, 20대의 꿈과, 30대의 꿈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지요. 쌓아온 경험은 확실히 우리의 시야를 넓혀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었지만, (코나타 식으로 좀 더 풀어쓰면, 많은 명작게임을 계속해서 누리고 싶었지만!) 저는 분명한 한계를 느낍니다. 계획표에 빼곡히 적어본 리스트 중에서 채 절반도 시도해보지 못하고, 언젠가 죽음 앞에 서야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우선순위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검증하거나, 추천해준 작품들을 우선적으로 체크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비겁해진 것이고, 삶의 요령을 가진 셈이지요. 저는 다른 사람의 도움과 경험들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것 모두가 소중한 간접경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쓸 내용도 딱히 없고, 강렬한 장면도 없고, 어떻게 써야 하나 난감했는데, 오히려 난데없이 황당하게 내용이 길어졌군요. 어서 리뷰를 마쳐야 겠습니다. 부디 당부하건대, "자신의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길 바랍니다. 상처받은 경험도 때로는 상황을 좀 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성공의 경험보다는, 실패와 좌절의 경험쪽이 많고, 회의하는 인간형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돌아보면, 잘하지 못했던 일들로 인해서, 자신이 무엇에 강점이 있는지 조금씩 알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을 쌓아가며, 자신을 알아가는 것은, 나이가 들어가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즐거운 오덕이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는 딜레마를 안고 사는 제 모습까지도 요즘은 사랑하고자 노력합니다 :) / 2013. 03. 아직은 나름 비디오게이머인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