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현대사 이야기의 출발점을 흥선대원군으로 잡아보려 합니다. 대원군과 그 배경을 잘 이해하면, 이어지는 강화도 조약까지를 보다 명확히 파악할 수 있을테니까요. 대원군이 나오게 되는 과정부터 차분히 들여다 봅시다. 늘 강조하지만, 어렵거나 딱딱하지 않아요~ 해치지도 않아요! 1800년까지는 영, 정조 시기였으므로, 어느 정도 조선이 성장하고 발달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1800년을 기점으로 정조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 이후에 나오는 세도정치는 끔찍했지요, 타락하고 부패한 모습이 펼쳐지면서, 조선은 곤두박칠 치며 계속해서 추락합니다. 자~ 그러다가, 1863년 대원군이 집권을 하게 되는데, 정말 꺼져가는 조선의 불꽃을 끌어올리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번 문서에서는 대원군의 개혁을 집중적으로 살펴볼까 합니다.

 

 그러면 대원군 집권 이전의 처참한 조선의 실태부터 파악해 봅시다. 무슨 병인지 알아야, 처방전이 나올테니까요. 19세기 초중반 (=1800~1863) 정치 면에서는, 세도정치가 이루어집니다. 풍양 조씨나 안동 김씨 같은 소수가문이 자기 맘대로 정치를 합니다. 권력은 비변사에 집중되었고, 여기서 국가의 정책들이 결정되고 있습니다. 정말 부패하고, 정말 타락한 막장 정치를 보여줍니다. 끔찍한 매관매직 자행되곤 했는데요.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보면, 고위층에 부탁해 돈 천만원을 주고 관직을 산 후에, "부패한 새로운 관리가 되어" 앞으로 수천만원치 이득을 얻기 위해, 기층 민중들의 고혈을 빨아먹습니다.

 

 경제 면에서는, 삼정의 문란이 펼쳐집니다. 전정 (토지세) 의 문란, 군정 (군역을 위해 포를 납부하는 것) 의 문란, 환곡 (고리대금으로 변질) 의 문란이 있습니다. 정치가 부패하며, 경제가 엉망이 되고, 도저히 살 길이 없어지자, 19세기 초중반은 그야말로, 민란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더 자세한 삼정 문란의 내용은 지난 문서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참고→ http://srw.kr/1338) 여하튼, 이 과정을 멀리서 바라보면, 나라가 멸망해 가는 시점, 막을 내리고 있는 조선을 볼 수 있습니다. 정치가 썩었고, 민중들은 못 살겠다고 반란을 일으키고, 자, 이 시기에 등장한 것이 바로 대원군 입니다. 1863년 대원군은, 어린 아들을 왕위에 앉혀놓고,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대원군은 조선을 어떻게 바꾸려고 했을까요?

 

 우선 정치적 개혁부터 볼까요. 소수 가문이 지배하며 세도 정치가 극성을 부리고 있었으니, 왕권이 어땠을까요? 이건 뭐 그냥 꿔다놓은 보릿자루 처럼 왕이 거의 병풍취급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대원군의 목표는 아주 명확했습니다. "왕권강화!" 였습니다. 또한, 경제적 문제가 심각하다보니, 민생안정을 강력하게 추진합니다. 여기까지 간단히 정리해보면, 19세기 초중반 조선은 세도정치와 삼정문란으로 나라가 엉망이었고, 1863년 대원군이 권력을 휘두르며, 왕권강화, 민생안정을 위해 개혁을 추진합니다. 이제 대원군이 무엇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하나씩 살펴봅시다.

 

 왕권강화를 위해서는 소수의 가문이 자기들 맘대로 하던 통치기구를 박살내야 했습니다. 소수가문은 비변사를 통해서 힘을 행사했는데요. 그래서 대원군은 가차 없습니다. "비변사? 없애!!!" 생각해보면, 지금 비변사는 행정과 군사적 결정을 몽땅 하고 있는데, 이 권력을 나눈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권력이 한 쪽으로 쏠려 있으면 부패하기 쉽잖아요. 그래서, 비변사를 없애고 어떻게 하냐 하면, 의정부와 삼군부로 나눕니다. 글자만 봐도 감이 올지 모르겠는데, 여하튼 이제 의정부가 행정, 삼군부가 군사를 담당하게 됩니다. 근본적 취지는 역시 왕권강화 였습니다. 이제 왕이 통치하며, 의정부와 삼군부를 컨트롤 하겠다는 의지랄까요. 비변사를 없애고, 권력쏠림을 어느정도 나눠놨다는 흐름을 기억해두면 됩니다. 또한, 고른 인재 등용이 시행됩니다. 소수 가문을 배척한다는 것입니다.

 

 항상 개혁을 추진하려면 질서라는게 있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새롭게 출발하려면, 당명도 바꾸고, 당규도 바꾸고 그러는데, 이와같이 새로운 질서는 참 중요합니다. 개혁을 밀고나간, 대원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법을 재정비 하며 "대전회통" 이라는 법전 정비 작업을 합니다. 조선 시대의 기본 법전은 성종 때 만들어졌던 경국대전이었는데, 시간이 흘러서 조선 후기 속대전이 편찬됩니다. 문제는 경국대전과 속대전이 서로 견해가 다른 부분이 있어서 충돌적 요인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대원군은 이참에 법체계를 서로 잘 맞게 정리될 수 있도록 손을 봅니다, 쉽게 말해 대전회통은 정비된 조선 법전의 최종 종합판이다 라는 겁니다.

 

 그리고 육전조례를 규정해서, 행정부서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행해야 하는지 규칙을 정합니다. 이렇게 법적 질서를 재정비하면 어떻게 될까요? 누구에게 힘이 쏠릴까요? 왕에게 권력이 좀 더 집중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세도정치를 하며 가문이 제멋대로 해먹다가, 이딴거 치워! 이제 질서를 새롭게 정할테니, 이대로 똑바로 일처리 합시다! 이것이 대전회통과 육전조례가 가지는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쉽게 예를 들어 봅시다. 새학기가 시작되면, 새출발을 위해서 반장도 뽑고, 재치있는 교훈도 정하고, 학급의 규칙을 정하잖아요. 대원군도 조선을 바꾸기 위해서, 지금 새롭게 규칙을 정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렇게 해서, 중앙에서는 권력을 왕에게 계속 집중시켜 나갑니다. 이 다음 단계는 지방입니다. 지방은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예컨대 지방이 자기들 멋대로 행동하며, 대원군을 무시한다면 이건 정말 왕 입장에서는 곤란하잖아요. 대원군은 역시나 이번에도 과감한 개혁을 들고 나와 밀어붙입니다. 이른바 지방 권력의 핵심 역할을 하던, 서원을 엄청나게 정리 해버립니다.

 

 이건 장난 아닌, 실로 대단한 개혁이에요. 당시 지방 세력들의 경제적 자산이자, 핵심 기반이었던 서원을 개혁하다니,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서원은 높은 사람들을 모신다는 명분으로, 면세지를 많이 갖고 있었고, 세금을 많이 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지방 기득권 입장에서야 서원은 참 좋은 곳이었지요. 땅은 이따~만큼 갖고 있으면서도, 세금은 안 냈으니까요. 그런데, 거기에다가 지금 대원군이 제대로 철퇴날리고 있습니다.

 

 서원 정리는 다양한 효과를 냅니다. 일단 서원을 없애고 지방 권력을 정리해버리니까, 당연히 왕권 강화 가 되겠지요. 게다가 이렇게 서원을 철폐하고, 면세지에 세금을 때리니까, 국가 재정에도 도움 이 됩니다. 또한, 민생 안정 까지 됩니다! 서원이 있을 때는, 서원에서 제사를 한 번 드리면, 한 고을에서 각종 수탈이 발생했는데요. 가령, 지금 서원에서 제사 드리니까 민중들은 돈 좀 냅시다 라면서, 쥐어짜는 폐혜가 있었습니다. 괴롭힘 당하던 기층민중에게는 그딴 서원 차라리 없는게 낫다고 생각했을겁니다. 서원에서 제사 지낸다는 건, 적어도 먹고 살기 힘든 민중에게는 무서운 소식, 힘든 소식이 될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대원군은 딱 47개만 남기고, 서원을 깡그리 다 날려버립니다. 수백개의 서원이 과감하게 철폐됩니다!

 

 여담으로, 역사에서는 종종 혁명보다 더 어려운게 개혁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혁명은 그야말로 피와 단호함이 있기 때문에 반대세력을 가차없이 처단하며 날려버릴 수가 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의 그림들을 보면, 호위호식하던 사람들 그대로 목이 달아나는 그림이 많습니다. 이 때의 강렬한 경험 덕분인지, 유럽 사람들은 지나치게 잘 사는 것을 자랑하지 않도록 교육받고, 부자에게는 의무가 있음을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외부에서 아니꼽게 볼까봐, 음식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먹어야 한다고 교육받습니다. 안면몰수하며 사치스럽게 살면, 완전히 끝장난다는 것을 역사에서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개혁은 말이지요. 바꾸기 위해서 충분한 지지를 얻어야 하고, 힘있는 기득권과 싸워야 하고, 그렇다고 혼자 너무 막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절대로 쉽지가 않습니다. 개혁이 좌절되는 풍경은, 오늘날까지도 뚜렷하게 볼 수 있는, 역사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이야기로 돌아와, 지금 대원군은 기존의 기득권 세력과 정면으로 맞붙고 있습니다. 게다가 정말 장난 아닌데, 결정적으로 만동묘 철폐를 해버립니다. 만동묘? 이게 뭔가 하니, 바로 "중국 황제를 모신 사당" 입니다. 자, 조금만 더 과거로 가볼께요. 조선은 얼마나 성리학적 명분을 중시하던 나라였습니까.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우리를 도와준 그 중화의 나라, 중국 명나라! 그래서, 조선은 참으로 친명을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친명친명! 배금배금! 하다가 막강해진 (금→)청나라가 쳐들어와 병자호란의 굴욕을 겪은 것도 오래전 문서에서 살펴봤었잖아요. (병자호란이 뭐임? 이라는 분은... 아 오래전 문서 http://srw.kr/1239 링크 참조. 친절합니다!)

 

 결국 명나라는 청에 의해 망해버렸지만, 조선은 끝까지, 우리가 명나라를 잇는 소중화의 나라이다, 따라서 중국 황제를 모시는 정통성 있는 나라이다 라고 만동묘를 유지했던 것입니다. (덧붙여, 이 소중화 의식은 사대주의적인 성격이 있으면서도, 우리만의 자부심, 자주성이 함께 들어가 있다고 이해해두면 되겠습니다.)

 

 어쨌든 임진왜란 때 도와주었던, 그 명나라의 황제를 모시던 만동묘를 유지해 오고 있었는데, 역시나 만동묘! 인기가 참 많았습니다. 한마디로, 거의 지방 유생들의 아지트 였다고 보면 됩니다. 명의 뒤를 이어, 정통 있는 성리학적 질서의 조선을 자부하는 유생이 많았지요. 하하, 대원군이 이걸보며 어떻게 했겠어요. 당연히 가차 없습니다. "만동묘? 그게 뭐야! 없애 없애!"

 

 어쩌면 만동묘 철페는, 서원 정리보다 더 어려운 싸움이자 결단이었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서원 정리는 그래도 국가 재정을 확보한다는 아주 좋은 명분이 작용하고 있었고, 밀어붙일 수 있는 원동력이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만동묘 철폐는 거의 이념적 전쟁이었으니까요. 다시 말해, 만동묘를 없애버린다는 건, 조선은 더 이상 중국 뒤를 좇는 나라가 아니다! 라는 대원군의 집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서 "명분을 져버리는 행동"은 정말 힘든 결정입니다. 여러 번, 언급하는 것 같은데 광해군만 해도 명분대로 안 했다가, 인조반정으로 완전히 몰락해 버렸던 사례도 엄연히 있었고요.

 

 자, 만동묘 철폐를 밀어붙이자 어떻게 되었을까요? 유생들이 말그대로 엄청나게 몰려옵니다. 대원군에게 거세게 항의합니다! 상소를 요즘식으로 조금 각색하면, "대원군은 각성하라! 만동묘를 살려내라!" 라며 반발한 겁니다. 그런데, 장난 아닙니다. 대원군은 물러설 기색이 전~혀 없습니다. "공자가 다시 살아난다 할지라도, 결코 이건 물릴 수 없다!" 라며 유생들의 건의를 묵살하고, 전부 되돌려 보냅니다. 어지간한 강단 가지고는 쉽지 않았던 결정을, 대원군은 계속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자, 이렇게 강경하게 밀어붙이는게 결국 나중에 문제가 되는데요... 60초 후에... 다음 문서에서 계속! 대원군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테니, 적당한 선에서 한 번씩, 끊어가면서 하겠습니다 :) 양해를 구합니다!

 

 일단 장황하게 쓰다보니 복잡한 느낌이 있어서 깔끔하게 한 번 정리하면, 비변사를 없애며, 왕권을 강화했다, 지방권력과 정면으로 싸워나가며 서원 정리해 버린다! 라는 게 핵심이라 하겠습니다. 한 줄 가지고, 문서를 진짜 엄청 늘려서 죄송합니다만, 어쨌든! 꽤 즐겁지 않나요~ 저만 즐거운가요~ 흥미진진한 근대사 이야기 계속 됩니다!

 

 오늘의 영감 - 최근 보았던 말 중에 호치민이 남긴 이 말이 떠올라서 잠깐 소개해 봅니다. "민중이 이해할 수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혁명적인 이론이 될 수 없다. 혁명을 하고도 민중이 여전히 가난하고 불행하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최선생님은 서두부터 개혁이 항상 옳은 것일까요? 라며, 꽤나 무거운 질문을 툭 던지는 돌직구 센스를 보여주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는 참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혼자만 끌고 나간다고 해서 사회 변혁이 가능할 리가 없습니다. 더 나아가, 멋진 주장을 펼쳤는데, 그래서 막상 시도해보았더니, 여전히 기층민중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이게 대체 누구를 위한 개혁인가? 누구를 위한 변화인가? 되물어보는 패기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by 시북 2013.10.14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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