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Vicky Cristina Barcelona, 2008) 리뷰

시북(허지수) 2013. 5. 7. 23:18

 영화 제목이 조금 난해한 것 같습니다. 차라리 원문대로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라고 쓴다면, 다가가거나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려나요. 자극적인 제목과 약간 불성실해 보이는 자막이 영화의 감수성을 살짝 갉아먹은 듯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내용과 풍경, 그리고 음악 아니겠어요. 우디 앨런의 자유분방한 감수성을 눈부신 미인들과 함께 느껴볼 수 있는, 그야말로 즐거운 시간이 되어준 작품입니다. 사랑과 전쟁에서 종종 펼쳐지는 너죽고 나죽자 같은 피보는 정서가 아니라, "서로에게 생활과 삶이 좋으면 OK! 제도가 무슨 상관이람!" 이라는 예술가적인 감성이 듬뿍 묻어 있습니다.

 

 두 친구 - 비키와 크리스티나의 바르셀로나 여행담을 재치 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둘은 절친이긴 하지만, 사랑에 관한 가치관은 완전히 반대라는 것이 재밌지요. 비키는 표준적인 삶을 좋아했고, 지금 그 길을 따라서 결혼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살짝 답답함이 느껴지긴 하는데, 나름대로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만족"이라는 자기분석을 해둔 듯 합니다. 한편 매력넘치는 미모의 여인 크리스티나는 낭만에 모든 것을 걸고, 상처투성이의 불타는 하루를 열망하는, 그야말로 마법같은 러브판타지를 꿈꾸는데, 자유로운 감성이 차고도 넘칩니다. 이들은 바르셀로나에서 화가 후안을 만나면서, 평범한 일상과는 완전히 다른, 특별한 세계로의 초대장을 건네 받습니다.

 

 

 당연히 비키는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거절하고, 크리스티나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강한 흥미와 끌림을 느낍니다. 그렇게 후안, 비키, 크리스티나는 스페인 오비에도로 비행기 타고 날아가면서, 근사한 여행을 이어갑니다. 비키는 왜 따라왔냐고요? 남자는 영 마음에 안 들었지만, 절친이 걱정되기도 하고, 이래저래 혼자 스페인의 밤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나 봅니다. 자, 이제 본편 스타트!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존재의 고독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화가인 후안은, 이혼남이고, 솔직한 표현을 즐겨하지만,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을 열망합니다. 당연히 아름다운 미녀들을 보고서, 그냥 지나쳐 갈 수가 없습니다. 음, 어쩌면 어른들을 위한 달콤한 영화로도 볼 수 있겠는데, 그 과정이 지나치게 자극적이지 않고, 유머스러우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인물 중심의 리뷰를 써내려가도 재밌을 듯 하네요.

 

 단아한 매력이 있는 비키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 상당히 강한 혼란을 경험한 인물입니다. 내가 바라고 있던 가치들이 "사실은 즐거운 삶이 아닐 수 있다" 라는 힘있는 통찰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결혼하기 전에 후안과 잠시 나누었던 시간들이 오히려 아주 긴장 넘치고 즐거웠다는 점이 신선합니다. (저는 건강한 열정으로 불타는 남자지만!) 잠시 여자의 마음으로 빙의해서 접근한다면, 한 여성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수영장이 딸려 있는 커다란 집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함께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하며, 나의 감정들이 존중받는 시간들이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후안은 예리하게 간파하며 비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아니 왜 결혼할 사람의 전화를 그렇게 불편한 태도로 받아야 하는거죠?"

 

 우리는 이쯤에서 "자신의 감정조차도 정직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재밌는 통찰도 얻게 됩니다. 이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고, 괜찮은 결혼이지 하면서 계속해서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합리화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면, 또는 남에게 인정받음을 통해서 비로소 안심하는 나약한 존재가 인간이라면, 이제는 다른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영화는 나는 지금 무슨 감정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해줍니다. 이 길이 표준이라며, 자꾸만 스스로를 세뇌하고 위로해봐야, 그런 방식으로는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게 놀라웠습니다.

 

 한편 크리스티나는 마침내 길었던 "사랑 찾아 삼만리" 생활을 끝낼 멋진 남자를 찾은 듯 했습니다. 후안의 예술가적인 취향과 그녀의 갈구하는 영혼은 잘 어울리는 커플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이야기를 흥미롭게 해주는 인물이 난입하는데, 바로 후안의 전처 마리아가 등장하면서, 엄청난 존재감을 발합니다. 마리아 역시 재능 넘치는 여인인데, 정서적 불안과 감각적으로 추구하는 불편한 감성이 어울리며, 위험한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마리아는 스페인어로 이야기 하는 것을 고집할 만큼, 자기 존재감이 강한 인물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놀랍게도 후안과 마리아는, 크리스티나의 사진 열정을 우호적으로 바라보면서, 열심히 응원해주기도 합니다. 암실까지 만들어주면서, 그 재능을 세상에 내보낼 수 있다며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크리스티나 입장에서도 매우 특별한 경험을 지금 하고 있는 셈입니다. 재능이 사랑받고 있으며, 마리아의 매력에 끌림을 느끼며, 근사한 후안과도 함께 하는 시간. 하여간 글로 표현하기는 어려운데, 그 묘한 긴장감과 느슨함의 조화가 이 작품이 주는 독특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모두 듣게 된, 보수적인 비키 남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들 세 사람의 관계는, "무슨! 남친을 공유하고 살아가냐?" 라는 비아냥을 듣기까지 합니다.

 

 어쨌든 크리스티나는 새로운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맛보며, 충분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어느 순간, 이런 삶에게까지 "불만족스러움"이 찾아오고 맙니다. 그래요, 모든 일에는 지루한 면이 있지요. 그런데, 크리스티나가 평화로운 일상을 강하게 거부하려는 이 태도가 저는 굉장히 마음에 남았습니다. 전처인 마리아는 분노하며 쏘아붙입니다. "저 여자는 은혜도 모르며,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쟁이다!!!" 이 절규의 목소리가 어쩐지 슬픔으로 살짝 느껴졌는데, 영민한 마리아는 이미 알고 있지 않았을까요. 크리스티나가 떠나버리면, 내 마음도 이제 간신히 유지되는 안정을 잃고, 후안과도 재차 끝장나버리고 말 것을. 즉, 말이 통하는 사람을 잃어버린다는 슬픔이란, 때로는 분노로 표현되는거 아니겠어요.

 

 이렇게 비키와 크리스티나의 파란만장한 스페인 여행기는 끝나갑니다. 이들은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지만, 결국 원하는 판타지는 이루지 못했고, 현실적인 모습으로 제각기 삶을 이어나갑니다. 크리스티나는 이번에 프랑스로 떠나며, 영감넘치는 삶을 찾아서 방황을 시작했고, 비키는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잡게 됩니다. 저는 이 마지막 대목이 결국 여성의 마음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평점을 살짝 살펴보니 중년층과 여성의 평가가 높네요. 결국 생각해보면 비밀 없는 삶이란 없는지도 모릅니다. 순수한 하루보다, 위험한 하루가 더 많은 영감을 줄지도 모릅니다.

 

 이제 결론. 어쩌면 후안의 대사를 통해서 우디 앨런 감독이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무의미해 보이고, 무미건조한 인생이라도, 사랑하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꽤 정중한 질문이 다가옵니다. 상처 받는 일 있을테고, 실망하는 날 올테고, 잔인한 헤어짐을 마주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보내는 순간이 있기에 삶은 더 풍요로워지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닿지 않는 낭만을 끝없이 추구하는 크리스티나의 넘치는 감성을 닮아보고 싶은 아름다운 계절이네요. 오늘 리뷰는 여기에서 마칩니다 :) / 2013. 05.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