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책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리뷰

시북(허지수) 2013. 3. 16. 02:07

 "중요한 것은 흔적, 그래 흔적이구나" 저는 정혜윤 작가님의 글을 대단히 좋아합니다. 치열하게 사색하고, 감각적으로 풀어놓는 재능도 대단히 부러워합니다 :) 또한, 저는 정혜윤 작가님에게 마음의 빚이라고 해야할까, 고맙게 생각하는 점이 있습니다. 글의 99%는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라는 작가님의 작은 말 덕분에, 저는 부담감에서 마침내 해방될 수 있었고, 마음에 쏙 들지 않더라도 마음껏 써내려갈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처럼 산다는 것에 대해서 해방될 수 있었던 점도 기쁨입니다. 제 청춘시절의 롤모델은 전태일 평전을 쓴 작고한 조영래 변호사 였는데, 과거 싸이월드가 유행핼 때, 마치 "조영래 처럼" 이라는 생각에 한동안 사로잡혀, 싸이월드 상단에 대놓고 ~처럼 될 수 있었으면, 이라고 써놓고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면서도, 전혀 치열해지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밤을 자책으로 지냈는지 모릅니다 :) 작가님의 표현을 빌려오자면, ~처럼의 세계에서는 결코 롤모델을 따라갈 수 없기에,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게 되고, 그 내면을 깊게 파고 들어간다면 "자애심과 자기 연민의 저 밑바닥엔 자기 경멸이 있다" 라는 훌륭한 통찰에 이르게 된다는 이야기 입니다.

 

 요약정리 나름대로 잘하는(?) 제가 한 줄로 막쓰자면 - 자신의 모습이 싫기에, 대단한 인물처럼 살고자 가면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에서야 청춘시절을 돌이켜보면, 일단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정직하게 살아가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모두가 비범한 사람이 될 수는 없을테니까요. 본격적으로 책 속으로 들어가봅시다.

 

 저자 : 정헤윤 / 출판사 : 민음사

 출간 : 2010년 03월 12일 / 가격 : 13,000원 / 페이지 : 305쪽

 

 

 이 책은 고전에 관한 이야기들 입니다. 제목과 저자는 알지만, 누구도 쉽게 읽지는 않는다는 그 오래된 이야기들 말이에요. 예컨대 카라마초프 가의 형제들은 일단 두께부터 압도하고 들어갑니다. 출판사에 따라, 들고 다닐 수 있도록, 단권으로 나눠서 읽게끔도 나와있지만, 기본 분량은 약 1400페이지. 트위터가 인기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 과연 도스토예프스키는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았을까요. 말 나온김에, 카라마초프 가의 형제들을 통해 생각할 주제를 함께 파고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이반의 대사는 압도감까지 느껴지는데, "어떻게 자기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지 나는 절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어. 내 생각으론 멀리 있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모를까, 이렇게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아." 과연 이 챕터에 대해서 작가는 미리 서두에 이런 코멘트를 붙여놓았습니다. 우리 마음의 엄청난 수수께끼 하나.

 

 좀 더 나아가면, 우리는 가까이 있는 사람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기 조차도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현실을 외면하고, 동화 속 왕자님, 아이돌 공주님을 사랑하는게 더 쉽게 느껴지지요. 정말 미스터리 합니다. 어느날 누군가가 나타나 나를 구원해주고 세계를 바꿔줄 것이라는 환상. 마치 설탕처럼 달콤한 이 마법에 익숙해지면, 이것을 거부하거나, 여기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그야말로 사고의 블랙홀처럼 위험하고, 매력적인, 판타지인지도 모릅니다. (설탕과 소금이 서서히 중독되듯이, 자기 환상도 생각할 수록 중독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나는 도저히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는 그 아찔한 순간에서, 다시 두 번째 인생을 출발하기 원한다면, 환상의 가면을 벗고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혜윤 작가님의 말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 맘속의 어느 부분은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저마다의 가치를 향해 움직이고 있을 것" 아, 정말 글을 잘 쓰시는 듯 합니다. 이 말을 제가 감히 질문 형태로 조금만 바꿔본다면, 이렇게 되묻는 형태로 쓸 수 있습니다. 자,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타협할 수 없고, 침범될 수 없는, 마음의 영역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는, 감옥에서도 우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을 떠올리고, 흥얼거릴 수 있다고 묘사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사랑과 영감 이라는 가치가 모든 것을 압도할 만큼 강력합니다. 저는 매일매일 영감을 얻을 수 있는 통찰력 넘치는 삶을 날마다 소망하며, 주어진 일들에 대해서 괴로워 하기보다는 한없이 사랑하는 태도로 서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듯 저마다의 가치를 향해서 아주 조금씩이라도, 어쩌면 기어서라도, 움직이는 삶은 어떤 현실 앞에서도, 두 번 진행되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상하기 편하게 좀 더 구체적인 인물을 살펴보자면,

 

 저는 알렉스 자나르디 라는 카레이서가 떠오릅니다. 그는 차로 달리는 것을 좋아했고, 열심히 노력해 F1 무대까지도 도전할 수 있었지만, 성공적이지는 못했습니다. 수십번 도전해서, 그가 얻은 점수는 1점 정도. 게다가 후에 카트레이서를 하다가, 사고로 두 다리까지 잃게 됩니다. 외부적 시선으로 보면, 그의 세계는 실패 속에서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내부적 시선으로 보면, 완전히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그의 노력과, 그의 열정은 언제나 진행중이므로, 그의 세계는 두 번째 삶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다리가 없어도, 그는 손으로만 조작해 BMW 투어링카 대회에 참가해 시즌 14번째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나중에는 핸드사이클에 열정을 불태우며, 2012년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습니다.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향해서 움직이는 사람은, 폭풍 속에서도 여전히 반짝반짝 빛날 수 있습니다.

 

 어떤 순간에서도, 자신이 길을 선택하고, 걸어나가는 사람들의, 이런 영감들에 휩싸여 있다보면, 저는 마음이 한없이 상쾌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비가 내린 후의 시원한 바람처럼, 가끔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지라도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더 시원하고도 적극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해 볼 수도 있게 됩니다.

 

 리뷰가 뭐, 이렇게 짧나 싶지만, 시간도 촉박하고, 아무렇게나 쓰는 것이 요즘의 컨셉이므로, 정혜윤 작가님의 인상적인 시선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악마 당신도 지루하지만 당신보다 더 지루한 사람들은 자신은 죄와 악, '죄와 벌'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냥 하던 이야기 더 해줄래요?" 여담으로, 작가님처럼 저 역시 다크나이트에 나오는 자유로운 변환자 "조커"에게 매혹을 느끼며,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악마적 매혹에 마음이 갈 때가 많습니다. 저는, 가치만으로 살아가는 숭고한 인생, 고결한 인생이길 겉으로는 원하지만, 속으로는 신의 영역, (가령, 영민한 지혜로움, 만인에게 사랑받음, 완벽함 따위) 을 훔쳐보고 싶은 욕망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면서, 평소보다는 많이 거칠게 써보자면, "나는 잘못이 없어, 날 좀 내버려둬, 당신들 다 닥치고 좀 꺼져줄래!"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조용히 보면서, 저는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게 아닐까, 생각에 잠길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본다면, 심리학적인 투사일 수도 있겠지요. 내가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으니까, 상대방에게 괜히 투사하는 마음일 수도 있겠지요. 우리의 세계는 이리저리 자주 부딪혀 나갑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좀처럼 생각하는 것을 회피하고, 싫어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세계가 어떻게 되든지, 나는 아무 상관도 없어." 이렇듯 사람이 아무런 의지 없이, 살아있음, 단지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게 아닌가, 무거운 의문이 들 때도 있습니다. 혹시라도 "왜 사는지도 모르겠다" 라고 말하면서,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이 만에 한 명이라도 있다면, 차라리 욕망에 솔직하게 사는게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예컨대 어떤 세계에서, 악마는 인간을 유혹하고 넘어뜨리기 위한 열정이 가득한데, 정작 인간은 정신은 온데간데 없이 희미하고, 껍데기만 멍하게 살아 있다면, 그것이 참 묘한 모순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제 제 나름의 결론을 정리해 봅니다.

 

 멍한 삶의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욕망과 좌절, 기쁨과 상처가, 함께 넘실대는 세계로 뛰어들어가는 것. 그 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매력적인 삶을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매순간도 신비로움이 될 수 있기를 시원한 봄바람을 음미해보며 바라봅니다.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