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조선의 사회제도와 법률제도 탐구

시북(허지수) 2013. 5. 23. 23:48

 사회제도에서 비중이 큰 것은 농민입니다. 농민은 국가의 "근본"이라고 불리니까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인구가 가장 많고요, 무엇보다 농민은 국가에 조세, 공납, 역을 제공하기 때문에, 사실상 국가 재정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농민들은 사족(양반이나 선비)에게 지대를 내기도 합니다. 즉 지배층의 경제적 기반을 제공하는 농민들이었습니다. 생각해 볼 것은 "민본주의"라는 조선사회의 구호입니다. 이건 민주주의와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가령 오늘날은 민주주의로 운영되는데, 헌법 1조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능동적인 개념이지요. 그런데 성리학의 민본주의라는 것은, 백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다루며, 이들을 국가가 책임지고 보살핀다는 개념에 가깝습니다. 예컨대 양반이 부모라면, 농민들은 돌봐줘야할 자식이라는 느낌이지요. 나름대로 돌보는 정책들이 몇몇 있습니다. 농민이 무너지면 절대로 안 되니까요. (농민이 기득권의 경제적 기반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농민 안정화 정책들이 있는데요. 먼저 구휼제도부터 살펴봅시다. 첫째로, 국가주도의 구휼인 환곡이 있습니다. 의창과 상평창이 대표적입니다. 예로부터 구휼제도가 그렇듯이 춘대추납의 형식으로 봄에 빌려서, 가을에 되갚는다는 개념입니다. 한편 의창은 처음에 이자를 받지 않고 빌려주었는데, 아무래도 운영상의 어려움이 있다보니, 상평창에서는 이자를 어느 정도 받기 시작합니다. 안타깝게도, 빌려주면서 이자를 받는다는게 변질되어가는데, 이러한 환곡은 조선 중기부터 점점 변질되어서, 마치 준조세화 현상이 일어났고, 부패 관리의 이자놀이도구로 추락합니다. (이러다보니 훗날 대원군이 국가 환곡을 → 민간의 사창으로 전환시키는 개혁을 시도합니다.)

 

 아, 사창이 뭐냐하면, 민간(향촌의 양반)이 주도하는 구휼 제도 입니다. 정말 힘든 상황의 농민들이, 도망가거나 죽거나 한다면 결국 국가도 손해고, 양반도 손해 아닙니까. 최소한의 농민 생활을 보장함으로서, 기득권이 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거고요. 이런 시스템은 현재에도 있습니다. 오늘날도 국가는 가장 힘든 사람들에게 기초적 생활을 지원하면서,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는데, 옛날 조선에도 거의 마찬가지였다는 거지요. 실패한 사람들이 사회 안전망이 없이 추락해 버리면, 곧바로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건 정말 국가적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문제가 심각해서, 반드시 대책을 고민해 봐야 합니다. (한국이 자살공화국이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사회안전망이 없고, 살벌한 경쟁이 장려되고, 재기하기 어렵다는 이야기 입니다.)

 

 조선의 의료시설로는 동서대비원(병원)과 혜민국(약국)이 있었고요. 지방은 제생원이 있었습니다. 환자를 구제하는 역할을 했지요. 덧붙여, 동서활인서가 있었는데, 떠돌아다니는 유망민을 관리하기도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홈리스로 막막한 사람들이 있다는건 변함없네요;;; 사람 사는 모습들이 시간이 흐른다고 엄청나게 바뀐 건 아닙니다. 먹고 살기 쉽지 않다는 것, 평범한 밥벌이와 가정을 이루는 것도 오늘날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꿈이 되었을 만큼, 사람 사는 모습은 본질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은건지도 모릅니다.

 

 농민 안정책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상당히 안쓰러워 보이지만, 농민 통제정책도 있습니다. 국가차원에서는 오가작통제를 통해 농민을 서로 감시하며 도망치지 못하게 만듭니다. 다섯 가구를 한 통으로 묶어서, 도망치면 책임을 모두에게 지게 하는거지요. 또한 면리제를 통해, 향촌사회를 세밀화시켜서 관리 하고, 끊임없이 감시합니다. 쉽게 말해 계속 안정적으로 농사지으면서, 세금을 내라는 거지요.

 

 그리고 호패법이 있습니다. 호패에는 사는 지역이 적혀 있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다른 지역에서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음, 오늘날도 주민등록번호에 많은 정보가 담기기 때문에, 빅브라더 같은 권력자가 마음대로 조사한다는 위험성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민번, 민증이 편리한건 사실이지만, 편리한게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 활용되는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좋겠네요.

 

 역사라는게 수백년 뒤에 봤을 때, 우리 역시도 냉혹한 평가를 받을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가 조선의 호패법을 보면서, "농민통제정책"이라고 바로 못박으면서 부정적으로 바라보듯이,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은 지금 한국사회의 어떤 모습들을, 특히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을까요. 제가 몇가지 적나라한 예를 생각해 본다면, 자본이 문어발을 넘어, 거의 지네발 처럼 사회의 모든 영역에 침투하면서 왕노릇 하는 행태에 관해서, 그리고 정치와 경제가 손잡고 부패하면 얼마나 사람들이 힘들어 했는지를 후대 역사가들이 맹비난하지 않을까 우려합니다. (지난 번 살펴본 문서처럼 법과 현실이 다르게 작동한다면) 현재 사회가 법적으로는 발전된 민주주의 였지만, 현실에서 작동하는 것은 돈과 외모와 건강을 숭배하는, 물신주의 였다고 꼬집으면, 얼마나 참담한지요... 에너지 위기 앞에서 끝까지 소수가 쓰는 가정용 요금만 올리고, 대다수의 산업용 요금을 더 싸게 유지시키는 모습을 보면, 국가가 상당히 기업에게 유리하게 작동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우리는 조선의 부정적인 모습을 쉽게 비판할 수 있지만, 우리 후손 역시 오늘날 이상한 모습들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이야기 였습니다 :)

 

 어쨌든 다시 조선의 상황으로 돌아오면, 사족(지방 양반들)은 향약(일종의 약속)을 통해서 농민들을 통제합니다. 상부상조니 말들은 좋지만, 어쨌든 통제정책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그럴싸한 말이 아니라, 실제로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유심히 관찰하는 태도가 중요하겠고요.

 

 이제 조선의 법률제도를 살펴봅시다. 가장 큰 특징은 사법기관이 행정기관과 일치한다 는 점입니다. 가령 오늘날은 행정과 사법이 명확히 분리되어 있으므로,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시청이나 도청에 가지 않고, 곧바로 법원으로 직행하면 됩니다. 그런데 조선은 거의 말기 (갑오2차개혁) 에야 재판소를 설치하였으므로, 이전까지는 행정기관이 사법업무도 같이 보았다는 겁니다. 이걸 배경으로 참고한다면 좋겠네요.

 

 법률은 경국대전이 있고, 또 대명률(명나라 법전)도 있습니다. 형법에 관해서는 대명률을 참조했는데, 정말 잔인한 형벌들이 많습니다. 사지를 끌어 당겨서 죽인다거나, 어휴... 너무 잔인하므로 19금! 경국대전은 주로 민법에서 활용되었고요. 음, 조선에도 약간의 관습법 영향이 아직 남아 있긴 하나, 경국대전 처럼 이제는 명문화된 법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도 커다란 변화입니다.

 

 한편, 조선시대에 가장 큰 죄는 무엇일까요? 뭐니 뭐니해도 체제 위협, "역모죄(반역)"입니다. 그리고 강상죄(패륜)도 엄하게 다뤄집니다. 성리학의 나라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지요. 또한 조선에는 연좌제도 있었습니다. 가령 역모죄를 저지르면, 심하게는 삼족을 멸하는 등 관련된 사람과 가문까지도 모두 벌주는 가혹한 제도였지요. 그리고, 조선시대에도 정말 억울한 경우에는 항소가 가능했었습니다.

 

 예외적인 느낌을 주는게 있는데, 신문고가 있어서, 억울한 일이 있으면 북을 쳐서 하소연 하고, 문제를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와 신문고라니, 정말 괜찮은 제도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냉정하게 본다면 실제로 기층민중들이 활용한 경우는 별로 없었습니다. 지방관이 부패했다고 신문고를 쳤다가, 오히려 진실이 밝혀지지 못하면, 역으로 벌받는 씁쓸한 상황도 있었고요. 진실을 조사하는 사람이 상민들 편에 설지, 양반들 편에 설지 어느 정도 뻔하니까요. 팔은 안으로 굽기 쉬워서, 양반은 아무래도 양반편이 되기 마련이었지요. 즉 신분제도를 감안해서 비판적으로 바라본다면, 신문고는 초기의 잠깐을 제외하면 과시용, 장식용 제도 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참, 지금은 국민신문고가 정말 잘 되어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건의하면, 기관으로 반드시 의견이 들어가도록 제도화 되어 있습니다. 부패행위를 못 참겠다 싶으면, 국민 신문고 잊지 마세요! 주소도 쉬워요. epeople.go.kr 음, 어쩐지 홍보하는거 같은데, 좋은 제도는 많은 사람이 알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서, 조선의 법률기관을 살펴보면 되는데, 헐, 이번 문서도 어김없이 분량이 너무 길어져서, 잠깐 쉬고, 다음 문서에서 정리를 계속해야 겠습니다. 오늘은 간단히, 이번 문서는 여기까지.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