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운요호 사건 및 강화도 조약 탐구

시북(허지수) 2013. 10. 23. 17:14

 대원군은 최익현의 상소를 계기로 물러나야 했습니다. 이후, 새롭게 들어선 정권이 있으니 명성황후를 중심으로 한 민씨 정권입니다. 민씨 정권은 과거 대원군 정권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추구해 나갑니다. 아무래도 정권이 바뀌면, 좀 다른 정책을 추진하려고 노력을 하겠지요~ 특히 대외 정책이 달라집니다. 또한, 이 때쯤 되면 통상개화파가 성장해서, 정계에 진출해 활약하기 시작합니다.

 

 개화파의 대표적 인물로,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통상개화파의 배경으로는 북학사상의 영향을 받았고요. 북학사상이라고 한다면, 원래 취지는 북쪽의 학문 (청나라) 을 배우자는 건데요. 여하튼, 이제는 문을 열고 배우자(받아들이자)는 주장이 통상개화파 입니다. 대외적으로도 청나라가 양무운동을 통해서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고, 일본의 경우는 메이지유신을 통해 아예 싹 다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고요. 이것을 바라보았던 통상 개화파들은 민씨 정권에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도 이제 통상을 해야 합니다~ 동아시아가 열리고 있어요~"

 

 자, 이런 상황 속에서 중요한 사건이 빵하고 터집니다. 민씨 정권이 들어선 후, 1875년에 있었던 일본과의 운요호 사건 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중요해요! 지난 문서 잠시 살펴보면, 대원군 시절에 일본과의 수교를 거부해버리잖아요. 서계(국서)도 안 받아주면서, 일본인들 돌려보내고 말이에요. 그래서 일본은 이후 정한론(1873년경)이 등장하는데요. 쉽게 말해 정한론은, 우리를 인정도 안해주는 저 조선을 치자는 겁니다. 이걸 바탕으로 일본은 강화도에서 운요호 사건이라는 결정적 한 방을 터트립니다.

 

 잠시 여담으로 강화도는 일종의 지하철역 "만남의 장소" 같은 역할을 합니다. 수도로 가기 위해서는 한강을 거쳐서 들어가야 하는데, 그 길목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곳이 강화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화도는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 사건까지, 이렇게 굵직한 일마다 무대의 중심이 되곤 했습니다. 자, 여하튼 운요호 사건이 뭐냐하면, 일본이 군함을 가지고 강화도로 옵니다. 두둥. 조선은 이제껏 비슷한 사태를 몇 번 겪어왔습니다. 병인양요도 그랬고, 신미양요도 그랬고, 이 경우 대응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꾸 강화도 앞에서 군함끌고 왔다갔다 하니까, 조선이 포를 쏴버리는데... 일본은 이걸 "트집"잡아서, 아니 왜 포를 먼저 쏘냐면서, 조약 체결을 하자고 들고 나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일본의 야비한 전략에 말려들어간 겁니다.

 

 이제 조선은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협상을 해가며 조약체결을 할 것인가, 아니면 "저 10XX들 일본X들 한 판 해보자!!!" 라면서 일본과 대판 싸워볼 것인가!!! 아마 대원군 정권이었다면, 전쟁으로 치닫았을 가능성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민씨 정권은 더 이상 수교거부노선이 아니었다 는게 중요합니다. 물론, 일본도 그걸 노리고, 운요호 사건을 일으켰겠고요.

 

 전쟁이냐! 조약이냐! 국내 상황은 이미 통상개화파들이 우리도 문을 열어야 한다는 주장도 많아지고 있었고, 적극적으로 근대화에 나선다는 명분도 있고, 결국 결단을 내립니다. 그래, 그렇다면 조약을 해보자. 민씨 정권에 의해, 조선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 이렇게 체결됩니다. 이것이, 1876년 강화도 조약 입니다. 다른 말로는 병자수호조규 혹은 조일수호조규 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면 조약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겠지요. 어쩌면 보다보면, 왠지 짜증이 나거나, 확 열이 올라오기도 할테지만, 일단 차분히 보자구요.

 

 첫 번째 대목, 조선은 자주국이라는 조항이 들어있습니다. 어? 좋네! 당연하죠!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당시 조선은 상당히 청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일본이 괜히 조선을 삼킬려고 집적댔다가는 청나라발 역풍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래 전 임진왜란 때도, 중국 명나라가 조선을 도우러 오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니까, 일단 일본 입장에서는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를 끊어놓으려고 합니다. 조약의 첫 항 시작부터 바로 나오는, 조선은 자주국이라는 말을 반드시 긍정적으로만 보기 보다는,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다소 소름돋는 전개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선을 장악하기 위해서, 혹시 모를 청나라와의 연결고리를 조항에서부터 없애놓는 거지요.

 

 또 중요한 대목으로는 "개항장"을 언급합니다. 부산 외에도 두 군데를 더 개항하라고 요구합니다. 결과적으로 원산(1880)과 인천(1883)의 항구가 열립니다. 부산의 경우 조약하면서 곧 개항되고요. 자, 생각해 봅시다. 부산을 개항한다는 것은, 경제적 목적이겠지요. 일본과 가까운 부산의 문을 열고 교류를 해나가자는 거지요.

 

 그런데 이후 원산과 인천의 개항은 의도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원산은 군사적 목적이 들어갑니다.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해서, 조선 동쪽의 원산을 군사기지로 활용하겠다는 측면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천을 열라고 하는 대목은, 정치적 이유입니다. 수도 바로 옆의 항구를 이용하면서, 일본이 정치적으로 압박을 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천항은 조약 체결 후, 한참 뒤인 7년이나 지나서 끝내 열리는데, 곰곰이 생각해봐도, 조선 입장에서도 일본의 태도가 영 꺼림직 하거든요. 그래서 신중한 태도로 검토한 끝에, 1883년이 되어서 인천항이 열렸던 겁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주권이 침해되고 정말 불평등한, 즉 심각한 독소조항들이 있었습니다. ① 해안측량권을 일본이 가져가는데,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시행됩니다. 말 그대로 조선의 해안을 자기들이 측량한다는 거에요. 아주 간단히 비유해, 우리의 소중한 몸을, 남이 함부로 더듬고 만질 수 있게 한다면, 아후, 끔찍하잖아요. 지금 그런 황당한 조항이 들어있던 겁니다. 해안측량권 허용은, 명백한 주권 침해이자, 불평등한 조약임을 나타내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문제가 됩니까? 일본이 조선의 해안을 측량해서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우기도 했고요. 명분은 어디까지나 명분이고, 정말 위험한 조항입니다.

 

 결정적인 독소조항은, ② 치외법권 (영사재판권) 조항 이 있습니다. 이 대목 특히 중요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니,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들어온 일본인들이 깽판을 치고, 난리를 치고, 사람을 패고 하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하는데, 그 벌을 주는 사람이 조선인이 아니고, 일본영사가 재판을 한다는 것 입니다. 헐... 이건 정말 심각하지요. 과연 이 경우 벌을 제대로 주겠어요? 팔이 안으로 굽어서 자기들 유리하게 재판할 껀 너무나 뻔하잖아요. 이렇게 되니까, 일본인들이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치외법권이 있어서, 가령 대사관 같은 경우 -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특히 대사관의 직원들은, 해당하는 대사관의 국가에서 법적인 결정권이 있습니다. 문제는 강화도조약에서 처럼, 당시 모든 일본인들을, 조선 땅에서 치외법권을 인정해 주었던게 정말 잘못된 불평등 조약이라는 것이지요.)

 

 여기까지 강화도 조약의 주요내용인데요. 다음 문서에서는, 계속해서 강화도 조약의 영향들을 살펴볼께요~

 

 오늘의 영감 - 과거나 현재나, 그리고 미래나, 중요한 것은 공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공정(公正)이 뭔가요, 영어로는 justice 입니다. 공정이 무너지면, 자기네들 편한대로 유리하게 해석해 버립니다. 공정이 무너지면, 심각하게 깽판을 쳐놓고도 배째라~나몰라~ 하면서 책임을 회피해 버립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공정한지, 아니면 이상한지, 잘 살펴보는 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불공정이 계속되면, 한 쪽이 끝내 침몰할테니까요. 보통 약한 쪽이 그렇겠지요. 마찬가지로, 위키피디아의 친절한 설명처럼, 보통 불평등 조약은 약소국이 불리한 입장에 놓입니다.

 

 최근 본 기사 중에 가장 신비로웠던(?) 것은 ebs 지식e 책이 좌편향이라는 신선한(?) 시각이었습니다. 우리는 얼마 안 가서 ebs에 대하여, 정부가 난데없이 압력을 넣을 수도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니, 이미 지식채널 김진혁PD는 올해 퇴사를 했지요. 친일주제다큐를 제작하다가 사측과 갈등을 겪었고, 퇴사하게 되었지요. 표현할 수 없는 나라, 자유로운 의견이 오고가지 못하는 나라, 저는 일부(...겠지요?) 기득권들은 참으로 민주주의를 싫어하는게 아닐까 하는 괜한 의심까지 들었습니다.

 

 언론이 입맛대로 장악되고, 교육마저도 입맛대로 장악된다면, 소수에게는 즐거운 유토피아가 될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조지 오웰의 오래된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브라더가 그렇습니다. 그 책은 흥미롭게도 이렇게 끝납니다. [He loved Big Brother] 어쩌면, 우리는 나도 모르게 큰 부를 가진 사람을 사랑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나도 모르게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 때, 우리는 질문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또한 조지 오웰은 또 다른 저서에서는 "위기가 닥치면 지배받고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을 압제하고 있는 권력자의 편에 붙어서, 오히려 약한 사람들의 적이 되어서 그들을 괴롭힌다." 라고 신랄하게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생각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우리를 비극적 상황 속으로 빠뜨리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노력하는 멋진 분들이 많습니다. 매일 아침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헬프에 나오던 대사를 덧붙이며 잡문 마칩니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매일 결정하고, (그렇게 살아간다면) 분명 위대한 인생을 살게 될꺼에요."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