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스타트렉 다크니스 (Star Trek Into Darkness, 2013) 리뷰

시북(허지수) 2013. 6. 2. 23:56

 4년만에 다시 만나는 스타트렉 신극장판 두 번째 이야기, 다크니스편 입니다. 제작비만 거의 2억 달러에 가까운, 호화 블록버스터 영화인데, 극장에서 보길 정말 잘했다 싶었습니다. SF영화로서는 이번 작품 역시도, 수준 높은 완성도와 긴장감을 자랑하고 있으며, 매력적인 인물들과 정교한 스토리라인도 일품입니다. 캡틴 커크가 이끄는 이번 우주 여행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 볼 것인가! 그 화려한 세계로 출발합니다.

 

 존재감이 대단한 인물인, 벌칸스타일 "스팍"은 영화 시작부터 "결단이 무엇이며 룰을 지킨다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줍니다. 오늘도 논리와 시스템을 중요하게 여기며, 원칙대로 살아가며, 거짓말은 하지 않는, 그럼에도 묘하게 빠져드는 이 남자 스팍! 그리고 목숨보다 원칙을 중시하는 스팍의 결정이 못마땅한 커크의 파격적인 행동들을 보는 즐거움이 참 멋집니다. 무엇보다 책임지는 자리에 있으면서, 가장 먼저 위험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심지어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까지 듭니다. 이번 작품의 숨겨진 테마는 "동료애" 라고 봐도 좋을 듯 하고요.

 

 

 영화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대략 2200년대의 런던 폭발 사건을 중심으로 빠른 템포로 전개되어 나갑니다. 조직을 불신하며, 스스로 배신자가 되어서, 무자비한 테러를 자행한 인물, "존 해리슨" 거기에 얽혀있는 복잡한 사연들이 하나씩 풀려나가면서, 점차 우리는 존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아주 강력한 질문을 던지게 만들지요. "뛰어난 인간을 도구화 시켜서, 그것을 손에 쥐고 마음대로 이용하려는 것이야 말로 정말 질 나쁜 거 아니냐? 자유를 박탈당한 삶을 살아왔으니, 그 대가를 여기서 치르겠다!"는 해리슨의 결의는 엄청나고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역시 스타트렉은 찌질한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개성이 있고, 역할이 있으며, 이른바 "행위의 명분"이 선명합니다. 웅장한 엔터프라이즈호를 우선 생각해 본다면, 이 곳에서는, 뜻이 다르다면 억지로 따르지 않으며, 과감히 함선에서 내리기도 하는 등 각 개인의 선택이 존중되며, 리더의 자리 역시도 상황에 따라서 다양한 사람들이 번갈아 가면서 맡습니다. 누구라도 직언을 할 수 있고 선택의 자유가 존재합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지게 하도록 작동하되, 강요하지 않는 모습이 정말 훌륭합니다.

 

 혼자서도 일당백 정도는 거뜬한 악당 존 해리슨은, 우여곡절 끝에, 엔터프라이즈호에 잡히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본격적인 딜레마 속으로 빠져들어갑니다. 존 해리슨은 자신의 입장을 호소하기 시작합니다. 아주 냉정하면서도 핵심적으로 접근해 들어가지요. 양심이 있다면 한 번 생각해 보라고, 관객에게까지 말을 거는 기분입니다. 기억나는대로 느낌을 살려보면, "이보게 커크, 나는 유전자 공학으로 태어난 일종의 우월한 인간이지, 그래서 뛰어난 능력과 기술이 있었다고, 그런데 결국 이런 나를 협박하고 이용하고, 잔인한 행동을 계속해서 했던 상사가 있다고, 그게 누구냐고? 당신 위에 있는 사령부 그 분이라고. 나는 복수를 선택했던 것 뿐이야."

 

 저는 놀라울 만큼 "섬뜩한 기분"이 들었는데, 요즘 유행하는 말로 존 해리슨이 느낀 "을의 서글픔"이 상당히 이해되고 공감되었기 때문입니다. 절제된 극도의 분노감이 표현되는데,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사랑하는 동료를 미끼로 협박당한 내 모습을 바라보라고 권하는 태도는 강렬함 그 자체 입니다.

 

 살다보면 이런 경험을 해볼 때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들어올 때는, "너에게 기대를 건다" 라는 태도였다가, 막상 힘든 일이 떨어지면 "똑바로 안하냐고, 온갖 비난과 인신공격까지 들어오는" 태도. 나중에는 "나갈 때는 마음대로 못 나간다" 라면서, 끝까지 붙잡으면서 자신의 입장만을 고수하려는 상하관계의 불편함 혹은 메스꺼움. 원칙을 중시하는 스팍은 저런 악당의 이야기는 들어볼 필요도 없다며 일갈하지만, 정작 반항아 기질이 깔려 있는 캡틴 커크는 존 해리슨의 이야기를 좀처럼 외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잠시 뒤, 지구사령부의 절대권력이 워프로 등장합니다. 권력은 제안합니다. 진실을 알려고 하지 말고, 조용히 악당이나 넘기라고 권합니다. 즉, 자신의 입맛대로 하겠다는 태도이자, "권력이 얼마나 부패하기 쉬운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명분은 사령부에도 충분히 있습니다. 우주에서 기죽지 않을 최신 기술을 개발해야만 했고, 그 과정에서 당연히 압박 (혹은 협박) 은 필요했음을 역설합니다. 정말 멋있던 모습은 커크의 결단 입니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밝히고, 죄에 대해서도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하겠다는 "정공법"을 주장합니다. 사령부가 시키는대로 하지 않겠다며, 감히(!) 상부에 대드는 청년 캡틴이라니... 그랬다간 어떻게 되는지 너무 가슴 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재밌습니다.

 

 절대권력의 두 번째 태도가 등장합니다. 내 말을 안 따라주면, "순식간에 적으로 변경" 되는 겁니다. 사령부는 거침없이 최신기술을 마음껏 활용하면서, 어제의 부하였던 커크의 엔터프라이즈호를 맹공격 합니다. 우주 공간에서는 "함선 하나 없애버리고, 보고는 가볍게 위장해서 발표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권력은 잘 알고 있었을테지요. 그리고 마침내 절멸의 위기 앞에서, 캡틴 커크는 능력자인 악당과 손을 잡고서, 절대 권력에 끝까지 대항하는 길을 선택합니다. 권력자가 정신줄을 놓았을지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인간 의지가 정말 두근두근하게 펼쳐집니다.

 

 그리고 영화는 중반부터, 존 해리슨의 "변절"과 엔터프라이즈호의 추락, 이른바 "어둠 속으로" 쓰러져가는 공동체와 구성원들의 모습이 처참하게 그려집니다. 그 중에서도 단연 커크와 스팍의 용기는 압권입니다. 내가 여기서 죽으면 죽었지, 비겁하게 살지 않겠다며, 할 수 있는데까지는 끝까지 가보겠다며, 계속해서 전진하고, 살아나갈 길을 찾아나섭니다. 이렇게 써봐도 좋을 것입니다. 설령 권력이 부패하고, 기계가 멈추며, 배신감으로 치를 떨더라도, 인간의 굳건한 의지는 결코 고장나지 않습니다. 저는 정말로 그렇게 믿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탓하기 보다는, 앞으로 계속 갑니다.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여전히 답을 못하겠습니다. 스팍식으로 말하자면, "Unclear" 입니다. 다만, 그래도 계속 가려는 의지만큼은 잃지 말자고 조용히 다독일 뿐입니다.

 

 주제 자체만 놓고 본다면, 어둡고 무거운 편이지만, 워낙 밝은 분위기에서 진행되는데다가, 적절한 유머가 곳곳에 있다보니, 즐거움까지도 충족시켜주는 작품 입니다. 제 결론은 명확합니다. "SF 좋아하신다면, 정말 괜찮은 작품, 전편을 모르더라도 전혀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완성도!"

 

 리더는 고생길을 자처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을 책임지고 있어서, 때로는 고통스러운 결단의 시간 앞에 서야 할 때도 있으며, 자신의 귀중한 시간이나 재능을 어쩌면 "타인을 위해서 먼저" 써야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저는 오늘도 역시 리더의 재능 따위는 없음을 절감하며, 다만 사람들이 노력하고, 희생하며, 걸어가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고 응원해야 할 뿐임을 되새깁니다. 저는 그래서 "스팍"같은 사람이 참 좋습니다. 자리를 이용한 특혜를 거부하고, 어려운 일에는 가장 먼저 뛰어들어가는 사람. 좋은 리더가 있는 공동체는 참 복 받은게 아닐까 싶고, 동시에 행동하는 사람을 귀중하게 여길 줄 아는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면, 무엇보다 즐거운 삶이 아닐까 싶네요. 수 년 후가 되겠지만 엔터프라이즈호의 세 번째 여행기를 다시 고대하며... 오늘 리뷰를 마칩니다 :) / 2013. 06.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