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영화 프로포즈 (The Proposal, 2009) 리뷰

시북(허지수) 2013. 3. 16. 18:29

 에, 뭐라고요? 산드라 블록이 1964년생이라고요? 나이를 거꾸로 먹는듯한 여배우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즐거운 로맨틱 코미디 영화, 프로포즈 입니다. 경쾌하면서도, 전통적인 클린 노선을 관통하는, 세심한 전개방법도 상당히 좋은, 한마디로 잘만든 영화입니다. 4천만달러로 만든 영화는, 전미 박스오피스 1위 등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약 3억달러가 넘는 흥행수입을 기록합니다. 산드라 블록과 거의 띠동갑벌 되는 76년생 훈남 라이언 레이놀즈의, 의외로 손발이 잘 맞는 연기가, 상당히 어울린다는게 또 하나의 매력.

 

 영화로 들어가보면 두 사람은 지금 미국 뉴욕입니다. 오랜기간 출판사에서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마가렛은 잘 나가는 유능한 편집장으로 엄청난 수완을 발휘해나가고 있고, 앤드류는 깔끔한 일처리로 마가렛을 잘 보좌해주는 비서로서 능력을 나름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여기까지야 뭐, 일상적인 풍경인데, 편집장 마가렛이 갑작스레 비자문제로 모국 캐나다로 추방당할 위기에 처하면서, 아주 곤란한 상황이 됩니다.

 

 

 저돌적이고, 성취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고 보는, 당돌한 마가렛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마지막 무리수를 둡니다. 앤드류 비서, 일단 나랑 결혼해줘! 일이 잘 풀리고 비자문제가 해결되면, 금방 이혼해줄께! 이리하여, 거의 협박에 가까운 위장 결혼 작전이 시작됩니다. 앤드류는 상사의 말을 거절했다가, 안그래도 월세 비싼 뉴욕에서 직장 짤리고, 갈 곳이 없어지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어쩌면 프라다를 입을 것 같은 악마 편집장과의 불편한 거래(!)에 동참하게 됩니다. 재밌게도 영화는 시작부터 힘의 관계가 반전되는 즐거움을 줍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이제까지 앤드류를 비서로서, 실컷 부려먹고,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마가렛이지만, 이제는 앤드류가 변심하면 모든게 물거품이 되므로, 앤드류의 말을 주의 깊게 들을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맙니다. 상황이 역전되자 마자, 앤드류 비서는 정말 귀엽게도, 감히(!) 상사 편집장에게, 뉴욕 한복판에서, 그녀의 무릎 꿇은 간곡한 청혼을 받게 됩니다. 과연 이 유쾌하고 위험한 위장결혼 프로젝트는 성공할 것인가?

 

 바로 확인을 위한 검증이 들어옵니다. 미국 역시도 비슷한 사례로 비자 세탁을 하는 경우가 워낙 많나봅니다. 매의 눈을 가진 수사관이 이 두 사람이 정말로 결혼할 사이인지, 심층 인터뷰에 들어갑니다. 입을 억지로 맞춰가다가, (시종일관 상당히 밝고 코믹합니다) 두 사람은 부득이하게 앤드류의 고향인 알래스카 여행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또 다시 놀라운 상황 설정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앤드류의 근사함이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알고보니 알래스카판 호화 재벌집 아들인 앤드류! 아버지의 강한 반대에도, 하고 싶은 일 해보겠다며, 뉴욕에 와서 생고생을 하는 모습은 상당히 신선합니다. 수천억의 자산가로 살 수 있음에도, 나는 내가 행복해지는 일을 하겠다는 그의 고집과 확실한 성격은 대단합니다. 하기야, 꿈을 좇기 위해서 알래스카에서 사귀던 여자친구와 이별까지 했던 과거를 생각한다면, 이 남자는 꿈과 열정에 미쳐있는 불타는 청춘쯤 되겠네요. 고생을 자처하는 앤드류는 꿈을 위해서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봤을 때, 그가 위험한 위장 결혼에 가담한 까닭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던 책을 출판하고, 오랜기간 꿈꾸는 일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것을 내던지는 남자는 외모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멋집니다. 이번 건만 잘 해결되면, 편집장님은 미국에 남을 것이고, 나는 반드시 이 책을 출판하고, 에디터가 되겠어요!

 

 솔직히 밑바탕이 계산적인 인간이라면, 유산을 상속받아서, 그 돈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근본부터 사고방식이 다릅니다. 아버지가 부자이지, 나는 나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라는 태도 입니다. 부모님께 의존하거나, 매달리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길을 걸어가는 남자. 일도 잘하고, 몸짱인 남자! 마가렛이 그를 알면 알수록 점점 빠져들어가는 신비한 매력이 확실히 있는 듯 합니다 :)

 

 한편 마가렛은 거의 동화 속 이상한 나라로 온 기분입니다. 휴대폰은 잘 터지지도 않고, 독수리가 날아다니고, 시원한 바다가 펼쳐져 있고, 가족 같은 공동체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혼자 지내는 것이 편한 그녀에게, 이 색다른 경험은, 잠자던 따뜻한 감성을 깨우게 됩니다. (감성이 실종된 것 같았던) 그녀 역시도, 심한 말을 들으면, 혼자 화장실에서 울고, 어린 시절에는 좋아하던 음악이 있었고, 사랑 받고 살던 그 잊혀진 기분을 다시 추억할 수 있으며, 게다가 심지어 음악메 맞춰서 때로는 신나게 거침없이 춤까지 추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임을 조금씩 보여줍니다.

 

 여기까지 본다면, 그녀가 차갑게 워커 홀릭 처럼 사는 것은 도시화된 빠른 시스템에 적응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는 말이 있는데, 바쁜 생활에 익숙해지면, 자신을 차분히 돌아볼 여유를 가지기가 어렵겠지요. 말하자면, 그녀는 알래스카에서 하나의 세계를 발견한 것이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요.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사회적인 성공만으로는, 결코 인간의 마음이 풍족하게 채워지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세련되게 전달하는 느낌도 주기에, 여러가지로 신선했습니다. 간단히 정리해, 이 쪽 세계의 사람들은 마음이 부자인 여유로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영화 프로포즈는, 감성의 회복측면에서도 충분히 즐거운 영화 입니다. 느리게 살아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던 사무실의 전화와 달리, 알래스카에서는 전화보다는 같이 옷을 맞추거나, 함께 공연을 본다거나, 이렇게 동행하는 일들을 더욱 중요하게 여깁니다. 따뜻한 사람들이 너무나 자신을 잘 챙겨주자, 마가렛은 삶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성공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보다는, 솔직하게 살면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더 올바른 선택임을 받아들인 셈이지요.

 

 두 사람의 결혼식 장면에서, 엄청난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위장된 가짜 결혼이라고) 진실을 말하는 마가렛의 모습은 충분히 불편하면서도, 묘한 감동을 줍니다. 인간은 곤란한 상황에서 정직하게 말해버리면, 불편을 느낄 때가 많아서, 우리는 하얀 거짓말이라도 써가면서,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위가 올라간다고 해서, 돈이 많아진다고 해서, 거짓의 유혹이 사라지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정직보다는 적당히 덮어가면서 넘어가는 일이 점점 늘어갈수록, 정확하게 마음이 병들어가며, 나중에는 점점 무감각하게 변해갑니다. 얼굴에 철판피부를 쓴 것 같은 뻔뻔한 사람으로 성숙(?)되면, 거짓말을 당연시 여기기도 합니다.

 

 어쨌든 마가렛은 행복한 사람들 앞에서, 거짓된 가면을 쓰고 서 있고 싶지 않아서, 정직을 이야기 하고, 그 곳을 떠납니다. 사회적 성공을 포기하고, 비서를 이용하려던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며, 나 없이도 조직은 여전히 잘 돌아갈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이제 회사에서도 짐을 쌉니다. 영화는 마지막까지도 쉬운 선택 대신에, 이 불편함들을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뭐, 로맨틱 코미디가 너무 비극으로 끝나는 것도 이상하겠지요. 이제 비서 앤드류는 마가렛의 용기에 진짜 마음을 빼앗긴게 아닐까요. 이렇게 맑은 정직함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도 흔치 않을테니까요.

 

 앤드류의 어머니와 할머니도, 그래서 마가렛을 끝까지 잡아야 된다고 한없이 응원합니다. 가슴 뭉클한 재회에다가, 상사고 뭐고 냅다 입술박치기를 선보이는 앤드류의 마지막 모습이, 너무 상쾌해서, 정말 좋았습니다. 정직하기. 결국 이것에서 출발한다는 것.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정직은 당당한 인생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서, 이 당당함을 바탕으로 솔직하게 의견을 밀어붙이는 마가렛의 모습이 참 재치 있지요. 삶을 더 즐겁고 당당하게 사는 비결이 있다면, 어쩌면, 진부하지만 "정직"이 가슴 속에 자리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불편한 진실이, 위선의 껍데기를 결국 이긴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할 수 있는데까지 정직에 프로포즈 하는 인생이 되고 싶습니다 :) 뛰어난 두 배우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유쾌한 영화 프로포즈 였습니다.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