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 2011) 리뷰

시북(허지수) 2013. 4. 30. 00:26

 마법 같은 두 가지 이야기로 가득차 있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입니다. 하나는 상상력의 예찬입니다.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주인공 "길"은 자신이 꿈꾸는 삶이 무엇인지 드디어 알게 되고, 온전히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게 된다는 내용이 멋지게 그려집니다. 둘째로 결국 중요한 것은 현실이다 라는 점입니다. 저처럼 "추억보정"이 자주 걸리는 사람들에게, 영화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원래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가지지 못한 것,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을 한없이 바라고 있는게 아닐까 라고 말이에요. 그러므로 미련없이, 환상적인 과거를 버리고, 현실부터 제대로 보자고 슬쩍 이야기 해줍니다. 덧붙여서 시작부터 펼쳐지는 파리의 예술적인 모습은 입이 쩍 벌어질만큼 멋집니다. 음악도 귀를 즐겁게 해주고요.

 

 한편 재밌는 게 있는데, 저는 어린 시절 비 맞는걸 꽤 좋아했었습니다. 나름 비 맞는 감수성을 갖고 있던 셈입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비 맞는 걸 좋아하다니, 미쳐가는구만!!!" 소리를 하도 많이 해서, 이후에는 언제나 우산을 잘 챙깁니다. 게다가 어쩐지 우중충하고, 현실도피적으로 느껴지는 주인공 "길"의 감성코드를 보고 있자면, 상당히 유사한 동질감이 느껴져서, 더욱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네요.

 

 

 길군은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미국 극우를 혐오하고, 경제적으로는 하고 싶은 일을 해보려는 패기 있는 젊은 영혼 입니다. 다만, 현실에서는 생각처럼 일이 풀리지 못했지요. 출판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작가지만, 하고 있는 일에 대해 확신이 부족하며, 그의 정신은 "오늘도 방황중"에 가깝습니다. 그렇게 방황하는 가운데, 꿈꾸고 동경하던 1920년대로 빨려들어간다는 게 너무 인상적이었지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언제 사람은 번뜩이는 영감을 얻게 되는가? 사람의 내면이 변화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길군의 발걸음을 따라 가다보면 그 희미함 속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길군은 동경하던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결정적인 깨달음을 얻습니다. "내가 통할 수도 있구나!"라는 자기 효능감은, 그를 완전히 달라진 변화의 길로 인도합니다. 계속되는 명사들과의 만남에 길군은 가슴이 뛰는데, 잠이 드는 순간까지도 살짝 흥분에 취해 있습니다. 말하자면 파리 심야 시간, 자정을 울리는 그 순간부터, 그는 "인생 최고의 순간"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명석한 작가 헤밍웨이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남의 의견이 아니라, 나의 자신감이라고 말해줍니다. 글이 "얼마나 정직하고 용기가 담겨있는가" 로 바라봐야 한다며 직언해줍니다. 거트루트 스타인은 예술가야 말로 존재의 허무함을 위로해 줄 수 있다며, 적극적으로 길군의 재능에 응원을 보냅니다. 그리고 길은 마침내 이들에게서 한가득 영감을 얻고, 낮에는 계속해서 수정 작업을 해나갑니다. 약혼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치고, 또 고치고, 다시 고치는" 엄청난 작업 열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길은 이제 완전히 작업 열정에 미쳐있습니다. 마치 유레카를 외치는 듯한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논리적이고 딱딱한 작품이 아니라, 훨씬 감각적이고 상상력 가득한 작품을 써내려 가야한다고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대목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두 가지 완전히 다른 견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현실이 XX같고, 불만족 스러우니, 달콤한 판타지에 젖어서,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 입니다. 저 또한 비슷한 유혹을 가끔 받기 때문에, 이러한 위험성이 얼마나 큰지요. 적당히 살면서, 즐기다가 가는거지 라는 논리.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습성. 이런 유혹에 자꾸 넘어가다보면, 조금씩 자신의 삶의 통제권을 상실하면서, 나중에는 내가 누구인지 잊게 됩니다. 상상 속에서는 만렙용자지만, 현실은 시궁창. 그러면서도 여전히 환상 속으로 기어들어가려는 인간. 글쎄요...

 

 둘째로, 현실이 비록 불만족스럽지만, 적극적으로 다른 현실을 선택해 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입니다. 지금과는 다른 삶이 가능하다고 확신하고, 할 수 있는데까지 노력하는 "불편하고 피곤한 삶을 감수하는 것"이지요. 힘껏 오늘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 준비하고, 실행하고, 반성하고, 즉 매일을 충실하게 느껴보려는 태도 입니다. 노력함으로서 얼마든지 일상을 꽤 다르게 바꿀 수 있습니다.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는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에 대해서, 작가 헤밍웨이는 "사랑에 빠져보라"고 권합니다. 사랑하는 척 하지 말고, 진짜 사랑에 빠져 있다면, 모든 것을 능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합니다. 지금 이 순간 죽음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시간을 살고 있으므로, 조금도 두렵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것이야말로 "사랑의 축복"이라고 손짓합니다. 그리고 이 기준은 길군을 더욱 용기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약혼녀와의 과감한 결별 선언이 그것이지요. "충분히 괜찮아 보이는 그럴싸한 사랑" 이 아니라, "중요한 순간을 나와 함께할 수 있는 진짜 사랑"을 찾아나서는 셈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낭만적인 새로운 인연과 함께 상쾌하게 막을 내립니다.

 

 사람은 참 겁쟁이가 아닐까? 싶을 때가 있습니다. 조금만 틈이 생기면,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하고, 성공의 추억에 취해 있고, 지금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어떻게든 정당화, 합리화, 변명부터 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저는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금부터 다른 선택을 하기 시작하면, 얼마든지 다른 인생은 가능하다고. 지금부터 힘껏 살아가기 시작한다면, 이제껏 보지 못했던 순간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감독이 원하는대로 "맞춰주는 각본"을 쓰면서 많은 수입을 얻었다면, 인생은 그것으로 과연 성공일까요? 누군가가 시키는대로 "역할을 연기"하고, 그 대가로 충분한 보상을 얻었다면 성공일까요? 우리는 너무 속물적인 성공에 탐닉하고 있는건 아닐까요? 자신만의 삶을 꿈꿔보고, 그것을 실현해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한 번쯤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본다면 좋을 듯 합니다. 꼭두각시 성공인생 보다는, 불확실하지만 도전하는 인생이야말로 훨씬 근사한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 2013. 04.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