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Paulo Roberto Falcão

 AS로마, 우리에게는 로마의 왕자 토티가 있는 팀으로 유명한 팀이기도 합니다. 이에 훨씬 앞서서 로마의 왕이라 불리면서 맹활약하던 선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브라질의 명선수인 팔카우입니다. 그의 이야기로 출발.

 프로필

 이름 : Paulo Roberto Falcão (팔카오, 팔카우 로 불리는데.. 지쿠의 예처럼 팔카우로 부르겠습니다.)
 생년월일 : 1953년 10월 16일
 신장/체중 : 183cm / 73kg
 포지션 : MF
 국적 : 브라질
 국가대표 : 36시합 9득점

 로마의 왕, 레전드 팔카우의 이야기

 팔카우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브라질을 대표하는 유명한 선수 중에 한 명입니다. 중원에서 정확한 롱패스를 넣어주는가 하면, 기회를 봐서 강력한 중거리슛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절묘한 패스를 구사하면서 공격진에 다양한 변화를 주는 것을 자랑으로 삼던 지휘자이기도 하지요. 뛰어난 상상력과 탁월한 테크닉을 자랑하던 유명한 선수였습니다.

 브라질의 인테르나시오날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하면서, 브라질 전국선수권 3회 우승을 이끄는 등 매우 훌륭한 활약을 보여줍니다. 78년, 79년 리그최우수선수로 선정되는 등 명성이 높던 팔카우는 1980년 유럽무대로 이적하게 됩니다. 바로 세리에A의 AS로마입니다. 로마에서의 활약은 더욱 놀랍습니다. 41년만에... 1982-83시즌 AS로마의 리그우승을 만들어 냅니다. 게다가 1983-84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승승장구 하면서 거침없이 나아갑니다. AS로마는 결승전까지 올라갑니다. 상대는 당대 잉글랜드의 명문 리버풀이었습니다.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도 승부는 가려지지 않았고, 승부차기 끝에 로마는 아쉽게 패배하고 맙니다. 준우승이었습니다. 하지만 팔카우의 활약과 떠오른 로마의 멋진 모습에 팬들은 열광합니다. 서포터들은 팔카우를 두고 제 8 대 로마왕 이라고 찬사를 보냅니다. (왕정로마시대에 7명의 왕이 있었는데, 팔카우는 이제 8번째 왕이 되어서 로마를 이끌었다는 극찬입니다.) 팔카우는 AS로마의 새시대를 열었던 영웅이었지요. 로마는 그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 2000-2001시즌에 3번째 리그우승을 이룹니다. 이 때의 주인공 토티는 로마의 왕자라는 별명으로 불리었지요. 허허. 요즘에는 다시 힘을 내서, 레알 마드리드를 잡고 챔피언스리그 8강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로마의 왕 팔카우가 이루지 못한 꿈을 토티 왕자가 이루어 낼지도 흥미롭습니다. (로마는 아직 챔스우승이 없습니다. 만에하나지만 다시 한 번 결승에서 리버풀과 로마가 맞붙는다면 세기의 대결이 재현되는 셈이지요. 웃음.) AS로마는 지금도 외국인선수들을 살펴보면, 브라질 국적이 제일 많습니다. 이것도 로마의 왕 팔카우의 영향일까요. 하하.

 국가대표 이야기도 좀 해봐야겠지요. 1976년에 데뷔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통산 36시합? 명성에 뭔가 걸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사연이 있습니다. 공격적 미드필더로 플레이 하던 팔카우와 당대의 또 한 명의 전설인 지쿠는 포지션이 같았기 때문입니다. 지쿠가 대표로 출장하는 날이면, 팔카우는 벤치를 지켜야만 했지요. 하지만 1982년 월드컵에서 팔카우는 중요한 변화를 선택합니다. 바로 볼란치(수비형 미드필더)로 플레이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브라질 대표팀은 마법같은 아름다운 축구를 선보입니다. 지쿠, 소크라테스, 팔카우, 토니뇨 세레조. 이 미드필더 4인방은 황금의 4중주로 불리면서 사람들을 축구예술의 세계로 빠뜨립니다. 아쉽게도, 정말 아쉽게도 이탈리아에게 2-3 으로 패하면서 우승을 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이 때의 브라질 팀은 지금도 사람들이 기억하는 전설적인 팀이었습니다.

 팔카우는 탁월한 전술안을 가지고 있었으며, 유명한 소크라테스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는 훌륭한 선수였습니다. 팔카우는 달리는 지휘관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현역 은퇴 후에는 누구나 명감독이 될 선수라고 손꼽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명성과 실력이 출중했던 명미드필더 였습니다.

 이제는 감독으로서의 이야기입니다. 현역 은퇴 후, 1991년 브라질 국가대표 감독으로 선정됩니다. 30대에 브라질 국가대표팀의 감독일 정도니, 팔카우의 명성과 팔카우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아직 어렸던 카푸 등의 신예 선수들을 이끌고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이끌지만, 역시 높은 기대는 부메랑처럼 때로는 자신의 뒤를 치기도 하는데 준우승임에도 불구하고 우승을 못했기에 끝내 해임되고 맙니다 (ㅡㅜ...)

 1994년 뜻밖에 일본대표감독으로 취임하게 됩니다. 일본 현지에서도 예상 외의 결정이었는데, 당시 후보에 속해있던 다른 감독들과 계약이 결렬되자, 차선책으로 팔카우 감독이 선임되었다고 합니다. 팔카우 감독은 미래를 생각하며 어린 신예선수들을 다시 대거 중용합니다. 대표적으로는 당시 오쿠라(小倉隆史)선수나 마에조노(前園真聖)선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팔카우 감독의 장기적 계획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강호 프랑스에게 참패하고, 그리고 얼마 후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상대국가가 누구일까요. 감이 슬슬 오시는가요.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1994년 히로시마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에서 일본대표팀이 한국에게 패한 것입니다. 8강전에서 2-3으로 장렬하게 역전패 당하고 맙니다. 홈에서 라이벌 한국에게 패한 일본대표팀. 여론은 불같이 일어났고, 팔카우 감독은 또 한 번 해임을 맛보게 됩니다. 그 후에도 팔카우 감독은 브라질의 인테르나시오날을 지휘하기도 했지만, 좋은 성적을 남기지 못했고, 명선수로 평가받던 선수시절과는 달리 감독으로서는 범장(평범한감독)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감독도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지요. 선수로 아무리 대성해도, 감독으로까지 성공하기란 생각보다는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팔카우는 그 대표적인 예중에 한 명이지요.

 선수로서는 누구보다 뛰어난 선수 중에 한 명이었지만, 감독으로서는 여러가지로 아쉬웠다. 그것이 팔카우를 요약하는 필자의 생각입니다. 어쨌든 쓰라린 감독시절을 빼고 선수로 놓고서만 본다면 그는 로마의 왕이라 불렸을 만큼의 명성과 실력을 겸비한 훌륭한 명지휘관이었습니다. 강호 레알 마드리드를 물리치고 챔피언스리그 8강까지 올라간 AS로마. 로마의 왕 팔카우의 못다한 꿈을 이룰 수 있을 지. 한 번 지켜봐야겠네요. 이상으로 글을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by 시북 2008.03.14 08:40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