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주먹이 운다 (Crying Fist, 2005) 리뷰

시북(허지수) 2013. 5. 27. 20:39

 최근 본 글귀 중에서 기억에 남아있는 게 있습니다. 경쟁사회에서 정상에 도달하기란 정말로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갖은 고생 끝에 일단 정상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를 사수해 내는 것은 더욱 어려운 법이다. 한편 비극적이게도, 결국 정상의 자리에서 뒤쳐지기 시작하면, 다시 힘을 내어 과거의 영광인 정상 탈환을 한다는 것은 너무너무 어려운 일이다. 아이구 표현이 좀 어렵나요. 축구로 예를 들어본다면 우리나라 혹은 터키가 다시 월드컵 4강, 한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축구의 전설을 경험하기란 지독히 힘든 일입니다. 한 때 강호였던 폴란드만 해도 마지막으로 4강을 경험한 1982년 이후, 좀처럼 영광은 재현되지 못했고, 2014년에도 터키와 폴란드를 월드컵에서 보기란 힘들 것입니다. 사람의 인생도 비슷한 측면이 있어서, 좋은 날은 금방 지나가고, 어쩐지 버거운 날들은 잔뜩 있는 듯한 울적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오늘 살펴볼 영화 주먹이 운다에서는 두 남자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공부와는 담쌓고 건달로 살면서, 밝은 날은 경험해 보지 않은 것만 같은 남자 상환군, 그리고 한 때 잘나갔던 은메달리스트인 중년 태식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리고 태식은 장황하게 길었던 서론에서처럼, 젋은 날의 은메달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인생의 정상을 밟아보지 못하고, 두들겨 맞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은 인생이란 왜 이리 긴지...

 

 

 태식은 젊은 시절에는 반짝 알아주던 복싱선수 였지만, 대게 그렇듯이 지금은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추락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배운 것은 제대로 없고, 기술을 가진 것도 없고, 가진 게 몸 뿐이라서, 사람들에게 거의 "몸으로 때우면서" 살아가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행복? 그런 건 모르겠습니다. 잊어버린지 오래입니다. 어쩌면 태식에게 가장 큰 문제는 "삶의 목표"가 사라졌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한편 상환군은 애시당초 삶의 목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불행한 소년 입니다. 왜 사는지도 모르겠고, 주먹질이 예사고, 많은 돈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사람을 두들겨 패서까지 돈을 마련하려는 무개념 인생을 살다가 끝내 소년원에 갑니다. 거기에서도 "꼴통"으로 통하다가, 우연찮게 복싱을 배우게 되었고요. 저는 격투기나 복싱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상환에게는 "나도 무엇인가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상당히 정중하게 느껴졌던 것은, 상환이 복싱을 해보려고 하자, 떡실신이 되도록 처참한 패배를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누가봐도 상환군은 싸움과 깡다구(!)에 소질이 있었지만, 이것만으로는 현실에서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연습하고 훈련되었는가, 정신적인 무장이 되었는가, 기초적인 것에 충실했는가, 이런 요소들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적당한 요령이나, 반칙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세계로 넘어왔으니까요. 대대적인 창피를 당하고, 상환은 재도전하려는 열의를 불태웁니다. 이 때부터, 마침내 "지고는 못 사는" 상환군의 진가가 발휘됩니다. 깨지더라도 또 연습하고, 재도전하고, 그렇게 긴 시간을 인내와 벗하며, 대회까지 출전하기에 이릅니다.

 

 복싱 외에도, 상환이 마주한 가족의 현실은 비참합니다. 아버지는 불의의 사고로 떠났고, 할머니마저 상황이 좋지 못합니다. 주변에 열심히 응원해주는 사람이라곤 거의 없습니다. 그런 모든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번에는 기필코 승리를 해서, 할머니께 인사를 하려고 하는 그 마음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순수하다는게 묘한 여운을 안겨줍니다. 좀 더 행복하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성장해 왔다면, 상환군은 "꼴통"인생을 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열심히 한 분야에서 노력해서, 드디어 해냈다는 기쁨을 가족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삶을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삶의 선택권과 자신의 가능성을 박탈당하면서 살아왔던 상환은, 스무살 무렵이 되어서야 "나도 제대로 할 수 있음"을 증명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태식의 이야기로 들어가 봅니다. 생활력이 형편 없는데다가, 아들한테 무식하다며 비난 받은 태식은, 급기야 이혼까지 당하고, 몸에 이어서 마음까지 만신창이가 되어갑니다. 술을 잔뜩 먹고 이웃 가게 사장에게 한탄을 늘어놓는 모습은 처량하기 이를 데 없고요. 그런데 이 우동가게 사장 역시도 만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정확한 한 마디를 툭 하고 던져줍니다. "세상에 사연 있는 사람, 너만 있는게 아니다." 즉 다들 힘들고 괴로운 사연을 안고서 세상을 견디고 살아가고 있음을 정확하게 꼬집어 줍니다. 우리는 "나만 왜 이렇게 힘든걸까" 라고 생각하지만 말고, 이렇게 힘든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힘을 얻을 필요도 있습니다.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참여와 관심과 함께, 스스로에게도 "극복하고 더 앞으로 나가려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 입니다.

 

 가끔 운좋게도 잘먹고 잘사는 사람이 있기는 하겠지만, 대부분은 "나만의 아픈 사연"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사연을 핑계로, 과거를 변명 삼아서, 오늘을 대충 흘러넘기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요? 영화는 그러지 말고, 다시 한 번 링 위에 도전해 보라고 말해줍니다. 태식은 이제 중년이지만,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다시 새로운 인생을 다짐합니다. 열심히 몸을 만들고,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누구보다 진지하게 대회를 준비합니다. 우승을 경험해보는 두 번째 인생을 꿈꾸며 말이지요.

 

 결국 경기의 승패와 대회의 우승여부와 관계 없이, 패기의 상환군이나 중년의 태식, 이들 모두가 삶을 다시 제대로 살아가고 있기에, 행복을 찾아갈 수 있다며, 영화는 훈훈한 응원과 함께 막을 내립니다. 저는 핵심 키워드로 "무엇을 지금 하고 있느냐" 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옛날 타령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장 정신 차려야 합니다. 노력 없는 망상만 하고 있다면 이것 역시 부질 없습니다. 실현 가능성이 있는 목표를 향해서, 지금 열심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만이, 환하게 웃을 수 있다는게 진실이 아닐까요.

 

 저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울증이 증가하고, 웃음이 사라진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요즘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일들이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패에 병들어가는 사회 속에서, 행여 힘없고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보일지라도, 꼭꼭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 아픈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냥 주저 앉아 있지 말기를 바랍니다. 다시 노력을 하고, 다시 열심히 살아간다면, 희망은 거기에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스포츠를 좋아하는데, 정말 자주 나오는 중계 코멘트가 있습니다. "지나간 일은 잊고, 지금 잘해서 만회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잘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저는 영화가 끝나고서도 몇 번이고 되물었습니다. / 2013. 05.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