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책

공부하는 인간 리뷰

시북(허지수) 2013. 9. 21. 20:42

 올해 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KBS 다큐멘터리 공부하는 인간을 보면서, 저는 적잖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동양과 서양의 공부방식이 현저하게 달랐고, 각 나라마다 공부하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작은 공간에 틀어박혀서, 홀로 공부하고 있는 한국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상당히 아팠습니다. 도대체 공부란 무엇이기에? 그리고 공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지? 오늘은 본격 공부에 관한 고찰을 해볼까 합니다.

 

 가볍게 서론을 시작하자면, 일본의 공부방식 중에는 "노트필기"를 중시한다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잘 정리된 노트는 인터넷 상에서 유료로 판매된다는 점은 놀라움을 주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큰 영감과 자극을 받아서, 그동안 공부하고 정리해왔던 것을 한 번 인터넷에 올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비슷하게 시도한 적은 있었지만, 번번이 끈기부족으로 완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이런 소박한 일에 즐거운 의미를 담을 수 있겠다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그렇게 제 블로그는 의욕적으로 한국사 노트정리를 옮겨 싣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무료인데다가, 고퀄리티는 아니지만, 가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참 기쁜 일이었지요.

 

 저자 : KBS 공부하는 인간 제작팀 지음 / 출판사 : 예담
 출간 : 2013년 02월 18일 / 가격 : 16,800원 / 페이지 : 360쪽

 

 

 젊은 날, 저는 수능시험을 여러 번 쳤습니다. 하하. 아, 이건 제 고집이라기 보다는, 당시 야학에서 지내며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야학에 계셨던 선생님들은 저마다,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20대 중반, 20대 후반에, 해보고 싶은 걸 위해 시험을 친다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어떤 분은 의대를 가기 위해서, 어떤 분은 뒤늦게 교대를 가기 위해서, 30대가 넘어서 수능을 보기도 했고, 실제로 그렇게 전공을 바꾸는 분들도 여럿 보았습니다. 다들 주위의 우려섞인 시선보다는, 자신의 행복한 인생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70년대 중반 ~ 80년대 초반 태생 분들의 흥미로운 시선이었지요. 벌써 10년전 이야기가 되었지만, 저는 그 자유분방함을 지금도 사랑합니다 :) 배움에 있어서, 늦은 때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시도하는" 경험들 자체로도, 때로는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저는 감히 믿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에서 흥미로운 대목을 살펴봐야겠네요.

 

 이 책에서는 학업성취에 있어서, IQ보다는 동기가 더 강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언급합니다. 또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를 의식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동양 사람들의 시선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 대목에 크게 공감했는데, 버클리대 수학과 앨런 쇤펠트 교수의 말입니다. "성공은 보통 사람이 30초 만에 포기하는 것을 22분간 붙잡고 늘어질 수 있는 끈기와 지구력, 그리고 의지의 산물"이라고 말합니다. 목표를 이루는데 중요한 것이 타고난 재능이나 능력일까요? 그것보다는 접근하는 태도, 노력하는 자세 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강력한 동기와 엄청난 노력을 쏟아붇는다면, 어쩌면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 아니겠어요. 그러므로 좋아하는게 있다면, 해보고 싶은게 있다면, 최소한 보통 사람보다 44배 정도는, 더 붙들고 있는 대범함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아이들이 공부하지 않는 것은, 머리가 나빠서라기 보다는, 공부를 해야할 동기가 상실되었고, 노력을 해보기에는 너무 지루하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오늘날은 스마트폰을 비롯해서, 정말 재밌는게 많습니다. PC방에 "초딩러쉬"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어릴 때부터 삼삼오오 모여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는 많고, 그에 비해서 공부는 다만 숙제를 하기 위해서 억지로 펼쳐볼 만큼, 재미 없는 것으로 인식될 때가 있고요.

 

 그래서인지, 동양에서는 공부를 거의 강압적으로라도 해야하는 것으로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끊고, 공부만 하면서 살아야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며, 초등학생 때부터 취업할 때까지 공부감옥에서 지내기도 합니다. 그에 비한다면 서양에서는 잘하는 것만 집중하고, 계속해서 자존감을 칭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즉, 못해도 괜찮아 라고 생각하는 서양. 잘하는 것을 열심히 하라는 서양. 그 사고방식의 차이가 신기하고 재밌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서 모든 대목이 평균적으로 잘하기를 열망하는 동양인에 비해서, 하나만이라도 신나게 튀어나온다면 그게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서양인의 시각은 제법 배울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은 혁신의 시대, 창의성의 시대이므로, 책의 표현을 빌리면 "자기 고집을 갖고 계속 못처럼 튀어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무도 망치로 두드리지 못하고, 미래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는 창의성과 혁신의 힘을 기를 수 있는 겁니다." 복잡한 이야기를 단순화 시켜본다면, "잘 할 수 있는게 있다면, 정말 멋지게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 입니다.

 

 화제를 잠시 바꾸어, 학문의 즐거움에 대하여 동양에서 논한다면,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나 하는 소리가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할텐데, 현실에서의 공부란, 가난과 계급의 탈출 도구이므로, (사회적 혹은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 공부하는 경우가 정말 많으니까요. 다시 말해, 공부가 수단으로 다루어지며, 출세를 위한 도구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하버드 4인방의 이 말이 아주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공부말고 성공을 보장하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한국의 공시생은 이제 20만을 넘어서, 앞으로 30만을 넘어설지도 모릅니다. 그만큼의 안정적 생활을 보장하는 직업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대안이 없어서 공부한다는 말은 참 슬픈 말으로 들리기도 했고요.

 

 한편, 세계 인구의 0.2%인데도, 노벨상 수상비율이 20%가 넘는 유대인들의 엄청난 학구열은 굉장히 솔깃하고,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그리고, 책은 담담하게 이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증명해 보입니다. 사실은 오랜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되어 [공부가 곧 유일한 생존전략] 이 되었기 때문에, 유대인 문화 자체가 공부하고 토론하는 것을 일상화 시켰다는 점은 많은 생각을 던져주었습니다. 유대인은 오래도록 국가도 없었고, 어딜가나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이었기에, 눈에 보이지 않고, 빼앗아갈 수 없는 "무형의 자산인 지식 (그리고 기술)" 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게 되었다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주변 환경과 문화적 유산이 중요한 셈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공부와 친숙해지는 시스템을 구축해 놓는다면, 저절로 다가가게 된다는 시선이 참 좋았습니다. 그러면 어떤 환경이 대안인가? 라는 의문에 책은 나름대로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크게 두 가지 키워드로 압축되는데, "표현과 질문 " 입니다. 다시 말해 - 첫째,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문화를 만들어보자! 둘째, 질문의 공부, 대화와 토론을 통해 지식을 습득해 나가자! 입니다. 그리고, 공통점은 "타인"이 들어가 있다는 점입니다. 책은 영국 옥스포드대 학장의 이야기로 마무리 됩니다. 정말 좋아서 읽고, 또 읽었던 대목입니다. "사회의 진보는 사상을 가진 개인에서 출발하지만, 그 사상을 공유하며 서로 협력하는 사람들을 통해 발전해갑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학습 형태란 일정 부분 개인적으로 학습하면서 그런 개인이 모여 그들이 성취한 것을 토론하는 활동을 병행하는 것 입니다."

 

 이제 장문의 리뷰 역시도 마무리 해야겠네요. 책에서는 주변 환경으로 인해, 인간이 공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다고 여러 번 강조합니다. 서두에 저는 수능에 미끄러진 젊은 날의 오점(?)을 고백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해도 괜찮아" 라는 시선이 많다면, 우리는 행동하는데 훨씬 더 편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생존을 위한 길이 하나밖에 없는 사회가 된다면, 위너와 루저가 생기고 가혹한 경쟁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좌절감에 시달리며, 공부를 도구로서 접근하게 될 위험이 큽니다. 그리고 이런 환경이 창의성과 가까울리는 없을 듯 하고요.

 

 저는 콰이어트라는 책의 표현을 빌려서, 감히 조금 다른 접근을 해보고 싶습니다. "세계적인 최고의 피아노 연주자들은, 하루에 3.5시간 동안 혼자서 연습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콰이어트 中)" 자발적으로 혼자서 연습하는 시간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교류하려는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습관화 되어간다면, 우리는 정말로 "한 분야의 탁월한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시작부터 화려한 경우도 드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희망을 품어볼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시작하고, 노력하고, 계속 해본다면, 그렇게 자발적 동기를 소중하게 다루고, 돌아볼 줄 안다면, 우리는 좀 더 멋진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하버드 4인방의 에필로그 고백을 실으며 마칩니다. / "정말 지치기도 하지만 매우 즐거워요. 특히 제가 좋아하는 것을 공부할 때는 만족감이 크고 행복해요. 제게 공부는 행복으로 가는 하나의 방편이죠" / "실수도 하고, 그러다가 결국 정답을 찾아내는 그 과정이 좋아요. 열심히 공부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주는 순간이 제게 가장 행복하고 의미 있는 순간이에요."

 

 우리가 공부를 수단으로만 보지 않기를, 그래서 정신이 허락하는 한 공부하고, 의문을 가져보고, 노력하는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를. 논어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어쩌면, 우리의 삶이 전혀 기쁘지 않고, 매일이 초라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나이들었다는 적당한 변명으로 합리화하며, 배움을, 익힘을 멀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 2013. 09.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