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근세문화사 5 - 조선 전기의 건축과 예술

시북(허지수) 2013. 7. 22. 19:38

 이런저런 사정으로 한 달 넘게 보류중이던, 국사 노트 옮기기를 해봅니다. 지난 문서에서 조선 전기의 건축과 예술 파트가 빠져 있다보니, 이 부분까지 마무리를 확실히 해놓을께요. 다음 문서에서 조선 후기로 넘어가도록 하고... 그러므로 오늘 이야기는 조선 전기의 건축과 예술이 되겠습니다. 이번 문서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15세기와 16세기를 구분해서 정리를 해볼텐데요. 두 세기가 특징이 다르다는 것을 염두해 두면 좋겠네요. 요즘 유행하는 식으로 표현하자면, 20세기의 미소년일지라도, 21세기는 노화중년이 될 수 있다 뭐 이런 느낌? 하하, 여하튼 시대별로 유행이 다르다는 겁니다. 물론, 지배계층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지요.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유행조차도 조용히 들어다보면, 특정한 패션집단에서 유행을 이끌거나, 부추기거나 한다는 것을 한번쯤 생각해 볼만 하겠네요.

 

 자자, 서론은 여기까지 하고요. 15세기 건축부터 어서 살펴보지요. 나라가 이제 막 세워졌으므로, 경복궁 같은 궁궐과 성곽들이 지어집니다. 예컨대 서울에 있는 창덕궁, 창경궁, 남대문(숭례문)도 주로 15세기에 만들어졌고요. 자, 그리고 시험을 대비해서 (하하), (아무래도 국사를 교양 외에도, 시험을 준비하고자 보는 분들도 많으니까요!) 궁궐외에 두세 가지 건축물을 집중적으로 오늘 꼭 체크해 둡시다. 꼭 한 번씩 시험에 나오곤 하니까요.

 

 국보인 무위사 극락전이 있습니다. 아니 절? 왜 불상과 벽화가 있는 불교 건축물을 지었을까요? 사실 조선의 지배 이념은 성리학이지만, 은근히 불교 역시도 왕실의 비호를 종종 받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기층 민중들은 여전히 불교를 믿었고요.

 

 자, 여기서부터는 주의해서 잘 봅시다.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을 유심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 곳에서 팔만대장경을 보관했기 때문입니다. (※주의할 점은 팔만대장경은 고려시대 때 만들어진 것이고요, 보관하는 장경판전을 조선 초기에 지은 것입니다.) 그럼 대체 왜 장경판전이 중요한가요?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나무로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은 습기에 약하고, 따라서 관리 및 유지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나무라서, 만약 변형되거나 변질되면 참 곤란해지고요. 그렇기 때문에 보관하는 장소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가령 요즘 처럼 무더운 여름, 습기가 높고, 불쾌지수가 높은 날씨에도! 해인사 장경판전 내부는 공기 자체가 확 다르고, 선선하기 까지 합니다. 게다가 당연히 에어컨도 없어요! 신기하지요? 창문 등을 이용해서 습기를 조절하는 건축기법이라고 합니다. 보관을 그토록 중시했기 때문에, 안에는 장식 조차도 없어요. 나름대로 탁월성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우리는 과학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살고 있다지만, 사실은 전기 혹은 에너지 의존적인 시대에 살고 있는 것에 가깝지요. 그렇게 본다면, 선조들은 (외부에서 가하는 힘이 아닌) 숨쉬는 자연 그 자체를 이용해서 보존해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찾은 것입니다. 이런 예는 또 있지요. 과거 신라 시대 석굴암도 그렇고, 건축기술이 뛰어납니다. 어쩌면 조선 시대의 "건축미"라고 한다면, 자연과 함께 숨쉬는 아름다움이 있다랄까요.

 

 장경판전은 잘 체크하셨나요, 끝으로 시험에 종종 등장하는 단골이, 원각사지 10층 석탑 입니다. 세조 때 지은 것이고요. 유교의 나라 조선이라지만, 불교가 성행했던 때가 있으니, 그 때가 세조였다 라는 점을 참고해 두면 좋겠네요. 세조는 자신의 살생을 참회한다고 이 곳을 원각사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덧붙여 이 석탑은 고려의 경천사지 10층 석탑과 굉장히 유사성이 있고요.

 

 여기까지가 15세기라면, 사림이 집권하는 16세기에는 상당히 다릅니다. 사림의 성장배경 중 하나가 뭘까요? 계속되는 사화에도 몰락하지 않았던 건, 바로 향촌 각지에 있는 서원에서 계속해서 인재들을 키워왔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16세기에는 (궁궐이 아닌) 서원건축이 크게 발달 합니다. 놀랍도록 경치좋고 아름다운 서원도 있고요. 경북 안동에 있는 병산서원 같은 곳을 가보면, 맑은 정신으로 공부할 마음이 들지도 모릅니다.

 

 이제 예술쪽으로 넘어와, 공예를 살펴보도록 합니다. 우선적으로 자기를 살펴본다면 좋겠네요. 15세기의 대표적인 그릇 "분청사기"가 있습니다. 문양들이 자유분방하고, 친숙하다는 게 아주 특징적 입니다. 이를테면 물고기를 그려도 휙휙 생동감 있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소박하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고정되거나 정형화 되어 있지 않아요, 그러므로 지역마다 모습이 달라지기도 했고요.

 

 재밌게도 반면 16세기가 되면 분위기가 확 달라집니다. 사림이 집권하게 되고, 이들의 취향은 결코 "자유로움"이 아니었으니까요. 선비라면 역시, 원칙과 본질추구 아니겠어요! 이 때의 유행은, 깨끗하고 단아한 백자 입니다. 문양? 그런 건 없어요! 한 번 선비의 모습을 떠올려 봅시다. 화려하던가요? 아니잖아요. 하얀 도포를 빼입고, 옷 매무새를 다듬어, 참 단정하게 차려입잖아요. 그러므로 이들은 깔끔한 백자를 좋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분청사기는 어느덧 자취를 감추어 버리지요.

 

 어쩐지 나열이 되어가는 듯 하지만, 아무쪼록 편안하게 접근한다면 좋겠네요. 음, 그림도 한 번 살펴봅시다. 15세기에는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유명합니다. 설에 의하면 3일만에 완성했다고 하는데 참 멋집니다. 또 강희안의 아름다운 "고사관수도" 라고 있습니다. 이 당시의 그림들은 일본의 무로마치 미술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정확한 사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현재 일본에 있기도 하고요.

 

 16세기 그림은 역시 선비들의 지조와 절개를 표현하는 그림들이 유행합니다. 대표적으로 사군자가 있겠네요. 매, 난, 국, 죽 같은 것을 소재로 하는겁니다. 이제 정리를 겸해, 천천히 상상해 볼까요. 16세기 경치 좋은 서원에 왔어요. 단아한 백자에 차를 따르고, 옆에 난을 두고서, 성리학을 연구하는 선비의 이미지. 그림이 딱 맞아 떨어지잖아요. (음... 21세기로 예를 들면, 경치 좋은 별다방에서 달달한 바닐라 라떼에, 전자기기를 켜두고, 아이디어를 연구하는 모습이 어쩐지 묘하게 잘 어울리는 것처럼요.) 아, 덧붙여 이 시기 특색있는 그림으로는 초충도가 있습니다. 초충도는 말그대로 풀과 벌레를 그린 것인데요. 일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을 그림에 담아내는 것이지요. 신사임당의 초충도 작품들이 유명합니다.

 

 끝으로, 음악은 박연이 아악을 체계화 했고, 성종 때에는 악학궤범이 편찬되었습니다. 예컨대 법 체계를 잡기 위해서 경국대전이 완성되었다면, 악학궤범은 음악의 체계를 잡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음악은 국가의례와도 직접 연관되기 때문에, 상당히 비중있게 여겨졌습니다. 한편, 16세기에는 속악(대중가요)이 발달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무용의 경우는, 궁중무용으로 신라 때 만들어진 "처용무가 계승"되기도 했고, 민간에서는 "산대놀이 같은 새로운 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꼭두각시가 유행하기도 했고요. 그러고보면 사람 사는거 비슷하지요? 요즘도 중요한 국가행사에 음악이 동원되기도 하고, 민간에는 대중 가요가 흐르고, 새로운 춤이 인기를 끌기도 하고... 하하.

 

 여하튼, 기억할 것은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가 어떤가? 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약간은 더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싶습니다. 꽤 길게 이어진 근세문화사에서는 전체적으로 15세기와 16세기는 차이가 좀 있더라 라고 생각한다면 좀 더 수월하겠네요. 드디어 다음 문서에서 조선 후기의 이야기로 들어가봅시다. 붕당이 변질되고, 탕평이 등장하는 그 이야기들, 우리는 어떤 영감을 얻을 수 있을지... 꽤 흥미롭지 않으십니까. 하하. 다음 문서에서 계속.

 

 오늘의 영감은 - 박웅현 선생님의 여덟 단어라는 책 174page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강자한테 당당하게 고개 들고 약자한테 푹 숙이세요. 예전 고 노무현 대통령 사진 중에 신문사 사주들을 만났을 때 눈을 보면서 악수하고, 농민을 만나 인사할 때는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있었어요. 저는 그런 삶의 태도가 제대로 사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짧은 문단이지만, 어떤 느낌인가요? 생각해보면, 우리가 배우고, 좀 더 발전하거나 성장해 나가려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누군가에게 대접 받기 위해서? 혹은 만인의 연인으로 사랑 받기 위해서? 저는 공부를 했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겸손하고 겸허한 태도를 쉽게 잃어버린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서는 몇 십분도 연속으로 할애하면서도, 정작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잘 듣지 않습니다. 아니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만 같은 사람일 뿐이다 라는 아주 기본적인 것도 생각하지 않고, 생각 없이 내뱉는 말과 무심한 행동들에 익숙해져 갑니다. 이것이 저는 가끔 두렵습니다. 넓게 본다면 결국 배려 없는 대화, 타인 없는 삶이 확대되고 있는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저 역시도 읽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는 장황한 글이 되지 않도록, 앞으로 더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 이래저래 제대로 살고, 제대로 소통하기란 어려운 일이고, 때로는 불편한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삶의 태도가 올바른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면, 사회는 얼마나 더 멋있어질지... 그런 상상을 해볼 때면, 투표를 소중히 생각하고, 강요된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깨어 있는 시민 단 한 사람이 늘어간다는게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싶네요. 하하.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