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영화 아이덴티티 (Identity, 2003) 리뷰

시북(허지수) 2013. 3. 14. 06:16

 명작 스릴러로 손꼽히는 영화 아이덴티티. 많은 찬사를 받았던 이유는, 뻔하지 않으며, 예측하기 힘든, 과감한 전개방식이 탁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심리적 묘사가 상당히 깊숙하게 들어가 있는 것도 일품. 머리쓰면서 범인을 탐색해 가는 영화를 좋아한다면, 아이덴티티는 정말 강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저의 리뷰야 뭐 늘 그렇듯이, 생각할 주제를 고민하는 형식이지만, 이 영화는 몇 가지 새로운 감탄을 줍니다. (혹여 아이덴티티를 한 번 볼 생각으로, 블로그에 우연히 들어온 분이라면, 일단 영화부터 보시고, 리뷰는 나중에 보세요. 그래야 재밌는 영화 이니까요.)

 

 첫번째 감탄은, 상상력 바깥에서 일어난다는 기묘한 점입니다. 이렇게 틀을 깨는 참신함이 매우 신선하고 좋았습니다. 일반적인 전개방법에 익숙해 있던 관객들은, 범인의 실체를 알아가는 순간 당연히 놀랄 수 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오마이갓! 혹은 저럴수가! 입니다. 가령, 명작 영화 매트릭스나 인셉션 같이, 세계 안에 또 하나의 세계. 혹은 세계 밖의 또 하나의 세계 라는. 그 다중적이고도, 다층적인 시선을 느껴보기에도 좋습니다. 자, 그리고 두번째의 감탄은, 한계에 관해서 입니다.

 

 

 저는 한계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선을 긋는 행위처럼 여겨지기도 해서, 무한한 가능성 같은 말에 훨씬 더 매료되곤 했습니다. 100미터 달리기를 생각해보면, 100년전에는 10초6 이 인간탄환의 기준이었다면, 무려 1세기만에 1초라는 놀라운 단축이 일어났습니다. 9초58의 기록을 가진 우사인 볼트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축구를 생각해보면, 원정경기에서 0-2의 참패를 당해 놀림받다가도, 홈경기에서 4-0의 대승으로 분노의 복수극이 훨씬 더 짜릿하기도 합니다. 한계라는 선은 반드시 넘어갈 수 있다고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생각해 왔습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절대 주의하세요

 

 그러나 세월이 흘러서 인간에 대해서 조금씩 이해하게 되면서, 사람은 그다지 대단한 생물체가 아님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전화번호 뒷자리가 7자리 8자리 이유인 까닭은, 더 이상 길어지면 외우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머릿 속에 여러가지 생각을 동시에 처리할 수도 없습니다. 뇌를 연구할 수록, 한가지 업무에 집중할 때, 최적의 효율성이 나온다는 결과가 많습니다. 경험상으로도 정확합니다. 글쓰다가, 카톡하다가, 메일확인하다가, 사이트검색하다가, 쇼핑 신상 체크하다가, 그러다보면 글 내용은 어느새 산으로 가고 있습니다 (웃음)

 

 영화에서 범인이 결국 한계를 드러내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이름과 생일의 함정입니다. 그의 마음 속에 다양한 인격이 들어가 있고, 저마다의 개성도 뚜렷하지만, 태생적으로 그들은 무엇인가를 공유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바깥에서 이 인격들이 하나의 몸을 공유했다면, 안쪽에서는 인격들이 하나의 생일을 공유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생각했던 대목입니다. 왜 완전하게 독립적으로 탄생할 수 없는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포가 건강하다는 전제 하에, 사람은 발가락 끝에 작은 가시만 박혀도 고통으로 몸부림 치는 존재 입니다. 손톱을 다듬다가 살짝 실수해서 피가 나면, 거기에 온 시선이 집중되기도 합니다. 연결되어 있기에, 홀로 떨어져서 움직인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셈입니다. 로봇 만화 같은 데서는 무쇠 주먹이 혼자 저절로 날아가서 다시 척하고 되돌아오기도 하는데, 이렇게까지 상상력을 밀어붙여봐도 그 주먹이 본체를 공격하는 행위는 좀처럼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범인이 스스로 생일까지는 변경할 수 없다는 것이 인간의 슬픈 한계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면, 사람은 환경에 강력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지요.

 

 조금 유치한 방법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면, 수저를 어린이용으로, 그릇도 어린이용으로 정하고, 삼시세끼 맞춰서, 한 그릇씩만 먹기를 시도하면,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야위어 갑니다. 집에 아예 TV가 없는 사람들을 저는 아주 가끔 보는데, 공통적으로 그 대신에 책이나 볼거리들이 많습니다. 심심할 때, 뭐라도 해야한다면, TV가 없으면, 뭐라도 보거나 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환경을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서, 삶은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는 소박한 의미입니다 :)

 

 마지막으로 놀라웠던 것은, 사람의 내면 깊은 곳을, 타인이 그토록 알기 어렵다는 것에 있습니다. 추억의 영화 타이타닉에서의 로즈 대사를 빌려온다면, "여자의 마음은 바다와 같아서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거란다" 입니다. 물 속의 열길은 들여다보면 알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은 하나라도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식의 옛 교훈들도 유명합니다. 자, 여기서 사람의 마음을 전적으로 알 수 없다가 아니라, 쉽사리 알기 어렵다고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 특히 주목해야 합니다. 깊숙한 곳에 있다면, 당연히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바로 이 점을 정확히 공격해 들어옵니다. 그리하여, "어메이징 반전"이 일어납니다.

 

 판사와 박사 등 명석한 사람들이 모여서, 한 사람의 내면을 깊숙하게 들여다 봤음에도, 그들의 관음행위는 결코 진실까지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이 쉽게 생각해서, 범인을 풀어줬다고도 보기 어렵습니다. 많은 검토와 고민이 있었을 것이며, 기존의 판결사례까지도 참고되었습니다. 그 모든 분석에도 불구하고, 한 인격의 숨어 있는 의도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 놀랍지요. 어쩌면, 인간의 마음을 우리가 이해하는 척은 할 수 있어도, 진심으로 그 감정을 같이 느끼기란 불가능처럼 어려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는 겸허하게 인간의 한계를 고려하고, 그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배려와 인내, 이해심이 동원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처럼 끝까지 그 진심을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지만,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 자체는 대단히 의미있고,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두어번 영화를 보고 나면, 범인의 애처로운 시선을 좀 더 이해하게 됩니다. 왜 그렇게 매춘부를 경멸하고, 혐오했나요. 그가 어린 시절 버림 받았고, 학대 받았으며, 그 원인제공자가 매춘부였던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상처라는 것은 그렇게 깊숙히 마음에 남아서, 끝까지 사람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잔인한 행위를 했다면, 그 못이 시간이 흘러서 사라지고 없어지더라도, 그 상처의 흔적은 끝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과 행동을 특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글을 빠른 속도로 쓸데없이 길게 쓰는 저도, 나름대로는 막말이 나오지 않도록 신경을 제법 씁니다 :) 오만한 말투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순간, 떠난 마음이 돌아올 가능성은 0에 가깝습니다. 서비스업계의 표현을 빌리면, 고객이 떠나는데는 10초의 트러블이면 충분하지만, 다시 돌아오는데는 10년이 걸린다는 경고는 유명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실제로 이렇게 작동한다면, 범인이 매춘부를 받아들이기란 사실상 처음부터 거의 불가능 했음을 알게 됩니다.

 

 더 길어지기 전에 이제 리뷰를 마칩니다. 잘만든 스릴러 영화에서, 저는 마음의 소중함에 대해서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상상력 가득한 영화이므로, 저도 상상력 가득한 표현을 막던진다면, 마음은 일종의 스마트폰 바탕화면과도 같습니다. 닦을 수록 깨끗해지고, 무엇인가 소중한 것들을 깔아놓을 수 있으며, 자주 들여다 볼수록 점점 익숙해져 갑니다. 문제는 마음이 상처 입어서, 깨지거나 먹칠되었을 때 발생합니다. 한 번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좀처럼 패닉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마음을 들여다보기가 불편하고 괴로워집니다. 그러므로, 정가 100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스마트폰보다, 적어도 수백, 수천배는 값진 마음을, 우리는 소중하게 다루고, 지켜내가며, 깨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살다보면 상처받는 일들을 피하기 어렵지만, 또 때로는 슬픈 일들도 겪지만, 거기에 온마음이 깨져버리지 않도록, 잘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독한 말들, 악성 댓글, 말도 안 되는 의견들 앞에서는, 너무 신경쓰지 않는 것도 하나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영화 제목처럼 "정체성"이라는 것은 남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것은 "나" 입니다. ㅇㅇ를 좋아하는 나, ㅇㅇ은 싫어하는 나, ㅇㅇ를 잘하는 나, ㅇㅇ은 못하는 나, 이렇게 자신에 대해서 조금씩 발견하고, 알아나가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넌 안 될 놈이야" 라는 말들에 속을 필요는 없습니다. 범인의 정체성이 결국 최후에는 살인자 였듯이, 우리의 정체성 역시 최후에는 스스로가 규정해 놓은 것이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최소한 스스로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규정하고, 보살피는 것이야 말로, 자신에 대한 삶의 예의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인생을 사랑한다면, 자신에 대해서 예의를 갖추고, 정중하게 생각해 볼 것. 고민하면, 반드시, 내가 누구인지, 찾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