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조선후기 수공업, 광업의 변화

시북(허지수) 2013. 8. 27. 15:53

 조선 후기 경제이야기 마지막 문서 입니다. 벌써 끝나다니, 아쉽고, 서운하네요. 하하. 회사가 있고, 노동자가 있고, 또 투자자가 있는 모습은 자본주의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는데요. 언제부터 이런 형태가 등장하는 걸까요. 흥미롭게도 조선 후기 광업의 모습에서 비슷한 장면을 보게 됩니다. 조선 후기를 근대 태동기라 부르는 것도, 다 이런 결정적 이유 때문이지요. 이제 근대가 보입니다~ 우리가 사는 모습과 계속해서 빼닮은 모습도 보입니다~ 서론 이쯤에서 치우고, 어서 본론으로! 오늘은 길지 않으니, 부담없이 출발!

 

 조선 전기의 수공업은 관영수공업이라서, 장인들이 공장안(명부)에 등록이 되었고요. 관에서 자기들 필요한 물품을 만들어 나갑니다. 자! 그런데, 조선은 시간이 흐를수록 조세, 공납, 역 중에서 특히 역이 잘 운영되지 않습니다. 군역은 점점 요역화 되었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역을 빠져버리지요. 돈내고 계속 역을 빠진다는 이야기는 벌써 지겹도록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수공업이나 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이 힘들다보니, 돈내고 빠져버리는 상황이 계속됩니다. 이러다보니, "부역제의 해이현상"이 전반적으로 쫘~악 퍼져나갑니다. 당연히 이렇게 다 빠져나가버리면 관영수공업이 유지되기 힘들겠죠?

 

 조선 후기가 되면, 민영수공업이 발달하게 됩니다. 국가에다가 세금 조금 내고, 그냥 민간에서 만들어 내다 팔게끔 변화되었다는 겁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선대제 라는 시스템이 유행합니다. 조선 후기에는 상인들이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하였고, 큰 손들은 자본도 많이 축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물건이 필요할 때는, 상인들이 아예 수공업자들에게 주문을 왕창 넣어버리는 겁니다. "이보게, 호미 100개를 만들어주게나." 라는 식으로 대량 주문을 해주지요. 돈은 미리 딱 줘버립니다.

 

 일단 입금(!)되었으니, 먹튀(!)하면 곤란하고, 열심히 만들어야겠죠? 하하, 농담이고, 수공업자들도 안심하고 생산을 계속 해나가게 됩니다. 쓱싹쓱싹, 쿵쾅쿵쾅, 호미 100개 완성!!! 이렇게, 돈을 미리 지불하는 제도를 선대제 라고 합니다. 잠깐 여기서, 우리가 결정적으로 생각해 볼 것이 있는데, 이 제도에서는 누가 가격결정권을 가지고 있을까요? 당연히 미리 돈을 주고, 주문을 넣어버리는 상인이 가격을 결정해 버립니다. 따라서, 수공업자는 상인들에게 거의 종속되어 있는 형태였고요. 수공업자 입장에서는 마음대로 가격을 못 정하고, 마음대로 갯수도 못 정한다는 건 꽤나 불편한 상황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수공업자들은 이제 깨닫게 됩니다. 왜 시키는대로만 만들어야 할까? 내가 좋은 기술로 잘 만들어서, 제값을 받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래서 드디어 독립수공업의 형태도 등장합니다. 상업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직접 만들어 팔겠다는 패기! 독립수공업은 분업과 협업의 형태로 일하며, 수공업쪽에서 가격결정권을 가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선대제와 독립수공업을 천천히 한 번 살펴봤습니다.

 

 음, 그러니까, 현대적으로 해석해보면, 선대제는 오늘날 대형마트의 PB상품, 마트표 콜라나 마트라면 같은 성격이랄까요. 자본에서 가격결정권을 갖고 있으니까, 업자들은 그 가격에 맞춰서 대량으로 물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업자 입장에서는 이 정도 물건이면 돈을 더 받을 수 있지만, 자본이 워낙 많은 물품을 주문하니까, 거기 맞춰가야하는 모습이지요. 그런데 독립수공업은 내가 마음대로 만들어서, 가격까지 알아서 정할 수 있으니까, 한결 만드는 사람들이 편합니다. 수공업계의 발전이라고도 볼 수 있고요.

 

 어쨌든 중요한 건, 조선 후기에 선대제와 독립수공업이 나타나는 배경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공인들이나 거상들이 대량으로 물건을 주문하는 시대가 되었음 을 이해해두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가내수공업으로 1~2개씩 만들어서는 팔기가 힘듭니다. 따라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모습과 협업과 분업이 등장한다는 것! 전문 공장들이 나타난다는 것! 이런 풍경들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광업의 경우, 국가가 주도하는 관영광업이 있었는데요. 역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데려와 일을 시키는 건데, 앞서 꾸준히 보았듯이 역은 이제 다 빠져나가 버립니다. 소는 누가 키... 아니, 광산은 누가 지키니~ 광물은 누가 캐니~ 이러니까, 정부에서는 주도할 힘이 약합니다, 결국 조선 후기로 가면 광업은 민간으로 넘어가고, 대신 민간으로부터 세금만 취하는 형태가 되고요. 조선 후기는 민영 광업이 활성화 됩니다.

 

 특히 은광이 굉장히 개발되는데, 청과의 무역을 하면서 은이 대거 청으로 흘러들어갑니다. 청나라에서는 은이 중심 화폐적 성격이 있으니까요. 쉽게 말해 은을 캐서 청나라로 보내면 막대한 수익가치를 얻을 수 있던 겁니다. 하도 광캐는게 유행하자, 정부에서 막아보려고까지 했는데, 한 번 돈맛을 알아버린 사람들이 계속해서 몰래 잠수타며 광산을 운영하는 등, (←이걸 잠채라고 합니다)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민영 광산 증가 라고 정리 해두면 되겠지요.

 

 한편 광산을 캐려면 많은 자본이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자본을 대었을까요? 역시 상인들이 뒤에서 팍팍 밀어줍니다. 요즘으로 치면, 장사해서 쌓은 거부를 이제 광산에다가 재테크 하는 식이지요. 여하튼 상업자본들은 지금 바쁘잖아요, 장사도 활발하게 해야 하고, 직접적으로 광산까지 체크하기는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상업자본은 광산을 운영하는 사람 "덕대"에게 많은 돈을 맡겨놓고, 일종의 광산투자를 하는거지요. 이제 투자 받은 덕대가 할 일이 많아졌네요. 덕대는 임노동자들을 고용해서, 광산을 운영합니다. 요즘말로, 덕대는 광산경영자(CEO)로 볼 수 있겠고요. 이런 시스템이 돌아가려면, 무엇보다 임노동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조선 후기는 생산력이 발달하면서, 농민이 분화되었고, 임노동자가 대거 발생하잖아요. 딱딱 맞물려 돌아가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스템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니, 조선 후기부터 유사한 형태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거대 자본이 돈을 대고, 경영인이 회사를 운영하고, 노동자가 고용되어서 일하는 형태 말이지요. 따라서, 농사 짓는 조선이 아닌, 자본주의적 구조의 조선의 모습도 발견하게 되는 겁니다. 근대를 향한 움직임, 근대 태동기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런 모습들 때문이지요. 지난 문서에서 이어지는, 사상(거상), 상평통보(화폐), 선대제(대량선주문), 덕대(전문경영) 등은 경제가 발달되고, 변화된 조선 후기를 알려주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겠고요. 오늘 문서는 여기까지 입니다~ 다음 시간은 조선 후기 사회파트로.

 

 오늘의 영감 - 잊을 수 없는 지표 중에 하나가, 직업 행복 지수 입니다. 잘 생겨서 행복하고, 똑똑해서 행복할 것 같은, 모델이나 의사 같은 직업이 별로 행복하지 않다고 합니다. 반대로 나름 고역인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거나, 생활고에 시달릴 위험도 높은, 작가나 사진사가 만족도가 높다고 하고요. 지나치게 일반화 시킬 수는 없지만, 저는 그 차이가 아마 "자유도"가 아닌가 라고 생각해 봅니다.

 

 남이 시키는대로 움직여야 하는 직업, 또는 혹여 원하지 않더라도 아픈 사람을 계속 해서 봐야한다면, 사실은 괴로울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자신이 직접 선택한 일을 한다는 것은 난이도 있고, 힘들더라도, 그 만족도가 높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쩐지 마음이 허전한 삶을 살고 있다면, 이게 정말 내가 원하던 것일까? 라고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는 이 일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라고 고민해 봐도 좋겠고요. 유럽에서는 서른이 넘어서 대학을 간다거나, 예순이 넘어서 요리를 배운다거나, 출발하는 나이에 큰 비중을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인생이 마무리 될 것인가? 나는 누구로 기억될 것인가? 라는 겁니다.

 

 당연히 오늘날은 사회적 성공을 거둔 위너로 기억되고 싶어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바라던 삶이 무엇이었고, 얼마나 가까이에 다가갔는가로 기억된다면 한결 즐겁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대제, 즉 돈을 미리 받아서, 주어진 일을 하던 수공업자들이, 더 발전하여서 자신이 제품을 만들어서 가격을 정했다는 대목은, 마치 인생의 교훈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인간의 가치를 외부에서 정해놓은 틀에 맞출 필요는 없겠지요. 자신이 바라던 삶을 향해 그저 계속 다가가는 삶, 그래서 나는 이런걸 하고 싶었거든, 이라고 패기 있게 표현하는 모습, 그 당찬 모습을 한결같이 응원하렵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