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생텀 (Sanctum, 2010) 리뷰

시북(허지수) 2013. 4. 4. 09:42

 어느덧 100번째 영화 리뷰가 되었습니다. 올해 초만 해도 영화 이야기는 이 곳 블로그의 주요 분야가 아니었고, 열개 남짓 밖에 없었는데, 하나 둘 열심히 손가는대로 쓰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생각보다는 굉장히 즐거운 글쓰기 였습니다. 영화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서, 괜찮은 통찰들을 발견할 때는 기쁘기도 했고요. 이제 100번째 리뷰이니, 아주 기념적이고, 멋진 100번째 영화를 골라야 하는데, 공교롭게도 저는 패닉 영화, 기분 나쁜 영화로 불리는 "생텀"을 골랐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여기까지 써올 수 있었던 것은, 타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재밌네요. 영화 리뷰 계속 써봐요" 라고 가볍게 전해준 한 마디가, 여기까지 온 비결이라면 비결 입니다. 영화 리뷰 100개나 쓰는게 말이 될까 싶었는데, 어쨌든 올 수 있었지요. 그 때 그 말을 흘려들었더라면... 글쎄요, 조금 다른 4월이 되었겠지요. 여하튼 저는 지난 몇 달간의 달리는 시간을 통해서, 영화를 보다 더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생텀에서는 비슷한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누군가가 조언을 해주지요.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한 번 해보는게 어때?" 과연, 들을 것인가, 듣지 않을 것인가!

 

 

 물론 "자존심 상하게 남의 말을 왜 들어!"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썩 내키지 않을 때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생텀을 보고 나면, 생각이 조금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자존심이고 뭐고, 성공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은 쪽으로 움직이는게 올바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극한의 상황이 될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괜한 고집을 부리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진심이 담긴 의견을 최대한 검토해 보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서론을 정리하자면, 작은 말 한마디가 거대한 일의 시발점이 될 수 있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야 말로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럼 불쾌한(?) 영화 생텀 속으로 출발합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영화가 불쾌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아름다운 모험담이 아니라, 비극적인 생존투쟁 이기 때문입니다. 물속을 파고 들어가는 장면들이 상당한데, 여기에서는 순간의 실수로 목숨을 잃게 되기 때문에 시종일관 자극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둘째, 게다가 전문가일수록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고, 초보자들은 방해가 되거나 짐이 되거나 죽음을 피하기 어렵다는 느낌도 보는 이들을 불편하게 합니다. 이 영화는 상냥한 배려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전쟁영화 만큼이나 자극적인 전개일 수도 있습니다. 죽음에 대해서 애도하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이 못해서 혹은 약해서 죽은거지, 감상은 치우고, 지금은 당장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해야 한다" 라고 상당히 엄격하면서도 잔인하게 말합니다.

 

 동굴 탐험 최고의 전문가는 프랭크 입니다. 그의 프로의식과 엄격한 방법들은 배울만한 점이 있습니다. 어떠한 순간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으며, 답이 보이지 않는 순간을 만나자, 나도 모르겠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프랭크가 굉장한 점은, 확실한 해답이 보이는 순간이 오면 "조금도 타협하거나 물러서지 않습니다" 강하게 확신하며 절대 포기하지 말고, 계속 가야한다고 주장합니다. 많은 이들이 지쳐가면서, 적당히 쉬면서 구조를 기다리고, 실낟같은 희망에 기대려고 하자, 프랭크는 단번에 일갈해 버립니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보면, 우리가 만날 사람들은 구조대가 아니라 "우리의 시신을 찾으러 오는 사람들일 것"이라며 재충전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이동을 시작합니다.

 

 자, 그런데 프랭크가 생명을 가볍게 여겼을까요? 저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죽은 시신의 잠수복을 벗겨서라도, 살아있는 사람은 무조건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할 수 있는데도 포기하는 것은 "최악의 행위"로 간주하며 절대로 그렇게 약한 마음을 먹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정작 그랬던 프랭크가 동료가 사고로 크게 다쳐서, 희망도 없이 고통 속에서 한없이 괴로워하자, 자신의 손으로 직접 동료를 안락사 시키는 장면은 숙연한 느낌을 줍니다. 독한 진통제 같은 구급약도 없고, 구조대가 올 가능성은 제로이고, 한 사람이 괴로움 속에서 몸부림 칠 때,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게 해주는 대목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누군가의 말처럼, 프랭크가 신처럼 전능자가 된걸까요, 혹은 살인자 인걸까요. 영화는 극한의 상황에서 "죽음도 배려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을 프랭크 같이 "인간의 생명"과 "현실적인 작은 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보여주고 있어서 상당히 놀라웠습니다. 덧없는 희망고문으로 몸과 마음이 타들어 가는 삶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역시 자극적이고 강렬합니다.

 

 또한 프랭크는 공포심을 경계하고, 언제나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볼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불빛을 비추는 라이트의 배터리까지도 계산하고 있는 그의 엄격함이 굉장합니다. 바꿔 말해, 그는 동료를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최악의 경우가 닥쳐오면, 모두가 함께 살 수 없다면, 몇 명이라도 반드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무겁게 말하는 듯 했습니다. "우리 모두 여기서 폼나게 함께 죽자, 우리 죽어서도 함께하자" 라는 멋있는 표현 대신에, 영화 생텀은 "안됐지만 너는 이미 가망이 없는 상황이 되었으니, 미안하네,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보자" 라는 생명에 대한 지독함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한편 끝까지 말을 듣지 않는 여인 빅토리아의 고집과 근성은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저는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혹시 빅토리아 같은 모습이지 않을까?" 라며, 대단히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살 수 있는 기회를 고집을 부리며 걷어차버립니다. 그녀에게는 폼나는게 중요했고, 자신의 판단만이 중요했습니다. 게다가 참고 버티는 끈기도 약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합쳐지면서, 빅토리아는 끝내 참혹함을 피할 수 없었지요. 이걸 조금 다르게 접근한다면, 우리는 기회 앞에서 과연 어떻게 해야할까?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의 판단만 너무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충분히 생각해 보고, 때로는 힘든 상황에서는 참고 버티면서 견디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물론 최종결정은 당연히 스스로가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결정을 너무 간단히 내 입맛에만 맞게 한다면, 그 자만심이 삶을 갉아먹을 수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고집불통 빅토리아가 될 것인가, (아버지인 프랭크를 정말 싫어했었지만) 조쉬처럼 위기에서 그의 말을 진지하게 들을 것인가. 삶의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조언은 그만큼 무게가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왜 하필 프랭크는 동굴을 사랑했던 것일까? 라는 점입니다. 그는 영화 후반부에 아들에게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나는 여기에 있으면 편안하다고" 가족에게는 0점 짜리 인생일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정직히 말해, 저는 어디에 있으면 편안한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엔지니어 스티브 워즈니악 같은 사람은 조용한 시간에 혼자 컴퓨터 작업을 골몰하는 시간이 "최고로 황홀한 시간"이었다고 말하는데, 이 비유를 가져온다면, 프랭크 역시도 동굴을 탐험하는 그 시간이 그에게 가장 황홀한 시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무엇을 할 때, 가장 편안하고, 가장 행복합니까?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일단 꿈꾸는 측면에서는, 충분히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주의 깊게 들을 것, 살아갈 수 있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할 것, 당장 괴롭더라도 인내하면서 계속 출구를 향해서 움직일 것, 저는 그동안 천천히 느리게 가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안일한 삶의 주된 원인 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저는 다르게 생각해 봅니다. 모든 문제를 안일하게 본다면 곤란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문제에 관해서는 가장 치열한 태도로 맞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입기 싫더라도 입고, 고통스럽더라도 견디고, 하겠다고 결단했다면 끝까지 해내는 태도, 이런 삶이 되어야 겠다고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삶의 위기 때는, 중요한 것에만 집중하기. 거추장스러운 자존심은 버리기. 제대로 살아보겠다는 삶에 대한 강렬한 마음이 있다면, 결국 해내는 날이 올 수 있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확신하며, 오늘 리뷰를 마칩니다. / 2013. 04.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