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영화 세 얼간이 (3 Idiots, 2009) 리뷰

시북(허지수) 2013. 3. 7. 21:20

 3 이라는 숫자는 안정감도 주고, 많은 것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램프의 요정이 괜히 세 가지 소원 이야기를 말했겠어요. 세 가지로 표현될 수 있는 것들이 인상적으로 많기 때문이 아닐까요. 의사에 관해서 저는 이런 교훈을 본 적이 있습니다. 병을 고치는 의사, 사람을 고치는 의사, 세상을 고치는 의사가 있다. 후자로 갈수록 더욱 놀라운 의사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학문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요. 학문을 파고들어서 박식해지는 사람이 있으며, 학문을 응용하고 활용하면서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르크스의 유명한 말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철학자들은 세상을 해석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21세기에는, 학문을 스스로 이루어가면서 세상을 창조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관습을 거부하며, 기존의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며, 다른 세상을 꿈꾸고 행동하는 새로운 인간. 정해진 틀이 아니라,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사람.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으며,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이루어 갈 수 있는지 고민하는 사람. 세 얼간이는 바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 입니다. 너무 좋아하는 영화라, 오늘로 아마 3번째 완주를 마치는 셈인데, 드디어 작은 용기를 내어 리뷰를 한 번 써볼까 합니다.

 

 

 란초, 파르한, 라주. 이른바 세 얼간이가 펼치는 거의 동화같이 멋진 이야기는 사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도 쓸 수 있습니다. 꿈과 원하는 것을 좇으면서 배고프게 살아갈 것인가, 남들이 다 따라가는 주류의 길을 걷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면서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갈 것인가. 세 얼간이는 꿈을 좇는 삶을 예찬하고 있지만, 일단 안정된 직장을 가져서 경제적인 독립을 하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닙니다. 너무 돈만 바라지 않는다면, 적당히 자리잡아서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는 것도 충분히 가치로운 성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 앞에 서게 되면, 우리는 침묵하게 됩니다. "지금 행복하십니까?"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흔히 성공하고, 원하는 것을 가지면 행복해 질 것이라고 착각하기 쉬운데, (그래서 돈버는 기회나 복권 등에는 언제나 사람이 몰립니다) 잠깐의 만족은 얻어질 수 있겠지만, 행복한 삶으로 가기는 어렵습니다. 저의 예를 솔직하게 들어보자면, 책과 게임을 좋아하는 저는, 20대 중반이 지나며 돈을 벌고 월급을 타고 한 때는 마음껏 책과 게임을 사보았는데, 우습게도 7년이 지난 아직도 읽어보지도 못하고, 해보지도 못한 것이 있습니다. 한 번 가지게 되면, 곧바로 또 다른 것을 원하는 사람의 간사한 욕심을 저는 이런 몇 번의 바보짓을 통해 스스로 잘 알게 되었지요. (물론 요즘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면, 지름신에 가끔 굴복합니다. 하하.)

 

 자, 그렇다면, 가장 인상적인 인물 란초는 어떻게 해서, 원하는 것만 생각하면서 걸어갈 수 있었는가?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생각을 밀고 나갈까 합니다. 영화 중반부에 밝혀지지만, 란초는 가난한 정원사의 아들로서, 공부할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서, 그 속으로 뛰어들어간 인물로 묘사됩니다. 누군가 시켜서 공부하는 사람들과는 내적동기부터가 완전히 출발점이 다릅니다. 자발적으로 무엇인가를 선택한다면, 이 결정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밖에 없습니다. 가령, 망가진 모형헬기를 고치려는 란초의 행동은 스펙에 도움도 전혀 안 되고 이상해 보이지만, 자신이 선택한 결정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무슨 말을 하더라도, 란초는 조금도 개의치 않습니다.

 

 이 대목을 좀 더 파고들어가면, 우리가 방황하고, 흔들리고, 계속해서 고민하는 것은, 우리가 직접적으로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시켜서 하고, 누군가의 말에 유혹당하고, 심지어 어떤 정보에 솔깃해서 진로를 정하는 등,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내가 자발적으로 결정했는가?" 라고 확답할 수 있는 것은 의외로 적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에게 해당되는 솔직한 고백은 "하고 싶은게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겠어." 가 더 정확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망설이지 않고 거침없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 란초는 젊은 나이에 그렇게 행동하고 있으니 감탄하게 됩니다. 호연지기를 주장한 맹자도 50이 넘어서야 세상에 나와서, 왕들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조금도 흐트리지 않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란초는 중요한 순간마다 망설이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그저 매순간을 지독하리만큼 열심히 살아갑니다. 가장 중요한 게 이것이다 라고 행동으로 말합니다. 경쟁에서의 1등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웃을 수 있다" 이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제가 과거에 다리가 불편했던 경험이 있다보니, 저는 라주에 대해서도 어쩐지 애착이 갔는데, 라주는 정말 멋진 말을 합니다. 그 느낌을 의역하자면, "뼈가 부러지고 두 다리로 온전히 설 수 없게 되어서야, 비로소, 무엇이 중요한 지 알게 되었고, 한 인간으로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라주도 이제 란초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말하게 됩니다. 나의 가치관은 이것입니다, 이것은 누가 손대거나 바꾸라고 한다고 움직이는게 아닙니다. 태어나서 이 말을 당당히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저는 그 자체로 빛나는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고백하자면, 저는 남들에게 맞춰주면서 사는 것이 어른의 인생이다 라는 말을 지혜이자 지침으로 오랜기간 들어왔습니다.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이겠지요. 이렇게 살면, 확실히 현명해 보이고, 예쁨 받을 수도 있으며, 타인을 배려한다는 근사한 분위기까지 보여주게 됩니다. 세 얼간이를 보고 나면, 파르한이 튀어나와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그 남들이 의식주를 다 해결해 준대요? 남들 보기 좋은 인생, 내가 불행하게 살다가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저는 어느 순간부터, 남들을 배려하는 것만큼이나, 자신의 이야기를 분명하게 할 줄 아는 용기가 중요하다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필요할 때는, 확실하게 이야기를 해서,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는게 더 중요합니다. 즉, 남들 보기에 좋은 사람이 되기 보다는, 스스로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게 훨씬 건강한 삶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란초가 보여주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 나가는 모습은 너무나 눈부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세 가지를 깊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첫째, 실력. 둘째, 실력. 셋째, 실력. 자신이 좋아하는 게 있다면, 그에 걸맞는 치열한 노력을 통해서, 충분한 실력을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영화 세 얼간이 에서는 재능을 따라가면 성공은 저절로 뒤따라 올 것이라는 멋진 말이 나오는데, 저는 이 말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를 잡아낸다면 "따라가면" 이라는 네 글자라고 생각합니다.

 

 눈부신 재능이 있다면 저절로 성공이 따라옵니까? 전혀 아닙니다. 사실상 재능보다 더 필요한 것은, 자신의 내면에 귀기울이고, 발견된 재능에 대해서 끝까지 따라가는 태도가 훨씬 중요합니다. 그래서 란초를 한없이 사랑합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 후, 눈물의 이별을 했지만, 그 후 조금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재능을 따라갔습니다. 할 수 있는 것들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그에게 상황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지금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어떻게든 따라가기 위해서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그의 마지막 모습 그 자체가 혁명가이자 창조자의 모습 아니겠어요. 체 게바라의 말이 떠오릅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보지만, 그 가슴에는 더 높은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 언제나 우리를 두근거리게 하는 삶 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따라가면서 살아갈 것입니까? 남들의 시선과 기준을 따라가면서?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따라가면서? 문은 언제라도 우리 곁에 열려 있다고 저는 강하게 확신합니다. 삶에는 선택의 순간이 참 많습니다. 부디, 용기 있는 선택을 할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어쩌면 좌절하고, 넘어지고, 혼수상태의 비참한 기분이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다른 길을 간다는 것은 두려움을 넘어가야 하기에, 위험부담도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저는 메모지에 이렇게 적어놓았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결국 모든 게 망가진다." 유명영화의 명대사를 빌려오자면, 절망이라는 숨막히는 크림통에 빠져버릴 때 조차, 끝까지 움직이다 보면 크림이 굳어지면서 버터로 변합니다. 그것을 발판으로 딛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짜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돈만을 따라서 가격표 인생으로 살다가, 언젠가 화려하고 비싼 장례를 치르게 되는 어리석은 마지막 모습을 두려워해야 하지 않을까요.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