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신라의 쇠망 - 영원한 천년왕국은 없나봐요

시북(허지수) 2013. 3. 28. 10:22

 강력한 왕권을 자랑하며, 잘 나가던 통일신라는 어째서 휘청했으며, 끝내 멸망의 길로 접어드는가? 그 관점에서 이야기를 출발하는게 가장 좋겠네요. 복잡한 이유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아주 간단히 정리해버리면, 그냥 시계를 다시 거꾸로 되돌리기만 하면, 저절로 통일신라가 망한다고 보면 됩니다. 예전에 있던 제도들이 다시 부활하고, 왕권이 슈~웅 하고 추락하면, 국가는 패망의 길로 들어서는 거지요.

 

 8세기 중반, 신라 중대 경덕왕 때, 녹읍이 부활 합니다. 귀족들이 힘을 얻기 위한 강력한 기반을 하나 얻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뒤를 이은 혜공왕은 진골 귀족의 반란이 일어나면서, 한 나라의 왕인데도 불구하고 살해당하고 맙니다. 이때부터는 뭐 아수라장이 되기 시작합니다. 5세기 고구려를 잠시 생각한다면, 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이 오래도록 통치하면서 전성기를 이끌었던 건 이제 잘 알 수 있겠지요. 그런데 통일신라는 하대로 접어 들어오면, 150년, 불과 1.5세기 사이에 왕이 20명이나 바뀝니다. 자고나니까 또 그새 왕이 바뀐 겁니다. 서로 한자리 하려고 싸우고, 계승하고 쟁탈하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 가고...

 

 귀족과 귀족이 맞붙으면서, "왕의 자리"를 노릴 만큼 다시 강력해 져가니까, 자연스럽게 귀족대표 상대등의 힘도 막강 해졌고, 집사부의 시중은 왕과 함께 점점 약해져만 갑니다. 김헌창 같은 귀족가문은 대를 이어 반란을 일으키며, 왕위를 노리기도 합니다. (물론 실패했으므로 역사는 김헌창의 난으로 기록됩니다) 중앙이 이토록 혼란스러우니까, 지방은 신경쓸 겨를도 없었겠지요. 신라는 후대로 갈수록 지방의 강력한 세력들인 호족이 크게 성장 하게 됩니다. 나중에 호족과 6두품이 서로 힘을 모으고, 고려 건국의 주역이 된다는 것도 재밌지요.

 

 사회적으로도 신라 하대에서는 새로운 생각들이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으로 풍수지리와 선종 이 있겠지요. 우선 풍수지리! 이 땅에는 기가 없어! 같은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사상은, 실제로는 정치적으로 대단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전에는 국가를 다스리는 인물이 경주에서만 나오고, 김씨 일가가 독점해 왔다면, 이제 풍수지리가 유행하면서, 다른 생각들도 가능해지기 시작합니다. 경주? 거기 말이야, 맨날 싸움만 하고, 이제 한물간거아냐? 요즘은 말이야, 이 지역에서 용이 나와! 여기가 대세야! 이 땅의 기가 좋구만! 이런 식으로 각 지역에서 중앙을 부정하며, 지방을 더욱 강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불교의 한 종류인 선종도 그렇게 이해한다면 꽤 놀랍습니다. 선종은 쉽게 말해, 누구나 깨달음을 통해서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설파하는데요. 이렇게 "누구나" 라는 넓고 열린 가치관을 받아들이다보면, 어떤 지점과 맞닿게 됩니다. 어라? 그렇다면, 누구나 들고 일어나서 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꼭 귀족 김씨들이 다 해먹어야 하나? 깨달음을 통해서 부처가 될 수 있다면, 정신차리고 누구나 왕이 될 수 있잖아! 이런 흐름을 타고, 선종도 유행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하튼, 아수라장이 되어가던 통일신라는 결국 후삼국으로 쪼개집니다. 이제 천년의 국가 신라는 타도되어야할 폐쇄적 국가가 되었고, 새로운 시대가 오기 시작합니다. 녹읍으로 쥐어짜인 백성들과 6두품의 뛰어난 학자들도 골품제 같은 썩은 제도를 이제 버려야 한다는데 생각을 공유합니다. 성골과 진골이 다 해먹으면 그게 어떻게 행복한 나라겠어요. (농담으로, 로얄패밀리들이 저절로 승진하면 그게 어떻게 공정한 직장이겠어요. 그렇지요?)

 

 시대가 변했는데도, 자신들 밥그릇 싸움에 열을 올리며, 서민들이 얼마나 고생하면서 사는지 생각하지 않고, 제도를 고쳐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통일신라 말기의 진흙탕 진골들은, 서민들 등골브레이커 하다가, 결국 멸망해 가는 셈입니다. 마침내 지방에서 일어나며, 후백제 및 견훤이 등장하고, 후고구려가 등장합니다. 후고구려하면 유명한 인물 두 명 있지요. 궁예와 왕건 입니다. 그리고 10세기가 되어 태조 왕건은 고려를 세우게 되지요. 자세한 고려 건국 이야기는 또 나중에 만나게 될 겁니다 :)

 

 시험에 흔히 나올 수 있는, 통일신라의 행정조직도 언급해 둘 필요가 있겠네요. 대표적인 단골이 지방의 행정 조직인 9주 5소경 입니다. 9주야 뭐 나라를 9개주로 나누어서 통치했다고 보면 되는데, 5소경이 조금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요즘 식으로 하면 광역시 같은 개념과 비슷할까요. 수도만 발전하면 곤란하니까, 5소경에 인구를 분산시키면서, 문화를 골고루 퍼트리는 주요한 역할 을 했습니다. 당연히 위치도 수도와는 제법 떨어져 있고요. 고구려와 백제의 옛 귀족들은 강제로 5소경에 살아야 했는데, 5소경은 특수행정구역 으로서, 감시가 충분히 있었기 때문에 옛 귀족들 반란의 싹을 미리 제거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물론, 신라 말기에는 분란으로 지방에 신경쓰기 힘들어집니다;)

 

 또한 신라의 군사제도도 종종 출제됩니다. 신라에는 중앙군으로 9서당 이 있었습니다. 상당히 놀라운 점은 국가 중앙군임에도 신라인 외에도, 고구려인, 백제인, 말갈족까지 모두 포함 되어 있는 연합적 성격의 군대였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군인으로서 키웠기에, 천년이라는 긴 세월을 버틸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통일신라군이라며, 폼내려고 신라인만 중앙군을 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반발도 상당했겠지요. 즉 다시 말해, 신라는 그 나름대로 통합을 추진 하고 있었다는 점도 알 수 있습니다.

 

 솔직히 이런 점은 오늘날 보다 더 엄청나지 않나요? 골품 같은 혈연은 다소 줄었는지 몰라도, 서울 몰빵, 지방대 차별, 학연과 지연으로 여러겹 얽혀 있는 오늘날 대한민국을 보면, 신라인은 이렇게 말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망해 이 친구들아" 우리는 하루 빨리, 고른 발전을 추구해야 하며, 출신지역을 따지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을 등용해야 합니다. 가령 좋은 인재가 없다면, 야당에서도 사람을 고를 수 있는 넓은 아량이 있어야 정치적으로 보다 나은 것 아닐까 싶습니다. 끼리끼리 폐쇄적으로 놀면 결국 언젠가 망하는 거지요.

 

 그리고, 신라 지방군은 10정 이 있었는데, 지방은 9주라면서 군사는 왜 10정이냐 하면, 군사적으로 중요했던 북쪽의 한주 지역에는 2정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중앙은 9서당, 지방은 10정 이렇게 정리해 둔다면 좋겠습니다. 중요한 지역에는 더 배치시켜! 나름대로 신라인들이 합리성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골품제의 모순을 좀 더 일찍 깨닫고 해결했더라면, 어쩌면 세계사에서 유례없이 오랜기간 유지된 나라 신라가 될 뻔 했습니다 :) 물론 약 천년동안 유지된 나라도 세계사에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어쨌든 신라는 경순왕을 끝으로 역사에서 사라졌고, 일설에 의하면 고려 태조에 항복한다는 최후방침이 어느 정도 정해지자, 경순왕 앞에서 (너무 분해서?) 자살한 사람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굳이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 하면, 결국 왕국이 유지되면서 이득을 보는 사람은 기득권층일 때가 많습니다. 왕건이 일어나자, 민심은 이미 새로운 나라를 원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동안 뼈대 있는 가문 (골품) 을 유지하면서 명망 있게 살아왔던 진골들은 신라의 멸망을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겁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서양에서 넘어와 한 때 크게 유행했지요. "노블레스 오블리주" 귀족성은 의무를 갖는다 라는 말입니다. 귀족들은 상대적으로 누리는 것이 많기 때문에, 그에 걸맞게 생활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뒤늦게 나라를 잃게 되었으니 자살한다고 해도 해결되는 건 없습니다. 모든 행동은 "있을 때 잘해야" 하는 것입니다. 좀 더 나누고, 좀 더 베풀고, 좀 더 함께 살았더라면, 천년왕국 신라는 "이제 왕건에게 자진 항복"이라는 그토록 허망한 결론으로 끝나지 않았겠지요. 예를 들어 본다면, 신라는 정말 좋은 나라다 라고 일어나는 사람은 없었고, 신라의 왕은 내가 한다 라고 싸우는 귀족만 있다면, 그런 국가는 얼마 못 가서 망하고 맙니다.

 

 오늘의 소소한 영감은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그만 싸우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라고 우리가 이야기 하는게 중요합니다. 동시에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방법들을 찾아보는게 중요합니다. 당연히 실천도 따라야 합니다. 가령, 입으로만 이야기 하고, 투표도 하지 않고, 남을 비난만 하고 있으면, 결코 나를 위해서 무엇인가 근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지금은 21세기가 되었지만,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주장을 하고, 그 배경에는 무엇이 있는지, 여전히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입장을 개선해 주려는 사람들을 지지하고, 지원할 때, 삶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약 끝없는 무관심과 맹렬한 비난만 가득하다면, 그런 나라는 얼마 안 가 망하고 말테니까요. 역사는 별로 봐주는 법이 없는 듯 하네요. 잘못과 모순만 가득한 나라가 된다면, 천년왕국이었다고 해도, 침몰할 뿐이네요.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