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박수건달 (2012) 리뷰

시북(허지수) 2013. 3. 19. 14:05

 사람마다 좋아하는 취향이 있고, 장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커피로 예를 들자면, 저는 너무 달달한 커피 보다는 아메리카노 같은 깔끔함을 좋아합니다. 굳이 예를 들 필요도 없는 것 같지만 여하튼, 복잡하고 머리 아픈 영화 보다는, 시원스럽고 화끈한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취향의 문제에서 저 역시 취약점이 있습니다. 일단 공포 장르에 상당히 약하고, 한편으로는 판타지 장르를 좋아하면서도, 너무 미신적인 이야기는 선호하지 않는 편입니다. 네, 솔직히 말하자면, 박수건달은 제 가치관에서는 보기 불편한 영화입니다. 하하.

 

 그럼에도 박신양과, 아역 윤송이가 연기를 정말 잘했고, 코미디 장르로 본다면, 웃을 수 있는 요소가 상당히 있어서 일단 즐겁게 볼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과연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 라는 당황스러움 입니다. 하하. 예컨대, 삶과 죽음에 대하여 에피쿠로스는 대놓고 삶을 예찬하며, 죽음에 대해서 걱정하지 말라고 단언하기도 합니다. 걱정하지 말고 살아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서 즐겨라, 죽으면 어차피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니... 또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 선생님 같은 경우는, 오늘을 살라는 취지의 카르페디엠을 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다면 꼬마아이 수민의 입장에서 조금 써보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수민양은 확실히 불운한 짧은 인생이었습니다. 노란 옷을 무진장 좋아하고, 액션 스타처럼 즐거운 인생을 살고 싶었는데, 교통사고를 당해서 일찍 삶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라는 말은 분명 맞는 말이지만, 수민의 사고로 인해서, 정작 엄마 미숙은 지금의 삶을 행복하게 살기 어려워졌습니다. 딸아이를 보낼 수 없어서, 마지막 희망 한 줄기를 바라보면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게 정확할 테지요. 정작 수민 역시도 그런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그렇다면, 수민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요? "이제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즐겁게 남은 삶을 살아줘, 그래서 나중에 훗날 다시 만나자." 였습니다. 자신 때문에, 누군가의 인생이 망가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수민의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이야 말로 영화의 감동적인 대목입니다. 그러고 보니, 왜 제가 호러 공포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귀신들은 대부분 사람을 괴롭히는 역할로 나올 때가 많아서 입니다. 어릴 때, 그 전설의 고향은 얼마나 무섭던지... 어휴.

 

 신내림 받아서, 각종 사연 많은 귀신들에게 계속해서 시달리는 주인공 광호는 그렇게 볼 때, 지금 큰일 났습니다. 때때로 귀신들이 광호를 도와주기도 한다지만, 계속해서 도와달라는 이 녀석들, 이를 우짭니까!!! 신내림은 받지 않아도, 병으로 죽는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고, 신내림을 받아도, 피곤하게 살아야 한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고.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가치관을 가진 저로서는 광호가 불쌍하게 보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제일 좋았던 장면은, 광호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탓하면서, 옷과 무당도구를 냅다 불구덩이로 던져넣는 장면! 뭐, 그런다고 해도 운명은 바뀌지 않았지만요 (...)

 

 점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기 있는 테마 입니다. 토정비결과 사주팔자, 궁합, 신수 등등 을 비롯해서, 점집은 여전히 성업중이고, 타롯카드 같은 흥미로운 세계에 저도 한 때 관심을 가지고, 각종 카드가 주는 의미를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점은 하나의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 입니다. 근본적으로는 저도 동의합니다만, 제 경우 이 말을 약간 다르게 해석합니다.

 

 인간의 미래는, 지금 하는 행동들을 토대로 결정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매일 책을 읽는 사람의 미래와 매일 술을 마시는 사람의 미래는 어느 정도 예측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로또 번호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사고방식은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현실에 충실한 만큼, 미래도 움직여 간다고 확신합니다.

 

 건달 세계의 보스가 갑작스럽게 쓰러져 죽는 것도, 영화에서 잘 보여주듯이, 스스로 자처한 측면이 있습니다. 미인 의사가 제발 좀 사우나 하지 말라고 권하지만, 평생의 습관이라고 고집하다가, 게다가 자신의 질긴 생명력을 과신한 나머지, 결국 한 방에 훅 가는 셈입니다. 이 경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한 책임도 상당부분 있는게 아닐까요? 지나친 자기확신이야말로, 경계대상 1호 입니다 :) 자신의 인생을 좀 더 소중하게 다루지 못했던 보스는, 광호에게 죽도록 용써봤자 옷 한 벌이라고 말해줍니다. 유명한 노래가사도 있지요. 알몸으로 태어나 옷 한벌은 건지고 간다고.

 

 생각해 본다면,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꿈입니다. 알몸으로 태어나서, 저절로 그렇게 잘 살게 되는 경우는 별로 없는 듯 합니다. 간혹 행운의 경우도 있긴 합니다. 예를 몇가지 봅시다. 엄청난 부자집 자식으로 태어나거나,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거나, 비상한 영리함을 자랑한다거나, 특별한 운을 가진 사람도 있긴 합니다. 우스갯 소리지만, 고스톱의 절대진리, 운칠기삼 이라는 말도 일정 부분 맞는 말입니다. 여하튼, 운좋은 럭키 라이프를 누리는 사람도 있기야 있겠지요. 사람 자체가 워낙 많으니까요.

 

 기억나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가장 사주가 좋다는 열 사람의 인생을 추적해 보니, 어떤 사람은 팔자대로(?) 사업에 성공하며 운 좋게 살고 있고, 어떤 사람은 이상하게(?)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두고, 혹자는 역시 운명은 정해진 게 아니다 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혹자는 누군가는 좋은 운을 걷어찼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자, 그렇다면 행운 대신 행복이라는 이런 독특한 해석은 어떨까요. 각각의 사람의 인생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조금씩 움직여 왔을테고, 어쩌면 반전으로,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소박한 즐거움과 함께 살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운이니, 재수니, 이런 건 사실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흔하디 흔한 "세잎클로버의 꽃말이 행복"입니다. 저라면 행운 대신에, 널려 있는 행복을 좇는 사람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고스톱은 운이 없으면 다 잃을지 모르지만, 인생은 "네잎클로버 같은 진기한 행운이 없어도", 소소한 일상에서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수민의 말처럼 "이제부터 인생을 즐겁게 사는 것" 입니다. 지나간 일로 괴로워 하고, 자책 하고, 마음을 무너뜨리기 보다는, 이제 과거를 털고,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오늘을 열심히 사는 사람들. 이들이야말로 행복의 주인공이 될테니까요.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