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합니다. 저는 TV를 별로 사랑하지 않았음을, 예능과 드라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음을, 그리고 잉여로운 시간 보내기에는 항상 의미를 두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하지현 선생님의 예능력이라는 책은 굉장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강력한 발상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으니까요. 심지어 예능을 보면 인생의 길이 보인다는 파격적인 발언까지 담겨 있습니다. 진지한 대화, 깊이있는 책만이 우리네 삶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소중한 시간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건데요. 과연 늦은 밤 예능을 보며 웃고, 주말 저녁을 예능과 함께 보냄으로서, 우리가 회복될 수 있을까요? 흥미로운 리뷰가 되겠군요. 서둘러 출발해 봅시다.

 

 바이올린이 있습니다. 좋은 소리를 내는 악기지요. 그런데 연주회가 끝나고, 저녁이 되자, 연주자는 굳이 또 바이올린의 줄을 몽땅 풀어버립니다. 다음 날 또 새롭게 조여야 할테고,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되는걸까요? 답변은 간단하지만 묘한 울림을 줍니다. "팽팽한 상태로 내버려두더라도 어차피 다음 날이 되면 약간씩 소리가 틀어져서 새로 조율을 해야 하고요, 더욱이 계속 조인 상태로만 두면, 바이올린이 서서히 망가질 수 있어요." 악기가 이럴진대, 인간의 몸과 정신은 더욱 "휴식과 충전" 이 필요합니다. 쉼표가 있는 인생이, 훨씬 더 맑은 소리를 낼 수 있지요.

 

 저자 : 하지현 / 출판사 : 민음사

 출간 : 2013년 03월 26일 / 가격 : 13,000원 / 페이지 : 220쪽

 

 

 쉬는 방법은 많겠지만, 하지현 선생님은 그저 잉여롭게 적당히 뒹굴거리면서, 예능을 보고 웃고 즐기는 방법도, 얼마든지 삶의 쉼표가 될 수 있다고 보는겁니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강조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의외로 이게 어려울 수 있다는 점도 재밌는데요.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비어 있는 공간을 채우고 싶은 욕망이 있어서, 이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계속 불안해 한다고 합니다. 다시말해, 오늘날 가만히 있기란 생각보다는 훨씬 어려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뭐라도 하고 있어야만" 불안감이 해소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질문을 던져볼만 합니다. "정말 잉여롭게 시간을 보내면 안 되는가?"

 

 하 선생님의 파격적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잉여의 시간과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잉여의 사고는 틀에서 벗어난 발상을 하게 한다, 한가로이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의미나 목적의식, 효율성을 제쳐 두고 유람하듯이 시간을 보낼 때 새로운 창조와 혁신의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잉여"라는 말은 다시 평가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저는 이 대목을 열 번도 넘게 읽으며 생각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주도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잉여를 즐기자!" 라는 나름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빼곡히 성취만을 이루어 놓은 삶이 있고, 잉여로움과 성취가 함께 가는 삶이 있다면, 저는 후자가 더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는 김정운 교수님의 격한 표현이 아니더라도, 노는 시간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잉여의 시간이야말로, 어쩌면 연료를 보충하고 있는 시간이 아닐까요. 잉여의 시간이 삶의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 놀라운 발상 전환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는 집을 쓸고, 닦고, 가꾸자는 이야기도 재밌습니다. 가꿔진 집은 아무래도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유심히 보게 됩니다. 한 명씩 찾아오는 이가 생기고, 어느덧 그 작은 집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합니다. 나라는 집을 열심히 가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의 모습을 좋아하고, 계속 노력을 기울이는 게 중요합니다. 처음 가꿀 때에는 별다른 변화를 못 느끼더라도, 점점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간다면, 자꾸만 사람들이 찾게 되는 놀라운 일을 보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를 방치하지 마세요. 잉여롭게 놀고, 즐겁게 가꾸어가며, 오늘 여기서부터 행복한 하루를 향해 걸어가면 충분합니다.

 

 책 후반부에 소개된 이야기 하나 더 - 전설적 타자로 이름을 날리던 "양신" 양준혁 선수가 가졌던 매일의 목표는 놀랍도록 단순합니다. "안타 하나, 볼넷 하나를 얻는 것이 한결같이 가졌던 목표다, 홈런을 치겠다고 달려든 적 없다." 하지현 선생님은 통렬하게 콕 말해줍니다. 중요한 게 무엇인가? 레전드(전설)가 되는 것? 인생 역전을 하는 것? 그런 한 방 보다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오늘 하루 노력해서 실현할 수 있는 목표에 가치와 의미를 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목표가 사소하고 작아 보이더라도, 그 작은 실현이 쌓여나가는 하루하루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 대목이 저에게 마치 구원처럼 느껴져, 세상 무슨 일이라도 해낼 수 있겠다는 과한 용기까지 들었습니다. "의미 있는 작은 실현"을 매일 추구하는 삶, 그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어찌 그리 한가득 욕심스럽게 살려고 했었던지, 정말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디테일을 살리고,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힘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저는 배철수 아저씨를 참 좋아하는데, 역시나 철수 아저씨! 촌철살인으로 핵심만을 콕 집어서 후배에게 건네는 말! "좋아하는 일이면 오래 해. 오래 하면 너 욕하던 놈들은 다 사라지고 너만 남거든." 정말 너무 좋은 말이지 않나요. 계속 하다보면, 헐뜯고 비방하던 사람은 어느새 잠잠해지지만, 자신을 아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은 그래도 곁에서 함께 가고 있으니, 이보다 더 흐뭇하고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결국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건, 아주 작은 변화라고 하 선생님은 강조합니다. 독창성은 1~2%의 차이에서 나온다는 말인데, 저는 정말 많이 공감합니다. 그 작은 부분 때문에 좋은 작품, 망친 작품의 갈림길로 나뉘고 맙니다. 그러므로 남들과 왜 이렇게 비슷한걸까 라고 고심할 바에야, 디테일한 작은 부분에서 차별화로 나가고, 때로는 욕도 먹고, 그런 인생이야말로 한결 더 감격으로 차있는 즐거운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시 고백합니다. 요즘 힘겨운 일들이 많고, 불안감과 초조함이 밀려올 때가 많아서,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주말이 불편할 때가 있었습니다. 삶이 기쁨보다는 메마름으로 채워지고 있구나 라고 느낄 때, 그야말로 적색 경보등이 깜빡거리는 순간입니다. 혹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이든다는 게 원래 그런 거지 라고 체념하며 삶을 받아들인다지만, 저는 하지현 선생님의 이 말로 한 번 받아쳐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자라고 있다. 그래야 하지 않는가?"

 

 예능력이라는 책은, 우리를 더 적극적으로 웃게 하고, 더 적극적인 잉여의 시간으로 안내합니다. 쉬고 싶을 때는, 아무 걱정도 하지 말고, 신나게 놀기만 해도 얼마든지 괜찮아, 라고 단언합니다. 마음껏 놀다보면 어느새 마음의 에너지가 다시 살아 숨쉬고 있어서, 고단한 하루살이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되어줍니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어갈수록 "노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그것만큼 비참하게 살아가는 것도 없겠지요.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라는 책에는 "나이가 들어갈 수록, 주어진 시간은 줄어들고, 반비례하여 시간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 줄어든 시간을 잉여롭게 즐기는 것도 시간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굉장한 역설!

 

 이것도 해야하는데, 저것도 해야지, 아 참 그러면 이건 어쩌지, 아이구 벌써 하루 다 갔네. 나는 맨날 왜 이렇지. 잠깐! 우리는 여기서 과감히 탈출해야 합니다. "하고 싶었던 목표를 작게나마 실현했다면" 이 하루만으로 얼마든지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떤 일을 하며 시간 보내기를 좋아하는가? 천천히 고민해보고, 그걸 실현 해보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소박하지만, 내 욕망과 감정에 충실한 것을 잡고, 몰입하면서 시간을 보낼 때, 그 얼마나 하루가 만족스러운지!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원하고 바라던 가치를 좇아가는 것, 그렇게 삶을 살아간다면 저항도 적다보니, 적은 에너지소모로 엄청난 가능성이 열리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괴로워만 하기에는 오늘이 가진 무게가 아깝습니다. 오늘을 즐기는 여유를 누리는 삶,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 2013. 08. 리뷰어 시북.

 

by 시북 2013.08.2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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