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머니볼 (Moneyball, 2011) 리뷰

시북(허지수) 2013. 9. 20. 16:26

 다르게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강자가 우대받고, 약자가 천대받는 게 아주 당연하게 다루어지는 세계에서, 소수 집단이 거대한 세력과 싸운다는 건, 고대의 다윗과 골리앗 같은 일입니다. 여기 그런 남자가 한 명 있습니다. 가난한 야구단의 단장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빌리 빈 입니다. 스포츠의 세계란, 예전부터 "자본주의의 미래를 묘사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각 선수마다 몸값이 정해져있고, 일류 선수는 아주 호화로운 생활을 보장받으며, 실력이 떨어지는 경우라면 혹은 다치기라도 한다면 아예 경기장에서 퇴출되어 버리니까요.

 

 더욱 더 파고들어간다면, 결국 부자구단이 승리하는 구조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야구로 예를 들면, 뉴욕 양키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등이 하위권에 있는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습니다. 축구도 마찬가지라서, 해외명문구단들 이를테면 레알마드리드, FC바르셀로나, 맨유, 첼시, B뮌헨 등은 선두경쟁을 당연시 여기고 있습니다. 약한 팀들이 자꾸 지는 경우는 선수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더 정확히는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때때로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자, 그런데 오늘 영화의 주인공 빌리 빈이 마침내, 완전히 다른 생각을 실현하기 시작합니다. 돈이 없어도 이길 수 있다면? 근본적인 변화, 혁명적인 일이 아닌가? 자, 꿈은 이루어 질 것인가! 리뷰 출발해 봅니다.

 

 

 영화 머니볼은 가난한 야구구단 애슬레틱스의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초반은 참으로 비참한 모습에서 출발합니다. 모처럼 애슬레틱스가 괜찮은 성적을 거두자마자, 핵심 멤버들이 줄줄이 부자 구단으로 거의 팔려나갑니다. 팀 입장에서는 잡으려고 해도, 총알(자금)이 없습니다. 장기로 비유한다면, 차 떼고, 포 떼고, 이래서야 당장 곤란한 상황이 되었고, 새롭게 시작하는 시즌이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이 때, 빌리 단장은, 젊은 피터를 만나면서, 새로운 야구의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됩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새로운 야구란? 통계를 활용한 다양한 데이터를 살펴보고, 거기에 걸맞는 선택을 한다는 것입니다. 상식을 뒤집는 대목인데, 예컨대 시원하게 잔디를 가로지르는 안타나, 그냥 볼넷으로 걸어나가나 현실은 똑같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한 불꽃같은 강속구를 던지지 않더라도, 일단 어떻게 던지든지 상대주자를 내보내지 않는 투수가 있다면, 그가 진짜 필요한 선수라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이도, 사생활도 문제 삼지 않으며, 오직 이기기 위해서 최적화된 선수들로만 구성하자는 "머니볼" 이론을 실행하기 시작합니다.

 

 빌리 빈이 마침내 엄청난 결단을 내리고, 머니볼을 실시하자 마자, 그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야구계에서 안팎으로 거센 비난 폭풍이 쏟아집니다. 먼저 내부에서는, 스카우터를 비롯해서 감독까지 나서서 받아들일 수 없다며 대들었습니다. 외부에서는 "미친 짓을 하고 있다"며 가난한 구단을 조롱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30대 후반의 선수를 데려오질 않나, 이상한 폼으로 공던지는 투수를 기용하질 않나, 포수 인생이 끝난 선수를 데려와서 1루수로 쓰질 않나... 한마디로 말해 - 기존의 야구질서와 상식을 따르지 않았다가, 초반부터 혹독하게 추락하는 꼴찌 성적표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저는 영화를 아주 적극적으로 해석해보고 싶은데요. 모든 도전과 변화라는 것이, 쉬운 일이 없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경사가 심한 오르막길을 걷는 것과 비슷합니다. 가다보면, 땀이 계속 나고, 다리도 아프고, 지칠 수 밖에 없는 구조랄까요. 단장 빌리 빈은 비난 폭탄을 받아야 했고, 심지어 귀여운 딸래미까지 아빠를 걱정합니다. "아빠, 이제 짤리는거에요?"

 

 언제나, 인생이 빛나는 순간은, 그리고 영화의 번뜩이는 순간은, 위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 입니다. 빌리 빈은,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밀어붙이기로 결단합니다. 그는 새로운 주장이 얼마든지 통할 수 있고, 실현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지금 눈앞의 결과에 현혹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자 합니다. 저는 그 거대한 신념이 정말 감탄스러웠는데, 빌리 빈이 가진 이런 내면의 힘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누구보다 지기 싫어했고, 팀이 이기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태도! 이걸 바꿔 말한다면, 빌리 빈은 "세상 누구보다 애슬레틱스 팀을 사랑하고, 반드시 승리하게끔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빌리 빈은 이제 자본주의적 시스템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지난 날과 똑같이 운영된다면, 계속 우리는 약자가 되어서 밟히기만 할 것이라고. 그랬기에 빌리 빈은 이길 수 있는 가능성 "머니 볼" 이론에 미친듯이 매달렸던 것입니다.

 

 거의 도박과 같았지만, 만약 실패할 지언정 후회하지는 않을 듯한 태도로, 빌리 빈은 독하게 밀어붙여 나갑니다. 약간이라도 주자 출루율을 더 올리기 위해서, 잘 하고 있는 선수까지도 팔아치우고,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합니다. 그렇게 펼쳐지는 영화 후반의 실화 장면들은 가슴을 세차게 흔드는 진한 여운을 줍니다. 꼴찌에서 출발했던 팀은, 이기고, 또 이기고, 계속 이겨나갑니다. 20연승... 140년 메이저리그 역사를 새로 쓰는 신기록을 세운 것입니다. 너무도 충격적인 것은, 20연승의 정말 기적적인 모습이, 가난한 팀에서 쓰여졌다는 것, 작년에 주전 선수를 여럿 빼앗기고도, 쓰여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값진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환경을 변명하고, 상황을 모면하고, 작년보다는 못하겠지만, 적당하게 안주하면서 머물러 있을 것인가?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고, 완전히 다르게 행동하며, 특별한 한 해를 보내기 위해서, 미친듯이 살 것인가?

 

 냉정히 따져본다면, 빌리 빈은 기존의 방식을 따르며, 저조한 성적을 거두더라도,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도전 앞에서, "해보겠다" 라고 결의하고, "끝까지 밀어붙이며" 지금껏 그 누구도 닿아보지 못했던 곳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20연승의 기록은, 제가 죽을 때까지도 MLB 역사에서 다시 보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결국 이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가능성을 믿고서, 진지하게 파고들어갈 때, 우리는 놀라운 장면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야구 외에도 머니 볼이 주는 잔잔한 감동은 두 가지가 더 있으니, 이것만 함께 소개하며 리뷰를 마치고자 합니다. 빌리 빈은 이후, 부자 구단인 보스턴에서 거액의 연봉을 제시받았으나, 곧 거절해 버립니다. 돈을 좇는 선택은 하지 않겠다고 표현하는 대목은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우리가 이 애슬레틱스 팀에서 이길 수 있다면, 우리는 야구를 바꿀 수 있다" 라고 끝까지 신념을 간직하는 대목은, 한 인간의 멋진 모습에 한없이 감동했습니다.

 

 영화는 돈으로 인간을 평가하는 대목을 통렬하게 꼬집습니다. 빌리 빈은 젊은 시절 대학을 포기하고, 스카우터의 화려한 평가에 솔깃해서 프로선수의 길을 걸었다가, 수년간 유망주 소리만 듣고 선수로 실패하며, 쓰라린 젊은 날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그 사람이 무슨 직업인지, 그 사람이 얼마나 버는지로 평가하기를 즐겨하고 있습니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이 말이, 수 년간 제 마음을 사로 잡았는데요. "당신이 밥을 먹고나서, 무엇을 하는지를 말해주세요. 그게 바로 당신입니다." 우리가 인간에 대해서 감히 이야기를 한다면, 그 사람이 밥먹고 하는 행동을 주목해야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접근한다면, 영화 머니볼은 밥먹고 야구를 이기기 위해서, 그래서 야구판을 바꾸기 위해서, 살아가는 어떤 혁명가를 느껴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므로, 입으로 주장하고, 글로 떠드는 행위는 진실을 담고 있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진짜는 결국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 누구의 말을 따를 것이 아니라,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제대로 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고 싶은 게 많다면서, 입으로만 떠드는 현대인들의 마음에, 진정한 열정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작품, 두려움으로 얼어붙은 마음에 그대로 도끼를 내려찍는 작품, 도전이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작품. 영화 머니볼은 심금을 울리는 야구영화로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듯 합니다.

 

 빌리 빈은 딸에게 다정하게 다가와 속삭입니다. "기타만 치지 말고, 노래도 불러야지, 괜찮아, 그렇게 진짜로 해보고 싶었던 것에 다가가는 거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는 것, 두려움 앞에서도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것, 우리가 밥먹고 이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응원하고, 또 응원합니다. / 2013. 09.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