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영화 터미널 (The Terminal, 2004) 리뷰

시북(허지수) 2013. 6. 5. 22:27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양한 느낌을 선물해 주는 숨은 수작, 영화 터미널을 소개합니다. 톰 행크스와 스필버그 감독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일단 "이름값"은 하고 들어가는데요. 세계적으로도 2억달러 이상의 흥행수입을 올렸던, 이색적인 휴먼드라마 입니다. 전체적으로 잔잔한 느낌이 있고, 터미널에서 일어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정밀하게 담아낸 작품이고요. 놀랍게도 별로 지루하지가 않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서,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기에도 좋고요.

 

 주인공 빅터 나보스키는, 이제 막 터미널에 도착해서, 꿈꾸던 뉴욕시티를 가보기 위해서 들떠 있는 "이방인" 입니다. 영어도 서툴고, 확실한 목적도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적어도 러시아와 가까운 동유럽의 어느 작은 나라 출신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 남자, 나보스키의 출신국은 "크로코지아" 라고 하는데, 실제로 존재하는 나라는 아닙니다.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나라지요. 다만,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공항에 갇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의 그 당황스러움을 영화는 재치 있게, 그리고 감성적이게 잘 담아냈습니다. 

 

 

 네, 영화 터미널은 결코 여행 영화가 아니며, 아름다운 풍경이 등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지겨우리만큼(?) 주로 공항만을 2시간 넘게 비추고 있으니까요. 재밌는 사실은, 공항 속이야말로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서 활기있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래도록 청소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 공항을 관리하고 있는 사람, 출입국을 관리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세계 각국을 비행하는 승무원. (게다가 여승무원 역할을 맡은 막 30대 시절의 캐서린 제타 존스 예쁩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있고,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시선이 참 좋습니다. 재밌게 지내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기다리다 지친 사람도 있으며, 과거를 잊은채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치 사회를 작게 축소시켜 놓은 느낌입니다. 자, 이런 공항에 나보스키는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입국은 거부되고 마는데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구체적 사유는, 크로코지아 라는 정부가 붕괴되면서, 이 지역 사람들을 받아줄 법적 근거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순식간에 나보스키는 "국적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지요. 처음 놀라게 되는 대목은, 이 상황에서 보여주는 나보스키의 순수함(!) 입니다. 애써 미국까지 왔건만, 그는 공항에서 "뉴욕을 향해", 기회를 틈타 도주해버리는 널리 알려진 수법(!)을 쓰지 않고, 정직한 자세로 다만 기다립니다. 규정이 나를 거부한다면, 내가 법위에서 날고 뛰는 인간은 되지 않겠다는 선의가 새삼스럽게(!) 놀랍습니다.

 

 그리하여 나보스키의 공항 라이프가 시작됩니다. 세면은 화장실을 이용하고, 할 수 있는데까지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합니다. 무일푼으로는 끼니가 해결되지 않으니까, 쇼핑카트를 대신 치워주는 수고를 함으로서 맛있는 식사를 만들기도 합니다. 엄청나게 서툴던 영어는 매일 밤마다 끙끙대면서 공부하면서, 점점 의사소통기술이 늘어갑니다. 나중에는 아예 공항에서 일자리를 얻어서, 짭짤한 수익도 얻습니다. 환경이 나를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전혀 실의에 빠지지 않고, 살아갈 길을 찾아보는 모습이 은은한 감동을 줍니다.

 

 자 이제 생계는 어느정도 해결되었다 치고, 그 다음 나보스키가 하는 일이 있다면,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겁니다. 곤란한 상황에 빠진 사람을 그냥 못보고, 예쁜 승무원이 낙담한 모습을 보고, 조용히 손수건을 건네주는 센스도 발휘합니다. 영화의 압권이기도 한데, 공항에서 난동이 일어나자, 직원도 아닌 나보스키가 해결사로 나서면서, 문제를 침착하게 해결합니다. 어느새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는, 나름대로 유명인사가 되어가는 나보스키!!! 그의 공항 스타일~ 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영화는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그가 왜 뉴욕에 가려고 하는지", 관객이 이해할 힌트를 얻게 됩니다. 그가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깡통"에 무엇인가가 들어 있기 때문이지요. 에이 설마 폭탄? 여담으로 이 영화는 세트장에서 촬영되었는데, 그 까닭이 테러 등 공항 보안에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공항에서는 촬영허가를 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당시에도 저처럼 "저 깡통 뭔가 수상하다!"라는 의심이 들 수 있습니다. 물론, 제가 의심 많고, 사람을 잘 안 믿는 편이기도 하지만... 하하.

 

 그리고 드디어 깡통의 내용물이 개봉되는데, 충격적(!)이게도, 그 속에 있던 것은 정말 소중하게 모아두었던 "재즈 가수별 사인 모음" 이었지요. 그리고 뉴욕에 가려는 까닭도, 마지막 남은 가수의 사인을 "직접 만나서 얻기" 위해서 였습니다. 더욱이 "재즈 사인 컬렉션"이 아버지의 간절한 바람이자, 장장 40년에 걸쳐서 이루어 가고 싶었던 오랜 꿈이라는 점이 밝혀집니다. 즉 나보스키는 지금 아버지의 못다한 바람을 완성시켜드리고, 약속을 완수하기 위해서, 머나먼 여행을 온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나보스키가 왜 그렇게 규칙을 중요하게 여기며, 함부로 약속을 깨지 않는지 더욱 감동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는 보통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꿈"을 가지고 있으며, 오래도록 꿈꾸어왔습니다. 나보스키는 "완성의 그 날"을 위해서, 올바른 원칙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언젠가 반드시 완수할 날이 올꺼라 생각했던게 아닐까요. 그에게는 공항에서의 9개월 기다림이 결코 "낭비"의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이 시간조차도 자신의 삶에 있어서 귀중한 경험이자, 사연이 될터이고, 이로 인해 재즈 콜렉션의 가치는 더욱 빛나게 될 것입니다. 좋은 친구들도 생기게 되었고요.

 

 저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쉽게 얻은 것은 참 쉽게도 버려지고, 잊혀진다고... 거의 대부분의 것들이 그렇습니다. 심지어 돈마저도 쉽게 얻은 경우,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런 격언도 있잖아요. "어떤 돈이라도 일단 생기자마자 당장 통장에 집어넣어버려라. 그러면 어느새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다시 꺼내려는 번거로움 때문에, 충동소비를 자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우리가 "진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기다림도 감수하고,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이루어 가기 위해서 노력할테지요" 그렇게 꿈꾸던 날이 마침내 현실이 된 순간,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감정"을 얻게 되지 않을까요. (현실에서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지만) 예를 들어보면 수년간 짝사랑하던 사람과 "연애"가 시작되면, 며칠간은 흥분 속에서 잠조차 이루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일생의 목표를 가진다는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싶습니다. 어쩌면, 남들이 보기에는 "저게 뭐야?" 같은 소소한 일인지도 모르나, 남의 평가? 그런게 뭐가 그리 중요하겠어요. 그런 목표를 통해서, 우리는 좀 더 멀리 가고, 좀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되고, 마침내 하나의 꿈을 이룰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성공한 인생, 특별한 인생"으로 불러도 좋을 겁니다. 그리고, 그 일이 나에게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야기 해줄 수 있는 뿌듯한 일이라면,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겠지요. 저도 그런 근사한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돈도 중요하고, 권력도 중요하지만, 영화의 표현처럼, 그것을 다 가지고도 인망이 없어서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는 "공항 책임자" 처럼 살아간다면 그건 사회적 성공일 뿐, 좋은 인생이라 말할 수 없겠지요. 잘 표현되었듯이 이 딱딱한 책임자는 웃는 장면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바라는 것을 좇아서 살아가는 나보스키의 가득한 미소는, 사람이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단 한 마디의 대사 없이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웃음을 잃어버리고,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며,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면, 소박한 것에서 다시 생각해 보라는 조언을 종종 볼 수 있는데요. 저는 여기서, 기회가 있다면 도전해보라! 라고 격려하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하지 않은 일을 후회하기 보다는 차라리 해놓은 일들을 후회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웃음이라는 것은 도전 속에 있기 마련입니다. 결국 우리는 정보과잉의 시대에서, 용기를 내지 않음으로서, 시간을 버리고 있는건 아닌지... 저녁마다 저는 반성과 후회를 하면서, 하루를 점검해 보네요. 즐겨 보는 하워드 교수님 이야기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생은 어려울 때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정말 어려워 보이는 상황이지만, 사실은 그 길이야말로 인생의 길일 수 있다는 역설을 생각해 본다면 좋겠네요. 오늘 리뷰는 여기에서 마칩니다! / 2013. 06.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