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균역법의 도입 및 조세의 전세화

시북(허지수) 2013. 8. 13. 23:35

 경제 파트를 생각할 때마다, 저는 제발 좀 더 쉽게, 부디 편안하게, 이렇게 가려고 마음을 먹습니다만, 좀처럼 친근하게 느껴지지는 않네요. 일단 제목부터가 "압박"이 느껴지잖아요. 어휴. 여하튼, 오늘은 군역을 살펴보는 시간인데, 분량이 많지 않아서, 훨씬 부담이 적을 겁니다 :) 내용도 아 그래요 재밌다니까요! (억지로 강조중!)

 

 이번 문서도 복습겸 조선 전기의 군역이 어땠는지 생각해 봅시다. 조선 전기에는 200년 동안 전쟁이 없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군역이 점점 요역화 되는 현상이 발생되는데요. 다시 말해, 군대에서 군사훈련 대신에 각종 공사만 하게 됩니다. 성쌓고, 길닦고, 현장가고... 조선 전기의 역은 국가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형태가 되었지요. 군대가 점점 약해져 가는데, 더욱이 16세기에는 불법인 대립제와 방군수포제가 널리 퍼져나가면서 군역을 빠지는 사람이 속출합니다. 할 수 없이 정부는 군적수포제를 도입하며 합법적으로 1년에 2필을 내면 역을 면해주기로 결정하는데, 이런 행태를 이른바 역의 문란이라 부르는 거지요.

 

 한편 양란을 거치면서 변화가 많았잖아요. 군대의 경우 훈련도감을 설치하고, 중앙군은 직업군인(급료병)을 쓰면서 대폭 강화했고요. 지방군 역시 속오군 체제로 개편되었고요. 그리고, 양란 이후 드디어 "영조의 개혁 결단"이 이어집니다. 균역법의 도입입니다. 이제 1년에 1필만 내면 군역이 끝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대단히 파격적인 정책입니다. 세금이 당장 반값되는 거잖아요! (영조가 시행하기 전에, 여러 신하들이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어째서 조선은 무려 500년이나 그 기틀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16세기 전반적으로 경제 상황이 엉망이었고, 양란까지 겪으며, 지배층의 무능과 위선이 폭로되었는데도, 조선이 또 다시 유지되어 나갈 수 있었던 비결은, 나름대로 지배층들의 현명한 양보가 있었습니다. 특히 세법에서 보여주는 상당한 양보, 나라를 무너뜨리지 않겠다는 결단이 수차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게 광해군의 대동법이나 영조의 균역법 실시 인데요. 처음 시행될 때에는 기층 민중들에게 상당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런 제도들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결국 토지소유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겠다는 거고, 가난한 민중에게는 세금을 면해주거나, 반값으로 줄여주었다는 거니까요. 만약 어떤 나라가 진짜 못돼가지고 서민의 등골을 휘게 만들어서, 부자들만 잘 사는게 지속된다? 그러면 망해버린다는 걸, 조선 지배층들은 알고 있었던 겁니다. 임진왜란 때, 도망치는 지배층을 보며 화난 기층 민중들이 경복궁을 불태웠다는 것을 이미 겪어왔기에, 이후 조선은 예학이 재차 강조되었고, 경제적으로도 나름대로 민중을 배려하려는 장면들은 여럿 있었다는 것을 충분히 생각해 볼만 합니다.

 

 균역법 이야기로 돌아와서, 기층 민중들은 보다 살기 좋아졌지만, 정부는 역으로 거두는 수입이 반토막 되니, 당장 국가재정에는 타격이 크잖아요. 음, 세금은 근본적으로 풍선효과 라는게 일정부분 적용됩니다. 이게 뭐냐하면 풍선의 윗부분을 힘을 줘서 눌러주면, 아랫부분이 부풀어 오르잖아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즉 한쪽을 깎아주기 시작하면, 다른 한쪽은 부담을 떠안으며 부풀어 오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가령 부자에게 감세를 하면, 아무래도 다수의 서민, 중산층의 부담은 커지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국가는 어쨌든 운영되고 유지되어야 하니까,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운영비용이 있습니다. 그래서, 위와는 반대로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 버리면, 상대적으로 적게 버는 사람들은 부담이 줄어들겠고요. 그 점에 있어서 지금 영조의 균역법은 중요한 결단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농민이 힘겨워 하는 역의 부담을 과감히 덜어주겠다는 거니까요.

 

 이제, 부족해진 국가재정 해결을 위해서 세 가지 정도의 재정확보책이 등장하는데, 하나씩 살펴봅시다. 우선 "선무군관포"가 시행 됩니다. 조선 후기로 가면 농업기술이 발달하면서 부유해지는 새로운 상류층들이 등장하는데요, 이들에게 명예(선무군관)를 부여하고, 군포를 내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원래 사람은 돈이 있으면, 그 다음에 명예를 추구하게 되니까, 그걸 노린 거지요. 생산량이 발전하며, 부자가 된 일부의 상류층은 국가에서 좋은 명예를 걸어주니 또 좋았고요. "1년 1필쯤 내주며, 나 선무군관이야!"라는 거지요. 여기서도 부자에게 세금을 내도록 유도한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둘째로, 어장세, 염세, 선박세를 걷으면서 부족한 세수를 충당해 나갑니다. 어장? 소금? 배? 어, 이거 어촌인데요. 그래요. 농민들의 세금을 깎아주다보니, 이제 안타깝게도 어촌에서 세금을 더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ㅠㅠ 그러다보니 균역법 도입 이후, 어촌 지역에서 "우리 못살겠어요" 라면서 상소가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풍선효과라고 할 수 있겠지요. 깎아줌으로서 부족해진 세금은, 또 누군가가 감당하면서 낼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이게 정말 중요합니다. "결작"을 새로 거둡니다. 부족한 세금을 충당하고자, 토지 1결당 2두의 세금을 추가로 거두는 겁니다. 왜 중요한가 하니, 원래 군역은 장정을 기준으로 세금을 걷는거잖아요. 그런데, 이와 관련한 세금 부족분을 (균역법 도입하며 반으로 깎았으니!), 이제 난데없이 토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딱 때리는" 겁니다. 쉽게 말해, 이봐 자네, 먹고 살만한 지주 부자들은 세금 더 내라는 건데요. 지금 토지소유자들은 점점 부담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대동법 실시로 생돈 왕창 나갔는데, 균역법 실시되면서 또 추가 세금이... 당시 신하들이 괜히 반대한게 아닙니다. 기득권 보고 세금 더 내라는 정책은 아무래도 달갑지 않게 받아들여질테니까요. 사회 전반이 그렇지만 기득권은 소수라도 힘이 셀 때도 많고요.

 

 아, 이렇게 세금을 토지로 집중시키는 모습들을 우리는 "조세의 전세화" 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천천히 이해해 봅시다. 조선 후기로 가면 이앙법이 확산되며 생산력이 굉장히 증가했습니다. 옛날과는 완전히 달랐지요. 즉, 고대에는 노동력에 따라서 세금을 거두었고, 따라서 사람숫자에 따라 인두세적인 세금개념이 중시되었지요. 그런데, 시간이 점점 지나고 생산력이 늘어나다보니, 이제 조세들을 토지에다가 때릴 수 있게 됩니다. 조선 후기에는 대동법과 균역법을 시행함으로서 - 공납과 역까지도 이제 토지를 기준으로 거두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조세의 전세화 라고 합니다. 덧붙여, 점차 세금을 쌀같은 현물이 아닌, 화폐 (돈) 으로 납부하는, 조세의 금납화도 등장하고요. 돈으로 세금을 내는 건 후에 갑오개혁 때, 완전히 법제화 되기에 이릅니다.

 

 여기까지 살펴보면, 조선의 세금 정책은 상당히 합리적인 모습으로 발전해 왔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근대적인 모습 - 즉, 많이 가진 사람들은 이제 많이 내는 경향으로 흘러갑니다. 양란을 거치며, 상당히 변화된 모습이랄까요. 오늘 문서는 이걸로 마치고, 다음 문서에서는 농업 등 경제의 발달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아, 끝으로, 역시 대동법 때와 마찬가지인데, 균역법도 시간이 흘러 지주에게 부과되던 결작이 고스란히 소작농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행태가 되며, 다시 농민들은 큰 부담을 짊어지게 됩니다...ㅠㅠ)

 

 잠깐 개인적 여담 겸 해서, 생각나는게 있네요. 현대에 와서, 2003년에 제안되어서, 2005년부터 잠깐동안 강하게 시행되었던 종합부동산세 라는게 있었는데요. 이것이 어떻게 좌초되었는가? 이런 모습을 생각하면 꽤 비슷한 측면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종부세 역시도 취지가 비싼 부동산에 살고 있으면, 상당한 세금을 내야 된다는 취지였는데, 결국 소수의 거센 반발이 계속 이어지면서, 사실상 대폭 약화되는 모습이 되고 맙니다.

 

 종부세는 2011년에 다시 무력화 되면서, 20억 주택소유자의 세금은 1200만원에서 불과 53만원이 되고 말았지요. 1200만원이면 세금 폭탄이냐고요? 선진국인 미국, 캐나다, 일본 등 대부분이 이보다 높으면 높지 낮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53만원이 되었다는건? 정말 부자이면 살기 좋은 한국이 되었다는 이야기지요. 약 1~2%의 부동산 소유자 (이중 70% 이상은 다주택자) 에게 "정상적인 세금" 때리는게 이정도로 저항이 막대했으니, 또 물거품까지 되었으니, 이제 부족한 세수는 "누군가로부터 거둘 수 밖에" 없겠지요. 풍선효과로 누군가 짐을 떠안아야 했고, 최근 이 문제로 누가 세금을 더 낼 것인지 정부가 골치를 안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소수의 기득권을 이겨내지 못하면, 다수가 고생하는 건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었네요.

 

 노블레스 오블리주, 귀족은 귀족다워야 한다, 혹은 귀족성은 의무를 갖는다는 이야기 인데요. 오늘날 우리 모두는 "의무 실종"으로 살고 있는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의무 대신에, 세금은 너희가 내, 우리는 즐길께, 라는 이상한 사고가 널리 펴져나가면, 이게 진정한 파국으로 가는 독약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