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Bridget Jones's Diary, 2001) 리뷰

시북(허지수) 2013. 4. 22. 19:25

 대략 십몇년전,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처음 보았을 때, 물론 내용이 참으로 유쾌하면서도, 싱글로 나이들면 정말 저렇게 되는걸까? 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었던 추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월은 정말 빠른 속도로 흘러서, 십몇년이 지나서, 30대에 이 영화를 다시 보니, 놀랍게도, 더욱 재밌으면서도, 공감이 팍팍 되기 시작합니다. 이걸 기뻐해야할지, 아니면 슬퍼해야할지... 우중충한 하루를 보내다가, 친구들의 결혼 소식이 들려오면, 어쩐지 마냥 반갑지만 않고, 얇은 지갑을 쳐다보게 된다면, 기분전환 겸, 브리짓 존스의 일기 권할 수 있습니다 :)

 

 조금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30대 싱글녀의 판타지가 이루어지는 달콤한 러브스토리 인데, 그 험난한 과정이 워낙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다보니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흐르는 음악들도 참 좋고요. 스톱 스모킹, 스톱 드링킹을 언제나 적기만 하고,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도, 우리의 다짐과 비슷하잖아요. 하하. 이 영화는 두 가지를 말해주면서 삶을 응원합니다. "언제나 모든 일이 끝없이 꼬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모습을 원망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라" 네, 정말 좋습니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브리짓은 좋은 일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고, 상사의 괴롭힘에 어이없어 하는 "올해도 싱글녀" 입니다. 상사 다니엘과 은밀한 농담을 나누다가, 두 사람은 좋은 사이로, 가까운 사이로 발전해 나가는 듯 보입니다. 일단 다니엘은 직장 빵빵하고, 차도 좋고, 음 겉으로 보기에도 멀쩡하게 생겼습니다. 좋아, 다니엘과 잘 되어서 결혼에 골인하는 꿈이 이루어 질까요? 그러나, 현실은 전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알면 알수록 다니엘은 실망스러운 구석이 발견되는데...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저는 다니엘 같은 사람을 "기회주의자" 라고 부르겠습니다, 필요할 때만 불러내고, 시간을 알맞게 즐기다가, 중요한 순간에는 휑~ 하고 사라지는 사람들. 벌써 32년 인생! 눈치가 그래도 어느정도 있는 브리짓은, 가까이 할수록 다니엘이 어딘가 수상하다는 것을 조금씩 느낍니다. 여자의 직감이랄까요, 아니면 의사소통은 언어가 아니라 몸짓으로 이해된다고 해야할까요. 하여튼 다니엘은 조금 수상하고, 조금 미심쩍습니다. 왜 중요한 파티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약속을 핑계대는지!

 

 브리짓은 대담한 복장으로 파티에 참석했다가, 놀림도 받지만, 어쨌든 여전히 솔로임을 화려하게 선보이면서 이번 파티도 쓸쓸히 보냅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알게 되지요. 다니엘이 나만을 사랑했던 것이 아님을! 다니엘은 바람둥이 라는 것을! 이대로 직장에서 불편하게 지내지 않을 것임을! 브리짓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기로 결단합니다. 그 계기가, 처참한 현실을 보았을 때 라는 점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때때로 비극적 현실은 다른 삶을 꿈꾸고 실행하는, 중요한 기회가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브리짓은 이제 이딴 직장 때려치기로 마음 먹은 겁니다.

 

 그래서 방송계에서 일을 하겠다면서, 면접 보기 위해서 돌아다녀 보지만, 유쾌한 낙방의 연속입니다. 어려운 질문들 앞에서, 어색한 임기응변을 해야만 하는 모습이 조금 안쓰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을 계속 두드리다보면 기회는 잡아지는 법. 마침내 방송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출판사에 찾아가서 거침없이 상사를 쏘아붙이며 멋지게 사표를 씁니다. 이런 XX 같은 상사는 굿바이~

 

 이제부터 그녀의 삶은 더욱 꼬이기 시작하는데, 밥벌이가 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방송 사고를 터트려주면서, 혹독한 신입 시절을 보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때부터, 브리짓의 삶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이 순간을,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이렇게 쓸 수 있습니다. "삶의 위치를 바꾸는 순간,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한탄하고 자책만 한다면, 당장 그만둬야 합니다. 못하는 것이 많더라도 괜찮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을 시도하고, 해보고 싶은 것을 두드리면 됩니다.

 

 브리짓은 요리에도 꽝이라서, 가히 전설적인 스프를 만들기도 하고, 방송 일도 처음에는 고생투성이였지만, 결국 상황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요리는 잘못하지만, 맛있게 먹어줄 사람을 만나면 해결됩니다. 방송도 못했지만, 자꾸 노력하면 나아질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잘하기만 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뛰어난 모습은, 대부분 피나는 훈련과 노력이 뒷받침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브리짓은 매일 매일 방송을 하다보니, 조금씩 센스를 갖추게 된다는 대목도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변호사 마크를 통해서, 기회를 잡았을 때, 대박 인터뷰를 성공시키면서, 일약 방송가의 스타가 됩니다.

 

 이처럼 영화의 후반은 브리짓 인생의 반전기로 볼 수 있습니다. 바람둥이 다니엘의 실체를 알게 되었고, 변호사 마크의 포근한 사랑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한 번 해보고 싶었던 일을 직접 해보면서, 훌륭한 성취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그 까닭을, 단지 영화니까, 단지 운이 좋았으니까, 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생이 꼬일 때, 다른 방법을 생각하고, 시도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니까! 라고 생각합니다.

 

 유명한 마지막 장면은 이런 브리짓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막판까지도 마크와의 관계가 엉망이 될 뻔 하는데, 이 때 그녀는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당장 달려나가서 오해를 푼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뛰어 나갑니다. 저는 이처럼 브리짓이 적당히 살지 않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뭐라도 일단 도전해보는 태도", "우울한 현실에 슬퍼하며 좌절하지 않는 태도" 이것을 잊지 않는다면, 오늘이 얼마든지 도전해 보기 좋은 날이 될 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달콤한 삶을 그려갈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힘든 날, 괴로운 날, 피로회복제 같은 신비한 매력의 영화, 지금까지 브리짓 존스의 일기 였습니다. / 2013. 04.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