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수조 방식 고찰 - 기득권이 잘 사는 이유는 토지때문?

시북(허지수) 2013. 5. 15. 22:27

 개인적 여담으로 오늘 문서를 시작하자면, 예전에 스포츠매장 담당자로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게 사장님 내외분은 참 열심히 일을 했고, 간신히 먹고 살 만큼의 수익을 내고 있었습니다. 하하, 저도 별반 다를게 없었고요. 그런데 건물주 아주머니의 생활은 날이 갈수록 달라졌습니다. 첫 달에는 고맙게도(?) 가게에서 수십만원치 옷과 신발을 구입하더니, 몇 년도 채 안 되어서 자동차가 외제차로 바뀝니다. 이 건물에는 한의원도 있었고, 임대료가 상당히 높았습니다. 그러고보니, 작년 서울 명동의 임대료는 세계 9위를 자랑했었지요. 도심지의 임대료는 장난 아닙니다 :) 저는 이런 뼈있는 농담(?)을 종종 들었습니다. 자기 건물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진짜 복받은거지 뭐. 자기 건물은 고사하고, 내 집 마련을 하는 나이도 이제 40대가 되어야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분석들이 나옵니다. 장황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빈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다는 것을 염두하고 접근한다면, 어쩌면 이번 문서의 내용들이 더 와닿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경제파트는 흥미진진한 설명이 안 되는 편이라, 뭐 역량도 부족하고요... ^-^);;;

 

 지난 문서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수조 방식을 살펴볼까 합니다. 다른 말로, 어떤 식으로 세금을 거두었고, 무엇이 문제였는가, 라는 점입니다. 조선 초기에는 답험손실법으로 세금을 거둡니다. 문서 시작부터 뭔말이여 ?-_-? 네, 배경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겠네요. 토지를 구체적으로 보면, 수조권을 국가가 갖고 있는 공전이 있고, 수조권을 관리가 갖고 있는 사전이 있습니다. 답험손실법은 그 해에 풍년인지, 흉년인지 어느 정도 감안해서 세금을 걷는 방식입니다. 나름대로 농민을 배려하는 합리적인 구조로 보이는데,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풍년과 흉년을 조사할 때 - 공전이라면 당연히 국가에서 손실을 배려하면서 세금을 거두었지만, "사전이라면 수조권자가 관리" 이므로 손실을 정확히 배려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흉년이라도 내 몫은 충분히 많이 내놓아야지, 농민 여러분~" 농민들 입장에서는 황당합니다. 농사도 잘 안 되었구만, 관리가 답험을 하고서는, 올해도 농사 손실이 없다며 세금을 잔뜩 내놓으라고 하자, 그야말로 죽을 맛, 요즘말로 병맛 기분이 듭니다. 아, 저 가혹하고 못된 관리여 부들부들... (물론 전부가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만;;;)

 

 허위 답험 보고가 난무하고, 농민들의 비명이 하늘을 찌르자, 마침내 개혁이 단행됩니다. 기준을 관리에게 맡겨서는 안 되겠구나! 기준을 국가에서 확실히 정하자! 그리하여, 세종 때, "공법"이 등장합니다. 아 정말 세종대왕 대단합니다 ㅠ_ㅠ 이 공법을 시행하기 위해서 대대적인 여론조사를 거쳤고, 17만명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문제가 무엇이더냐? 어떻게 고쳐야 옳은가?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개혁을 하기 위해서, 무엇을 등에 업고서 행동해야 하는지 세종은 정확히 알았던 겁니다. 기득권의 막돼먹은 횡포를 줄이기 위해서, 칼을 겨눠야 했고, 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국민 여론을 들고서 개혁을 시도하는 겁니다. 이 얼마나 멋진지... 감동을 느끼느라, 잠시 정리가 중단되었습니다. 하하.

 

 자, 구체적으로 공법이 시행되면서 어떻게 변했는가 하니, 토지를 여섯 등급으로 딱 나누었습니다. 즉 비옥도에 따라 전분 6등법, 그 해의 풍년, 훙년에 따라서 연분 9등법을 못박으며 정해 버립니다. 예를 들면, 그 해에 너무 날씨가 좋다면 연분 9등법에 의해서 상상년이다 (1결당 20두 확정), 너무 기상이 나빴다면 하하년이다 (1결당 4두 확정), 라고 정해서 농사 상황에 따라 합리적으로 세금을 거두려고 했다는 겁니다. 이제 관리가 (답험 당시처럼) 자기 맘대로 세금을 가져가지 못합니다. 국가의 기준에 따라서만 세금을 걷어갈 수 있습니다. 덧붙여서 군, 현 단위로 국가가 기준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세법은 어렵다지만, 세종이 얼마나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고민했는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경제면에서도 자꾸만 감동하게 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반전이 시작됩니다. 제가 수 차례 언급했다시피, 기득권과의 전쟁은 쉬운 경우가 절대 없습니다. 이제 "진짜 잔혹 영화를 보는 수준"의 엄청난 현실이 등장합니다. 천천히 이해해 봅시다. 제도가 좀 더 살기 좋게 개혁되면서, 국가가 걷어들이는 세금은 사실 상당히 줄어들었습니다. 게다가 세종이 죽고, 시간이 흘러 이제 세조 시대가 되면, 직전법(※직전법 내용은 지난 문서 참조)으로 토지제도를 개혁해 버리지요. 그야말로 관리들은 그 혜택이 점점 파격적으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세조 시대가 되면 관리들은 이제 퇴직금도 없고, 국가가 잘 챙겨주지도 않고, 받게 되는 금액도 옛 시대만 못하니까, 이들이 먹고 살 길을 적극적으로 찾기 시작합니다. 조금 고급스러운(?) 표현으로는, "토지의 사적소유욕구가 급격히 증가"한 거지요. 관리님 요즘 기분이 어떤가요? 라고 인터뷰를 요청하면 이렇게 답하겠지요. "요즘 국가가 뭘 해주겠니, 쥐꼬리만한 수조권에, 내맘대로 돈을 걷지도 못하고, 관둬라 관둬, 차라리 내가 토지를 왕창 소유해서 잘 먹고 잘 살아야지!!!" 사유지 확보를 계속해서 늘려가면서, 지주전호제로 나가기 시작합니다. 지주전호제를 쉽게 쓰면, "내 땅에서 내 사람들 (가령 노비나 소작농) 시켜서 먹고 살련다!" 그러면서 양반들은 농민들에 대한 착취를 대폭 강화시켜 버립니다. 예를 들면 내 땅에서 농사지으면, 수확물 반은 내꺼다 이런 식이지요. 여섯 글자로 줄이면, "믿을 건 내 땅 뿐"

 

 조선은 계속해서 관리들에게 압박을 넣습니다. 성종 때 "관수관급제"를 도입하며, 관리의 행패와 농간을 막고자, 아예 세금을 관리가 아니라 국가가 직접 받기로 합니다. 국가가 세금을 직접 받고, 그 후에 관리에게 일한 대가를 주도록 변경 합니다. 이 때쯤 오면 관리들은 이제 국가가 주는 적은 보상으로는 시쳇말로 "답이 안 나온다"고 여기며, 사유지에서 농민을 활용해 부유하게 살려고 완전히 방향을 정해버립니다. 시간이 더 흘러, 명종 때가 되면 녹봉제가 도입되고, 국가는 관리에게 녹봉만을 전달하게 바뀌면서, 수조권은 소멸해 버리고요.

 

 이런 흐름 속에서 역효과는 강력하고도 가혹했습니다. 국가의 토지 및 농민 지배력은 계속 약화 되었고, 나라의 실세가 대규모 사적 소유지를 가진 지주 (부유한 양반) 세력으로 탈바꿈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즉 사적소유가 만연하고, 지주전호제가 일반화 되어버리는 16세기 부터는 농민들이 계속해서 몰락해 갔고, 공납과 역의 부담까지 무거웠기 때문에, 이대로 도저히 못살겠다며 견디다 못해 도망가 버리는 농민들도 등장합니다. 도망치면 뭐가 되었겠어요? 도적질 하는 겁니다. 그렇게 본다면, 백성들이 임꺽정을 응원하는 슬프고도 묘한(?) 분위기는 절대로 괜히 나온게 아닙니다. 시대가 낳은 도적이라고 평가받는 임꺽정을 당시 명종실록에서는, "그의 죄가 아니라 나라의 잘못"이라고 사관이 써놓았습니다. 오늘 문서는 여기에서 마무리 하고, 경제 생활 이야기는 다음 문서에서 계속됩니다~ (아래부터는 또 장문 여담이니 그냥 휙 패스하셔도 됩니다!)

 

 오늘의 영감은, 국가는 개인의 지나친 탐욕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바꿔 말해 백성들이 아무리 시달리면서 살더라도, 직접적으로 그 가혹함을 느껴보기 어렵기 때문에, 국가는 스스로 갑을 자처하면서 오히려 탐욕을 눈감으며 용인하거나, 기득권의 유혹에 손을 맞잡으며 부정부패를 살짝 부추기는 행위로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가령 권력기관이 차마 해서는 안 될 반칙까지 동원한다거나, 또는 자신의 위기 상황을, 다른 몰락한 집단을 공격함으로서 벗어나기도 합니다.

 

 즉 사람들의 피곤한 삶은 안중에도 없는 거지요. 역사를 기억하며, 세종대왕처럼, 많은 사람들의 고견을 깊이 있게 경청하고,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노력하는 "정치적 성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추진된 일들이, 혹여 무슨 부작용을 낳는지도 꾸준히 추적해서, 역효과를 명확히 파악하는 지혜로운 태도도 요구되고요. 이래저래 기득권과의 전쟁은 어려운 법입니다.

 

 대토지를 가진 지배층은, 저절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서, 호화로운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가사일과 잡일을 해주는 노비들도 있었고, 편안하고 부유하게 생활하던 양반은 과연 조선시대에만 존재하는 걸까요? 진보와 빈곤이라는 책에서 헨리 조지는 재밌는 비유로 설명합니다. 금싸라기 토지를 듬뿍 갖고 있는 사람은, 10년 동안 놀러다니고, 인생을 낭비하면서 지내도, 저절로 부자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지대는 계속해서 상승하기 때문이다 라고 간파했습니다.

 

 그리고, 높은 지대를 감수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빈곤을 여전히 벗어나기 힘들 것임을 정확하게 꼬집어 줍니다. 너무나 간단하고 명료해서 더 놀라운데, 서울이 땅값이 비싼 이유는 "인구가 많기 때문" 이라고 분석하는 셈 입니다. 그러므로 산업이 발달하고, 인구가 계속 줄어들면, 노동력이 부족해서 임금이 올라가며, 지대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유머인데 - 이걸 정반대로 하면 엄청난데요, 산업과 기술 발전에 쏟아부을 돈을 그냥 강에 갖다 버리고, 값싸게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계속 데려오면 어느 정도 지대 유지는 됩니다. 어 혹시 이런 걸 추진한 진상의 거인 같은 사람이 있던 거 같은데... 뭐 여기까지만 쓸께요) 어쨌든, 모두가 살기 좋은 평범한 세상이 싫기에, 지주들은 자꾸만 사람들을 끌어들일 대안을 연구하는 것이 지배세력의 유력한 전략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시민이 계속해서 참여하고, 감시하고, 힘을 모아나가며, 목소리를 낼 때, 우리는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 같은 현명한 지도자가 없더라도, 역사를 기억하며, 17만명, 170만명, 1700만명이 개혁을 지지할 역량이 있다면, 그 힘으로 사회는 충분히 바뀔 수 있습니다. 깨어 있는 시민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욕만 해서는 안 됩니다, 면역이 된 기득권은 저절로 변하지 않을테니까요. 참여를 언제나 소중하게 생각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