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뒤집어 생각하기"는 제가 즐겨 활용하는 사고방법 입니다. 예컨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뭘까?" 라는 막연한 질문이 있다고 칩시다. 때로는, 도저히 답이 안 보인단 말이지요. 그럴 때는, 질문을 뒤집어 보는 겁니다. "그럼,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뭘까?" 거기에는 답할 수 있었습니다. 제 경우,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삶은 제발 피하고 싶었습니다. 정신 없이 돈만 좇아서 살아가는 태도도 제발 피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제와 다른 일상을 위해서 "오늘 무엇인가를 해야겠네! 만화책이라도 집어들어야겠네!" 하하, 뭐, 그런 식의 결론을 얻곤 했지요. 또는, 돈 드는 취미 보다는, 적은 돈으로 맘껏 누릴 수 있는 취미를 즐겨봐야겠네! 조조영화 5천원이면 되는구나! 라는 이른바 "주말엔 조조영화 애호가"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누군가, 요즘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묻는다면, 잘 먹고, 잘 노는 것, 그리고 밥벌이를 편히 하는 것이라고 소박하게 답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자, 과연 사회에 관해서도 뒤집어 생각하기가 유효할까요? 강신주 선생님의 일갈을 느껴보니, 정말로 유용한 것 같습니다. 좋은 사회의 그림이 멀어 보인다면, 반대로, 나쁜 사회는 뭘까? 라는 고민에 강샘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한 사회가 쓰레기 같으면 향유하는 시간을 줄입니다. 야간에 일을 많이 해서 돈을 많이 벌어도, 에너지를 다 소비해서 지치면 집에 와서 퍼져 자요. 가족들 얼굴도 못 봐요. 이런 인간은 삶을 못 사는 겁니다." 특히 이 책에선, 향유하는 시간을 아주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래에서 계속)

 

 저자 : 강신주 / 출판사 : 동녘

 출간 : 2013년 07월 31일 / 가격 : 13,500원 / 페이지 : 290쪽

 

 

 판단이 잘 서지 않을 때에는 한 가지 공식을 알려줍니다. "삶의 행복은 노동하는 시간보다 향유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커진다" 간혹 (예술가처럼) 극소수의 사람들은 일 자체가 행복이며, 일을 통해서 삶을 향유하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만, 이건 정말 비범한 경지이기 때문에 - 우리같이 평범한 범인으로서는, 노동 시간을 줄이고, 향유 시간을 늘리면 행복의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 얼핏보면 참 소소해 보이는 공식이지만, 사실은 훌륭한 통찰이 담겨 있다고 느껴졌는데요. 일을 하는 목적이 있다면, 가령 돈을 벌어 애인과 함께 저녁 식사와 연극을 즐길 수 있다면, 그 노동하는 시간도 무의미한 것이 아닐테니까요. 저는 참 명쾌하게 와닿아서 좋았습니다.

 

 허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대목에선, 적잖게 한 방 먹은 기분이었습니다. 강신주 선생님의 직구를 들어보자면, "일은 어느 것이나 모두 소중한 것입니다. 생존과 향유를 가능하게 하니까요. (그런데) 정규직이면 뭐해요, 밤새도록 야근하고 돈을 많이 벌면 뭐하냐고요. 향유할 시간도 없는데 말예요. 다 정규직에서 일한다는 허영뿐이죠." 다시 말해, 시간을 몽땅 뺏어가는 고소득 직장이라면, 과감히 집어치우는게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런 논의가 왜 의미가 있는가 하니,

 

 사회 (정확히는 자본) 가 요구하는 게 대체적으로 이렇습니다.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고, 또 그 돈으로 저축하면서, 미래를 준비해 나가야지, 쉬고 여유를 누리면 그러다가 도태된다고 암암리에 위협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강 선생님은 완전히 다르게 접근합니다. 중요한 건 돈이 아냐, 향유할 수 있는 "시간" 이라고! 그래서 "최적임금"만 벌 수 있다면, 나머지 시간은 일에 매일 필요가 없다고 강조합니다. 물론, 개인마다 필요한 씀씀이는 다르겠지요. 그런데 그 씀씀이 조차도, "내가 결정권"을 가진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연봉 2천만원으로도 얼마든지 내가 바라던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여유로움이랄까요. 그렇게 볼 때, 돈을 모으기 위해, 투잡, 쓰리잡을 뛰려고 하는 건, 그러다가 훅 가는 자살행위에 가깝다는 겁니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려는 "용기 있는 선택",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라고 강샘은 친절히 추신까지 덧붙여 줍니다.

 

 정치에 대해서는 특유의 중국집 음식주문으로 풀어서 설명해 줍니다. 각자가 먹고 싶은 것 시키기, 이것이 민주주의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렇게 하면, 좀 늦게 나온다는 불편함은 있겠지요. 이걸 견디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 개인적으로는, 음식은 적당히 맞춰서 시키는게 빠르고 편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효율적인 사고가 지배하는 거지요. 게다가 궁극의 필살기 "아무거나 시켜도 돼요" 가 있습니다. 확실히 생각을 포기해 버리니, 편해지고, 빨라진다는 느낌이 듭니다. 가끔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계속 이렇게 살아가는 경우에 가장 큰 위험성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다른 예로 생각해 볼까요. 대학의 학과를 결정하는 건, 청소년기 가장 어려운 결정 중 하나입니다. 쟤랑 사귀어? 말어? 만큼이나 피곤한 일이지요. 그 때, 적당히 부모님의 결정에 맞춘다거나, 일단 아무 곳이나 전망 좋다는데 넣는다거나,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역시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잊어버리게" 됩니다. 때로는, 아예 그냥, 지금 선택한 것에 대해서 최대한 긍정해 버리고, 합리화 하기도 합니다. 물론, 뭐 겉으로는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만... 과연 한 번 뿐인 인생을, 그렇게 자꾸 결정을 회피한채, 계속 살아도 괜찮은 걸까요?

 

 이렇게 놓고 본다면, "자신의 의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이 뭐래도, 나는 잡채밥! 이라고 의견을 낸다면, 또 그것이 받아들여진다면, 사회가 건강해지고, 유쾌해질 수 있을 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들은 이걸 참지 못하고, 뭔가 덧씌워버리고 싶어합니다. 조선시대였다면, 뭐? 잡채? 사문난적으로 욕먹을테고, 한국이라면, 뭐? 진보? 종북세력으로 욕먹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것을 앞으로 절대로 막고, 반드시 경계해 바로 잡아야 한다"는 누가봐도 상식적인 주장이, 북한 추종과 어째서 연계되는지 당최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의 블랙유머처럼, 정부와 다른 말 하면 다 종북? 하여간, 참 신기합니다. 덧붙여, 당연한 이야기 또 하자면, 3대째 권력을 세습해 이어오는 집단이 있다면, 그 밑에서 노예처럼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참 안타깝다는 생각도 합니다.

 

 강신주 선생님은 벤야민의 이야기로 정치 상담을 마무리 합니다. "매순간 한 보 한 보만이 진보이다" 이와 반대되는 말은 "어차피 그놈이 다 그놈이지" 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앞의 말이 좋지 않은 상황으로 보일지라도 선택을 꼭 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면, 뒤의 말은 어차피 선택을 회피하고 적당히 포기해도 괜찮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한 보라도 나은 선택을 하고자 노력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둔다면, 자연스럽게 상황이 더 비참하게 흘러갈 위험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다수의 무관심 속에서는, 얼마든지 막장짓이 자행될테니까 말이에요.

 

 마지막으로 쫄지 마 대목에서 흥미롭던 대목은 "그냥 내지르기" 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냥 내지르지 않고(!) 화장을 좀 시켜서 말하면 어떻게 될까요? 특히 예쁜 척하며 말하기, 지적으로 보이는 척하며 말하기, 그리고 뭔가 심오하게 아는 것처럼 미래예측까지도 딱 해주면, 그야말로 있어보이기의 끝판대장 정도 됩니다. 저는 이런 자뻑행위를 삼가야 한다는 아픈 통찰을 얻었습니다. "그냥 본인이 원하는 대로 말하세요" 라는 점. 여기서 나니아연대기의 C.S.루이스 말이 떠올랐습니다. "독창성? 단순히 진실을 말하려 한다면 열에 아홉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독창적인 결과가 될 것" 자기가 살아간 만큼만 이야기하면, 그것이 곧 진실이고, 그것이 곧 매력적인 이야기가 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참 고마웠던 대목입니다.

 

 리뷰의 후반부에는, 그래서 제 이야기를 과감히 좀 덧붙일까 합니다. 저는 오래도록 예수나 작가 루쉰 같은 이야기를 좋아했습니다. 예를 들어,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가주어라, 옷을 달라면, 겉옷까지도 벗어줘라" 같은 예수의 묘한 명령이 마음을 사로잡았지요. 이걸 또 루쉰은 대놓고 쏘아붙입니다. "비오고 날도 춥다면, 주변인은 치우고, 일단 나부터 비와 추위를 피해야지, 무슨 소리냐!" 진짜 솔직히 고백해, 저는 루쉰의 말이 더 좋았습니다. 아니, 훨씬 좋았습니다. 사람이 일단 살아야지, 남 좋은 일만 하다가 죽는건 아무래도 모순 같았습니다.

 

 제가 무엇인가 크게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였습니다. 은사님이 저 괴상한 예수의 이야기를 다르게 설명했기 때문입니다. "로마군인이 너한테 와서 "야 5리가자" 라고 억지로 협박할 때는, 저항하지 말고 10리라도 가주라는 의미" 라고 설명을 들었습니다. 당장 비굴해 보일지라도, 한 개인의 목숨이 어떤 가치보다도 훨씬 더 귀중하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저는 그 설명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러므로, 루쉰도 "일단 살아야 한다며" 사람의 생명을 사랑했고, 예수도 근본적으로는 사람의 생명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강신주 선생님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해서, 저는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256p) "비겁한 걸 받아들이세요. 중국의 한신처럼, 딱 보니까 깡패들과 싸워서 안 될꺼 같으면 그냥 기면 돼요. 뻔뻔하게. 그렇다고 그들에게 굴복하는 건 아니에요. 나중에 힘을 가졌을 때, 한신이 개국공신 명장이 되잖아요." 이렇게까지 인간을 사랑하는 철학자 강 선생님께 참 많이 배웠습니다.

 

 내가 약할 때, 무모하게 덤비다가 죽도록 깨진다면, 그건 슬픈 일입니다. 차라리 뻔뻔하더라도, 열악한 현실 앞에, 자신의 삶을 더 소중히 여기고, 힘겹더라도 반드시 힘을 내서 살아가야 하는 것, 저는 그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음, 30대의 고백치고는, 참 초라하고 폼도 안 나는 것 같은데... 저도 한 번 뿐인 인생, 멋있고, 신나게 살아야지! 라고 쓰고 싶지만... 오늘 마무리는 조금 다르게 하고자 합니다.

 

 강자 앞에서, 비굴한 선택을 했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스스로를 비하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맹자에 나오는 이 말을 저는 기억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귀함을 지니고 있건만 생각하지 않아서 모를 뿐이다. 남이 귀하게 해준 것은 진정 귀한 것이 아니다. 조맹이 귀하게 해준 것은 조맹이 천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압제자의 웃음소리가 아무리 크게 보일지라도, 우리네 소시민 한 사람의 인생이 절절하게 살아남는 것이 소중합니다. 그렇게 살아남아서, 실력을 키워서, 마침내 당당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면, 참 좋겠습니다. 결코 힘든 현실만이 계속되지는 않을 겁니다. 기죽지 말고, 어깨를 피고, 네 좋아요. 그리고 한 번 주먹도 꽉 쥐어보고, 팔짱도 한 번 껴보고, 다시 힘을 내보는 게 꼭꼭 필요합니다. 그렇게 오늘을 쫄지 말고, 견디며 살아갈 때, 우리는 어쩌면 훌쩍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힘내세요. 살아간다는 것은 절대로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이니까요. 시간을 향유하며 / 행복하게 삶을 누릴 수 있는 길을 / 찾게 되는 멋진 날이 올 것임을 / 저는 반드시 응원하고 싶습니다. / 2013. 10. 리뷰어 시북

 

by 시북 2013.10.24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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