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머신건 프리처 (Machinegun Preacher, 2011) 리뷰

시북(허지수) 2013. 3. 27. 10:33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상당히 충격적인 영화, 머신건 프리처 입니다. 독일인 감독이 만든 영화는 흥행부터 충격적인데 3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하고도, 흥행수입 1백만 달러 조금 넘게 벌었다고 합니다. 단위를 쉽게 이해하자면, 3천원 가지고 백원이랑 바꾼 셈이지요. 비록 흥행에는 참패했다지만, 저는 한 번 꼭 보라는 추천을 받아서, 이 영화를 최근 보게 되었는데요. 어떻게 리뷰를 써야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나의 영화 안에 상당히 많은 것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시나리오를 따라서 살펴보자면, 초반에는 샘 칠더스가 방탕한 삶을 버리고, 세례를 받는 계기로 완전히 다른 삶을 추구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총을 좋아하고, 술을 가까이 하며, 즐겁고 신나게 살다가, 과거와 단절하면서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샘. 행복한 인생이 이제 펼쳐져야 할 터인데, 이른바 "신의 부름"은 상당히 거칠게 느껴졌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평화롭고 조용한 지역도 충분히 많이 있을테고, 당장 미국에서도 할 일이 많을텐데, 샘은 무엇인가에 이끌리듯이 아프리카 수단으로 날아갑니다. 그리고, 이곳은 "살아있는 지옥"이었지요.

 

 

 그동안 좋은 일은 하지 않았다는 샘은 이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한것처럼 보입니다. 지금까지 익혀온 건축노하우를 살려서, 수단에다가 아이들의 보금자리를 짓고,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샘의 새로운 꿈입니다. 여기까지는 군더더기 없을만큼, 내용이 깨끗하고, 한 사람의 회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음을 묘사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얼마나 냉혹한지, 영화는 서서히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수단 내전의 한복판으로 들어가서, 고집을 내며, 이 곳에다가 공동체를 건설하겠다는 샘의 의지는 강력합니다. 안전한 수단 남부에서 그가 시작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며, 누군가가 하고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샘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내전 지역의 아이들이었지요. 사람들이 외면한, 심지어 신도 외면한듯한 아이들을 위해서, 샘은 공동체를 짓습니다. 그리고 얼마가지도 못해, 이 공동체는 악명높은 LRA 조직에 의해서 깡그리 박살나며, 화염에 휩싸입니다. 것참 좋은 일 한 번 제대로 해보기도 힘들지요. 선의는 자주 이해받지 못하고, 그의 싸움은 고독해 보입니다.

 

 꿈꾸던 일을 열심히 해오다가,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물거품 될 때, 사람은 추락하는 절망감을 이기기 힘듭니다. 제 아무리 강인한 샘이라도 별 수 없었지요. 다행히 독실한 아내의 격려에 힘입어서, 샘은 제2라운드를 시작합니다. LRA 너희들이 그런식으로 쳐들어 온다면, 우리도 지킬 것은 확실히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불태웁니다. 이제 외부에 철조망을 두르고, 군인들의 보호를 받으며, 한층 더 견고한 요새를 완성합니다. 분쟁지역에 있는 이 공동체는 어느새 유명세를 탔고, "하얀 목사" 이야기는 조금씩 전설이 되어갑니다. 천사가 지켜주고 있어서 총알도 피해간다는 샘은 수단의 유명인이 되었고, 목에 현상금까지 걸리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샘이 머신건을 들 생각을 한 것은 아닙니다. 권력에 저항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마틴 루서 킹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스런 경험을 통해 자유는 결코 억압하는 자가 자발적으로 선사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자유는 억압 받는 자가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이말은 현실을 엄격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다고 해서 자유가 주어질까요? 샘은 알고 있었을 겁니다. 내가 외면하고, 무시하고, 애써 모른척 하고 있는다면, 이 아이들에게 자유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고, 이들은 계속해서 학살당하고, 괴로움을 맛보아야 함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는 아이들의 자유를 위해서, 머신건을 집어듭니다. 저기 저 아이가 죽어간다면, 총을 써서라도 구해오겠다는 그의 모습은 필사적입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샘은 딜레마에 계속 부딪히게 됩니다. 그가 스스로 독백했던 이야기 "혹시 내가 여길 등지고 떠나게 될까봐 두렵다" 라는 말은 차츰 현실로 다가오게 됩니다. 아무리 그렇게 발버둥 쳐봐도, 현실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여전히 수단 아이들은 죽어가고 있으며, 자신이 가진 것은 하나 둘 바닥나고 있으니까요. 샘은 그동안 모아왔던 것을 하나 둘 팔아가면서까지 수단에 놀이터를 짓고, 트럭을 구하고 해보지만, 서서히 한계를 맞이합니다. 가령 LRA는 끝없는 약탈을 통해서 동력을 모아간다면, 합법적으로 일을 해야하는 샘은 참으로 불리한 싸움을 해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샘이 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해봐야, LRA의 보급로를 공격하는 행동이 그나마 차선 정도라 할 수 있습니다.

 

 현실은 나아지지 않고, 게다가 소중한 가정까지도 제대로 돌볼 수 없게 되자, 샘은 신의 존재에 거칠게 의문을 표하며, 술에 손대기도 합니다. 참 사실적이지요. 사람은 완벽하거나 멋진 모습만으로 살아가기 힘듭니다. 설명하기 어렵고 복잡한 감정들이 얽혀 있어서, 행동 동기를 하나로 단순화 시켜서 이해한다면 곤란하지 않을까요. 아프리카 여자들이랑 자려고 그렇게 흑인들을 돕느냐는 취객의 말에, 샘은 바로 주먹부터 날려줍니다. 샘은 언제나 이렇습니다. 말로서, 생각으로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그가 볼 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행동이어야 합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에요 라고 폼잡지 말고, 당장 후원금이라도 좀 내달라는 것이지요. 다르게 표현하자면, 신실한 종교인, 혹은 착한 사람이라고 자랑하기 앞서서, 주변 사람들을 지원하고 있는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니체의 경고처럼, 악마와 싸우다가, 조금씩 악마화 되어가는 샘을 보고 있으면 상당히 마음 아픕니다. 총을 든 시점에서부터, 그는 영웅이 되어보고 싶은, 이 지옥 같은 세계를 변혁시키고 구원자가 되고 싶었던 마음이 누구보다 컸지 않았을까요. 샘은 그렇게 공격적으로 변해갑니다. 결말이 아마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면, 정말 충격적인 영화가 되었을 겁니다. (LRA와 싸우다가 또 하나의 LRA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끔찍한 결말이니까요.)

 

 한 아이가 속삭이듯 말합니다. 증오로 마음이 가득차게 놔두지 말아야 해요. 그건 악마가 승리한 거에요. 우리 마음을 지키고 증오가 지배하지 못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영화 후반부의 강렬한 하이라이트 였습니다. 아무리 썩어빠진 집단이 있고,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이 득실대더라도, 마음을 지키고, 증오 대신에 희망을 생각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말해주는 아이의 총명함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샘은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의 증오를 씻어냅니다. 딸에게 전화를 걸어서 사랑을 이야기 합니다. 여전히 그는 머신건 프리처로 살아가겠지만, 그는 억압받는 자의 자유를 위해서 헌신하고, 싸울 것입니다. 악마도 되지 않은 채, 영웅도 되지 않은 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갈 것입니다.

 

 여전히 사람이 죽어가든 말든 나랑 상관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다수일 것입니다. 그런 사실은 보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다는 참혹한 흥행성적이 잘 말해줍니다. 어쩌면 이 영화는 하나의 테마 "약자에게 귀기울이고 관심을 가지는 것의 어려움"을 무엇보다 잘 알려주는 작품이 아닐까요? 우리가 샘처럼 대담하게 살아갈 수 없더라도, 적어도 보다 더 약하고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다른 아이의 고통을, 내 아이의 고통처럼 생각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간다면, 세상은 보다 진보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