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청동기, 철기 - 계급사회의 출현 및 고조선과 중국교류

시북(허지수) 2013. 3. 20. 15:04

 성장과 분배는 같이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좋은 역사적 배경으로는 청동기가 있겠지요. 청동기는 보다 높은 기술이 필요한 벼농사를 통해서, 생산력이 증가하고, 마침내 잉여생산물까지 등장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파이가 커진 셈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파이는 커졌어도, 모두가 부자가 된 것이 전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하고, 그 파이의 몫은 소수의 사람들이 독점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장이 아무리 지속되고, 발전이 계속 된다고 하더라도, 분배에 대한 강력한 의지 없이는, 결국 일부만 행복할 뿐이다 라는 사실. 청동기 시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재밌는 교훈이지요.

 

 그럼 BC20~15세기 정도로 추정되는 청동기 시대의 청동은 많았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청동은 쉽게 말하면 레어템이고, 득템 정도의 수준이라서, 실제 청동을 이용한 것은 무기, 거울, 화살촉 등을 우선 만들었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비파형 동검 등) 수천년 전의 사람이나, 우리나 거의 똑같지요. 다이아몬드 같은 고강도 보석이 있다면, 우리 역시도 거울이나 목걸이 처럼, 아름다움이나 권력을 숭상하는 것을 만들거나, 강력한 무기의 재료 혹은 초고부가가치의 생산품을 만들 것입니다. 다이아몬드로 스마트폰커버를 만들면 미쳤다 소리를 듣는 것처럼, 당시 귀한 청동으로 농사용품을 만들었다가는 미친놈 소리 들었겠지요. (게다가 청동은 잘 깨질 위험도 있습니다) 따라서, 농사 때에는 반달 돌칼 같은, 여전히 석기들이 이용됩니다.

 

 기술은 그러합니다. 한 번 첨단적인 것이 등장했다고 해도, 상당 기간 혼재하는 형태를 띄게 됩니다. 청동기 시대에도 농업용 반달 돌칼이 있고, 철기 시대에도 여전히 세형 동검과 잔무늬 거울 등의 청동 도구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의 어린시절에는 마이마이 같은 휴대용 음악플레이어 들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미친듯한 놀라움을 주었지요. 들고 다니면서 원하는 음악을 듣다니 그게 말이 돼? 커다란 레코드판이 음악을 들려주던 시절과 그 휴대용 기기의 시절은 그렇게 순식간에 지나갔고, 이제는 히트곡은 얼마든지 수백, 수천만명이 불과 몇초면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혼재라는 개념이 어렵다면, 몇년전까지 주변에 있던 비디오 대여점을 생각해 보세요. VCR비디오와 DVD가 같이 있는 그 느낌이 바로 혼재 입니다. 더 쉽게는 스마트폰 시대에도 여전히 폴더 폰은 사용된다 라는 것과 같지요. (물론, 통신사들이 기본요금은 거의 안 내린데다가, 각종 첨단기술로 유혹하며 값비싼 요금을 덮어씌우지만 않았어도, 즉, 스마트폰의 요금제들이 다양하고 저렴했더라면, 2G폰들은 벌써 사라졌을테지만요. 전기세, 전화세는 그나마 사용한 만큼 나오는데, 스마트폰을 쥐는 순간 거의 안 써도 만원짜리 두세개는 그냥 나갑니다. 주변에는 매달 4~6만원씩 기본요금으로 내는 사람들도 많고요.)

 

 한편 토기들도 미송리식 토기, 민무늬 토기 등이 등장합니다. 미송리식 토기는 양쪽에 손잡이가 있어서 들기 편한게 인상적입니다. 집도 이제 반지하에서 벗어나, 땅을 조금만 파서, 거의 현대의 집처럼, 지상 가옥을 짓고, 네모난 형태로 집을 짓습니다. 문제는 계급 사회의 출현과 선민 사상의 등장 이지요. 청동기 시대부터 벼농사를 통해서 농업이 발달하고, 남는 걸 저장할 수 있게 되자, 일부 힘센 사람들은 남의 것을 뺏는 것만으로도 생활할 수 있게 됩니다. 신분(혹은 계급)의 구별이 시작됩니다. 나는 제사와 정치를 주도하는 지도자고, 너는 농사를 지어야 하는 사람이고, 너는 ㅇㅇ을 해야 하고... (중략) 왜냐? 그렇게 하늘이 선택한거야. (생각할수록, 참, 끔찍하네요)

 

 여하튼, 남의 것을 무턱대고 계속해서 뺏어서 꿀꺽할려니까, 뻘쭘했던지, 인간은 무슨 이유를 갖다 붙여야 했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소, 우리는 특별해." 등등 각종 합리화 할만한 이유를 갖다 붙여서, 남의 것들을 빼앗아 옵니다. 그러다보니, 힘센 부족은 점점 커져서, 덩치가 엄청나게 커졌고, 대장이 있고, 가신이 있고, 똘마니가 있고, 거의 조직이 되었습니다. 약한 집단은 그들에게 복종을 맹세하며 피지배층이 되어서, 무엇인가를 꾸준히 지속적으로 갖다바쳐야 했습니다. 더 문제는 이 구조를 밑에서부터 바꾸거나 흔들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고조선의 8조법을 통해서 볼 수 있을텐데, 배고프면 열심히 농사해서 먹을 것을 만드는게 최선이지, 괜히 도둑질이라고 했다가 걸리면, 빚을 엄격히 갚던가 평생 노예로 살아야 합니다.

 

 이런 비유를 하면 좀 지나칠까요? 10만원 벌다가, 거의 10만원치 살 수 있었던 석기 시대의 소박한(!) 사람들과 달리, 이제는 기술의 발달로 무려 50만원이나 벌게 되었지만, 그들은 11만원치 밖에 살 수 없습니다. 각종 가혹한 수탈에, 그들의 삶은 여전히 노곤해서,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할 뿐입니다. 전체로 보면, 파이는 더 커지고 풍요로워 졌지만, 인간의 탐욕은 이제부터 끝없는 전쟁과, 뺏고 빼앗김의 시대를 맞이합니다. 마침내 한국에도 나라도 등장합니다. BC 2333. (고)조선의 등장입니다. 고조선은 상당한 세력이라, 기원전 3세기 춘추전국시대의 중국 연나라와 대립할 만큼의 국력이었다고 합니다.

 

  참, 이제 철기 시대로 넘어가서, 여기서 몇 가지 포인트나 키워드라고 한다면, 한국 스타일의 세형 동과 잔무늬 거울이 발견된다는 점입니다. 잘 드는 검과 정교한 거울을 만들 정도로, 청동을 다루는 기술이 한결 업그레이드 되었다고 보면 간단하겠지요. 철기 시대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중국과의 교류 입니다. 칼 모양의 중국 화폐인 명도전, 그리고 오수전, 반량전 등의 중국 화폐가 유적지에서 발견되었고, 붓도 발견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고조선 거의 말기(위만조선)쯤 오면, 우리나라를 통으로 삼키고 싶었던 한나라의 위세에 끝내 고조선이 BC 108. 항복(멸망)하게 되는 비극도 있습니다. (물론 얼마 가지 않아서 고구려도 등장하고, 중국 한나라의 식민지배는 금방 막을 내립니다)

 

 한가지 재밌는 것은 한국사는 아무래도 중국사와 떼놓고 볼 수 없는 관계인데, 중국이 힘을 합치고 잘 나갈 때는, 한국이 위기를 맞이하게 되고, 반대로 중국이 분열되거나 비틀거릴 때는, 한국은 기회를 맞이해서 좋은 시절을 보낸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제 통일된지 얼마 안 된 강력한 한나라 라는 거대국가가 바로 옆에 있다보니, 고조선 나름대로는 버티기가 어려웠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법칙은 거의 정설처럼 반복되는데, 따라서 만약 중국이 세계 1-2위급의 슈퍼대국이나 군사대국으로 올라서면, 우리나라는 더욱 긴장하고 잘 해나가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국제사회는 아무래도 돈과 군사력 같은 파워게임이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는 다른 대목으로는, 한서에 나와 있는 고조선의 8조법입니다.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 남을 다치게 한 자는 곡식으로 갚는다.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종으로 삼으며, 만약 용서를 받으려면 돈을 내야 한다." 이런 법조문으로 대표되는 내용입니다. 8조법은 몇 개 남아 있지 않습니다만, 여하튼,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이 가능합니다.

 

 긍정적인 해석으로는, 생명을 중시하고, 노동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 인구수는 아주 중요한 국가의 기반이기도 합니다. (물론 지금도 상당부분 마찬가지입니다) 갈등론적으로 좀 더 거칠게 해석하는 사람이라면, 법을 만드는 것은 당연히 기득권 세력이므로, 사유 재산을 훔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보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가진 자의 물건을 조금이라도 손댔다가는, 평생 노예 신분으로서 살던지, 반드시 보상을 해야 합니다. - 끝-  뭐, 대충 이정도로 정리를 옮겨놓고, 여담을 좀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계급사회에서 엄격한 법이 가져다주는) 장점은 사회가 체제를 유지하며 안정적일 수 있었고, 단점은 기득권이 거의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단군왕검이 누군가를 죽인다고 해서 사형 당했을까요? 그럴리가 없습니다. 누군가가 집단이나 사회를 위협할 때, 기득권은 그 누군가를 법대로 처리할 기반을 갖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국가가 사형권은 함부로 가져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너무 많은 권한을 독점하면 위험할 수 있는 셈이랄까요.

 

 어쨌든 고조선의 멸망은, 중국 한나라의 공격과 고조선 지배층의 분열로 막을 내렸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어떻게 보자면, 나라가 망해가도, 백성들은 나라를 지키고자 일어서지 않았다는 셈입니다. 계급이 고착화 되어 있으면, 싸워봐야, 왕은 왕이고, 귀족은 귀족이고, 백성은 백성이라는 비극이 영원할테니까요. 계층이 분열되고 고정되면,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부터 잃게될 위험성도 충분히 있는 셈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당시 중국의 맹자 같은 사람이 갖고 있던 역성혁명적 발상은 놀라웠지요. 왕이 쓰레기라면, 그런 필부 따위는 갈아치우고, 진짜 지도자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 이 덕분에(?) 맹자의 이야기는 사실 왕들에게도 별로 인기가 없었습니다) 오늘날은 선거제도를 통해서, 얼마든지 정치가 잘못된 경우, 국민의 선택에 의해서 정권이 교체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좋아진 것이 불과 몇십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투표해서 지도자를 선택하는 시스템은, 인간의 수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얻어진, 훌륭한 방법이 되었지요. 투표는 살아가면서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행동 중 하나입니다!

 

 독재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누군가가 계속해서 잘 살고, 누군가가 계속해서 못 사는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비교적 살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모여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 미국에서 특히 선거나, 법제도가 발달하고, 책임과 법에 대해서 확실한 이유도 비슷하겠지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일당독재는 피하자는 것이 이른바 미국식 자유의 장점일 것입니다. 후진국 일수록, 특정 집단의 독식이 계속됩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빈부격차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서서히 사라진다면, 차라리 감옥에라도 가겠다면서 범죄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면, 그런 가운데서 옆의 강대국들이 개입해서 각종 압박을 넣고, 사람들이 이것에 대해서 무관심한다면, 그 때부터 국가가 수직으로 몰락하는 것은 불과 1세기도 걸리지 않는 셈입니다.

 

 눈에 보이는 독재는 사라졌더라도, 현대에 와서 지배집단은 아주 영리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시민단체에 대해서는 거액을 지원해주는 형태로 밀어주고, 자신의 반대파에 대해서는 모조리 예산을 삭감해서, 경제적인 궁핍을 선물(?)해 줍니다. 미국도 다양한 예가 있습니다. 알츠하이머 병 (치매) 에 대해서, 혹시 광우병이지 않을까 염려한 축산단체는 (뇌를 열어보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아) 알츠하이머 병을 암암리에 후원합니다. 이런 식으로,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뒤에서 얼마나 많은 로비가 오고 가는지 모릅니다. 독점을 유지하기 위한 밀어주기만 잘 간파해서, 최대한 공정히 처리해도 세상은 좀 더 살기가 좋아지는데, 이게 생각만큼 잘 풀리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공정이라는 말은 생각보다 매우 어렵게 실현되는 듯 합니다.

 

 한 번 시작된 계급사회는 철폐되기까지 매우 오랜 세월이 걸렸고, 실제로는 아직도 우리는 많은 차별이 존재합니다. 많은 나라에서는 여전히 인종문제가 골칫거리이고, 마케팅이 거의 극에 달한 요즘은 무엇을 입고,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의 문제로 수많은 차별이 진행 중입니다. 사학을 전공한 지인은 오래전에, 왜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하늘과 해,달은 숭배되고, 높이 있는 것을 좋아했을까, 라고 독백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변함 없습니다. 여전히 "스타"라는 말과 "업"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느낌이 거의 없습니다. 밤하늘의 먼지가 되기보다는 스타가 되기를 원하고, 더 낮은 곳을 바라보기 보다는 더 높은 곳을 쳐다보며 열망하는 사람의 속성이란, 과연 타고난 것인지, 환경의 영향인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일부가 아닌, 모두가 행복한 사회는, 어떻게 하면 한 발짝이라도 가까이 갈 수 있는지, 그 답을 오래도록 고민해보고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꿈을 생각해봐도 그렇겠지만) 순진한 생각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다는 것과 잘못된 방법을 통해서는 절대 이룰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겠지요.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