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책

변방을 찾아서 리뷰

시북(허지수) 2013. 4. 9. 10:32

 신영복 선생님의 글들을 참 좋아합니다. 특유의 진중한 무게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영복 선생님의 글은 한 번도 빨리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천천히 곱씹다보니 강의 같은 책들은 읽는데만 몇 달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이번 책은 선생님의 여행기 입니다. 그것도 변방 여행기. 경향신문에서 연재되었을 때, 종종 찾아보았고, 또 계속 연재될 수 있기를 희망하기도 했지만, 건강 사정도 있고 해서, 비교적 짧은 기획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책은 상당히 얇은 편이지만, 그 풍성한 내용 만큼은, 별내용 없이 껍데기로 채워져 있는 다른 이야기들과는 차별화된 멋이 있습니다.

 

 이 책이 특히나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은, 변방성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주류 담론이 아닌 비판 담론, 대안 담론의 의미를 담아, 변방을 찾고, 생각하는 시간들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습니다. 중심부의 이야기들은 주로 속도와 효율성입니다. 스톱워치를 켜서, 시간을 재면서 공부하고, 비효율적인 것을 비난하는 중심부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변방의 세계. 신영복 선생님은 오히려 이런 변방성이야말로, "다른 생각의 출발점"이고, "새로운 생각을 창조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고 힘있게 강조합니다.

 

 저자 : 신영복 / 출판사 : 돌베개

 출간 : 2012년 05월 21일 / 가격 : 9,000원 / 페이지 : 148쪽

 

 

 나아가 조용한 변방이야말로, "저항"의 이야기를 외칠 수 있다고 보는 대목도 강렬합니다. 책에 나와 있는 허균의 호민론을 빌려오면, 힘겨운 세상에 대해서 항민 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항상 힘들게 사는게 당연하고, 노예처럼 사는게 당연한 사람들입니다. 조금 과격하게 표현한다면, 스스로가 굴욕과 어려움을 자처하는 셈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원민 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잘못된 것에 대해서 목소리를 낼 줄 알고, 원망할 줄 압니다. 못 살겠다 라고 외칠 줄 압니다. 하지만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요즘 식으로 보자면, 투표는 하지 않고, 정권에 욕하는 사람들이 딱 어울립니다. 마지막으로 호민 이 있습니다. 이 호걸의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깨어 있어서, 행동하고 나섭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실천합니다. 허균의 지적처럼 "우리나라에 호민이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대목은, 세월이 이토록 흘렀건만 눈물날 만큼 아픕니다. 호민이 없었기 때문에, 기득권들이 백성을 업신여기며 모질게 대했고, 백성을 우습게 알고 두려워 할 줄 몰랐다 라고 말합니다.

 

 스테판 에셀의 말처럼 "분노하는" 모습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사회 양극화에 대하여, 각종 차별에 대하여,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금권에 대하여, 저항하는 정신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놓고 본다면, 최악의 태도는 "나랑 상관없다"며 무관심한 태도이며, 우리는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기꺼이 힘을 보태고, 최소한의 관심과 격려라도 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21세기에도 마찬가지라서, 호민들이 많아지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또한 정신적인 각성이 늘어갈수록,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수 많은 사람이 "무슨 상관이야, 먹고 살기 힘든데" 라고 외면하기 시작한다면, 기득권들은 더욱 파렴치한 행동들을 보여줄 것입니다. 뭐, 지금도 너무 민망할 정도로 자주 보고 있지만요. 하하. 따라서,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일 수록, 더욱 참여를 소중히 여기고, 올바른 태도가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절로 좋아지는 경우는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잘못된 것에 대한 무관심, 절망, 좌절 보다는, 오히려 분노하고, 일어서고, 움직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말이에요.

 

 허균이 애일(愛日)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참 놀라웠습니다. 허균은 햇볕, 해방, 새로운 세상을 사랑했을 것이라고 신영복 선생님은 말합니다. 하루를 치열하게 사랑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꿈꾸며, 차별과 소외 없는 날이 오기를 열망하며, 삶을 참 사랑했던 그 모습이 진한 울림을 줍니다. 천재시인 누나 허난설헌의 비극적인 삶을 가까이에서 뚜렷하게 보면서, 허균은 잘못된 세상을 가만히 놔둘 수 없다고 끊임없이 고민했을 테고요.

 

 자, 오늘날에도 비극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있습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바라보면서, 어쩔 수 없다며 자포자기 하든지, 나쁜 놈들에 대하여 크게 분노하든지, 세계를 움직이기 위해서 행동하든지, 역사는 분노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바뀌어 왔습니다. 나는 선한 사람이고, 착한 사람인데... 라고 생각하면서, 의문만 떠올리고 있다면,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인간을 구조조정해서 용도폐기 시켜버릴 것인가요? 이걸 보고서 침묵하고 있을 것인가요? 아니면 잘못된 시스템을 구조조정해서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만들어 볼 것인가요? 그래요, 물론 잘못된 것과 싸워나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고, 힘든 길일 수 있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를 한 소절 빌려오고 싶습니다.

 

 "위험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사랑해 보려고 애써야 합니다 / 언제나 어려움을 택한다는 원칙에 따라 우리의 생활을 이루어 간다면 / 지금까지는 낯선 것으로 보이는 것도 / 우리들에게 믿음을 주거나 귀중한 보물이 될 것입니다." 인간성을 상실한 시대, 탐욕이 주인인 시대에서, 우리는 위험을 사랑하고, 낯선 것을 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시인의 표현을 조금 더 빌려오면, 세계가 적대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공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계가 공포를 가진 것입니다. 두려움과 불편함을 감수하고, 당당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갈 수록, 호민이 많아질수록, 세상이 좀 더 나아질 것을 언제나 확신합니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대목도 참 좋았습니다. 단 한 번도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는 천민을 소설의 중앙에 앉혀 놓은 작품 임꺽정. 하층민을 주인공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혁명적인" 소설이라고 평하는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신영복 선생님은 그러한 계급의식을 뛰어넘어서, 임꺽정의 진면목을 다르게 봅니다. 너무나 인간적인 삶, 자유의지와 우정, 온몸으로 부딪히는 인간관계와 삶의 진정성이 소설의 진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주류로부터 추방당한 위치가 아니라, 스스로 탈주하여, 변방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매서운 통찰은 계속됩니다. 사회적 약자는 문신을 하거나 성깔 있는 눈빛을 만듭니다. "위악"의 연출입니다. 나쁜 놈처럼 보여서 만만하게 보이지 않도록 위장합니다. 그럼 사회적 강자는? 극적 대조를 보이며 위선을 무기로 삼습니다. 그러므로 시위 현장은 소란스럽고, 떠들썩 하며, 욕 먹기도 쉽겠지요. 하지만 법정은 정숙 합니다. 욕을 했다간 모독했다며 퇴장 당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 대목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약자의 투쟁에 대해서 우리는 좀 더 헤아리는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왜 그들은 거리로 나와야만 했는지, 반드시 생각해 봐야합니다. 흔히 말하는 "지밥그릇 챙기려는" 사람들은 조용히 위선을 떨면서 재빠르게 행동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닌자로 위장해 먹고 튀는데 능숙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약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순간, 어떻게든 "나쁜 이미지를 입혀버려서" 악당으로 만들어 버릴지도 모릅니다.

 

 책 136쪽에 있는, 볼 때마다 가슴 뛰던 글씨를 한 글자씩 천천히 생각해보며 오늘 리뷰를 마칩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깨어 있는 시민이 하나 둘 쓰러져 가면, 민주주의는 정확하게 금권주의로 변질되어 갈 것입니다. 삶의 어려움 가운데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 보는 시민들이 하나 둘 일어서 가기를 열망합니다. 이들이야말로 돈이 주인인 세상을, 구해낼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자, 최초의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2013. 04.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