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어바웃 어 보이 (About A Boy, 2002) 리뷰

시북(허지수) 2013. 4. 24. 19:47

 영화 어바웃 어 보이는 반쯤은 꼭 제 이야기 같았습니다. 극중 주인공 윌 프리먼과 가치관이 비슷하다는 의미 입니다. 백수생활을 예찬하고, 결혼생활을 비극적으로 보는 시선이 특히 그랬습니다. 물론 안타깝게도(?) 저는 물려받은 유산이 없으므로, 고단한 밥벌이에 힘든 일상을 보내야 했지만, 어딘가에 구속받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인생이라면 참 행복하다고 오래도록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저는 윌 프리먼과 똑같은 OTL 자세로 쓰러져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인가 이상해도 한참 이상했습니다. 도대체 왜?

 

 20대 청춘시절에는, 저도 꽤 욕망적인 사람인지라, 돈을 벌어 갖고 싶던 TV를 사고, 각종 CD들을 차곡차곡 모으기도 했고, 책도 예쁘게 진열해놓고, 음... 보기만 해도 흐뭇한 공간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마음 한 켠이 허전했습니다. 그리고 관계와 소통이 단절되어 있을 때, 사람은 온전해 질 수 없음을 깨닫기 시작했지요. 그 뒤로는 내향적 성격을 인정하면서도,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 듣는 시간을 좀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합니다. 작은 공부방에서 소소하게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그 시간들이 오히려 스스로에 대한 환상을 부수는데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마침내 한 발 떨어져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지요.

 

 

 혼자서 생각하고 결정한다는 것은 독립적이라는 측면에서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외골수적인 모습, 이기적인 모습으로 흐르기 쉽다는 점입니다. 바꿔 말해, 다른 사람의 소중한 의견들 조차도, 깊이 있게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영화의 윌이 다른 사람의 조언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저 역시 비슷한 경향이 강합니다. 게다가 가끔 타인의 부탁에 못 이겨서 시작했던 일들은 대체로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지 못했습니다. 어리석게도, 이른바 잘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으로,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들 때가 많았고, 또한 독단적으로 잘못된 길과 방법을 고집하다가, 좋은 기회를 놓친 적도 있었습니다. "대충 하다보면 언젠가 잘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들을 저는 지금도 뼈아프게 후회하고 있습니다. 하하. 서론은 여기까지 하고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영화는 혼자서도 즐겁게 잘 지내는 독신남 윌이, 귀엽고 당돌한 꼬마아이 마커스를 만나면서, 세계관이 확장되어 가는 경험을 세세하게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윌을 살펴보면, 규칙적으로 자신이 계획한 대로 살아가고 있으며, 부담이나 책임감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남의 일에 개입하지 말기가 그의 생활신조인 듯 합니다. 우연한 계기로 알게된 마커스가, 윌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유쾌하면서도 깊이 있는 이야기로 진입합니다. 마커스는 아직 10대 꼬마지만, 삶이 참으로 괴롭고, 의지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으니까요.

 

 주변에 아는 사람도 딱히 없었던 마커스는, 무턱대고 윌의 집에 쳐들어가서, 신나게 초인종을 눌러댑니다. 리듬감 있게 써본다면, "이웃 아저~씨. 같이 놀아~줘" 라고 큰 눈으로 이야기 하는 셈입니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던 윌도 자꾸만 성의 있게 찾아오는 마커스가 귀여웠는지, 자신의 공간을 살짝 내어줍니다. 이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찾아오는 사람을 내치기란 어렵겠지요. 게다가 윌은 특별히 꼬마 마커스에게 잘해줄 의무도 없기 때문에 너무 편합니다. 두 사람은 금방 좋은 사이, 조금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친구"가 됩니다. 함께 예능프로를 보고, 과자도 나눠먹고, 시간을 보내면서, 친숙해져가는 모습. 원래 우정과 소통은 많은 대사가 필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윌은 마커스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처음에는 그저 한가로운 시간을 함께 보내볼까 에서 출발했다지만, 나중에는 마커스의 든든한 방패가 되어줍니다. 마커스가 못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자, 당장 마커스를 감싸주고, 오리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능청맞게 마커스를 구해줍니다. 아주 적극적인 태도는 아니었다지만, 말이라도 따뜻하게 해주려고 노력합니다.

 

 시선을 이제 마커스에게 맞춰봅니다. 어쩌면 마커스에게 이런 윌의 모습은, 가끔은 친구, 가끔은 아빠 같은 존재감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커스 역시도 윌을 참 좋아하는데, 파티에서 꼭 윌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마치 한 식구처럼 대우합니다. 영화의 명장면이자 압권은, 노래 공연 모습입니다. 평소 음악을 좋아한다지만, 노래 실력은 영 시답잖은 마커스! 그는 우울하고 지쳐있는 엄마에게 힘이 되고자, 학교 음악 경연에 노래를 부르겠다며, 신청을 덜컥 해버립니다.

 

 이대로 가면 정말 큰일입니다. 전교생 앞에서 망신 당하고, 윌의 표현대로 10대 시절 내내 놀림감으로 추락할지도 모릅니다. 마커스의 무모한 자신감은 좋았지만, 현실은 전혀 쉽지 않다는 것이 항상 문제입니다. 사실을 알게 된, 윌이 아우디를 몰고, 빛의 속도로 마커스를 구하기 위해서 달려가는 모습은 거의 "영웅"의 모습 같습니다.

 

 망설이고 망설이던 윌은, 마커스가 홀로 공연하기 시작하자, 마술처럼 깜짝 등장해서,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재치 넘치는 태도를 보여주면서, 마커스에게 쏟아질 수 있었던 야유를, 대신해서 몽땅 받아버립니다. 이 장면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저절로 눈물이 흐릅니다. 쉽게 표현해 "우리는 누군가의 힘든 인생에, 잊지 못할 도움이 될 수 있다" 입니다. 그 도움 조차, 생색내는 맛이 전혀 없이, 오직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감싸주는 부드럽고도 섬세한 느낌이 그야말로 탁월합니다. 윌은 거짓말 잘하는 것만 뺀다면, 참 좋은 남자였습니다. 부자이고... 하하.

 

 그렇게 두 사람은 느리지만 확실히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마커스는 우울한 시절이 끝나고, 좋은 누나(?)가 생겼고, 윌의 인생에도 변화가 찾아와서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의 행복을 듬뿍 누릴 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표현대로 사람은 모두 외딴 섬일지도 모르지만, 그 섬들은 겉보기와 다르게 해저에서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지요. 깊은 행복은 혼자 있을 때,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 혼자서는 삶의 의미를 발견해 나가기 어렵다는 것. 약할 수 있는 서로의 모습을, 지지하고 격려함으로써,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어바웃 어 보이는 참 재밌으면서도, 뭉클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인연을 소중하게 느낄 수 있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 2013. 04.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