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디 아워스 (The Hours, 2002) 리뷰

시북(허지수) 2013. 4. 23. 16:32

 빌리 엘리오트,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등 인상적인 영화를 만들어 온 스티븐 달드리 감독. 그의 섬세한 수작 영화로는 디 아워스도 있습니다. 세 여인을 통해서, 삶의 행복과 무게에 관하여, 질문을 던지듯이 말을 건네고 있는 작품입니다. 오늘 하루의 일상이란, 평생토록 기억될 최고의 순간일 수도 있으며, 어떻게 해서든지 탈출하고 싶은 괴로운 감옥 같은 날일 수 있습니다. 영화 디 아워스의 매력은 자신이 이제껏 겪어왔던 시간들에 따라서 내용이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전체적으로는 무거운 감성이 있지만, 제게는 매우 소중한 이야기가 되어주었던 고마운 작품입니다.

 

 특히 삶을 피하기만 해서는 평온을 찾을 수 없다는 대사는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힘이 있습니다.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자세, 그래서 주어진 것들을 하나 하나 느껴보는 행위, 그 모든 시간들. 삶 대신에 희망으로 써봐도 좋을테지요. 희망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자세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이제와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괴로움은, 희망을 바라보지 않고, 삶을 피하기만 할 때, 찾아오는게 아닐까요? 자, 이제 영화 속 이야기들로 출발해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크게 알려진 영화는 아니지만, 해외에서는 아카데미 9개부분 노미네이트 및, 2003년 골든글로브 수상작품이기도 합니다. 흥행성적도 1억달러를 넘게 벌었지요. 게다가 세 명의 유명배우들이 펼치는 섬세하고 진한 연기력도 뛰어납니다. 인생은 언제나 미스테리하고, 부조리한 일들도 많다지만, 그 속에는 특별한 아침도 있다는 사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무의미한 인생에서 조차,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루를 맞이할 수 있다는 모순. 불행과 행복은 무엇인가? 조용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저는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고민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성취나 달성에 있는 것인지, 도전하는 순간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아주 평범한 일상 속에 있는 것인지 말이에요. 일반적으로는 이기거나, 끝내거나, 완성하거나, 뜻대로 술술 풀려나갈 때, 짜릿하고 즐거운 기분이 들겠지요. 그러나 과연 이 순간을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당황스럽게도 그 짧은 순간이 지나가고 나면, 허무한 뒷맛이 꼭 찾아오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면 사람은 끝없이 특정한 목표를 정하고, 계속해서 밀어 올려나가야 하는 존재일까요?

 

 영화는 극중의 소설가이자 시인 리차드의 대사를 통해, 완전히 다른 시선에서 행복한 순간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내가 상을 타는게 무슨 즐거움이 있나? 그것이 정말로 나를 위한 것인가?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함이 아닌가? 내가 가장 좋았던 순간을 말해주지. 그건 너무나 평범한 일상 속의, 너무나 평범한 아침이었지. 당신과 함께 하던 청춘의 그 날이... (행복으로 가득차있던 신비하고 감동적인 날이었다고)

 

 이미 많이 늙어버린 리차드와 클라리사는, "누구도 부럽지 않았던 행복했던 연인"이었고, 그 순간은 인생 최고의 기쁨이었다고 말합니다. 강렬하고 인상적입니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받는 지금의 모습이 형편 없을 뿐이고, 그 오래전 풋풋한 시절의 평범한 하루가 눈부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독특한 관점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계속됩니다.

 

 시간을 한참 거슬러 1920년대 버지니아 울프의 삶. 그녀 역시도 런던에서 누리는 평범한 저녁을 그리워 하고 간절히 원합니다. 지금은 정신적인 병의 이유로 시골의 한적한 곳에서 지내고 있지만, 이 삶을 가짜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남에 의해서 규정되는 인생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마침내 런던으로 가는 기차역 한 켠에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주는 상이 우리 인생을 기쁘게 할까요? 누군가가 정의해 놓은 삶의 방법이 우리 인생을 기쁘게 할까요? 영화는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조용하며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강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인물일 수도 있는 1950년대 로라의 시선으로 옮겨가 보면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로라는 겉보기에 "완벽한" 가정의 모습을 이루었습니다. 능력있는 남자와, 사랑스러운 아들, 경제적 안정까지, 부족할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우울하고 불행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정성스러운 케이크를 만들고, 남편의 생일파티를 성공적으로 끝내지만, 로라는 남몰래 눈물을 뚝...뚝... 천천히 떨어뜨립니다. 그 부조화 스러운 모습이 압권입니다. 그녀에게는 "로라의 인생이 없기 때문" 입니다.

 

 물론 남을 위한 헌신과, 남을 위한 인생이 결코 가볍거나 가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자발적인 내 뜻이냐, 아니면 타의에 의해서냐 입니다. 자발적인 삶이라면 당연히 로라 정도의 성공적 인생에서 매일 매일이 동화 속 아름다운 장면의 연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환경일지라도, 이 모든 것이 타인에 의해서 암묵적으로 강요된 역할 감당이라면, 그녀의 행동 하나 하나가, 가식적인 연극에 불과하고, 괴로움과 슬픔의 연속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남을 위해서 억지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무의미한 나날로 충분히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해결책은 두 가지 뿐이지요. 생각을 완전히 바꾸든지, 환경을 완전히 바꾸든지.

 

 그런데 정말 싫은 일상이 마음만 먹는다고 해서, 완전히 새롭게 보이기란 불가능 하지 않겠어요. 로라는 환경을 완전히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처절하게 괴로운 일상과, 평온한 죽음 중에서, 내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냉철한 고백은), 50년대의 로라에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다만, 로라는 죽음 대신에, 완전히 다른 삶을 선택함으로서,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지요. 분명 도덕적으로는 옳지 못했지만, 그래서 나쁜 엄마가 되었지만, 용서받을 수도 없겠지만, 이것이 그녀가 선택한 삶의 무게였습니다. 로라는 "내 인생으로서 살아있음"을 되찾기 위해서, 가족을 떠나고, 다른 삶을 시작합니다.

 

 일상이 감당이 안 될만큼 힘들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삶의 만족은 어디에서 도대체 찾아지는가? 영화 디 아워스를 통해서 아주 소중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바로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한없이 밀고 나간다면, 지금 주어진 삶의 "모든 순간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마다 생의 문제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나서, 선명한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미련 없이 이 멋진 순간과 함께 잠들기로 결단했고, 로라는 자신의 인생을 찾아서 떠나기로 결단했고, 시인 리차드는 사회적으로 최고의 순간을 단칼에 거부하며, 클라리사와의 행복한 순간을 가슴에 영원히 안고 작별인사를 합니다.

 

 이것을 단지 우울한 대목이 아니라, "의미없이 일상을 보내는 것과의 완전한 단절" 이라고 더 적극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감동 없이,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일상에서 철저하게 떠나기, 라고 과감하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지금 이 순간 하고 있는가? 인생이란 이 두 가지 질문에 정면으로 답할 수 있을 때까지 치열하게 싸워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2013. 04.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