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훌라 걸스 (Hula Girls, 2006) 리뷰

시북(허지수) 2013. 5. 15. 23:49

 재일 한국인 3세, 이상일 감독의 작품 훌라 걸스는 일본 개봉 당시 놀라운 흥행을 기록했던 작품입니다. 입소문으로 관객을 끌어모으며 꾸준히 롱런하면서 125만명의 관객을 동원했지요. 제30회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는데, 메이저 영화사가 제작한 작품이 아닌데도,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쥔 것은 11년만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그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은 "잘 만든" 영화라는 의미지요. 주연 아오이 유우의 풋풋한 모습도 인상적이지만, 영화 훌라 걸스는 사회적 배경들이 더욱 잘 그려지고 있어서 보는 내내, 잔잔하게 흐르는 무게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흔히 생각하기에 여인들이 모여서 춤추는 경쾌한 이야기가 아닐까 라고 접근한다면, 조금은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저마다 사연이 들어가 있고, "살아보고 싶은 인생"에 대한 강한 의지도 들어가 있어서, 불편한 환경을 극복해 나가는 인간 성장의 이야기에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약하게 주저 앉고 싶고, 현실에 기죽어 눌려있다면, 그럴 때야 말로 저는 훌라 걸스를 권하겠습니다. 이 작품을 보고 나면, "좋은 사람이 된다는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가슴 깊이 생각할 수 있어서, 자꾸만 눈물이 흐릅니다. 오늘은 기적의 실화 속으로 떠나봅니다.

 

 

 검은 다이아몬드로 불리는 석탄을 캐기 위해서, 오늘도 땀흘려서 열심히 일하는 탄광노동자들.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있었고, 시골 마을은 폐광의 바람이 불어닥칩니다.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생계를 잃었고, 마을은 변화하는 시간 앞에 섰습니다. 노동조합에 서 있는 이들은, 사측이 밀어붙이는 하와이언 센터 프로젝트에 강하고 노골적인 거부감을 드러냅니다. 광부 2천 명을 해고 시키고, 새 프로젝트에는 5백 명도 채용되지 않는다니! 그야말로 바보 같은 일이라며, 하와이 분위기를 맹렬히 비난합니다. 그런 거센 분위기 속에서 영화는 시작되고, 훌라 걸스 모집이 시작됩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아이구, 댄스 시연을 하자마자, 춤에 관해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몽땅 도망가 버립니다. 경망스러운 춤이나 가벼운 멜로디가 그저 짜증으로 느껴지기만 합니다. 그나마 키미코 같이 "흥미를 간신히 보이는 극소수의 여성"이 있었기에, 훌라걸스가 문닫지 않고, 계획이 시작될 수 있었지요. 그런데 이 지원자 네 사람을 보고 있는 마도카 댄스 선생님은 시골 처자들의 형편없는 실력에 할 말이 없습니다. 백날 그렇게 해봐야, 안 될 것임을 바로 직감하고, 거의 손을 놓아버린 수준입니다. 네, 한마디로 훌라걸스는 지원군도 없고, 멤버도 생초보고, 실현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프로젝트로 추락하고 맙니다. 영화 포스터는 다정하게도 이런 말을 건네줍니다.

 

 "별이 보이지 않는 밤에는 눈을 감고 꿈을 보는 거야" 아마 열 번쯤은 읽고 나니, 가슴 속으로 파고 들어옵니다. 캄캄하게 미래가 보이지 않는 순간에,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눈을 감고 이불을 덮어 쓰고, 펑펑 우는 것인가요? 아니겠지요. 눈을 감고 빛나는 자신의 순간을 바라보는 겁니다. 그런데 어쩌나요, 나는 빛나는 순간이 없는걸요... 그럴 때, 키미코의 눈에 들어온 것은, 선생님이 보여주는 압도적인 댄스 장면 입니다. 자유롭게 동작으로 표현하면서, 몸을 움직이는 아름다운 모습에, 키미코는 마음 속으로 분명 말했을 겁니다. "나도 저런 삶을 살아가고 싶어!" 그리고 이 꿈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현실이 되어갑니다.

 

 어머니와 싸움을 각오하면서까지, 키미코는 강인한 의지를 불태웁니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래,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볼래! 그러면서 짐싸고 연습실에서 생활해 버리는 키미코. 그녀야말로 주어진 환경이 시키는 대로만 살기를 지금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는 겁니다. 엄청난 의지를 가지고, 좋아하는 일을 매일 연습하는 사람을 이길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세상 모두가 등지더라도, 키미코는 계속해서 연습을 해나가는, "선명한 강인함"을 보여주는데, 저는 이 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예컨대 절친 사나에가 집안 사정으로 이사를 가게 되는 가슴 아픈 현실을 만나자, 키미코는 춤추기를 깨끗하게 포기하려고 하는데, 그 때에도 친구의 진심 어린 따끔한 격려에 정신 차리며, 더욱 힘을 내보려고 합니다. 이 대목을 바꿔써본다면, "열심히 노력했던 일이, 그다지 좋은 결과를 당장 주지 못할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라는 모순적인 현실에 대한, 훌륭한 대답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키미코라면 이렇게 답할 겁니다. "그래도 웃고, 열심히 현실에 맞서볼께요."

 

 사실 이런 인생을 사는 대표적인 인물은 바로 마도카 선생님이라 할 수 있겠지요. 어딜가나 이방인 취급 당하고, 쫓겨나는게 흔한 일이고, 사람들의 수근거림 대상이 되는 인생을 살아왔으니까요. 그런 현실 속에서도 마도카는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것을 강하게 요구합니다. 제자들이 버스 안에서 서로를 탓하고 비난하면서 싸움이 일어나자, 그런 못난 태도는 집어치우라며 제 발로 차에서 내려 버립니다. 못한다고 서로 책임만 덮어 씌우는 것이야 말로 최악의 자폭하는 태도이며, 제발 정신 차리고, "어떻게든 서로를 도와가면서 함께 힘을 모아나갈 것"을 다소 거칠게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힘든 환경에서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서로 비난하기 보다는, 서로 힘을 모으기. 그렇게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꿈꾸는 모습을 실현해 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영화 훌라 걸스는, 용기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에 전력으로 뛰어든다면, 보다 나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음을 부드럽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키미코가 어머니를 설득하는 것은 근사한 몸의 언어 였습니다. 어머니의 고백이야 말로, 영화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느껴졌습니다. "어두운 곳에서 고생하면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춤을 추면서 남에게 웃음을 주고 기쁨을 줄 수 있다면 그것도 일이구나" 직업의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딸의 댄스를 누구보다 응원하게 되는 깨끗한 마무리까지, 훌라 걸스는 모두가 성장해 나가는 아름다운 작품이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첫째도 분명하고 강인한 의지와 노력, 둘째도 굴하지 않는 의지와 노력, 셋째도 포기하지 않는 의지와 노력 입니다. 또한 저는, 누군가의 인생을 행복하게 해준다면, 그런 인생이란 얼마나 멋있는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정직히 말해 청순 키미코 보다, 마도카 선생님의 근사함이 존경스럽게 느껴지던 작품이었네요. 이름 없는 시골에서도 여전히 세월을 잊은채 열정을 불태우는 삶에 동경심이 들었습니다. 저도 그런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더 분발해야 겠다는 여운이 진하게 남았네요. 지금까지 훌라 걸스 였습니다. / 2013. 05.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