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조선의 신분제 - 양천제와 반상제

시북(허지수) 2013. 5. 21. 23:53

 조선은 아직까지는 신분제 사회였습니다. 15세기에 규정된 양천제, 이것이 경국대전(법전)에 명문화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법적으로는, 사람들을 양인과 천민으로 신분을 나누었습니다. 양인의 권리는 과거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고요. 다시 말해, 법적으로는 농민의 아들도 얼마든지 일단은 "출세의 길이 있기는 있었다"는 겁니다. 권리가 있으면 의무도 따르겠죠. 의무는 조세, 공납, 역이 있고요. 생각해 볼 것은, 왜 일반 농민들이 과거시험을 칠 수 있었는가 하니, 법적으로는 권리가 보장받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천민의 경우, 권리 자체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의무도 없긴 한데, 실제로 천민의 삶이란, 국가와 주인에게 그야말로 시달리면서 살아야 했지요. 여기까지가 양천제의 기본개념니다. 법적으로 갑오개혁을 통해 신분제가 폐지될 때까지, 양천제는 명문화 되어서 쭉~ 갑니다. 그런데 현실은 법과는 다르게 작동될 때가 있습니다. 질문을 던져볼만 합니다. 과연 농민의 아들이 고위 관료가 된 적이 있던가? 사실상 아니라는 거지요. 따라서 좀 더 파고들어가서, 현실적으로 신분제가 어떻게 작동되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반상제" 였습니다. 반상제는 무엇인가 하니, 양반이 있고, 중인있고, 상민이 있고, 천민이 있다 입니다. 이 4계급에서, 양반과 중인은 지배층이고, 상민과 천민은 피지배층이 되는거지요. 한글자씩 따와서, 지배층의 '반'과 피지배층의 '상'을 가져와 우리는 반상제 라고 부르는 거지요.

 

 잘 살고, 잘 나가던~ 양반에는, 문반과 무반이 있겠고요. 둘을 합쳐서 양반으로 부릅니다. 즉 관료들을 양반으로 분류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관료의 식구들까지도 양반으로 부르게 되고요. 조선 사회는 관료제로 운영되었으므로, 충분한 실력이 중요했고, 과거시험이 아주 중시되었던 겁니다. 초기에는 양반의 숫자가 많지 않았고, 아무나 양반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경제적으로는 지주였습니다. 생산에 직접적으로 종사하지 않았지요. 사회적으로는 역을 면제받는다는 엄청난 혜택이 있었습니다. 이 특권의 근거는, 관료가 국가를 위해서 일하는 그 자체를 "역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힘든 군역을 면제해 주었던 겁니다. (※훗날 대원군의 호포법으로 역에 대한 양반 특권이 개혁되는데, 당연히 양반들의 거센 반발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 계급, 중인은 하급관리를 말하며, 직역을 세습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군인이면 나도 군인, 향리라면 나도 향리 라는 식이지요. 꼭 기억해야 하는게 있다면, "서얼" 입니다. 첩의 자식을 서얼이라고 하는데요. 서자(양민아내의 자식)와 얼자(천민아내의 자식)를 간단히 서얼로 통칭하는 거지요. 중요한건 서얼들은 (재혼녀의 자식과 더불어) 문과 응시를 할 수 없었고요.

 

 서얼 차별 같은 대목을, 글자로만 파악하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여기에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맨 처음 살펴보았던, 양천제가 법적으로 정확히 작동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과거를 통해서 양반이 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지배층의 숫자가 커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다면, 기득권 집단이 좋아할리가 없습니다. 열매는 우리끼리만 많이 먹어야 하는 잘난 욕심을 어떻게 주체하겠어요. 그래서 기득권은, 다수가 지배층으로 진입하려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아버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음, 사실 (대다수의 농민을 포함한) 피지배층 상민(※멸시의 의미로 상놈이라고도 했지요)들은 먹고 살기가 워낙 빠듯하고 힘들었기 때문에, 과거에 도전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지배층의 입장에서는 상민은 무시하면 그만이고, 관심밖이었지요. 실질적인 양반의 라이벌은 중인 집단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기득권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중인 집단이 성장할 배경과 기반을 무너뜨리는 겁니다. 예를 들면, 혈통에 문제 있는 서얼이라며, 문과 응시를 막아버립니다. 남성 중심의 사회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재혼녀의 자식도 응시를 막아버립니다. 심지어 향촌의 중인들 자제들이 자꾸 과거에 도전하자, 지배층은 묘안을 만들며, 이들이 한꺼번에 응시하지 못하도록 자꾸 제한을 걸어버립니다.

 

 결론적으로 냉정히 보면, 법적으로는 신분상승의 길이 열려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상민의 아들은 과거를 통과하는게 불가능에 가까웠고, 중인의 아들들 역시 다양한 벽에 가로 막히며 신분상승이 쉽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도 못했다는 서얼의 절규는 유명하잖아요. 여성의 지위는 오히려 고려 시대보다 못했고요.) 차별은 여전히 차갑게 존재했으며, 조선 지배층이 만들어 놓은 신분제의 실제 작동 모습은, 갑갑하게 철벽처럼 구축되어 있는, 소수 양반들의 특권 시스템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상민들은 농, 공, 상을 말하는 건데요. 다수는 농민입니다. 양민이나 평민으로도 불렸고요. 한편, 신량역천이라는 안타까운 계층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신분은 양인인데, 하는 일은 천민들이 하는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수군, 역졸, 봉수군 들을 말합니다. 특이하기 때문에 시험에도 종종 나옵니다.

 

 천민의 경우, 역시 대다수는 노비입니다. 또한 일천즉천이라고 해서, 부모 중 한 쪽이 천민이면, 자식도 천민이라는 것은 고려시대와 같습니다. 무엇보다 시험의 완전단골이 있으니, 조선은 "백정이 천민"이라는 것을 기억해두면 좋습니다. 조선의 백정은 도살업자를 의미합니다. (반면, 고려에서 백정이라는 명칭은 "일반 농민"입니다!)

 

 덧붙여, 조선후기가 되면 신분제의 동요가 일어납니다. 대표적으로 양반숫자가 급격하게 증가합니다. 조선전기의 7%였던 양반이 80%까지 늘어납니다. 이제 거의 모든 사람이 양반집 자식이 되는거지요. 상민과 노비의 수는 감소하고요. 이러한 계기와 자세한 내용들은 조선후기에서 또 정리될테고요. 문제도 명확했습니다. 나중에 이렇게 양반만 대폭 늘어나고, 세금 내는 상민이 없어지자, 대원군이 호포법이라는 강력한 개혁을 들고 나오는거지요. 결국 흔들리던 신분제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법적폐지 되는 운명"을 맞이합니다.

 

 여기까지 신분제 관련 복습겸 개념정리를 해보면, 신분과 실력의 대결! 그 흐름을 살펴봅니다. 고대에는 당연히 신분이 중시됩니다. 신분이 결정적으로 중시되는데, 대표적인게 골품제 있겠지요. 신라 같은 나라에서는 실력도 사실상 필요없고, 6두품 집안들은 뭘해도 안 되어 속상한 나머지 산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뭐 그런 사회. 조금 더 나아가 중세 고려로 오면, 조금은 실력을 중시하기 시작합니다. 고려 광종 때, 과거제가 도입되었으니까요. 그러나 여전히 음서제가 있어서, 귀족은 저절로 관직을 차지했고, 공음전으로 경제적 문제도 해결되었으니까, 고려까지도 신분이 더 중시되었습니다. 다른 말로 고려는 귀족제에 보다 가깝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근세 조선으로 넘어오면, 여전히 신분제가 작동되나, 마침내 실력을 더 중시하게 됩니다. 문음이라고 해서 신분에 따른 혜택이 있었지만, 고위관직에 오르려면 반드시 과거라는 과정 을 거쳐야만 했지요. 현재에는 사회적 신분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고시 같은 경우는 누구 아들인지 같은 신분 보다는 절대적으로 "실력"이 중요할 뿐이지요. (물론, 현실적으로 고시에 도전하려면 부모님의 많은 지원이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흐름들을 살펴보면, 현재에는 제도적으로는 누구나에게 열려 있으며, 고위관직 진출을 막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해보면 좋겠습니다. 즉, "역사는 전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겠고요. (아래부터는 여담입니다!)

 

 오늘의 영감 - 돌아보면 차별이 당연시 되는 사회가 있고, 차별을 금지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사회가 있습니다. 또한 소수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사회가 있으며, 모두에게 고른 혜택을 주는 사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러가지 역사적 사례를 통해서, 인간을 가만히 놔두면 "괴물"처럼 변할 수 있음을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시스템을 만들고, 제대로 작동되어 가도록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렇게 권력 및 기득권과 싸워온 결과, 마침내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고, 권력을 교체할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기득권의 본질은 변했을까요? 저는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진입장벽을 세우고, 우리끼리만 잘 지낼 수 있도록, 각종 시스템에 막강한 로비를 가할 것입니다. 그렇게 몇몇 세력이 완전히 장악 하는데 성공하면, 입맛대로 힘을 휘두르면서, 진실을 왜곡하며, 심지어 역사까지도 손대기 시작할 것입니다. 제발 좀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힘없는 사람에게, 차라리 망해버리라고 폭언도 서슴치 않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사실상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관심 밖이며, "우리를 얼마나 위협하는 세력이 있는가"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권력에 비판적인 사람들 부터 손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는 절대 권력이 절대 부패한다는 명제를 반드시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말로, 부패와 싸워나간다는 것은, 권력과 싸워나간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쉽지야 않겠지만, 인간이 긴 싸움을 통해 사회적 신분을 없애왔다면, 앞으로는 긴 싸움을 통해서 부패와 결탁한 세력과 싸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자의 사회를 만들 것인가, 시민의 사회를 만들 것인가. 사람 사는 살기 좋은 세상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무임승차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게 무엇일까요? 저마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한다면, 저마다 참여를 고민하고 투표를 소중히 생각한다면, 변화는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얼마만큼 권력을 견제할 수 있으며, 권력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 이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