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무간도 (無間道: Infernal Affairs, 2002) 리뷰

시북(허지수) 2013. 5. 6. 19:08

 오늘은 전설의 명작 느와르 무간도 이야기를 남겨볼까 합니다. 흥미로운 시나리오 구조, 팽팽하게 전개되는 가득한 긴장감, 누군가의 노예로 살아갈 수 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명장면들. 21세기 홍콩 영화 중에서 손꼽히는 걸작입니다. 무간지옥은 끔찍한 곳으로 묘사되는데요, 계속해서 쉼없이 고통만이 계속되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어쩌면 두 주인공의 삶이 그러하지요. 가짜 경찰 유건명의 하루하루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에 가깝습니다. 살짝만 실수하다간 곧바로 인생의 끝을 만나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이런 위장된 경찰 생활 속에서, 점점 유건명이 출세길을 달린다는 점입니다. 조금 이상하게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절박한 환경에 처한 사람이, 누구보다 일에 매진하면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는 일이 현실에서도 종종 있기 마련입니다. 너무나 일을 치열하고 긴장감 넘치게 잘하다보니, 경찰계에서 유건명은 "출세 욕심으로 가득찬 워커홀릭" 으로 평가받을 정도입니다. 조직원의 스파이로 활동할 바에, 차라리 적성에 맞는(?) 경찰이 되는게 나아보일만큼 그는 유능합니다.

 

 

 조직들만 스파이를 심는건 아니지요. 경찰 역시도 스파이를 심어서, 조직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양조위가 열연을 펼친 진영인 이라는 인물입니다. 영인은 그야말로 계속되는 고통스러운 스파이 이중생활에 지칠대로 지쳐있습니다. 잠깐이면 될 줄 알았는데, 3년, 또 3년, 그렇게 계속하다보니 어느새 10년이나 조직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경찰이 맞나 싶을 정도인데, 전과만 무려 8개나 줄줄이 달려 있습니다. 게다가 이 쪽은 특유의 명석함으로 인해, 조직의 큰형님에게 총애를 받을 만큼, 믿음직한 조직원이기도 합니다. 그 속은 경찰이라지만, 외모도 그렇고 거의 싸움꾼이 아닐까 싶을 만큼...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두 사람은 심어진 스파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실제 생활은 상당히 다르게 전개됩니다. 이걸 저는 올라갈 곳이 있는 삶 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유건명은 잘 나가는 형사로, 이제 조금만 더 노력하면 요직까지도 진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꿔봄직한 조직의 최고자리까지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는 셈입니다. 예쁜 여인과 함께 사생활도 재밌게 누리고 있으며, 특별히 부족할 게 없는 생활에 가깝습니다. 저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유건명은 이대로 가면 차라리 조직과 결별하는게 나을 수 있습니다. 어떤 순간에서도 충성을 맹세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솔직히 누가봐도 조직의 첩보원보다는 경찰 과장, 경찰 부장이 되는게 낫잖아요.

 

 그에 비한다면 매력적이게 그려지고 있는 진영인은 기약 없는 이중 생활에 마음이 거의 탈진 지경입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면서, 잠시나마 낮에 잠자리를 청하는 모습은 상당히 가슴 먹먹한 대목입니다. 매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있는데, 그것이 꿈 속입니다. 이걸 다르게 본다면, 진영인의 현실이란 막막하고 캄캄한 먹구름 일상이라 할 수 있겠지요. 언제쯤 그의 소원처럼, 이 생활을 청산하고, 경찰다운 활동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지...

 

 이들의 이중생활들은 마약 운반사건이 복잡하게 엉키고, 경찰계 황국장이 죽음을 맞이하면서, 더욱 빠르게 진행되어 나갑니다. 황국장은 극중에서 "키워드"를 쥐고 있는 인물인데, 특히 진영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기도 하지요. 당장 영인은 연락할 황국장을 잃어버렸고,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을 길마저 위태롭게 됩니다. 내가 경찰이라는 것을 과연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게다가 황국장의 복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영인이 복잡한 머릿속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꿍꿍이 가득하게 전화가 울립니다.

 

 함정인걸 알면서도, 위험부담이 있으면서도, 끝내 이 전화상의 제안(조직의 대박살)을 외면할 수 없었던 건 당연합니다. 진영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었으므로 조직에 대한 배신"이라는, 단 하나의 길을 선택하면서, 몸담았던 조직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어 버립니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이라면, 영화의 후반부는 영감 가득한 놀라운 전개로 이어집니다.

 

 조직의 보스를 직접 제거하는 것은, 다름 아닌 보스가 심었던 유건명 형사였습니다. 이로써 유건명은 기나긴 이중생활을 청산하며, 누군가의 노예로 살지 않고 자유로운 몸이 되는 첫 발을 내딛습니다. 임무완료 후, 자신감 넘치게 귀환해 축하의 박수를 받는 장면은, 자유가 주는 행복이 얼마나 큰 것임을 새삼 느끼게 합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진영인은 어떻게 되는거에요? 진영인도 경찰로 복귀? 해피 엔딩? 아니었습니다.

 

 영화는 극적이면서도, 현실감 넘치게 인생의 쓰라림을 보여줍니다. 진영인은 모든 진실을 밝혀내기 바로 직전에서 총탄에 맞고 쓰러집니다. 이럴수가, 이른바 유건명 파들이 경찰계에 또 있었습니다. 그렇게 볼 때, 영인의 삶이란 너무나 가혹하고 슬프기 이를 때 없습니다. 경찰 조직을 위해서 정보원으로 10년이라는 세월을 보냈지만, 그 기댈 곳 없는 삶의 끝에서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니요. 마치, 자유롭지 못한 인간의 인생을 보는 듯 착각까지 들었습니다.

 

 계속되는 고통을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서 두 사람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유건명은 관련된 모든 인물들을 처치해버리며, 스스로의 손으로 "좋은 삶"을 선택해 버립니다. 진영인은 꿈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던 것처럼, 현실 에서는 끝내 좋은 삶을 누리지 못하고 맙니다. 영화를 보는 이에게 해석과 상상력의 자유가 주어져 있다면, 저는 이렇게 과격한 결론을 내려보고 싶습니다.

 

 인생의 자유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훨씬 더 용맹하게 싸워나가야 하며, 긴 세월을 투쟁해야 합니다. 그렇게 준비해 나가다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미련없이 결단해야 합니다.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철같은 강인함이 있어야 합니다. 유건명은 경찰학교 훈련시절에는 진영인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고, 나도 나가고 싶다, 라는 말을 내뱉을 뿐이었습니다. 많은 경우 혹시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더 나은 삶을 원하기만 하고, 그 발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태도 말입니다.

 

 사람은 노력한 그만큼만 딱 변하고, 노력한 그만큼만 딱 더 성장할 수 있다 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저절로 잘하게 되거나, 저절로 유능해지거나, 저절로 자유를 얻게 될리가 없습니다. 누군가에 의한 자유 조차도, 가짜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우리는 오늘 이 순간을 선택해야 합니다. 내가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나는 그 삶을 위해서 지금 무엇을 노력할 수 있는지? 우리가 노력하는 그 발걸음 만큼, 우리는 더 많은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 2013. 05.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