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 (My Dear Desperado, 2010) 리뷰

시북(허지수) 2013. 3. 26. 14:01

 마지막 1분까지도 사랑스러운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 입니다. 전혀 닮은 데가 없는 두 사람이 펼치는 달콤씁쓸한 로맨틱코미디 인데, 이 정도로 할 말 확실히 하는 영화도 드물지요. 대놓고 정부를 비판하며, 취업준비생을 응원하며, 착한 사람들만 고생하고 있다며, 진짜 나쁜 놈들이 누구인가 묻고 있습니다. 깡패보다 더 나쁜 권력자들의 불편한 모습까지 모두 다 보여주는 오늘 이 영화 속으로 출발해 봅니다. 정말 깡패 같은 박중훈의 연기도 굉장했습니다. 꿈을 향해 달리는 정유미는 사랑스럽고요. 아, 그러고보니 영화의 동철과 세진은 공통점이 있네요.

 

 최고가 되지 못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일단 동철은 건달 치고는, 최고가 아닙니다. 조직의 형님을 대신해 감옥에 갔다왔을 정도로, 의리와 충성은 끝내주지만, 정작 입에 풀칠하기 힘든 건달입니다. 게다가 싸움도 못해서 얻어맞고 다니는 모습은 어쩐지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세진은 나름대로 고스펙이지만, 어디까지나 "나름" 고스펙이라는 점이 문제입니다. 초고스펙이 아니면, 외면받는 취업시장에서, 찬밥신세 당하기 일쑤고, 심지어 면접관에게 놀림까지 받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강자는 그토록 좋아하고 우대하면서, 약한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놀리는 사회의 쓰디 쓴 모습을 그냥 비춰주는게 참 일품이지요.

 

 

 영화는 꿈에 부푼 세진의 서울 입성과 함께 출발합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회사는 부도가 났고, 세진은 차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적당히 집에 둘러대면서, 재취업을 준비합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세진은 먹고 살기가 정말 쉽지가 않네요. 급기야 알바까지 뛰어보지만, 뭐하나 제대로 밥챙겨먹기에도 버겁습니다. 반지하 옆집에는 깡패가 살고 있고, 지금까지는 참 서러운 인생입니다. 이럴꺼면 왜 그리 열심히 공부했나 싶을 정도로 말이에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동철도 먹고 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 입니다. 집에 우산도 없고, 유희꺼리도 없고, 마땅히 할 일조차 없어서, 형님이 시키는 전단지 붙이기나 하고 있는 조직의 중간보스 입니다. 옆방여자 세진에게 라면 한 끼 사줄 돈도 아까워서, 밥값도 꼭 정산해서 돌려 받는 동철은 한 마디로 "생활력 질긴 깡패"입니다. 하하. 아가씨도 돈 없겠지만, 나도 돈 없거든? 2,500원은 따로 따로 내야지! 쿨합니다.

 

 두 사람은 지금 사회의 마이너리티 라는 공통점 외에도, 또 한 가지 공유하는 코드가 있습니다. "아 정말 먹고 살기 힘들구만" 입니다. 나름대로 필사적으로 활동하고, 움직여 보지만, 돈 나올 구석은 참 드물고, 한 쪽은 사회에서 거절의 답변만 받고 있으며, 나머지 한 쪽은 사회의 메인으로 진출할 기회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심심할 때 교육방송을 틀어놓고 있는 동철은 어린 시절을 후회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 때 좀 열심히 할껄..."

 

 어느 날, 갑자기 옆방여자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자, 동철은 올 것이 왔구나 싶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아 정말 큰일났구나 싶었습니다. 해도 해도 안 되니까, 결국 수면제 등의 약을 먹고 자포자기 했구나 싶어서 매우 염려되었습니다. 알고보니, 영양제만 먹다가 영양실조로 쓰러졌다는 것을 듣고 나니, 저는 더 슬퍼졌습니다. 일종의 주객전도가 되었다고 할까요. 식사를 제대로 하고, 보충적인 의미로 영양제를 먹어야 정상인데, 그 반대로 하다가 세진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거꾸로 가는 모습은 계속 진행되어 나갑니다.

 

 회사에 취업해서, 열심히 일을 하고, 또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고, 좋은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행복한 삶을 누려가는 것이 정상이겠지요. (물론 현실적으로는 복권당첨만큼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만) 여하튼, 세진이 만난 사회는 어딘지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노골적 성접대를 대가로 취업 자리를 알선해 주고, 이력서가 부족하다고 거들떠 보지도 않으며, 약한 자들에게 기회를 빼앗아가면서도 한편으로는 니가 있을 곳은 여기라며 영악하게 떠들어대는 모습이 세진이 만난 현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진 대신에 거침없이 로우킥을 날려대는 깡패 동철의 모습은 충분히 시원스러움을 줍니다. 입이 썩은 듯한 막장 고교생을 쥐어박는 장면도 속시원한 대목입니다. 이게 정말 무서운 일인데, 깡패보다 더 나쁘고 사악한 인간들이 많다는게 너무 적나라한 현실이지요.

 

 자신의 힘을 자랑하며, 권력을 맘껏 이용해서, 상대방을 노리개로 보고 있는 이 인간쓰레기는 누구입니까? 담배를 팔지 않는다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누님을 상대로 막말을 쏟아내는 이 인간쓰레기는 누구입니까? 심지어 누군가를 에이스로 만들어 준다고 적당히 둘러대면서, 자신의 생존만들 생각하는 이 인간쓰레기는 누구입니까? 담배불 하나 빌려주지 못하고, 쓸데없이 시비부터 걸고 보는 이 인간쓰레기는 누구입니까?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까.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나부터만 잘되면 그만이지, 라는 치졸한 생각을 가진 인간들이 이토록 많다는게 더욱 먹먹하게 만듭니다. 회사에도, 학교에도, 거리에도, 조직에도, 어디에도 널려 있는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 자신이 잘난 줄 착각하고 사는 짐승들 앞에서, 동철과 세진의 삶은 끝까지 비만 철퍽철퍽 맞고 있는 셈입니다. 세진이 고생 끝에 드디어 취업 직전의 기회를 잡았을 때, 그녀가 하는 말은 우리를 눈물짓게 만듭니다. "지금까진... 이런걸 물어보지 않았어요..." 이 사회는 그녀에게 도대체 무엇을 물어보고 있었단 말입니까?

 

 그녀가 힘들 때, 옆에 있으려고 했던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직 옆방깡패 동철만, 그녀를 계속 응원하며, 지옥 같은 세상일지라도, 기죽지 말고, 당당히 살라고 말해줍니다. 자, 이제 우리가 들어야 하는 말은 무엇일까요. "니가 하는 게 뭐 그렇지", "넌 안 될 인간이야.", "당장 집어치워" 라는 사람들의 말입니까. 아니면, "정신차리고, 한 번만 더 똑바로 부딪혀봐" 라고 말하는 깡패 같은 애인의 말입니까. 혹독하더라도, 우리는 현실을 바라보고, 계속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너 같은게 무엇을 할 수 있겠어 라는 거짓말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남들이 정해주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 태어났습니까? 단언컨대, 그런 인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마지막이 참 좋았던 것은, 이른바 "동철의 깨끗한 각성" 때문입니다. 형님을 위해서 살아서 무엇을 얻었나요? 형님이 나에게 잘해주길 목이 빠져라 기다려서 무엇을 얻었나요?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의존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모순일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항상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스스로 상태를 유지해 나갈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기생하면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만약 아무 문제 의식 없이, 누군가의 등골브레이커를 하고 있다면, 부끄러운 일 아닐까요. 반칙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선택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당당한 삶이야말로, 우리가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가치로운 삶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태어난 것이 잘못인 "실패로 규정된 인생"이란 결코 없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순간에서도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선택의 순간들 앞에서, 자신에게 정직한 길을 걸어갈 때, 가장 나답게 살 수 있는게 아닐까요. 영화는 맑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가끔 우리의 선택은 가혹하리만큼 계속 먹구름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데까지 해보기, 될 때까지 해보기, 10연패에 기죽지 않기를 바랍니다. 힘든 순간들 끝에, 좋은 날도 오기 마련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