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스타트렉 더 비기닝 (Star Trek, 2009) 리뷰

시북(허지수) 2013. 5. 30. 23:19

 누구라도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는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취향을 너무 밀고 간다면, 소수만을 위한 영화가 되기 쉽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상업적으로만 찍는다면, 아무런 감흥이 없는 영화가 되버립니다. 그 중간 지점을 절묘하게 포착한 걸작 SF영화가 있으니, 스타 트렉의 새로운 극장판이라 할 수 있는, "스타 트렉 더 비기닝" 입니다. J.J. 에이브람스 감독은 이 새로운 신극장판에 관하여 "팬이 아니더라도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고 말합니다. 저 같은 사람이야 SF 영화를 참 좋아하지만, 이렇게 매력적인 내용이라면,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보아도 짜릿할 듯 합니다. 블록버스터 답게 제작비만 1억5천만 달러가 들어갔고, 영상미와 사운드도 일품입니다. 인류의 마지막 미개척지라는 우주의 아름다움은 참 근사합니다.

 

 기본적인 테마는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도전과 모험영화" 이며, 시간 여행, 공간 이동, 블랙홀의 마력까지 다채로운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처음부터 압도적인 스케일로 시작해 놓고서도, 지루할 틈을 별로 주지 않은채로 두 시간을 끌고 간다는게 놀라웠습니다. 커크와 스팍의 불꽃튀는 우정도 유쾌하고 감동적이고요. 서론부터 저는 이 작품에 별점 5개 만점을 주고, 세세한 리뷰를 시작해 봅니다. 올해 개봉하는 스타트랙 다크니스도 조만간 보러 가야겠고요. 하하.

 

 

 미래를 긍정적으로 그리며, 얼마든지 우주를 누비면서, 외계와도 접촉하며, 적극적으로 싸워나갈 수 있음을 스타트렉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커크의 출생과,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이 강렬히 교차됩니다. 캡틴(함장)과 커맨더(부함장)가 차례로 책임을 완수하면서, 결단하는 장면은 장엄하면서도, 지도자의 모범을 멋지게 보여줍니다. 이들의 탁월한 선택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흘러, 우여곡절 끝에 태어난 생명 커크는 질주하는 소년기를 거쳐서, 여인에게 작업(!)걸기 전문의 "방황하는 청년"으로 성장했지요. 다행히, 커크의 인생은 "우주를 향한 훈련"을 거치면서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자신과 딱 어울리는 "운명"이라는게 정말 있기는 있나 봅니다. 커크의 막장 인생 - 일단 저지르고 보는 성격과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품에 안고서, 과연 커크는 훈련과정을 제대로 완수할 수 있을지... 본격적으로 들어갑니다. 본편으로 워~프 스타트!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아니나 다를까, 조기졸업 하겠다며 호기롭게 우기던 커크는, 복잡하고 중요한 "함장 시뮬레이션 시험"에서 반칙을 이용하면서, 가볍게 시험을 통과해 버립니다. 이 엄격한 시뮬레이션 시험은, 사실상 모든 사람이 떨어지게끔 고안되었던 혹독한 과정이었는데, 커크는 이런 짜증나는(!) 시험 자체가 "반칙"이라며, 시스템을 과감하게 뒤흔들어 버립니다.

 

 그리하여 문제아 커크와 천재 출제위원 "스팍"은, 운명의 만남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한 쪽은 매사 뜨겁고, 폭발하는 감성으로 저지르는 타입이라면, 스팍의 경우 논리를 철저하게 중시하고, 차분하며 절제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자석의 빨강과 파랑처럼 정말 대비되는 상극이지요.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서로 상극이기 때문에, 서로 발을 맞춰가면서 일들을 척척 해나갈 수 있습니다.

 

 새로운 엔터프라이즈호를 생각해봐도 그렇습니다. 저마다 역할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고, 잘하는 분야가 다들 다릅니다. 이렇게 서로 재능을 모으고, 각자가 역할을 충실하게 해낼 때, 어려운 임무들이 완수될 수 있었지요. 이 팽팽한 협동감이야 말로, 인류가 지금까지 멋진 일들을 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닐까요. 악당 네로가 삐뚤어진 독재자의 모습이라면, 엔터프라이즈호는 서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나눠서 모두의 역할이 있다는 점이 참 인상적이었네요.

 

 우여곡절 끝에, 커크는 (이번에도 거의 반칙 비슷하게) 엔터프라이즈호에 탑승하지만, 여전히 "찬밥" 신세임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무엇인가 직감적으로 우리가 지금 "적의 함정"으로 뛰어들어가고 있음을 간파하고, 곧바로 스팍에게 총알처럼 달려갑니다. 커크는 "직언하는 과감성"을 갖추고 있었네요. 더욱 놀랍게도 스팍은 "진지하게 들을 줄 아는 리더"의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합리적 의견이라고 판단되자, 곧바로 대책이 마련됩니다. 과거 커크네 아버지가 악당 네로에게 무참히 당했던 것처럼, 이제 25년이나 흘러서 또 똑같이 당할 수는 없잖아요. 이번에야 말로 네로를 박살내고, 당당히 귀환해야 할터인데, 중요한건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술력으로는 오히려 밀리는 판국이기도 하고요. 공중에서 파괴적인 열을 발사하는 굉장한 드릴에, 블랙홀 시약까지 갖추고 있는 네로의 함선은 굉장합니다!

 

 한편 잠시 생각해 본다면, "악당 네로의 입장"이라는 것도 얽혀 있다보니 영화는 더욱 흥미로운 구도로 전개됩니다. 네로는 지금 분노로 가득차 있습니다. 흡사 쓸개를 핥으면서 복수의 그 날을 다짐하는, 와신상담 정신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네로는 거침없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합니다. 스팍이 부득이하게 일처리를 잘못해서, 자신의 행성이 통채로 날아갔다는 근거 있는 주장을 날리니까요.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행복한 일상을 누릴 수 없게 되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복수 뿐이라는 네로의 이야기도 사실은 설득력이 좋습니다. 여기서 저는 갑자기 질문이 생각나더군요. 냉정한 스팍의 어쩔 수 없는 판단으로 인해서 누군가는 희생되었고, 누군가는 살아남았다면, 과연 "살아남은 자 → 네로가 스팍의 결단을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입니다. 아무래도 종족이 달라서 우리가 희생되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모든 것을 삼켜버릴 슈퍼 노바가 우주에 발생했기 때문에, 그 파괴속도는 최선의 경우라도, 모든 행성을 지킬 수 없었다는 "스팍의 고뇌와 결단"은 이렇게 볼 때 무거울 수 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엔터프라이즈호는 네로의 분노를 이겨내지 못합니다. 노련한 함장은 포로로 사로잡히고, 스팍의 고향별은 처참하게 우주의 먼지로 사라져갑니다. 네로의 분노는 또 다른 절망을 낳았고, 이제 지구마저도 절명의 위기 앞에 놓이게 됩니다. 놀랍게도 이런 위기 속에서 번뜩이는 영감으로 해결책을 찾은 것은 고작 열일곱의 영어까지도 어눌한, 러시아 천재소년 입니다.

 

 이런 하나 하나의 장면들이 참 반짝반짝 빛나는 영화입니다. 그토록 고도화된 기계를 의지하고 있지만, 정작 의사결정 문제에서나,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인간의 의지와 결단이 들어갑니다. 간단히 줄이면, "그래서 갈꺼냐? 아니면 포기할꺼냐?" 입니다. 답은 당연히 도전하는 거지요. 하워드의 선물이라는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인생의 마지막 장면에서 시작하기" 그러므로, 끝을 알고 있는 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등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지금 즉시 변화를 향해 행동한다는 의미 입니다. 이들은 성공확률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 손놓고 있으면 결국 끝장나는 장면을 또 한 번 보게 된다는 것만을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간단해 지네요. "태양계로 워프! 지.금.즉.시. 그리고, 네로와 직접 맞짱 뜨면서 싸울 사람은 나와 같이 가자!" 그렇게 언제나 리더들 (이를테면 커크와 스팍) 이 앞장서서 위험 속으로 뛰어들어갑니다. 아~ 두근두근!

 

 전반적으로 희망이 담겨 있는 작품 답게, 마지막까지도 깨끗하게 정리됩니다. 네로는 최후의 순간을 맞이했고, 끝까지 결사항전을 주장하며, 도움의 손길을 거부합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버티다 우주의 블랙홀 속으로 사라져 갑니다. 저는 (악당인데도!) 약간의 동정심(?)이 들긴 하더라고요. 사랑하는 아내 없는 평화로운 우주에서 살 바에야, 차라리 우주의 먼지가 되겠다는 결연함 만큼은, 악당 치고는 괜찮은 프라이드 였고요. 그러고보면 이 영화에는 "찌질한" 사람이 없습니다. 악당부터 시작해서, 주연과 조연들까지 저마다 인상적이게 활약하는 장면들로 가득합니다. 한국계 배우 존 조의 진지한 "펜싱" 개그를 비롯해서 말이지요. 하하.

 

 개인적으로 참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면 - 엔터프라이즈호는 철두철미한 스팍이 "감정조절에 실패"하면서, 함장 권한을 마침내 "커크"에게 사실상 넘겨줍니다. 스팍은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고 곧바로 사퇴를 표시하더군요. 여러 번 멋지게 보이던 스팍이 얻은 귀중한 교훈은, 자신이 마음가는대로 행동하는 게 "나쁜 태도"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논리와 감성이 충돌할 때, 논리만 따라서는 오히려 행복함과 유쾌함이 찾아올 수 없음을 암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정교한 기계와 컴퓨터가 차가운 논리의 영역이라면, 감성충만하고, 총기와 영감이 넘치는 따스한 모습은 인간의 영역 아니겠어요. 시스템에서 벗어나서 행동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커크라면, 그를 이제 캡틴으로 부르며 천재적 비범함을 보여주는 스팍의 조합이, 그 어떤 콤비보다도 강력할 것 같습니다.

 

 이제 새로운 이 명콤비는, 우주를 향해서 새로운 모험을 떠나며 영화는 마무리 됩니다. 우리의 삶 또한 이런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이 꿈꾸던 일을 향해서 도전하고 마침내 성공적으로 일을 해낸다면, 또 다른 미지의 영역을 향해서 전진하는 모습 말이에요.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또 다시 개척을 향해 행동하는 정신 말이에요. 어쩌면, 어떤 사람들은 어차피 사람 사는게 다 비슷할꺼고, 그래봐야 얼마만큼 더 가겠느냐고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헬렌 켈러의 긍정성이 생각납니다. "어떤 비관론자도 / 별의 비밀을 발견하거나 / 미지의 섬으로 항해하거나 / 인간 정신의 새로운 낙원을 연 적이 없다."

 

 결국 멋진 세계는 희망을 품에 안은 사람들에 의해, 열어젖히게 되는 겁니다. 시스템에 종속되기를 거부하고, 고정된 가치관에 의문을 던지며, 혹여 이성으로 비관할지라도 의지로 밀어붙여서 낙관적으로 전진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삶에서 무엇인가를 이루고 싶어집니까?" 그렇다면, 더 열심히 걸어가면 됩니다. 그리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내가 이루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지금부터 당장 고민해 보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생각한 그 흔적만큼, 성장해 나갈테니까요. / 2013. 05.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