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고대문화사 1 - 고대 불교의 역할과 특징

시북(허지수) 2013. 4. 3. 15:38

 고대 문화에서 특히 불교는 정말 중요 합니다. 심지어, 문서 여러 개를 할애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불교의 역할과 특징에 대해서 살펴보고,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종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우리나라는 그동안 종교의 폐단이 많아서인지, 최근에는 무신론자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종교는 보통 죽음, 그리고 다른 세계와의 연결 등이 테마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중년이나 노년이 되면 종교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자, 그런데 어떤 종교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어쩐지 샤머니즘이나 조상숭배의 연장선상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종교의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해주세요" 신앙 입니다. 불교에서 얼마나 부모님들이 열심히 빌고 기원하는지 모릅니다. 저는 좋아하던 신선생님의 권유로, 연등을 다는 작은 절에 가본 적이 있는데, 저마다 소원을 담아서 색색의 연등을 하나 하나 정성스럽게 달던 게 기억납니다. 기독교에서도 시험을 앞두고서 특별 기도회를 한다거나, 삶이 잘 되기를 바라며 새벽부터 기도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자, 그런데 질문 하나! 과연 "해주세요"가 종교의 본질일까요? 진짜 본질은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나 자비의 "적극적인 실천"이 아닐까요? 저는 신선생님이 말한 불교의 대자대비 이야기를 마음 한 켠에서 종종 생각합니다. 대자대비, 즉 남에게 즐거움을 주고, 남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마음. 중생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 이 얼마나 감동적이고 멋집니까 ㅜ.ㅜ... (* 아 물론 저는 카테고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기독교인 입니다만, 타종교에 관해 너무 지나치게 편향적인 시선을 갖지 않도록 경계하는 편입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고대 불교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불교는 중국에서부터 들어온 외래종교 이므로, 수용되는 흐름을 살펴봅시다. 중국 "전진"으로 부터 고구려에 불교가 들어왔고, 소수림왕 때 공인됩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백제도 "동진"으로부터 불교가 들어왔고, 침류왕 때 공인되었습니다. 두 나라 모두 4세기 때 불교를 국가에서 빠르게 공인하게 됩니다. 대체 왜 그랬을까요? 우선 불교의 특성상 들어올 때 비교적 충돌이 적은 편입니다. 불교는 배타성이 적고, 민간신앙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샤머니즘과도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었고, 삼신당, 칠성각 같은 신앙은 일반 사원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덧붙여서 훗날 고구려가 신라에게 불교를 전했고, 백제가 일본에게 불교를 전한 것으로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왕실에서 좋아했다 는 것이 포인트 입니다. 왕이 곧 부처라는, 왕즉불 사상은 왕의 권리를 널리 높여주는데 유익했습니다. 귀족들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특권을 인정하는 역할을 하니까요. 특히 업설은 아주 강력하게 작동한 듯 합니다. "지금 너희들이 못 사는 이유? 그건 전생의 죄 때문이니, 잔말 말고 순종하면서 덕을 쌓고 착실하게 살아"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줄여, "네 업보니 비참해도 그냥 살아" 입니다. 이렇듯 귀족들이 잘 사는 것을 합리화 해줍니다. 이런 사상은 지금도 남아 있어서 지금도 나이 드신 분들 일부는 "내가 전생에 무슨 잘못을 해서 이렇게 고생하나..." 라고 탓하기도 하고, 간혹 젊은 사람들은 재밌는 형태로 "저 친구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어째서 저런 미인을 얻었단 말인가"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조금 잔혹하게 말하자면, 종교를 통해서 피지배층의 불만과 개혁 의지를 표현 못하게 만드는 것 이, 종교의 심각한 부작용일 수 있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감사하게 살자, 착하게 살자는 건 당연히 좋지요. 그런데 힘겹게 고생하는 것도 "원래 인생이 다 그런거지 뭐..." 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철저히 "개인의 잘못화"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방향성은 자칫 위험합니다. 저절로 자꾸만 가난해지는 사회구조를 바라볼 수 없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 인생이 다 그렇게 힘들기만 한걸까? 전생이나 혹은 극락(천국)을 생각하며 현실을 외면하는게 올바른걸까?"

 

 한편 신라에서는 민간 신앙의 뿌리가 강해서 (그러고 보니, 씨족 사회의 전통도 있었지요) 불교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는데요. 6세기 법흥왕 때 되어서야, 이차돈의 순교와 함께 마침내 불교가 공인 됩니다. 재밌게도, 이후 신라는 불교의 나라가 되어갑니다. 신라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은 불국사 아니겠어요. 10원 동전의 주인공이기도 하고, 세계문화유산 이기도 합니다 :) 경주에 가시면, 꼭 불국사의 풍경을 음미해 보신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불국사에는 다보탑, 삼층석탑(석가탑) 등 국보가 한 둘이 아닙니다. (국보 20호, 21호, 22호, 23호... 등등)

 

 우리나라 불교의 특징 중 하나는 호국불교 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잠깐 화랑도의 세속오계를 살펴볼까요. 거기에는 살생유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죽일 때는 가려서 죽여야 한다는 의미 입니다. 언뜻 이해가 안 가기도 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제자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종교는 어느 정도 형태가 변경되어서 각 나라에 정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디 절의 유래에 대해서 최태성 선생님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인도에서는 승려들이 우기에 돌아다니다보니, 비가 많이 내리면 곤란했습니다. 작은 생물들이 많이 보이고, 돌아다니다간 미물들을 죽여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기에는 절을 짓고 승려들이 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불교는 한 마리의 벌레 조차도 생명으로 여기고 소중히 대합니다. 이토록 살생을 금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생유택의 말은 불교이념에는 위배되지만, 신라로서는 "현실주의적인 불교관"을 채택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백제와 고구려와 전쟁을 해야 하는데, 살생을 금기해서야 전투에서 매우 곤란하잖아요. 이 점을 생각해 본다면, 종교는 국가를 위한 종교가 되기 쉽고, 국가보다 앞서나가지 않는 종교가 되기 쉽습니다. 국가 상황에 발맞추어서 함께 가는 경향이 크다고 볼 수 있겠네요.

 

 신라의 삼대 보물로 손꼽히던, 큰 사찰 황룡사를 생각해 봅시다. 거기 있던 9층 목탑은 대략 60미터가 넘는 거대한 탑이었고, "이것을 건축함으로서 주변국들이 신라를 섬기게 될 것"이라는 마음으로 건축했다고 전해집니다. 탑은 곧 부처라는 관념까지 연결해 본다면, 거대한 부처를 통해서, 신라가 강국으로 발돋움 하겠다는 엄청난 의지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처럼 신라는 불교를 사랑했던 나라가 되었습니다. 통일신라의 문무왕릉도 좋은 예라고 볼 수 있지요. 문무왕은 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르며, 바다에 왕릉이 있는데, 죽어서도 동해를 지키며 왜를 막겠다는 의지가 결연합니다.

 

 설명이 조금 장황했던 것 같은데, 초기 불교에 관하여, 크게 세 가지를 기억한다면 좋겠습니다. 왕권의 강화에 기여(왕즉불), 귀족들의 특권을 인정(업설), 전에 없던 새로운 문화를 창조(탑과 불상 등)했습니다. 그리고, 업설이 있었고, 호국불교 였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이제 다음 문서에서는 고대 불교의 거두, 원효와 의상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원효대사는 정말 굉장하고 장난 아닙니다! 저는 고대 문화를 부디 즐겁게 바라보고 누려나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암기하다 지치는 문화사가 아니길 살짝 소망합니다.

 

 오늘의 영감은 "종교에 기대지 말자" 라는 생각이 듭니다. 힘들고 지칠 때는 어딘가에 기대고 싶어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종교에 기대어 모든 것이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해 버린다면, 현실 도피적이라서 곤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컨대 칼 마르크스는 (현실도피적) 종교는 인민의 아편일 수 있으며, 민중의 환상적 행복이라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만약 환상에서만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인생이라면, 그것은 "슬픈 인생" 이 아닐까요. 과연 우리는 현재를 불행하게 살아야만 하는 존재이며, 사는게 다 고통이라며 무기력하게 살아야만 하는 존재일까요?

 

 저는 앞으로의 종교가, 사람들을 "현실적으로" 더 행복하게 해주며, 실천적으로 행동해서 밝은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서서 존경받으며, 나아가 이익집단이 하기 어려운 일들까지도 해내는 놀라움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불가능한 너무 큰 기대였나요 :) 여하튼, 정치 만큼이나 욕을 많이 먹는 종교가 안타까워서, 사견을 좀 써봤습니다. 줄여서 이거지요. 현실도피는 이제 그만! 현실에서 벗어나 "정신승리"를 외치는 것도 가끔 필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를 위한 행동을 시작할 때, 그 때부터 우리의 삶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