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타이타닉 (Titanic, 1997) 리뷰

시북(허지수) 2013. 3. 15. 12:55

 영혼을 울리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는, 무대를 압도해 버립니다. 영화 타이타닉은 인간에 대해서 말해주는 대단한 명작이지요. 타이타닉에서는 영혼을 울리는 호소력 짙은 "무엇인가"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만큼, 내용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에, 과감히 모두 생략하고, 무엇이 영혼을 울리는가, 그래서 압도적으로 마음을 사로잡게 하는가. 그 점을 생각해 볼까 합니다.

 

 제목에서 출발하자면, 당시 세계에서 제일 커다란 배 중의 하나인 타이타닉의 위용을 생각해 보면 좋습니다. 인간 기술의 극치라고 찬사받는 모습이고, 당대 잘 알려진 명선장이 이끌고 있고, 이런 배가 침몰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구명보트를 인원만큼 미리 싣는 다는 것이, 진지한 목소리가 아닌, 첨단기술에 대한 불신앙로 받아들이는 시대. 오늘날로 말하자면, 타이타닉은 에어백과 브레이크를 달지 않은, 초고속 스포츠카와 같습니다. 세계신기록에 도전하는 항해속도와, 화려한 외관, 겉과 속이 동시에 찬사받는, 인간 최고의 걸작품이지요. 비극적인 것은 그 걸작품이, 떠있는 빙산을 피하지 못하고, 침몰한다는 것이지요.

 

 

 자연이라는 것을 정복과 지배의 대상으로 보았던 시간동안 우리는 뼈아픈 교훈을 얻습니다. 약한 지진에는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건축을 자랑하는 일본의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진도 7이 넘는 강진을 대비해서 아무리 첨단기술을 동원하더라도, 인간의 상상을 넘어서는 초강진 앞에서는 원전까지도 터져나갑니다. 20세기 초반, 첨단기술은 빙산 앞에 무너지고, 21세기 초반의 뛰어난 기술도 지진 앞에 무너져 내립니다. 배를 설계한 자의 고백처럼, 튼튼한 배를 만들지 못했기에 타이타닉은 침몰했던 걸까요? 한편으로는, 사고발생확률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고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닐까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미리 침몰의 가능성을 염두해두고, 구명정을 충분히 준비했더라면, 속도과시 대신에 안전한 도착을 중시했다면, 흔하고 뻔한 경고 앞에서, 오늘 하루도 겸허한 자세로 준비했다면,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타이타닉이 인재일 수도 있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첨단기술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귀기울여 듣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상류층의 17세 소녀 로즈가, 자신이 속한 사회를 싫어하고, 경멸에 가깝게 대하는 것도, 거기에는 껍데기만 화려할 뿐, 귀기울여 듣지 않는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로즈가 아무리 이야기 해봐도, 마치 허공에 말하는 것처럼, 어떤 의미있는 반응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입닥치고 부자와 결혼해서, 하인처럼, 귀부인처럼, 그렇게 껍데기로 사는 것이 그녀의 운명처럼 보입니다. 자, 여기서 영화의 핵심 주제가 등장합니다.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을 남에 의해서 결정되게 하지 말자" 로즈는 많이 망설이지만, 자신의 마음을 결단합니다. 그녀가 상류 사회에 침을 날리며 먹칠하는 장면, 가슴을 파고드는 유쾌한 명장면입니다 :)

 

 영혼을 흔드는 호소력은 - 인간은 스스로가 선택하는 존재이며, 자유를 사랑하는 존재 입니다.

 이걸 가볍게만 비틀어도 우리는 괴로움을 느낍니다. 어린 시절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공부는 끔찍히도 하기 싫으며, 생계라는 이유로, 자유를 속박당한채,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동안은, 몸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녹슬어가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선택권과 자유가 박탈당하는 순간, 사람은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리는 위험에 처해집니다.

 

 영화로 돌아와, 인생역전을 꿈꾸며 아메리카로 향하는 잭은, 위험한 사랑에 젖어들게 됩니다. 영화 초반, 잭이 추락하는 로즈의 손을 붙잡는 장면은 설레는 감동을 줍니다. "절대로 놓지 않을꺼에요" 이걸 살짝 풀어쓰면 이렇습니다. 당신이 누구라도, 당신이 어디에 있어도, 나는 변함없는 용기로 당신의 손을 잡고 있을께요. 순간 순간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잭은, 지금 아름다운 로즈 앞에서 모든 것을 거는 위험한 도박을 보여줍니다. 사회적 금기에 맞서며, 총 맞을 짓을 사서 하는 셈인데, 실제로도 총 맞아 비명횡사 할뻔 합니다 (...)

 

 이른바 금지된 사랑이라서 더 멋진 걸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저는 이것을 "해방감"으로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최고의 감정 중 하나가 바로, "무엇인가에 벗어나서 해방감을 만끽하는 것" 입니다. 두 글자로 "자유" 정도. 로즈에게 있어서 잭이란? (물론 잘생기고 실력좋은 화가이지만) 무엇보다 새로운 세상을 열게 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엄두를 내보지도 못했던, 상류층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숨쉬면서 살 수 있게 해주는 그 꿈을 실현시켜줄, "용기이자 구원"이기도 했기 때문에,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거 아니겠어요. 여기서 사랑은 단지 "너만 있으면 돼"에서 더 나아가, "너와 함께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 라는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얻게 됩니다.

 

 로즈의 적극성은 예쁜 것을 넘어서, 가슴을 뭉클하게 해주는 귀여움과 매력이 가득한데, 탈출하는 구명선에서 다시 잭이 있는 곳으로 뛰어들어 온다거나, 저 깊은 곳에 갇혀 있는 잭을 구하고 싶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며, 심지어 도끼까지 집어들고 휘두르는 장면은 놀라운 장면들입니다. 의지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백마디 사랑해요 라는 달콤한 말들 보다, 도끼들고 물바다로 뛰어들어가는 행동이 진짜 사랑인 것입니다.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위험을 각오하는 마음, 오늘날 계산사회에서 제일 먼저 실종되어 가고 있는 "깨끗함"이 아닐까요.

 

 자, 잭은 행운아 입니다. 비열하게 나오는 악역 칼 헉슬리는, 언제나 승리하고 살아남는 것은 자신이라고 우기지만, 실제로 이긴 것은 잭입니다. 이것을 영화의 빛나는 다이아몬드 보석으로 설명하자면, 칼은 보석도 잃고, 자신의 목숨도 대공황과 함께 막을 내립니다. 그러나 잭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로즈의 영원한 마음을 얻었으며, 마침내 바다의 먼지가 되어서, 보석까지도 느껴볼 수 있지 않았을까요. 영화 마지막의 기묘한 장면을, 저는 생을 선물해 주었던 잭을 위해, 로즈가 감사의 선물을 던지는 순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이아몬드 보다 백만배는 소중한 것, 사람의 생명 아니겠어요.

 

 너는 반드시 살아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는 잭의 태도는, 깊은 감동을 주는 고결함 입니다. "너부터" 라는 짧은 태도는 한 사람의 세계관을 반영합니다. 그렇게 놓고 볼 때, 의외의 숨은 감동을 주는 것은 선원들의 당신들 부터라는 질서를 위한 헌신 아닐까요. 물론 3등칸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죽은 것은 계급적 비극이지만, 어떻게든 어린아이와 여자부터 살리고자 하고, 동시에 방황하면서도 검은 돈을 던져버리는 태도도 매우 인상적입니다. 선장 역시 역사의 오명으로 남기 보다는, 깨끗하게 죽음 앞에 섭니다. 위기 상황에서 힘을 가진 사람들이 먼저 보여줘야 할 것은, 도망이나 물러섬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악기 연주자들의 연주장면은 그래서 놀랍습니다. 누구라도 정신줄을 놓기 마련인, 극한 상황에서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기도 합니다. 여유라고 설명될 수 없으며, 귀족적인 고상한 낭만도 아니었으며, 자기 만족이라고 쓰기에도 어쩐지 부족합니다. 지금 사람들이 전혀 듣지도 않을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자신의 삶과 남은 시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 라고 표현해야 그나마 이해될 수 있을까요. 이 장면을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면, 이렇게 가정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영감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때, 삶에는 반드시 끝이 있으며, 오늘 하루에도 끝이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조용히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해볼 것인가, 가만히 죽음 혹은 하루의 끝을 기다릴 것인가. 냉정히 보자면, 그렇게 무엇인가를 한다고 해도, 현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해보는게 좋지 않겠는가? 라는 묘한 영감을 계속 줍니다. 절망 앞에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행동을 하면서, 최후를 맞이한다는 것, 죽음의 두려움도 막을 수 없는 인간의 의지에 존경과 감탄이 저절로 들게 되는 것입니다.

 

 리뷰를 마치며 명작은 어떻게 완성되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타이타닉은 편집과정에서 일부컷을 삭제하며, 시간을 줄이고도 거의 세 시간이 넘어가는 상영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영상이나 음성 문제로 내용을 줄인 것이 전혀 아니라, 워낙에 다양한 패턴으로, 영상을 찍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도 찍어보고, 저렇게도 찍어보고, 그렇게 완벽주의에 가까운 노력을 들여서, 가장 알맞은 선택들을 해왔기에, 고퀄리티 영화가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 자체가 대부분의 고퀄리티 창작물에는 반드시 해당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끝까지 밀고가면, 인생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관점은 유용한 통찰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시선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보다 세상을 넓게 이해해 보기, 여러가지 대안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선택을 하기, 그렇게 순간 순간을 행복하게 살아가다보면, 좀 더 좋은 인생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려운 현실 앞에서도, 때로는 밀려오는 절망의 파도 앞에서도, 용기 있는 결정을 통해서, 삶을 계속 이어나간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힘내세요. 우리의 삶은 좀 더 즐거운 순간을 향해서, 조금씩 항해되어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